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판멸망한 세계의 게이머-26화 (26/176)

# 26

연구소 구출작전 (3)

성현의 지시에 따라 터널 입구는 대형 서치라이트가 대낮처럼 비추고 있었다.

선견지명이 있었던 것인지 사흘 전 터널 상단에 10개의 대형 서치라이트 설치를 지시했고, 시기적절하게 써먹을 수 있었다.

직접적인 공격이 아닌 빛으로 좀비들의 접근을 막아냈다. 터널 앞 너른 공터에는 단 한 마리의 좀비도 접근하고 있지 않았다.

“온다.”

따다다다당.

선두의 험비가 사방으로 총을 난사하며, 튀어 나왔다.

부아아앙.

공터에 진입 후에도 속도를 늦추지 않고, 그대로 터널 입구로 내달렸다.

험비의 앞 범퍼는 크게 파손되어있고, 차체는 온통 피범벅에 전면 유리는 금이 쩍하고 가 있었다.

어떤 험로를 뚫고 왔는지 대략 짐작하고도 남았다.

입구 바리케이드는 치워져 있었고, 후속 차량들이 속속들이 진입했다. 터널 안으로 들어온 차량들은 집하장으로 쓰이는 공동으로 멈추지 않고 직행했다.

험비들이 모두 대피소 영내로 들어서고 엔진을 풀가동한 바라쿠다 장륜 장갑차들이 이어서 들어섰다.

구궁. 구궁. 구궁.

폭 40미터 높이 20미터가 넘는 거대한 콘크리트 문이 중량감 넘치는 소리를 내며, 서서히 닫히고 있었다.

쿠쿵!

세상과 완전한 단절을 알리는 큰 소음이 터널에 울려 퍼졌다. 경계를 유지하고 있던 입구 경비대원들도 그제야 겨우 긴장을 풀었다.

집하장 한쪽에 위치한 차량 정비소에 나란히 주차한 험비에서 대원들이 신속하게 내리고 있었다.

뒤따라 도착한 장갑차가 정차하자 대원들은 해치를 열고 생존자들이 안전하게 내릴 수 있도록 도왔다.

“이곳이 대피소입니까?”

“거주 구역은 별도의 차량을 타고 지하로 더 내려가야 됩니다.”

“그렇군요. 규모가 예상보다 대단합니다.”

“간단한 신원 확인을 마치면 가족이나 같이 계시고 싶은 분들에게 쉬실 공간이 배정될 겁니다.”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그건 그렇고 연구소 소장님이시라고 하셨죠?”

“맞습니다.”

“해드릴 이야기도 많고, 들을 이야기도 많습니다. 소장님은 따로 저와 이야기를 좀 하셔야겠습니다.”

성현은 소장이 무슨 말인가 하려고 했지만, 잠시 기다리라 하고 대원들에게 생존자들을 데려가 기본적인 신상을 파악해서 쉬도록 조치했다.

* * *

거주지 내 중앙지휘본부.

성현의 개인 집무실로 쓰이는 공간. 이곳에 성현과 정우현 소장이 마주 보고 앉아있었다.

“역시 그래서 정부에서 저희를 방치할 수밖에 없었군요.”

성현은 현재 세상이 어떻게 변했고, 어떤 문제가 생겼는지 알려줬다.

대피소에 있는 이들 중 모르는 이가 없을 만한 내용이지만, 연구소 소장에게는 충격적인 내용이 많았다.

“제가 겪은 일도 있고, 직접 눈으로 본 것만 해도 세상이 어느 정도인지 알 것 같습니다.”

인간이었으나 더 이상 인간이 아닌 좀비가 된 이들의 공격과 수천수만 대의 차량들이 멈추어 서 있는 고속도로.

세상이 멸망하지 않았다면 되레 이상할 정도의 모습들이었다.

“정 소장님.”

“네. 말씀하십시오.”

“이제 제가 물어볼 차례 같습니다. 정 소장님 연구소에서 하신 일이 정확히 뭡니까?”

잠시 생각한 정우현 소장은 성현의 물음에 답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임을 느꼈다.

제아무리 기밀 프로젝트였고, 정보 취급인가가 나지 않은 이라도 지금은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더군다나 자신들의 생살여탈권을 가진 이였고, 생명의 은인이기도 했다.

“우리 연구소에는 크게 두 가지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상세한 설명 좀 부탁드립니다.”

“네. 일명 제타와 오메가 프로젝트입니다. 모든 연구는 두 가지 큰 틀에서 파생된 것들을 연구했습니다.”

정우현 소장은 성현이 전문가가 아님을 알고 최대한 알기 쉽게 이야기를 풀어 전했다.

