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로 재벌 참교육-128화 (128/139)

§128화 출사표(3)

"으음…."

현시운은 미간을 찌푸리고선 태블릿 PC 화면 위로 뜬 기사를 읽어내렸다.

[이찬종 의원 장남 이석훈 씨, 군 면제에 대한 의혹 불거져]

[이찬종 의원 측, "음해성 기사다. 절대 좌시하지 않겠다." 입장 밝혀]

이제 이틀 뒤면 22대 총선의 선거 운동 기간이 시작된다.

각 지역구의 후보로 등록한 피선거인들이 대중 앞에 공식적으로 설 날만 손꼽아 기다리며 만반의 준비를 하던 와중에.

갑작스럽게 이찬종 의원의 비리 의혹 기사가 터져 나왔다.

온라인이 뜨겁게 달궈졌고, 오프라인으로도 이찬종을 향해 무수한 비난과 해명 요구가 빗발쳤다.

국민의 기본 의무 중에서도, 특히 국방에 관련한 이슈는 언제나 민감해지는 법이다.

이찬종 의원의 장남인 이석훈에게 재신검을 받게 해야 한다는 국민청원 글이 청와대 홈페이지에 올라왔으며, 몇 시간이 지나지 않아 3만 명이 이에 동의했다.

"정말입니까?"

시운의 말에 마주 보고 앉은 마흔 초반의 남성이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네. 기사를 올린 신문사에 직접 확인한 사실입니다."

남성은 바로 시사 고발 전문지 '고발IN'의 편집장인 신명훈이었다.

'고발IN'은 발간한 지 4년도 지나지 않아 대한민국에서 가장 신뢰성이 높다고 손꼽히게 된 시사저널 주간지다.

그에 큰 공헌을 한 것이 신명훈이라고 대내외적으로 알려져 있다.

HR 엔터테인먼트의 연습생 접대 스캔들에 이어 故 신정문 회장의 파나마 비자금 조성, 구원교의 마약 선교에 이르기까지.

큼직한 특종기사와 공신력 있는 정보로 믿을만한 주간지로 자리를 잡은 현재에는 해외의 정치·사회 이슈까지 다루며, 일본과 중국에도 번역본이 출간되고 있다.

주간지 부문 2년 연속으로 국내 판매 부수 1위 달성에 빛나는 성과.

그동안의 공로를 인정받아 신명훈은 올해 초에 편집장으로 승진했다.

물론 이 모든 것이 베일에 가려졌었던 정보 제공자, 현시운이 있어서 가능했던 일이었다.

불과 2년 전까지만 해도 시운은 포크레인 흥신소의 사장인 정민철을 통해 신명훈에게 정보를 전달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효율적으로 언론을 이용하기 위해 신명훈에게 정체를 밝히고 전보다 더 긴밀한 협력 관계를 형성한 상태다.

"김현석 후보가 직접 연루된 건지는 알 수 없으나…. 일단 민본당 종로구 선거 캠프를 통해 전달된 내용인 것만은 확실합니다."

"……."

시운이 알고 있는 김현석의 성격상 이런 식으로 일을 꾸밀 리 없다.

아니, 자신이 그를 잘못 알고 있었다고 해도 이렇듯 금방 출처가 들통날 걸 고려하지도 않고 이찬종 의원을 비방할 정도로 어설픈 위인은 아니다.

종로구에서 지지율 1, 2위를 다투는 이찬종 의원이다.

의혹성 기사로 그의 지지율이 깎인다 해서 3위 밖인 김현석의 지지율이 껑충 뛰어오를 거란 기대는 그 누구도 하지 않는다.

의혹이 사실로 밝혀져 이찬종 의원이 검찰 조사를 받고 후보 자격을 잃게 된다면 또 모를까.

지금처럼 말만 불거져 나온 상황에서는 요원한 일이다.

'현석이 형이 아니라면 선거 사무실 직원 중 한 명이라는 소린데….'

정보이용권을 사용하면 누군지 바로 알 수 있다.

하지만, 정보 이용권의 월 구매 수량이 제한되어 있다 보니 가능한 데까지는 철저히 알아본 뒤에 유레카 사용 여부를 결정해야만 했다.

"제보한 사람이 누구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습니까?"

신명훈은 쓰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김현석 후보의 선거 캠프인 것도 겨우 알아냈습니다. 기자라면 누구나 정보원을 숨기는 법이니까요."

"그렇군요."

어차피 크게 기대한 것도 아니었다.

신명훈의 답변에 고개를 끄덕이며 시운은 고민했다.

'이제 어쩐다?'

애초에는 노국일과 이찬종의 약점 중 수위가 약한 것부터 번갈아 가며 기사로 실어 양 진영 사이의 불화를 조장하려 했었다.

상대방의 소행인 것처럼 잘만 꾸민다면, 기사를 따로 더 내지 않더라도 두 진영이 알아서 서로를 물고 뜯으며 피 터지는 싸움을 시작할 것이다.

