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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로 재벌 참교육-139화 (완결) (139/139)

§139화 다시, 시작 & 000화 닫는 글(완결)

"헉- 헉헉!"

하프 플레이트 메일과 각반, 건틀릿에 장검까지.

족히 20kg이 넘는 무기와 장비를 온몸에 덕지덕지 붙인 채 제임스는 거친 숨을 토해내며 숲길을 달렸다.

크워어어어-

- 끄아아악!

달려온 방향에서 괴성과 함께 누군가의 비명이 울렸다.

"젠장!"

일진이 매우 사납다.

리얼 월드는 물론 현실 세계에서도 통용이 되는 크레딧.

그걸 벌기 위해 오늘도 리얼 월드의 무수한 콘텐츠 중 하나인 '포가튼 에픽'에 접속했다.

높은 자유도를 표방하는 판타지 세계.

현실 세계에서 아무리 보잘것없는 사람이라고 해도 이곳에선 제 노력에 따라 무엇이든 될 수 있다.

기사가 되어 전장을 누빌 수도, 신실한 성직자로 다친 이들을 어루만질 수도 있다.

대영주가 되어 한 일대를 호령할 수도 있으며 쉽지는 않지만, 일국의 왕 혹은 제국의 주인이 되어 역사에 이름을 남기는 것도 가능하다.

물론 영주 이상의 신분은 혼자의 힘으로는 감당하기 힘들다.

그에 들어가는 돈도 천문학적으로 만만치 않았고.

단순한 게임이라고 여길 수도 있지만, 이미 이곳은 현실과 괴리된 또 다른 세상이다.

이곳에서의 재화는 리얼 월드 전체에서 쓸 수 있는 크레딧으로 변환이 가능하다.

여기서 번 돈으로 제임스는 최저 생활비를 부담하고, 고향에 있는 어머니와 동생들을 건사한다.

높은 자유도와 방대한 스토리와 다양한 콘텐츠.

여러 장점에도 '포가튼 에픽'은 치명적인 단점이 하나 있다.

바로 라이프가 단 하나라는 것.

죽으면 끝이다.

새로 캐릭터를 생성할 수는 있지만, 그동안 플레이하면서 모았던 장비와 물품, 골드까지 통째로 사라진다.

이런 불만에도 사람들은 '포가튼 에픽'에 매료되었다.

개중 캐릭터가 삭제된 몇몇은 개발사인 넥스트에 강력하게 항의를 하지만, 게임 시작 전에 매번 고지하는 주의사항이며, 게임 이용료 자체가 무료라서 푸념 정도 외에는 어떠한 법적 조치도 취할 수 없었다.

그간 고생하면서 키운 제임스의 캐릭터 레벨은 53.

제한 레벨이 300인 걸 감안하면 쪼렙으로도 볼 수 있지만, 단 하나의 라이프와 쉽지 않은 난이도로 전 세계에서 제임스보다 높은 레벨의 유저는 채 100만 명도 되지 않았다.

동시접속자 수만 5억 명에 달하는 만큼 제임스의 위치는 상위권이라고 할 수 있다.

근데 지금 제임스는 그간 고생했던 수고로움을 단번에 날려버릴 위기에 처했다.

자신과 같은 레벨의 캐릭터 열 명이 모여도 감당하기 어려운 몬스터에게 쫓기고 있었다.

오늘 파티를 제안한 마법사 유저의 꾐에 넘어갔던 것부터가 잘못이었다.

던전.

상당히 위험하지만, 그만큼 높은 수익성을 자랑하는 콘텐츠.

마법사는 호언장담했다.

단순히 함정만 설치된 초급 던전이라고.

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크오오오오!!

모든 파티원이 사망했는지 반투명하게 떠 있는 왼쪽 상단의 파티창에는 제임스의 캐릭터만 남아있었다.

일곱 명의 캐릭터를 삭제시켰으면 이제 만족할 법도 하건만….

불운하게도 만족을 모르는지 몬스터는 제임스의 뒤를 바짝 쫓고 있었다.

"제기랄!"

진짜로 죽는 건 아니지만, 가족을 먹여 살릴 수단을 잃게 되는 것이니 제임스에게 별반 다르지 않은 일이다.

점점 가까워지는 몬스터의 기척에 제임스는 도망치기가 글렀음을 직감했다.

