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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로 재벌 참교육-119화 (119/139)

§119화 결자해지(4)

2023년 5월.

봄이 완연한 가운데 '찬반의 장'이 다시 열렸다.

지난해 9월에 열린 이후로 장장 8개월 만이었다.

'찬반의 장'이 열린 횟수는 우로보로스 역사상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로 많지 않았다.

역대 열렸던 회의 중에서 이번처럼 하나의 안건을 두고 벌써 다섯 번째나 소집되는 경우는 단연 처음이었다.

물론 그중 두 번은 전대 일 장로였던 윌리엄 라인하트의 불참으로 진행되지 않기는 했지만 말이다.

사실 같은 주제로 세 번 모이는 것도 과한 편이다.

-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야!

- 뻔뻔해도 정도가 있지. 지금 와서 그런 조건을 내걸어?

- 곧 죽어도 손해는 보지 않겠다는 심보네. 허, 참! 어이가 없구먼.

윌리엄 라인하트는 3번 모니터부터 5번 모니터를 눈으로 훑었다.

애당초 자신이 약점을 쥐고 있어 어쩔 수 없이 협조하는 모습을 보였던 세 장로였지만, 일 장로인 루이스 베르너의 말에는 진심으로 격분해 했다.

세상에 드러나지 않게 물밑에서 치열하게 치렀던 전쟁.

거기서 세 장로는 일 장로와 이 장로의 진영으로부터 한 번씩은 목숨을 위협받았었다.

이미 자신들이 승기를 제대로 잡은 상황인데도 패장들은 조건을 내걸고 있다.

그것도 본인들한테만 유리한 것 같은 내용의.

자연히 나오는 말이 고울 리 없었다.

- 받아들일 수 없다면 어쩔 수 없지. 끝까지 가보는 수밖에.

1번 모니터에서 흘러나오는 담담한 목소리에 또다시 세 장로가 언성을 드높였다.

알게 모르게 육두문자도 뒤섞여 나왔다.

"……."

윌리엄은 가만히 그들의 대립을 살펴보다 입가에 피식 웃음을 띠었다.

겉으로는 담담한 척하지만, 궁지에 몰린 일 장로와 이 장로의 굳은 얼굴이 가려진 후드 안에서 상상이 된다.

- 칠 장로. 자네의 생각은 어떻지?

갑자기 조용히 있던 육 장로, 노아 펠노러가 윌리엄을 향해 물었다.

방금까지 일, 이 장로를 말로 죽일 듯 쏟아붓던 세 장로도 동시에 입을 닫고 윌리엄을 바라봤다.

루이스 베르너와 벤 로쉬찰트의 행동 역시 그들과 다를 바 없음을 윌리엄은 확인했다.

'아마도 나의 정체를 알게 된 거겠지.'

불과 3개월 전에 있었던, 자신을 향한 대대적인 테러만 봐도 명백하다.

그땐 정말이지…, 죽음이 목 앞까지 다다랐음을 느꼈었지.

그 매서운 칼날을 피하고 이렇듯 숨을 붙이고 있는 것도 다 현시운 덕분이다.

새삼 유레카라는 미증유의 능력에 소름이 끼칠 정도다.

가문에만 비밀리에 내려온 문서로 시조 요아힘 라인하트의 능력을 직계 자손들은 우로보로스에 알려진 것보다 더욱 상세히 알고 있었다.

유레카.

임시 이용자로 선택받으며 주어지는 다섯 번의 기회.

일정 이상의 부를 축적하면 정식 이용자로 등급이 상승하고, 매월 3번씩의 기회를 더 얻는다.

그 기회란 바로, 미래의 정보를 100%의 정확도로 미리 알 수 있음을 말함이다.

믿기 어려운 업적을 실제로 이뤄낸 시조 요아힘 라인하트의 기록이 있었기에 라인하트 가문의 직계는 비밀문서의 내용을 거짓이라 여기지 않았다.

