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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로 재벌 참교육-101화 (101/139)

§101화 하와이에서(1)

- 미안하다. 이번 성탄절 연휴 때 예비 장인어른과 바다낚시를 가기로 해서….

- 어쩌지? 연말에는 세연 씨랑 아이슬란드에 오로라 보러 가기로 했는데…. 너만 괜찮다면 내가 세연 씨에게 한번 말해볼게. 같이 가지, 뭐.

예전과 달리 김현석과 강하민에게 연인이 있다는 걸 잘 알고 있는 현시운이다.

그래서 크리스마스나 연말에 뭉치자고 청할 생각도 애초부터 없었다.

작년에 말도 안 되는 핑계로 모임을 회피한 게 못내 미안했던지, 올해는 시운이 입을 떼기도 전에 둘이 먼저 위와 같은 말들을 꺼냈다.

예비 장인어른과의 바다낚시라….

뜬금없었지만, 즐거운 시간 되라며 맞장구를 쳐줬다.

근데, 강하민은….

진심이 1도 느껴지지 않는 얼굴로 여행 동반을 권했다.

누가 봐도 거짓.

설사 진심이라고 하더라도.

'누굴 눈치도 없는 사람으로 아나?'

커플 사이에 끼고 싶은 마음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당연히 거절했다.

- 이런…. 아쉽네.

말과는 달리 한껏 밝아지던 그때 표정은 정말이지….

그들이 어떤 연말을 보내든 자신도 알 바가 아니다.

시운은 자신만의 휴가를 충분히 즐기고 있으니까.

쏴아아~

불어오는 바람에 바닷물은 너울져 해안으로 밀려들었다.

내리쬐는 태양 아래 펼쳐진 이국적인 풍경.

한겨울에 접어들었을 고국과는 달리 이곳 태평양 한가운데의 섬.

하와이는 사시사철 따스한 기온을 자랑했다.

와이키키 해변을 거니는 시운의 기분은 남달랐다.

2년 만에 다시 찾은 곳이다.

그때는 강하민을 비롯한 미래투자신탁의 임직원 모두가 함께 왔었는데….

지금은 혼자다.

허전함도 느꼈지만, 그보다는 자유로움을 더 만끽할 수 있었다.

강철완도 옆에 없다.

잠시 혼자 거리를 걷고 싶은 마음에 멀리 떨어진 가게에서 음료수를 사 와달라고 부탁하며 떨어트려 놓았다.

위험할 수 있다고 한사코 거부하는 그를 겨우 보냈다.

밝은 대낮인 데다 하와이의 치안은 안전한 축에 든다고 설득하면서.

별로 안심이 안 되는지 강철완은 빨리 다녀올 심산으로 뛰어갔다.

직후, 시운은 어디에서 만나자는 문자만 한 줄 날리고 그와 반대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자신을 걱정하는 마음을 충분히 알기에 겉으로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요 며칠간 강철완과 옆에 딱 붙어서 다니느라 휴가의 기분을 제대로 느껴보지도 못했다.

경호를 받는 상황에 아직 익숙하지 않다는 거겠지.

장기우와 왕원, 해리 페이퍼까지.

원했든, 그렇지않았든 여러 적을 만들어놓은 상황이다.

몸을 사리는 게 맞지만, 시운은 크게 불안하지 않았다.

만약 자신에게 위기가 닥칠 거였다면, 유레카 위기 알림 문자가 먼저 날아들었을 테니까.

최소 일주일간은 자신의 신변에 아무런 문제가 없을 예정이다.

시운은 느긋하게 와이키키 해변을 거닐다가 길을 따라 줄지어 선 노점상 중 한 곳으로 발길을 옮겼다.

핫도그 냄새가 자신을 유혹해서다.

맛있기로 소문난 가게인지 여러 사람이 줄지어 서서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시운도 그 행렬에 동참했다.

십여 분을 기다린 끝에, 시운은 두 개의 핫도그를 손에 쥐었다.

자신과 강철완의 몫.

"이제 슬슬 가볼까."

안 그래도 강철완에게서 전화와 문자가 계속 오고 있었다.

더 걱정하기 전에 만남의 장소로 가야 했다.

시운은 해안가로 발길을 돌렸다.

"…음?"

아까부터 누군가의 시선이 느껴지는데?

기분 탓인가?

무시하고 걸음을 재촉하려는데 뒤통수가 따갑다.

시운은 무심코 고개를 뒤로 돌렸다.

"……?"

착각이 아니었다.

자신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낯선 이가 따라오고 있었다.

금발에 푸른 눈을 가진 백인 청년.

그는 시운을 빤히 쳐다봤다.

아니, 정확히 표현하자면 그의 시선은 좀 더 아래를 향해 있었다.

* * *

처음 그를 보고 떠오른 현시운의 생각은….

'노숙자?'

이목구비는 잘 생겼다고 할 정도로 뚜렷했다.

하지만, 행색은….

무척 남루하다.