다이아 수저의 유저들이라면 이럴 상황을 대비해 마련한 대마도사의 텔레포트 스크롤로 위기를 넘기겠지만, 흙수저 유저 제임스에게는 엄두도 못 낼 소비 아이템이다.

한 장에 오십만 골드.

크레딧으로 환산하면 십만 크레딧이고, 현실 돈으로는 만 달러의 가치를 지녔다.

촤악!

제임스는 발걸음을 멈추고 장검을 뽑아 들었다.

죽을 때 죽더라도 꼴사납게 도망만 다니다가 끝나고 싶지는 않았다.

무려 3년을 공들여 쌓아 올린 캐릭터의 역사다.

그 마지막 여정에 오점을 남길 순 없었다.

"언제 또 키워!"

지금의 경지에까지 오르는 데 걸릴 시간과 들어갈 비용만 생각하면 눈앞이 암담해진다.

크워어어!

가까워지는 몬스터.

달려왔던 방향을 겨눈 칼끝이 조금씩 떨려왔다.

아무리 가상현실이라지만, 빌어먹게도 구현을 잘해놨다.

두려움마저 체감될 정도라니.

넥스트의 기술력에 작게 감탄하는 것도 잠시.

크오오오오!!

마지막 사냥감을 따라잡았다는 것에 기쁨의 포효를 외치며 빌어먹을 놈이 나타났다.

암회색 피부에 6m에 다다르는 큰 키와 근육으로 뒤덮인 탄탄한 몸.

그리고 세 쌍의 붉은 눈동자.

먹잇감을 보며 소름 끼치는 미소를 보이는 트리플 헤드 오우거다.

제임스는 마른 침을 삼키며 장검의 손잡이를 더욱 꽉 쥐었다.

놈이 웬만한 장정 몸통만 한 주먹을 들어 올렸다.

저기에 제대로 맞았다간 뼈도 못 추릴 거다.

제임스는 버프 아이템을 아낄 때가 아니라고 여기며 인벤토리에 남아있는 걸 모조리 써댔다.

순간 몸이 가벼워지고, 팔과 다리에 힘이 용솟음쳤으며 시야까지 밝아졌다.

하지만 이런 일회성 저급 버프로도 놈을 어찌해볼 수 없다.

마왕에 맞서는 용사와도 같은 마음가짐이었지만, 실상은 초장에 죽어 나가는 엑스트라 신세다.

"이야압!"

약해지는 마음을 다잡으려 제임스는 기합성을 내질렀다.

자그마한 가능성에 기대어 검 끝을 놈의 목을 향해 곧추세우며 앞으로 달려 나갔다.

제임스의 마지막 발악에 트리플 헤드 오우거는 가소롭다는 듯이 주먹을 빠르게 내질렀다.

'쳇!'

역시 53의 레벨로는 비벼볼 수조차 없는 몬스터다.

자신의 머리 위로 드리우는 짙은 음영에 제임스는 캐릭터의 죽음을 직감했다.

불안과 두려움이 짙은 공포로 변모하는 순간, 제임스는 저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런 자신의 행동을 인식했을 때, 제임스는 곧 있을 충격과 캐릭터 사망 메시지를 기다렸다.

"……."

그러나 기다리던 순간은 찾아오지 않았다.

피싯!

대신 풍선에서 바람이 빠져나가는 것과 비슷한 소리 한줄기가 장내를 지나갔다.

동시에 주변은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

"……?"

뭐지?

이미 죽은 건가?

그럴 리가!

그 흔한 알림 메시지도 없다.

제임스는 감았던 눈을 슬며시 떴다.

그리고 눈앞의 광경에 입을 쩍 벌렸다.

"뭐, 뭐야?"

트리플 헤드 오우거.

그렇게 불렸던 120레벨의 몬스터는 굳건히 대지를 밟은 두 발만 남겨놓은 채, 전신이 다 사라진 상태였다.

황당함에 좌우를 살펴도 두 발 외에 남은 흔적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그때였다.

"괜찮습니까?"

"?!"

뒤에서 들리는 낯선 음성에 제임스는 화들짝 놀라며 몸을 돌렸다.

천으로 된 얇은 옷 위에 후드가 달린 로브를 입은 동양인 남성.

나이는 자신보다 열 살쯤 많아 보였다.

삼십 대 중반 정도?