그래도 사람인 이상, 어느 정도 사실이 부풀려졌다고 조금은 의심했었는데….

윌리엄이 직접 마주한 이적은 시조가 남긴 기록과 한 치의 오차도 없었다.

실재하는 유레카와 정식 이용자 현시운.

그를 떠올릴 때면 그저 헛웃음만 나왔다.

원래 가진 힘만으로 부모를 해한 적들에게 제대로 된 응징을 하려면 남은 평생을 걸어도 모자랐을 거다.

그러한 걸 현시운과 손을 잡는 것만으로 불과 2년도 채 지나지 않아 해낼 수 있었다.

"음…. 그간 있었던 불미스러운 일은 없었던 거로 하자, 이 말씀이신 거죠?"

윌리엄의 시선이 두 개의 모니터를 향했다.

확인차 묻는 말에 두 장로는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그렇게라도 장로직을 유지하고 싶단 거군요."

노골적인 지적에 루이스와 벤은 움찔했지만, 대꾸는 없었다.

윌리엄은 그 둘을 지그시 바라보다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뭐, 전 찬성입니다."

- 뭐?!

- 치, 칠 장로. 아무리 그래도 우리 목숨까지 노린 이들인데….

- 농담이지? 그렇지, 칠 장로?

삼 장로부터 오 장로까지 윌리엄의 발언을 부정하는 반응을 보였다.

셋을 향해 윌리엄이 답했다.

"어차피 우리 역시 끝까지 말을 듣지 않으면 숨통을 끊으려고 했잖습니까. 당한 입장이라 기분이 썩 좋을 리는 없죠. 하지만, 그렇다고 언제까지 이번 안건을 질질 끌고 갈 생각입니까? 벌써 2년이 다 되어갑니다만."

세 장로는 그에 입을 다물었다.

불만이 한가득이지만, 윌리엄의 뜻에 함부로 반기를 들 수는 없었다.

스스로 자신의 목줄을 조이려는 게 아니라면 말이다.

- 나도 칠 장로의 의견에 동의해. 인제 그만 '찬반의 장'을 마무리 지어야지.

노아 펠노러도 윌리엄의 뜻에 동의하며 나섰다.

그러면서 그는 말을 덧붙였다.

- 그래도 다들 한번 이상씩 목숨을 위협받았던 것도 사실이니, 그냥 넘어갈 순 없지.

"그럼요?"

윌리엄의 반문에 노아의 입꼬리가 들썩였다.

- 보상은 받아내야 하지 않겠나, 이 말이지. 국가 간에 전쟁이 나도 승전국이 패전국으로부터 막대한 보상금을 뜯어내지 않는가. 음…. 베르너 그룹과 로쉬찰트 금융 그룹 지주회사의 지분 5%씩 받아내는 거로 갈음했으면 하는데, 난.

노아의 제안에 이 장로, 벤 로쉬찰트의 두 눈이 번쩍 뜨였다.

- 뭐, 뭣! 5%? 이런 날강도를 봤나! 지난 반년간 몇 개의 회사가 공중 분해한 줄 몰라서 하는 소리야? 그걸 팔아 댁들이 얼마를 챙겼는지 내가 모를 것 같아!

눈앞에서 25%의 지분을 고스란히 넘겨줘야 하게 생겼다.

벤은 격분에 찬 고함을 질러댔다.

가뜩이나 탐탁지 않아 하던 노아에게서 그런 소리를 들어 그는 무척 자존심이 상했다.

- 그럼 어떻게? 머니 게임을 계속할까? 지주회사까지 날아가 봐야 정신을 차리시려나.

- 너, 너어!!

벤의 삿대질에 노아는 시선을 옆으로 돌려 일 장로, 루이스 베르너를 쳐다봤다.

- 일 장로. 자네 생각은 어떻지? 이 장로와 같나?

- …받아들이지, 그 제안.

기대와 달리 일 장로는 노아가 제시한 부당한 조건을 받아들였다.