아무리 네거티브도 선거전의 한 방법이라지만, 날마다 서로를 음해하고 비방하는 모습이 유권자에게 좋게 보일 리 없다.

자연히 둘의 지지율은 떨어질 테고, 그 틈새를 노려 김현석이 종로구의 다른 대안으로 떠오르게 만들 생각이었다.

노국일과 이찬종이 어느 선에서 적당히 타협을 보는 상황도 고려해 시운은 둘의 정치 생명을 완전히 끊을 수 있을 정도의, 파급력이 큰 비리 정보까지 미리 준비해둔 상태다.

하지만, 최후의 수단은 되도록 쓸 일이 없길 바라는 시운이다.

김현석에게 어부지리로 의원직을 손에 넣었다는 꼬리표를 달아줄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공식적인 선거 운동 기간에 들어가기 전 이번 계획을 함께 기획한 신명훈과 만나 마지막 조율을 하려 했다.

근데 시작해보기도 전에 이찬종 의원 아들의 군 면제 관련 기사가 먼저 터져버렸다.

이찬종 의원 측에서 노국일 캠프의 수작질이라 여겨주면 좋으련만….

신명훈도 반나절이 지나지 않아 알아냈다.

그들 역시 어렵지 않게 김현석의 선거 캠프가 원흉임을 알 수 있겠지.

아니, 벌써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찬종의 화살이 노국일이 아닌 김현석을 향한다?

노국일에게만 이로운 일이다.

시운은 앞으로 벌어질 일을 예상하며 어떤 식으로 재조율해야 할지 머릿속으로 생각하고 이내 결론을 내렸다.

"일단 당초 계획은 보류하죠."

"…네, 어쩔 수 없는 일이니까요."

시운의 결정에 신명훈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오늘은 이만 돌아가십시오. 추후 제가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네, 회장님."

신명훈을 보낸 시운은 자신의 책상 앞에 앉자마자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계획을 조금만 수정한 뒤, 일을 진행해도 되겠지만, 또 어떤 변수가 생길지 모르니 전후 사정을 제대로 파악해둬야만 한다.

이번 이찬종 의원의 비리 기사가 김현석의 선거 캠프를 통해 나오게 된 경위를 살피는 게 먼저다.

유레카 앱을 실행한 시운은 검색창에 바로 단어를 작성하고선 검색 버튼을 눌렀다.

이내 결과가 아래로 길게 이어졌다.

"…이랬던 거군."

혹시나 노국일 쪽이 이번 일과 관련되어 있지 않을까, 조금은 의심했었는데 그게 정말이었다니….

이찬종의 지지율을 깎을 요량으로 김현석을 이용하려 한 거다.

확실한 증거도 빠진 어중간하게 의혹으로만 채워진 투서로 말이다.

"내부에도 적이 있었네."

이런 얕은수에 김현석은 넘어가지 않았지만, 같은 캠프의 사무장은 생각이 달랐던 모양이다.

어떻게 된 일인지 모두 알게 된 시운은 생각해뒀던 계획에 약간의 변형을 가해 행동에 옮기기로 마음먹었다.

"일단…."

자신이 던질 폭탄을 받을 대상이 필요하다.

시운은 인터넷 창을 열어 노국일 후보의 선거 캠프 홈페이지로 들어갔다.

김현석에게 그랬던 것처럼 시운도 그들을 뒤흔들고 이용해볼 참이다.

선거 캠프의 구성원들이 길게 나열된 페이지.

시운의 시선이 그중 한 곳에 멈췄다.

[제1보좌관 나승원]

시운이 선택한 타깃은 바로 그였다.

* * *

처음에는 정범석의 의도대로 일이 흘러갔다.

김현석의 선거 캠프에서 제보가 있었다는 사실을 이찬종은 금세 알아냈다.

무시하라는 보좌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불같은 성격의 이찬종은 김현석을 향해 칼날을 겨눴다.

평소 관계를 맺어왔던 기자들을 통해 김현석에 대한 음해성 기사를 내보냈다.

내용은 주로 도박중독자였던 그의 부친과 신흥 재벌인 미래 그룹 회장과의 유착 위험성을 강조하는 것들이었다.

이렇게 뒤로 여론을 조성하는 한편, 후보들의 공약을 발표하는 TV 토론 프로그램 자리에서도 김현석의 이미지를 깎아내리려고 근거 없는 비방을 노골적으로 일삼았다.

사실과 다름을 김현석이 반박하며 현명하게 대처하기는 했지만, 이찬종에게 향한 대중의 의심이 그에게 분산되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노국일의 지지율만 완만하게 오르고, 이찬종과 김현석은 30%와 5%로 큰 변화 없이 정체되었다.

이대로라면 노국일의 압승이 예상되는 판세였다.

이런 양상에 변화가 생긴 것은 선거 운동이 시작되고 사흘 뒤의 일이었다.

시작은 인터넷에 뜬 하나의 폭로 기사였다.

