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로 재벌 참교육-123화 (123/139)

§123화 주제 파악

"약속은 약속이니까 어쩔 수 없죠. 뭐, 암튼 축하할 일입니다. 이 대표님께선 내려가신 김에 그간 고생한 연구원들 사기 좀 북돋워 주십시오."

- 하하! 네, 그래야죠. 열흘간 유급휴가로 푹 쉬게 하고 금일봉도 내리겠습니다.

"그럼 자세한 얘기는 본사에서 더 나누죠. 살펴 올라오십시오."

- 올라가서 뵙겠습니다. 회장님.

달칵.

시운은 수화기를 원래 자리에 내려놓았다.

박선우의 제멋대로인 행동 때문에 피로감이 몰려왔지만, 크게 나무랄 생각은 없었다.

"…멋지군."

이민석이 핸드폰으로 찍어서 보내온 영상을 보니 시운의 입가에 자연히 웃음이 맺혔다.

프로토타입의 홀로그램 폰.

이민석이 전화통을 붙잡고 십여 분간 찬사를 늘어놓았을 정도로 성능이 뛰어났다.

회귀 전, 초창기의 홀로그램 폰 모델을 기억하는 시운으로선 훨씬 나은 퀄리티로 재현된 완성품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천재이기는 하네."

박선우는 회귀 전에도 그렇게 불렸었다.

홀로그램 폰에 몰두했던 박선우의 관심이 이번에는 가상현실로 옮겨가긴 했지만, 미래전자에서 그가 해낸 일의 가치가 줄어드는 건 결코 아니다.

이로써 미래전자는 향후 핸드폰 시장을 석권할 성장동력을 얻었다.

최초의 홀로그램 폰을 무기로 삼정전자와 유수의 핸드폰 제조업체들이 난립해있는 세계 시장을 석권할 것이다.

"이젠 '다이버'도 신경을 써야겠어."

현재, 넥스트의 프로젝트 '리얼 월드'는 매우 빠른 진척도를 보였다.

원래 2028년을 상용화 시기로 잡았다.

이것도 회귀 전에 비하면 5년이나 앞당겨진 거다.

그런데, 최근 그 시기가 다시 설정되었다.

바로 1년 뒤인 2025년으로.

홀로그램 폰의 완성 못지않게 대단한 성과임이 분명했다.

'리얼 월드'의 완성도 막바지에 들어섰다.

지금까진 연구용으로만 제작되었던 접속기기 '다이버'의 양산화를 서서히 준비할 시점이다.

앞으로의 1년이 무척 바빠질 거란 예감에 시운은 환하게 웃었다.

하지만, 옛말 하나 틀린 게 없다.

호사다마(好事多魔).

탄탄대로일 것만 같은 미래전자의 앞길에 작은 돌부리 하나가 굴러와 박히는 일이 며칠 후, 생겨버렸다.

* * *

세계 최초의 홀로그램 폰 개발.

이는 국내뿐만이 아니라 해외 유수의 여론에도 오를 만큼 기념비적인 쾌거다.

그런데도 미래전자의 홀로그램 폰 개발 소식은 작은 지역 신문사의 인터넷 기사로도 실리지 않았다.

양산화 체계가 다 갖춰질 때까지 따로 기사를 내지 말라는 현시운의 지시가 있기는 했다.

그렇지만, 국내와 국제 특허 출원 과정에서 소문은 퍼지기 마련이다.

일주일에도 여러 번 특허청을 오고 가는 경제부 기자들이 이를 놓칠 리 없었다.

현시운이 그룹 비서실을 동원하여 기사를 의도적으로 막는 게 아닌 이상은 자연스럽게 관련 내용이 매스컴을 타야 했다.

근데도 홀로그램 폰에 대한 기사가 2주 넘도록 단 한 줄도 나오지 않은 건 분명 이상한 일이다.

원인은 삼정전자에 있었다.

그곳에서 각 언론사를 압박하여 미래전자의 기사를 막아버린 탓이다.