그의 손에 들린 나무 지팡이 끝에서 빛무리가 서서히 사라지는 걸 확인한 제임스는 큼지막한 오우거의 발과 그를 번갈아 보며 입을 열었다.

"혹시? 방금…."

제임스의 두서없는 말에도 남성은 무슨 뜻인지 알아차렸는지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무척 위험해 보이는 상황인 것 같아서요. 설마…, 제가 사냥에 방해가 된 건 아니겠죠?"

"아, 아닙니다. 그게 무슨! 도와주셔서…, 아니. 살려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뭘요. 무사해서 다행입니다."

분명 국적이 다른 둘이다.

현실 세계였다면 지금처럼 말이 통할 리 없겠지만, 리얼 월드 내에서는 유저 간의 대화에 자동으로 통역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었다.

"여긴, 오우거의 앞마당으로 불릴 정도로 위험한 곳입니다. 레벨 100이라도 안전을 장담하기 어려운 곳이죠. 보아하니 여길 들어오기엔 레벨이 부족해 보이는데…."

"……."

제임스는 초급 유저용 숲이라며 걱정하지 말라고 장담하던 마법사 파티원을 떠올리곤 속으로 욕을 내뱉었다.

웬 허당끼 넘치는 마법사 때문에 아까운 캐릭터만 날릴 뻔하지 않았는가.

물론 또 다른 마법사 덕분에 목숨을 건질 수 있었지만.

'근데…, 도대체 레벨이 몇이길래 트리플 헤드 오우거를 한 방에?'

궁금했지만, 생명의 은인에게 대놓고 물어볼 순 없었다.

대충 봐도 고렙의 유저인 게 분명하다.

제임스는 이참에 통성명이라도 하려 했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나중에 제가 꼭 신세를 갚을 테니 성함 아니, 캐릭터명이라도 알려주시겠습니까?"

그에 남성은 씩 웃으며 발걸음을 옮겼다.

"인연이 닿는다면 다시 만나게 될 겁니다. 그럼 이만."

"……."

돌려서 거절이다.

하긴 제임스라도 남성처럼 고렙이면 고작 53레벨에 머무는 유저와 안면을 틀 마음이 생기지 않겠지.

숲길 사이로 사라지는 남성을 우두커니 바라보던 제임스는 한참 후 트리플 헤드 오우거의 남은 두 발을 챙겨 마을로 걸음을 옮겼다.

이것 말고는 건진 게 없는 하루였지만, 캐릭터 삭제의 위험에서 겨우 벗어날 수 있었다는 걸 위안으로 삼았다.

그렇게 마을에 가까워질 무렵.

띠링!

"음?"

시야 오른쪽 상단의 메시지 표시가 알림음과 함께 반짝였다.

뭔가 싶어 메시지함을 불러내 신규 메시지를 확인하는 제임스.

그의 눈앞에 몇 줄의 문구가 떠올랐다.

[발신자 불명]

[GR컴퍼니에서 발송하는 메시지입니다. 축하드립니다! 미래 정보를 알 수 있는 유레카의 임시 이용자로 선정이 되었습니다. 자세한 사항은 아래의 내용을 확인하길 바라며….]

알 수 없는 내용에 제임스는 고개만 갸우뚱거렸다.

- End -

000. 닫는 글

[살아있다면 언젠가 당신의 내일은 희망으로도 가득 찰 수 있어요.]

한강대교를 걷던 진상진은 다리 난간에 적혀있는 글귀를 보며 콧방귀를 뀌었다.

"지랄하고 자빠졌네. 희망? 어디서 이딴 개소리야!"

땟국물이 덕지덕지 묻은 손과 발로 진상진은 글귀가 적힌 판넬을 때리고 찼다.

마흔넷의 인생.

그중 삼십 대에 접어들면서 단 한 번도 일이 잘된 적이 없었다.

그전까지는 그래도 편의점 두 곳을 운영하던 부모님 덕분에 여유롭게 살았었는데….

두 분이 한날한시에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뒤부터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물려받아 운영하던 편의점 맞은편에 저가 전략을 고수하는 다른 프랜차이즈의 편의점이 들어선 이후부터다.

우연인지, 애초부터 노렸는지 진상진이 운영하던 두 곳의 편의점 모두에 그런 상황이 발생했다.

매월 떨어지는 매출에 진상진은 결국 편의점을 처분하고, 다른 사업을 알아봤다.