하와이언 셔츠와 파란 반바지는 며칠을 입었는지 땟국물이 곳곳에 묻어났고, 끝부분도 약간 헤져 있었다.

금발의 머리도 엉망진창으로 짓눌리고 뻗친 모양새.

원래의 색이 어떤지 알기 어려울 정도로 피부도 발갛게 익었다.

하와이의 노숙자는 세계적으로도 유명했다.

아열대 기후의 낙원이라고까지 알려진 이곳은 아름다운 해변과 풍광만큼이나 사시사철 따스한 기후를 자랑한다.

덕분에 본토는 물론 인근 미크로네시아 연방과 마셜 제도에서까지 이주민들이 몰려와 눌러앉는다.

매년 10% 이상씩 노숙자가 증가하고 있어 하와이 당국은 이에 골머리를 썩이고 있었지만, 별 뾰족한 수를 내지 못하는 실정.

그래서 하와이의 유명 휴양지를 거닐다 보면, 이렇듯 노숙자와 마주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꼬르륵!

"?!"

시운 쪽을 향한 청년의 배에서 우렁찬 소리가 들렸다.

그는 부끄러운 기색 하나 없이 시운을, 아니 시운의 손에 들린 핫도그에 못 박히듯 두 눈을 고정했다.

주린 배를 움켜쥐고 사파이어 빛 맑은 눈망울로 핫도그를 바라보는 한 쌍의 시선.

그걸 외면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시운은 저도 모르게 핫도그를 앞으로 내밀며 물었다.

"…드실래요?"

"오, 감사!"

흔한 겸양의 말도 없었다.

달려들듯 다가온 그는 시운의 손에서 핫도그를 받아들자마자 근처 벤치에 앉아 포장지를 뜯고 크게 한입 베어 물었다.

"크으, 역시 이 맛이야!"

"……."

그는 며칠이라도 굶었는지 걸신들린 듯 핫도그를 빠르게 먹어 치웠다.

그걸 계속 보고 있기도 뭣하다.

다시 발걸음을 돌려 길을 가려는데 그가 시운을 불러세웠다.

"헤이, 친절한 신사 양반!"

호칭이 여간 어색한 게 아니지만, 분명 자신을 불렀다고 여긴 시운은 다시 몸을 돌렸다.

"네?"

게 눈 감추듯 해치운 핫도그의 포장 종이만 그의 발아래에 나뒹굴고 있다.

청년은 손에 묻은 소스까지 쪽쪽 빨아먹으며 시운을 향해 말했다.

"벌써 하나 얻어먹어 놓고 이런 말 하기 무척 염치없지만…. 남은 핫도그도 나 주면 안 될까?"

"……."

말과는 달리 별로 부끄러워하는 표정이 아니다.

핫도그를 바라보며 연신 침을 삼키는 모습에 시운은 작게 한숨을 내쉬며 앞으로 손을 내밀었다.

"거듭 감사!"

결국 나머지 핫도그마저 그의 몫이 되어버렸다.

"역시 찰리의 말이 틀리지 않았어!"

"?"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바라보는 시운의 시선을 의식했는지 그는 싱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

"찰리가 그랬거든. 동양인은 서양인과 달리 매우 친절하다고."

"……."

"내가 저 핫도그 가게에서 얼마나 죽치고 있었는지 알아? 근데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더라고."

그건 시운도 마찬가지였다.

핫도그를 사려고 길게 줄을 서 있으면서도 근처에 청년이 있는 줄 몰랐다.

그저 운이 없게도 그의 레이더에 걸렸을 뿐이다.

시운은 그렇게 여겼다.

"역시 동양인들은 친절해. 잠깐만 기다려. 이거 다 먹고 사례할 테니까."

사례?

그의 행색으로 미루어 봐서 사례라는 게 돈일 리는 없다.

수중에 돈이 있었다면 이렇게 핫도그를 얻어먹을 게 아니라 직접 사 먹었을 테니까.

"……."

궁금한 마음에 시운은 옆의 비어있는 벤치에 앉아 그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앞서 먹은 핫도그로 어느 정도 배가 찼는지, 아까와는 달리 한입씩 꼭꼭 씹어먹으며 맛을 음미하는 모습이다.

노숙자로 생각했다.

젊기는 하지만, 실제로 행색이 그러했으니까.

나이는 자신과 비슷해 보였다.

이십 대 후반에서 많아봤자 서른 초반 정도?

그 나이 때 한 번쯤 시도해보는, 무전여행자라고 단정하기엔 몸에 지닌 게 아무 것도 없다.

흔한 배낭 하나조차 말이다.

그런데 허리를 꼿꼿하게 세운 채 격식 있게 핫도그를 먹는 그의 모습은 노숙자와는 다소 거리가 멀어 보였다.

왠지 모를 기품마저 느껴진달까?

'핫도그 먹는 모습에서 기품이라니….'

시운은 자신의 감상을 애써 부정했다.

"이봐, 형제."

"…형제요?"

두 번째 핫도그까지 말끔히 해치운 청년의 부름에 시운은 살짝 미간을 좁히며 되물었다.