훨씬 빠른 시기에 개발을 시작했는데도 완성하지 못했다.

그런데 핸드폰 시장에 뛰어든 지 3년도 채 되지 않은 미래전자는 성공리에 홀로그램 폰을 개발해냈다.

시장점유율 1위인 삼정전자로선 쉬이 받아들이기 힘든 소식이었다.

"언론사들 동향은 어때? 우리가 한 말을 무시하려는 낌새는 없나?"

삼정전자 대표이사 용회일의 물음에 비서가 고개를 꾸벅이며 답했다.

"광고를 끊겠다고 으름장을 놓으니 군말 없이 따르고 있습니다. 언론 쪽은 크게 걱정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그래? 잘 됐군. 흐흐흐."

아무리 재계 서열 20위권 안에 속한 미래 그룹이고, 그곳 계열사인 미래전자라도 시가총액만 500조 원에 가까운 삼정전자에 비하면 구멍가게나 다름없다.

그런 보잘것없는 후발주자에게서 세계 최초 홀로그램 폰 개발이라는 성과가 나와버렸다.

'돼지 목에 진주목걸이군.'

용회일은 그렇게 여기며 탄식했다.

가끔 시장을 뒤흔들 만큼 뛰어난 기술과 제품이 전혀 생각지도 못한 업체를 통해 나오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마다 삼정전자가 취하는 매뉴얼적인 행동이 있다.

국내 1위 기업이란 타이틀이 가지는 힘과 영향력으로 거칠게 밀어붙인 뒤에 인수나 기술 이전을 통해 삼정의 기술과 제품으로 만들어버리는 것.

과거 여러 번 있었던 사례처럼 이번 사태에 대해서도 용회일은 정해진 레퍼토리대로 일을 꾸밀 생각이다.

어떡해서든 미래전자가 개발해낸 홀로그램 폰 기술을 통째로 집어삼킬 거다.

탐욕에 물든 눈빛으로 용회일은 히죽거렸다.

"그래, 연구원들은 만나봤나?"

"네. 그런데…, 쉽게 넘어올 것 같진 않습니다."

"허어, 이 사람! 이런 일 한두 번 해보나? 액수를 올리든 아님, 약점을 캐내든지 해서 우리 사람으로 만들라고."

"그러겠습니다. 사장님."

탐나는 기술과 제품을 뺏어오는 삼정전자만의 오랜 방법은 이러했다.

핵심 기술자를 빼 오는 것과 동시에 개발사에 누명을 씌우는 것.

거기에 대상 업체가 증권시장에 상장된 기업이라면 지분까지 싹 쓸어모은다.

이미 용회일의 지시로 유력 일간지에 삼정전자의 홀로그램 폰 개발 관련 핵심 기술이 지난달 해커에 의해 탈취당했다는 기사를 싣게 했다.

미래증권이 안정적으로 미래전자의 지분을 들고 있어 주식을 확보한다고 해서 크게 이점은 없었지만, 주가를 뒤흔드는 식으로라도 수작을 부릴 생각이다.

이런 식으로 적당한 밑밥을 깔아둬야 기술을 꿀꺽했을 때 반발이 적어지는 법이다.

홀로그램 폰 개발.

삼정 그룹 회장인 신수근도 바라마지 않던 일이었다.

삼정전자 연구소에서 제때 개발만 성공했다면 이런 더러운 수를 쓸 일도 없었겠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다른 회사에서 먼저 완성해버린 것을.

용회일은 차라리 잘 됐다고 여겼다.

언제 완성될지 모르는 기술 개발을 손꼽으면서 기다리느니 이렇게라도 상용화 가능해진 기술을 집어삼키는 게 손쉽고 자신에겐 이롭다.

그에게는 다시 없을 기회나 마찬가지다.

깔끔하게 기술 탈취를 해내 홀로그램 폰의 양산화만 이뤄낸다면 그 실적으로 비어있는 그룹 부회장직까지 노려볼 수도 있다.