- 형님!

당황과 놀람이 반씩 섞인 고성이 루이스를 향했다.

루이스는 아무런 대꾸 없이 고개만 옆으로 내저었다.

- …이익!

뒤집을 수 없는 상황이란 데 이견은 없었지만, 벤은 분을 못 이기겠는지 콘솔을 쾅 치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럼 합의는 된 것 같으니 이만 표결에 들어가 볼까요?"

윌리엄의 말에 일, 이 장로를 제외한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콘솔의 버튼을 눌렀다.

여섯 번째 모니터에서부터 불이 들어왔다.

파란빛.

찬성을 뜻하는 표가 사 장로를 시작으로 삼 장로, 오 장로까지 이어졌다.

약간의 시간 차이로 1, 2번 모니터에서도 파란 불을 밝혔다.

윌리엄도 빙긋 웃으며 콘솔의 버튼을 눌렀다.

- 이로써 결정이군. 미래안의 소유자로 짐작되는 현시운이 능력을 검증하면! 그가 바로 우로보로스의 3대 단주다.

여태껏 회의를 주관해왔었던 일 장로 대신 육 장로 노아 펠노러가 선포하듯 외쳤다.

자그마치 2021년 하반기부터 이어져 왔던 '찬반의 장'이 드디어 막을 내렸다.

윌리엄은 한숨을 내쉬는 루이스 베르너와 벤 로쉬찰트를 보며 눈빛을 번뜩였다.

'찬반의 장'은 끝이 났지만, 아직 그들에 대한 복수는 끝나지 않았다.

'기대하시라고.'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후드 아래로 드러난 윌리엄의 입매가 길게 호선을 그렸다.

* * *

- 괜찮을까요?

"……."

회의를 끝나고 전처럼 둘만 남은 상황에서 벤 로쉬찰트가 걱정스럽게 물어왔다.

능력만 검증하면 현시운은 명실상부 우로보로스의 주인으로 등극한다.

사실 검증을 거치지 않더라도 현시운이 미래안을 가졌다는 건 자신들도 알고 상대 진영도 알 것이다.

불필요한 행사지만, 우로보로스의 절차상 필요한 일이다.

또한 루이스 베르너와 벤 로쉬찰트로선 얼마 되지는 않지만, 천금 같은 시간을 번 것이기도 했다.

양지와 음지에서의 대결 모두에서 패했다.

둘의 목적을 위해 행해온 일들이 우로보로스의 역사에 대죄로 기록될 거다.

'찬반의 장'에서 장로직을 보장받았지만, 그건 장로들 간의 거래일뿐.

단주에 오를 현시운의 의중은 아직 파악하지 못했다.

고작 일주일이지만, 검증에 드는 시간 동안 그에 대한 준비 혹은 대비를 해야만 했다.

"그냥 넘길 리는 없겠지."

- 그럼 어떡합니까, 저희?

"싹싹 빌어야지."

말한 그대로 석고대죄라도 올려야 할 판이다.

그렇게라도 현시운의 노여움을 가라앉혀야만 했다.

일단 장로직을 유지해야 훗날을 도모할 수 있으니까.

벤에게 답하는 루이스의 인상이 잔뜩 굳었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남들 위에 서서 받들어지는 게 그에겐 숨 쉬는 것만큼이나 당연했다.

그런 그가 생애 처음으로 고개를 숙이게 되었다.

자신보다 한참이나 어린 녀석에게 말이다.

우로보로스를 제 손안에 넣고 원하는 대로 변혁을 이룰 수 있다고 확신하던 때가 엊그제다.

루이스로선 밑바닥으로 내려앉은 작금의 상황이 썩 기분 좋을 리 없었다.

"그리고…, 당장 우릴 어쩌지는 못할 거다."

- 네?

절대다수는 아니지만, 우로보로스 내의 둘이 가진 영향력이 42%에 달한다.