[신대한당 원내대표 노국일 의원, 작년 강남의 한 룸살롱에서 종업원을 구타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충격!]

1년이 지났고, 당사자 간에 원만한 합의까지 이뤄진 일이었다.

하지만, 이런 일이 있었는지도 몰랐던 대다수의 시민에게는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는 문제였다.

향후 대통령 자리까지 노리는 거물급 정치인의 주폭 논란.

기사에 담긴 내용은 꽤 사실적이었다.

노국일을 향한 비난 여론이 형성됨은 당연했다.

기사를 접한 노국일은 보좌진을 회의실로 모아놓고선 분통을 터트렸다.

"대체 어떤 놈이야!"

평소 이찬종을 불같은 성격의 무데뽀라고 여기는 노국일이지만, 남들 눈에는 그 역시 얌전한 성격은 아니었다.

주폭 기사 하나로 지지율이 하루 사이 3%나 떨어져 버렸다.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보기 위해 보좌진이 발에 땀이 나도록 뛰어다녔고, 곧 기사의 출처를 알아냈다.

"뭐? 이찬종 쪽에서 제보한 거라고?"

미간을 잔뜩 찌푸린 노국일의 물음에 정범석은 침중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기자를 통해 알아본 바는 그렇습니다."

물론, 정범석이 알아낸 것과 실제 사실은 달랐다.

노국일의 과거 주폭 사건은 이찬종 선거 캠프가 아닌 현시운을 통해 기사화되었다.

애초 의도한 대로 노국일과 이찬종을 싸움 붙이기 위한 현시운의 노림수였다.

'고발IN' 편집장 신명훈을 통해 믿을 만한 기자를 섭외해 기사를 싣고, 제보자를 확인하기 위해 접근한 정범석에게 거짓 정보를 흘렸다.

정범석으로선 자신이 세운 계획이 잘못된 결과를 불러왔다는 비난을 면하고 싶었다.

그래서 이찬종 의원 밑에서 비서관으로 일하고 있는 모교 후배에게 사실 여부를 거듭 확인했다.

- 맞아요, 우리가 제보했습니다.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시민들도 알 건 알아야죠.

그렇지 않아도 노국일의 단독 질주를 막기 위해서 확보해뒀던 그의 약점 중 하나를 언론에 터트릴 계획이었다.

자신들이 한 건 아니지만, 주폭 이슈로 노국일의 지지율이 떨어지고 있으니 손 안 대고 코 푼 격이다.

정범석의 후배는 노국일 캠프의 혼란을 부추기려고 거짓으로 혐의를 인정했다.

현시운에게는 호재였다.

따로 협잡을 하지 않았는데도, 두 후보 간에 전운이 알아서 감돌기 시작했으니까.

쾅!

노국일은 테이블을 주먹으로 세게 내리치며 성난 시선으로 정범석을 쏘아봤다.

"자네 말대로 했는데도 왜 이 모양이야! 이찬종 그놈 쪽에서 지난번 기사를 흘린 게 우리란 걸 알지 않고서야 이런 행동을 한다는 게 말이 돼!"

"…비단 그게 아니더라도 그쪽에서 지지율 선두를 달리는 의원님을 견제할 목적으로 그랬을 수도…."

"어디서 그런 말 같지도 않은 핑계를 대나!"

"……."

정범석의 입장에선 무척이나 억울한 일이지만, 흘러가는 상황만 놓고 보면 변명의 여지가 없다.

"후우!"

소파에 등을 붙이며 노국일이 끓어오르는 화를 숨으로 토해냈다.

당시 룸살롱 주인과 종업원, 자신의 측근들 외에는 알 수 없게 은밀히 처리한 일이다.

그걸 이찬종이 어떻게 알고?

측근들에게서 정보가 새어 나가지는 않았을 거다.

3년 뒤, 자신이 대통령에 오르면 한 자리씩 꿰찰 인사들이 그런 만행을 부릴 리가.

그렇다면 룸살롱 주인과 종업원, 둘 중 한 사람이겠지.

'감히 내 돈을 먹고도 이딴 수작을 부려?!'

보복을 다짐하는 노국일이다.

생각 같아선 당장이라도 사람을 시켜 요절을 내고 싶지만, 일단은 사태 수습이 먼저다.

어떻게든 떨어지는 지지율을 방어해야만 했다.

"앞으로 어떡할 거야!"

그의 신경질적인 외침에 회의실에 모인 보좌진 모두 조용히 입을 닫았다.

이번 사태의 원흉처럼 생각되는 정범석을 노국일이 노려보자, 그는 시선을 피하듯 더욱 고개를 아래로 숙일 뿐이다.

그때, 반대편에서 조용히 관망하고 있던 나승원이 입을 열었다.

"의원님, 저희도 똑같이 이찬종을 치시죠."

"뭐?"

뜬금없는 나승원의 말에 노국일은 인상을 찡그리며 반문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