각종 사업설명회와 투자자 모임에 기웃거렸고, 그러다 알게 된 지인에게 솔깃한 정보를 듣게 되었다.

척박한 아프리카 땅에 최첨단 미래 도시를 설립할 계획이라는, 쉽게 믿기 힘든 고급 정보였다.

알고 지낸 지도 오래되었고, 이전에도 몇 번의 고급 정보 덕에 꽤 높은 수익을 올렸는지라 진상진은 지인의 말을 철석같이 믿고 은행 빚까지 내가며 아프리카 사업에 전 재산을 투자했다.

그리고 한 달이 지났을 때, 그게 사기란 걸 알게 되었다.

몇 년을 형, 동생 하며 친하게 지냈던 지인은 잠적해버렸다.

전문 투자가라는 그의 신분 역시 가짜였다.

억울함에 경찰에 신고했지만, 뚜렷한 실마리도 없어서 돈을 돌려받을 길은 요원했다.

졸지에 진상진은 알거지가 되었다.

"씨발! 현시운, 그 새끼는 여배우와 결혼도 하고 잘만 먹고사는데…. 왜 나한테만 이런 일이 생기는 건데!"

어두운 하늘을 향해 두 주먹을 휘저어보지만, 어디에서도 답은 없었다.

긴 한숨을 푹푹 내쉬며 걸어가던 진상진은 문득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

교각 밑으로 물결치는 강물이 보였다.

어두운 하늘을 투영하듯 새카만 색.

마치 자신의 앞날을 예견하는 것 같았다.

"에잇! 그냥 그 돈으로 사기꾼 말을 들을 게 아니라, 장기우에게나 비벼볼걸."

배다른 누나에게 그룹을 뺏겼다지만, 여전히 재벌 3세다.

지난 잘못으로 3년간의 옥살이를 마치고 나온 뒤, 건실한 사업가로 재기했다는 소문을 익히 들었었다.

차라리 녀석의 회사에 투자했으면 지금 같은 꼴을 하고 있지는 않았을 텐데.

하지만, 그건 틀린 추론이다.

진상진이 지금 이 모양 이 꼴로 전락한 데는 장기우의 입김이 컸으니까.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편의점이 잘 안 된 이유?

맞은편에 새로 생겨난 편의점들은 모두 장기우가 돈을 대줬다.

진상진에게 사기를 친 사기꾼 역시 장기우의 사주를 받아 일을 진행한 거다.

어린 시절 치기 어린 진상진의 악담에 누군가는 상처를 받았고, 그 대가는 긴 시간을 돌고 돌아 뒤늦게서야 치러졌다.

정작 당사자인 진상진은 죽었다가 깨어나도 알 수 없는 사실이다.

"으, 추워!"

한동안 한강 물을 바라보던 진상진은 몸을 떨며 걸음을 재촉했다.

그에게는 다리 밑으로 뛰어들 용기조차 없었다.

"노들역에는 단속반이 나타나진 않겠지?"

한동안 머물던 신용산역에 단속반이 들이닥쳐 자신을 비롯한 노숙자들이 밖으로 내쫓겼다.

3월의 추위는 여전히 매서운 편이라, 얼어 죽지 않으려면 사방이 막힌 공간을 찾아야 했다.

진상진은 헌 가방을 등에 메고는 걸음을 재촉했다.

"어어? 파란불!"

다리를 다 건넌 진상진은 연신 깜빡이는 신호등에 바삐 뛰었다.

다음 신호를 기다릴 인내심이 그에겐 부족했다.

그리고 그런 그의 성격은 불행을 자초했다.

끼이익-

건널목을 절반쯤 지났을 때, 신호는 바뀌었고 무단횡단자의 존재를 알 리 없는 2차선 도로의 트럭은 급발진했다.

갑자기 튀어나온 것처럼 보이는 진상진을 뒤늦게 발견한 운전사가 급하게 브레이크를 밟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퍼억-

진상진은 트럭 범퍼 왼쪽 모서리에 세게 부딪히며 대각선으로 튕겨 나갔다.

재수가 없게도 하필이면 그곳으로 덤프트럭이 달려오고 있었다.

쿵!

둔탁한 소리가 늦은 밤 건널목에 울렸다.

진상진, 그에게는 다른 이들과 달리 어떠한 기회도 다신 주어지지 않았다.

-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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