삼정의 핵심 계열사인 삼정전자의 대표이사인 용회일이 오를 수 있는 곳은 이제 그곳이 유일했다.

아직 신수근 회장의 자제들은 중학생에 불과하다.

그들이 커서 부회장직에 오르려면 못해도 20년 가까운 세월이 걸리겠지.

용회일은 자신의 삼정맨 생활의 마지막을 더는 오를 곳 없는 부회장으로 마감하고 싶었다.

"그런데 괜찮을까요?"

비서의 우려 섞인 목소리에 용회일은 상념을 접고 고개를 들었다.

"응? 뭐가 말인가?"

"저…. 지금 하려는 일 말입니다. 회장님께선 아직 모르고 계시지 않습니까? 따로 재가도 받지 않고 독단적으로 일을 벌였다가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어허! 이 사람. 안 그래도 바쁘신 분인데 고작 이런 일로 신경 쓰시게 해야겠나? 게다가 아직 확실하지도 않은 일이잖아. 괜히 설레발로 보고드렸다가 계획대로 되지 않으면 그게 더 볼썽사나운 일이지!"

"아…, 네. 괜한 말씀 드렸습니다. 죄송합니다."

"크흠! 큼!"

불같은 용회일의 반응에 비서는 입을 다물었지만 아무래도 찝찝했다.

과거, 미래전자가 진성전자였던 당시에도 삼정전자에서 반도체 신기술을 빼내 오려다 되레 망신만 당한 일이 있었잖은가.

당시 용회일은 다른 계열사 사장으로 있어서 그 일에 대해 잘 몰랐다.

아니, 안다고 해도 크게 신경 쓰지 않을 것 같긴 하지만….

비서는 왠지 불안했다.

그때였다.

삐리리-

그룹 비서실에서 내선 전화가 걸려왔다.

"그룹 비서실에서 무슨 일이지?"

나직이 중얼거리며 용회일은 통화 버튼을 눌렀다.

- 그룹 비서실입니다.

"전자 용회일입니다. 말씀하세요."

- 회장님께서 찾으십니다.

"네?"

- 지금 바로 올라오라고 하십니다.

"음…. 알겠습니다. 그러죠."

전화를 끊은 용회일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이번 일을 누구에게 듣기라도 하신 건가?"

"설마요?"

계획이 가시화되기 전까진 기밀을 요하는 일이다.

용회일과 삼정전자 비서실 소속 직원들 몇몇만 아는 내용이었다.

"쳇! 사내에 회장님의 눈과 귀가 많나 보군."

아마도 삼정전자 비서실 직원 중에 누군가가 나불댄 모양이겠지.

미래전자의 기술을 빼내오는 게 확정된 시점에 보고를 올려 깜짝 놀라게 해줄 생각이었는데….

용회일은 살짝 김이 새는 듯해 입맛을 쩝 다셨다.

"에이, 모르겠고! 아무튼 난 회장님 뵈러 갔다 올 테니 이번 일 서두르라고."

"네, 그러겠습니다. 다녀오십시오, 사장님."

잠시 후, 용회일은 신수근 회장 앞에 섰다.

심기가 매우 언짢아 보이는 모습에 용회일은 순간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내용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나? 아님, 다른 일로 그러시는 건가?'

용회일은 일단 미래전자 홀로그램 폰 기술을 입수할 계획부터 보고하기로 마음먹었다.

막 입을 떼려는 순간, 한발 앞서 신수근의 입술이 달싹였다.

"자네, 미쳤나?"

"…네?"

"왜 시키지도 않은 짓을 하고 지랄이야!!"

뒤이어지는 신수근의 욕설에 용회일은 뭔가 크게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칭찬은 고사하고 신수근의 불같은 화를 30분 가까이 온몸으로 받아내야만 했다.

그날, 용회일은 권고사직을 당했다.

* * *

- 정말 죄송하게 됐습니다, 현시운 회장님.