“제타는 인간게놈 프로젝트입니다. 인간 유전자 지도를 완성하고 유전자의 비밀을 연구합니다.”

“성과는 있으셨나 봅니다.”

“애석하게도 일부 성과는 있었지만, 선진국에 비해 아직은 모자랍니다.”

인간의 DNA 배열은 거의 99.9%가 같지만 그 배열상 변동으로 우리는 다른 사람이라 일컫는다.

덩치가 큰 사람과 작은 사람, 병에 걸리고 희귀 질병에 걸리는 사람과 체질이 건강한사람 등등 모든 비밀은 유전자에 있었다.

“두 번째 오메가 프로젝트는 바로 플라즈마 신에너지 기술입니다.”

“조금 생소한 분야 같습니다.”

“네. 일반적으로는 그럴 수 있지만, 이미 상용화된 기술도 제법 됩니다.”

“그렇군요.”

“1차 기술 개발은 2년 전에 완료했습니다. 기술 특허를 가진 미국 보잉사가 내놓은 에너지장(Power field)보다 효율이 높고 다양한 형태로 보존하는 기술을 저희가 보유하고 있습니다.”

플라즈마는 기체에 높은 에너지를 가하면 수만℃에서 전자와 원자핵으로 분리되는 형태를 말한다. 제4의 물질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혹시. 제가 상상하는 게 맞나 모르겠군요. SF영화에서나 나오는 보호막이나 그런 종류입니까?”

“생각하시는 바와 비슷합니다. 플라즈마 방어막은 기본적인 형태로 이미 2010년도 경에 그 원리나 형태를 구현하는 데는 문제가 없음이 밝혀졌습니다. 우리는 그 기술을 보완해 한 차원 높은 기술로 실용화에 성공했다고 보시면 됩니다.”

성현이 생각했던 것 이상의 연구를 하고 있는 곳이었다. 하물며 개발이 끝났다고 하니 정부에서 특별 취급을 하는 것도 이해가 되는 부분이었다.

“말씀만 듣고도 자부심이 느껴집니다. 이를 적용한 물건이 있습니까?”

정우현 소장의 얼굴이 살짝 어두워진다.

그리고 고개를 저었다.

“있긴 하지만… 사실 완전하진 못합니다. 저장은 가능하지만 발현하는 매개들이 이를 버텨내지 못하기 때문이죠. 발현에 문제가 없는 물질은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 방어막(Plasma field)이나 응용한 모든 장비들이 일회용에 지나지 않습니다.”

“아……. 그런.”

조금의 아쉬움이 남는 말이었다. 실컷 기대를 키우더니 일회용이라고 한다.

골치 아픈 고등과학 수업을 듣고 겨우 이해했더니 답을 못 찾는 것과 같았다.

“혹, 다른 건 없습니까?”

기대를 버리고 한 번 더 물어나 본다는 심정으로 질문했다.

“아. 안 그래도 아직 완성되지는 못했지만, 플라즈마 융합 발전기가 최종단계입니다. 시간이 조금만 더 있었다면 저희가 그곳에서 산소 부족으로 그런 꼴도 안 당했을 겁니다.”

“발전기요?”

동전을 찾다가 지폐를 발견한 기분이었다.

“네, 단순한 발전기는 아니지만, 그리 보시면 됩니다. 원자력 발전에 버금가는 능력을 지닌 무공해 발전기라 보시면 됩니다.”

성현은 무공해 원자력 발전기라는 부분에서 몇 번을 반복해서 중얼거렸다.

대피소도 추후 에너지 고갈이 염려되는 상황에서 무공해에 원자력 발전에 버금가는 에너지라면 눈이 번쩍 뜨이는 물건이었다.

“정말 완성할 수는 있는 겁니까?”

성현이 테이블에 상체를 기울이며 되물었다.

“네. 길어야 한두 달이면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위험하지는 않습니까? 혹 폭발해서 체르노빌 같은……?”

“전혀요. 에너지를 직접 방출하는 시스템이 아닌, 플라즈마 에너지를 열에너지로 교환하는 방식이라 반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안전성은 절대적입니다.”

성현은 이거다 싶었다.

“혹시 연료가 필요하지는 않나요?”

그래도 혹시 모른다.

연료가 희귀하다던가. 많이 잡아먹는다면 배보다 배꼽이 큰 것이고, 또 구하기 어려운 것일 수도 있었다.

“물입니다. 수소만 있으면 됩니다.”

한마디로 만들기만 하면 대박인 물건이었다.

“소장님! 안전은 100% 책임질 테니 우리 그거 만듭시다.”

*  *  *

성현은 정우현 연구소 소장에게 안전을 장담하고, 설득에 들어갔지만 큰 난관에 부딪혔다.