자신들을 내치면 그 세력에 속한 이들이 한꺼번에 우로보로스를 이탈하게 된다.

설마하니 겨우 손에 넣은 조직이 반 토막 나는 걸 원할 리가?

현시운이 아니더라도 다른 장로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자연히 알아서 자신들을 변호해 주겠지.

루이스는 어떤 굴욕과 불이익이 있더라도 지금 순간을 참고 견뎌낼 심산이다.

초대 단주가 그랬듯, 현시운 역시 인간인 이상 언젠가 죽겠지.

그리고 다시 오랜 세월 동안 단주 자리는 비게 될 테고,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장로들이 우로보로스를 꾸려나가게 될 것이다.

자신이 못다 이룬 염원을 후손들에게 맡기기로 루이스는 다짐했다.

패배감과 굴욕감 속에 '찬반의 장' 이후를 보내던 둘에게 새로운 단주의 소집장이 날아든 건 2주 뒤였다.

* * *

푸르름이 녹음 위에 덧씌워지는 6월 초.

제주도의 한 리조트로 세계 유수의 슈퍼 리치들이 비밀리에 모여들었다.

현시운에게 능력의 검증을 요청하고, 미래안의 능력을 인정받은 지 열흘 만의 일이었다.

리조트의 대회의장을 빌린 시운은 긴 테이블을 마주하고 앉은 일곱 장로를 둘러보며 방긋 웃었다.

예의 그 칙칙한 로브와 후드가 아닌, 평범한 정장으로 다들 차려입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현시운이라고 합니다."

시운의 인사에 모두들 답례하듯 고개를 작게 숙였다.

"이런 식으로 여러분들을 만나 뵙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하하."

한 사람, 한 사람 세계 경제계에 이름이 드높은 가문과 이름들.

시운으로선 지금 이 자리가 선뜻 믿기지 않을 법도 했다.

유레카라는 사기적인 애플리케이션을 손에 넣은 덕분에 천 년 이상을 이어온 비밀 결사단의 주인 자리에까지 오르게 되었다.

앞으로의 성장 기대치는 지금 이 자리의 어느 누구보다도 월등히 높았지만, 아직은 지닌 재산이 칠 장로인 윌리엄 라인하트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짧게나마 서로 간의 통성명이 이어졌고, 저마다의 기대와 불안감 속에 회의는 계속되었다.

앞에 놓인 커피를 한 모금 들이켠 시운은 살짝 어두운 표정과 함께 입을 열었다.

"첫 만남 자리에서 안 좋은 소식부터 전하게 되어 마음이 무겁습니다."

그 말에 윌리엄과 노아 펠노러를 제외한 모두가 의아한 시선을 모았다.

그들과 눈을 마주하며 시운은 말을 이었다.

"오늘부로 장로 7인의 협의 체제였던 여태까지의 방식을 폐합니다. 처음 우로보로스가 결성되었던 때처럼 단주의 일인 체제로 돌아갑니다. 장로분들께서는 제가 결단을 내리는 데 도움이 될 조언만 해주십시오. 일종의 참모 역할이라고 해야 하려나요? 그 이상의 권한은 모두 거두겠습니다."

졸지에 우로보로스의 지배권을 잃게 된 장로들은 허망함에 탄식을 내질렀다.

루이스 베르너는 이 같은 일을 예상했는지 살짝 이마만 찌푸릴 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자신의 대에선 숙원을 이룰 수 없었지만….

기다리면 또다시 기회는 올 것이다.

자신의 후손들이 다시 권력을 잡고 가문의 원한을 갚아주리라.

담담함을 가장한 채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루이스의 귀로 시운의 이어지는 말이 들려왔다.

"또한…. 일 장로 루이스 베르너와 이 장로 벤 로쉬찰트의 장로직을 박탈하고 우로보로스에서도 제명합니다."

"뭐, 뭣?!"

"……!!"

이때만큼은 벤 로쉬찰트와 마찬가지로 루이스의 표정이 와락 일그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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