"……."

삼정전자에서 의도적으로 미래전자 홀로그램 폰 개발 기사를 막고, 개발에 참여한 연구원들에게까지 접근했다.

현시운이 이 사실을 전해 들은 게 오늘 오전 11시 무렵이었다.

이에 삼정 그룹 회장 신수근에게 전화를 걸어 항의의 뜻을 비치고, 확인해보겠다는 답변을 들었던 시각이 오후 1시 반.

그리고 오후 2시 20분 현재.

시운은 신수근의 사과 전화를 받았다.

- 부하 직원이 멋도 모르고 일을 벌인 모양인데…. 바로 중단시켰고, 처벌도 내렸습니다.

따로 말하지 않았는데도 알아서 해결한 건 흡족한 일이나, 애초 이런 일이 발생한 것부터가 시운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부하 직원의 잘못 역시 윗사람의 책임이라고 할 수 있겠죠. 그만큼 잘못 이끌었다는 소리이기도 하니까."

- …네, 네. 그렇죠. 맞는 말씀입니다.

일부러 신경을 긁으려고 한 발언인데도 신수근은 저자세로 반응해왔다.

과거, 그의 동생인 신수호가 미래 그룹 계열사 빅스텝 엔터 소속의 솔로 아티스트 함수아를 스토킹한 일 때문에 통화했던 때와는 하늘과 땅 만큼 차이를 보이는 태도였다.

신수근의 180도로 달라진 모습에 시운은 피식 웃었다.

'하긴, 이럴 만도 하지.'

시운을 향한 신수근의 행동이 달라진 건 바로 우로보로스 때문이다.

지금은 사라진 비밀 결사단이지만, 신수근 역시 그곳의 정식 단원이었다.

입단과 동시에 우로보로스란 조직의 역사에 대해 대략적으로나마 전해 들었을 거다.

7인의 장로 협의 체제이며, 현재 단주의 자리는 비었다는 것에서부터 그 배경에까지.

그러다 갑자기 우로보로스의 3대 단주가 나타났다고 들었을 때 그는 얼마나 놀랐을까?

그것도 그 자리의 주인이 현시운인 걸 알았을 때는?

얼마 전까지 반목하며 언젠가 본때를 보이려고 벼르던 인물이 자신의 머리 위에 올라섰으니 경악했을 거다.

단주직에 오르자마자 일 장로와 이 장로를 조직에서 내치고 그 둘이 지닌 힘의 근간인 베르너와 로쉬찰트 그룹을 뒤흔들었을 때, 신수근은 자신과 삼정도 그런 꼴을 당하지나 않을까 전전긍긍했었다.

그 기억 때문일까?

아무리 우로보로스가 해체되었다고는 해도, 시운이 그곳의 단주였었다는 사실은 신수근에게 두려움을 안겼다.

국내 제일의 재벌이라는 수식어가 우로보로스 내에선 얼마나 보잘것없는 건지를 절실히 깨달았던 그다.

운 좋게 신흥 재벌에 올랐다고만 생각했던 현시운이 조직의 수장이 되어 해산까지 명했으니….

그로선 현시운에게 드러나지 않은 대단한 배경이 있을 거로 착각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신수근이 자신에게 어떤 오해와 생각을 품었는지 시운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잘못 알고 있다고 해서 그걸 굳이 바로잡을 생각은 없다.

그의 망상이 자신과 미래 그룹에 이익이 된다면 시운은 이를 적절히 이용할 생각이다.

사실 유레카가 있는 이상 신수근이 진실을 안다고 해도 크게 거리낄 건 없었지만 말이다.

- 이번 일에 대해선 입이 몇 개라도 할 말이 없습니다. 현 회장님께서 원하는 바가 있으시면 말씀해주십시오. 최대한 들어드리겠습니다.

하늘 높은 줄 모를 정도로 오만했던 신수근의 달라진 모습이 시운에게는 제법 신선한 충격으로 와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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