정 소장은 연구소 재가동에 협조적이지만, 그에 앞서 몇 가지 조건을 내걸었다.

성현은 연구소를 활성화하면 지하 연구소에 병력을 함께 상주시켜, 주기적으로 보급을 해서 연구를 지속시킬 생각이었다.

‘쉽지 않아…….’

하지만, 소장이 내건 조건은 대피소에서 생활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인데.

이 말은 출퇴근을 시켜달라는 말을 둘러 이야기 한 것이다.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상당히 어렵고 부담이 가는 일임이 틀림없다.

매일 긴 시간을 들여 병력들이 연구원들을 호위해서 가야 하는데 위험에 노출되는 빈도가 높아질수록 사고 위험 또한 높아진다.

‘먼저 연구원들이 못 버틸 거야.’

일반인에 불과한 연구원들은 반복되는 위험에 노출되어 힘들 것이고, 계속되는 자극에 큰 스트레스를 받게 될 것이다.

종국에는 연구에 대한 열의는 식다 못해 바닥을 칠 것이다.

‘다치는 수준이라면 해미가 있어 괜찮다지만, 그러다 누구 하나라도 죽기라도 하면.’

사고라도 덜컥 나게 되면, 연구를 시작 안 한만 못하게 된다. 정 소장의 요구 중 또 하나가 사고가 나면 연구를 중단한다는 것이었다.

강제적으로 시키지 못할 일은 아니지만, 성현이 그 정도로 악한 이는 아니었다.

다만, 절체절명의 시기가 도래한다면 이때는 어쩔 수 없을지도 몰랐다.

“헬기만 있으면 이동 간 안전 확보는 물론이고 시간도 대폭 줄일 수 있어서 일거양득인데, 그러지를 못하니…….”

성현은 정 소장과 합의점을 못 찾고 관사로 돌아와 고심 중이었다.

헬기로 수송하면 일이 크게 줄어들고, 거기다 다른 안전문제도 쉽게 해결할 수 있을 거 같았다.

“봉쇄하는 거야 일도 아닌데.”

지상으로는 아무도 출입 못하게 요새화해버리면 그만이었다.

고속도로에 방치된 수만 대의 차량들을 창고에 넣은 뒤 가지고가 건물 전체에 빼곡하게 겹겹이 쌓아 버리면 된다.

“헬기가 있어도 문제긴 하네.”

답답했다.

작동이 되는 헬기가 있어도 문제였다. 정비나 수리에 막대한 자원과 기술이 요구됨을 잘 알고 있었다.

“하-아. 방법이 없어 방법이.”

“아저씨, 왜 그래요?”

해미가 한숨만 쉬는 성현이 걱정되어서 묻는다.

“아냐. 해미가 알아도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 거라, 신경 쓰지 마.”

“에이. 아저씨 일이 제 일이고, 아저씨 걱정이 제 걱정이거든요? 말해 봐요. 뭔데요?”

기특한 말만 골라서 하는 해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저씨가 헬기를 구해오려는데, 그게 고장 난 물건이거든. 하물며 온전한 걸 찾아 가져와도 시간이 지나면 고장도 나고 고치고 그래야 하는데, 기술자도 부족하고 가장 큰 문제는 부속을 구할 수가 없다. 내구성이 영구적인 게 아니라 방법이 없네.”

해미가 가만히 미간을 모으고, 생각하는 듯했다. 성현은 괜한 고민거릴 준거 같아 미안스럽다.

꼼지락.

해미가 허공에 대고 손가락을 꼼지락댔다.

“이거… 내구도 회복스크롤로는 안 되겠죠? 게임에서 슥슥 비비면 다 고쳐 줬었는데…….”

“크헉……!”

성현은 물 한 모금 목으로 넘기려다 사레가 들려 컥컥거렸다. 자신에게도 내구도 회복스크롤은 있었고, 해미가 준 골드로 넉넉히 사두었었다.

성현이라고 한 번도 생각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게임에서 마우스로 클릭해서 사용하던 것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감을 못 잡았었다.

찢어도 보고 갖은 방법을 다 동해 봤지만, 효과가 없었다. 하물며 스크롤을 불에 태워보기까지 했었다.

그래서 거의 포기하고 이건 못 쓰는 거다 단정 짓고 있었다. 이렇게 고정관념이란 게 참 무섭다.

‘이거 잘하면!’

생각지도 못한 바를 해미가 일깨워 줬다.

‘슥슥’ 비빈다는 말에 번뜩 떠오르는 게 있었다.

게임에서도 장비 아이템에 스크롤을 사용하면 손으로 문지르는 액션을 캐릭터가 했었던 게 떠오른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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