설마 사례라는 게 무슨 종교 권유, 그런 건 아니겠지?

"일면식이 없더라도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면 피를 나눈 형제와도 다름이 없잖아. 안 그래?"

"……."

시운은 결단코 그렇지 않다고 속으로 읊조렸다.

고작 8달러짜리 핫도그 두 개에 처음 본 그와 의형제를 맺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마침 수중에 돈도 다 떨어져서 이틀이나 굶었지 뭐야. 덕분에 든든하게 배를 채웠어. 그에 대해 보답은 해야지."

"괜찮습니다. 그런 걸 바라고 한 일은 아닙니다."

"아니, 아니. 내가 또 빚지고는 못 사는 성미라서 말이지."

그는 턱에 손을 받치고 골똘히 생각하다가 시운을 향해 눈을 빛내며 물었다.

"음…. 혹시 미국 주식에 관심이 있어?"

"…네?"

"내가 돈이 될만한 정보를 하나 알려주지!"

"……."

시운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돈이 될만한 미국 주식 정보?

그걸 아는 사람이 여기서 저러고 다닐 리 없잖아.

이상한 사람인가 싶어 그만 일어나자고 마음을 먹는데, 이어서 나온 그의 말에 시운은 저도 모르게 몸을 움찔했다.

"바우톡이라는 기업이야."

"……!"

"SNS 플랫폼을 운영하는 곳이지. 나스닥 상장 업체인데 거기 주가가 조만간 크게 폭락할 거야. 왜냐면…, 고객의 개인정보를 무단으로 사고판 게 걸렸거든. 흐흐흐. 다음 달 초쯤 기사가 크게 날 거야. 그전에 옵션 투자든 뭐든 한번 해보라고."

시운은 딱딱하게 굳은 자신의 표정을 인지하며 그를 멀뚱히 바라봤다.

청년은 씩 웃더니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덕분에 잘 먹었어. 방금 말한 건 농담이 아니니까 절대 기회를 놓치지 말라고. 그럼 안녕!"

만족스러운 듯 배를 두드리며 멀어지는 그를 시운은 그 자리에 못 박히듯 앉아서 지켜봤다.

"바우톡…."

시운도 익히 아는 기업이다.

그도 그럴 게 최근 유레카의 정보이용권을 사용하여 알아낸 투자 정보였으니까.

지금의 주가에서 반 토막이 날 정도로 폭락하는 주식.

고객의 개인정보 거래 혐의로 바우톡이 경찰 조사를 받고 있다는 건 아직 아무도 모르는 고급 정보다.

그걸 하와이 거리를 배회하는 노숙자가 알고 있다고?!

그럴 리가!

'설마 나처럼….'

미래를 알 수 있는 걸까?

아니, 그건 너무 터무니없는 추측이다.

유레카와 같은 기적이 세상에 흔할 리 없었다.

그렇다면….

바우톡 관계자라도 되는 건가?

우연히 마주친 백인 청년이 선사한 충격은 제법 묵직했다.

그때, 맞은편에서 시운을 발견한 누군가가 빠르게 다가왔다.

"회장님! 여기서 뭘 하고 계셨던 겁니까? 제가 얼마나 걱정한 줄 아십니까!"

강철완이다.

그의 격앙된 모습에 시운은 방금까지 느끼던 혼란을 숨기고, 애써 웃음 지었다.

그를 떼어놓으려고 음료수 심부름을 시켜놓고, 약속한 장소까지 가지도 않아 이리도 찾아 헤매게 한 데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사정을 설명하려던 차에 빠르게 주변을 훑은 강철완의 얼굴에 실망의 빛이 떠올랐다.

"설마? 혼자 핫도그를 두 개나 드신다고…."

누가 봐도 금방 버린 것 같은 핫도그 포장지가 바람에 날려와 시운의 발 근처에 나뒹굴고 있다.

이를 본 강철완의 눈이 짜게 식는다.

"아니, 이건…."

뭐라 해명을 하려는데 속마음이 훤히 읽히는 강철완의 시선에 시운은 입을 도로 닫았다.

왠지 말해봤자 구차하게 느껴질 것만 같다.

"…저기 맛있다고 소문난 핫도그 가게가 있어요. 같이 가죠."

"또 드시려고요?!"

이마에 힘줄이 절로 돋아났다.

억울했다.

자신은 한 입도 먹지 못했는데 식충이로 오해받는 이 상황이.

"네!"

시운은 차갑게 응수하고는 큰 걸음으로 성큼 앞서갔다.

강철완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뒤를 따랐다.

"지금 누가 화를 내야 하는데!"

시운에게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게 투덜대는 강철완이다.

강철완과 함께 핫도그 가게로 향하는 시운은 조금 전에 헤어진 백인 청년을 떠올렸다.

"……."

평범한 인물은 아니다.

겉모습이 어떻든 간에 말이다.

시운은 오래지 않아 그와 다시 만나는 순간이 오리란 걸 이때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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