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
진화의 시작 (1)
“아저씨, 괜찮아요?”
“자, 잠시만!”
창고를 급히 연 성현은 자동소총 하나를 꺼내어 테이블에 올리고, 내구도 회복스크롤 한 장 꺼내 놓았다.
그리고 힘을 주어 총열이 눈에 띌 정도로 휘게 했다.
‘해보자!’
스크롤을 총에 올리고 기도하는 심정으로 천천히 문지르기 시작했다.
‘제발……!’
총기에 올린 스크롤을 대여섯 번 왕복했을 때였다.
화아악!
문지르던 스크롤이 스스로 발광하며 빛을 뿌렸다. 순식간에 총열이 원래대로 돌아갔고, 갓 만들어진 새 총처럼 윤기가 흘렀다.
“와하하하! 역시 우리 해미가 최고다!”
성현은 해미를 안고 덩실덩실 춤을 췄다. 볼 빨개진 해미도 싫지는 않은지 그대로 안겨 가만히 있었다.
“혹시 전자기기에는 안 통하는 건 아니겠지?”
성현은 해미를 내리다 문뜩 설마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급히 자신의 스마트 폰을 꺼내 양손에 잡고, 힘을 주어 접었다.
스스슥.
스팟!
번쩍임과 함께 전능한 스크롤은 아무런 문제도 없이 거의 두 토막 난 스마트 폰마저 원상복구 해냈다.
“예쓰!!”
전원을 다시 켜보고 정상적으로 작동됨을 확인했다. 두 주먹을 불끈 쥔 성현은 연신 ‘예쓰’를 외쳐댔다.
“가만가만…. 내가 100장 사뒀다가 하나도 안 쓰고 방금 두 장 써서 98장 남았네. 이럴 줄 알았으면 9,999장을 사둘 걸 왜 아낀다고 하-아.”
“아저씨. 또 왜 그래요?”
“아니. 해미 네가 골드도 넉넉히 줬잖아. 근데 스크롤 겨우 100장만 사놨었거든. 이런 일이 생길 줄 누가 알았겠냐.”
성현은 자신의 머리를 쥐어뜯는다.
아끼면 똥 된다는 게 진짜 자신에게 일어날 줄은 몰랐다.
“에이. 난 또. 좀 드려요?”
“너. 설마…… 몇 장이나 있니?”
“저 마을가면 매번 풀로 채워놔요. 9,999장요.”
해미는 성현에게 있어 성현만을 위해 최적화된 사람이었다.
* * *
성현은 다음날 지휘관들을 불러 계획한 일들을 알렸다.
처음에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 모두 장난으로 치부할 정도였다.
고장 난 기기들을 A4용지 보다 작은 종이로 모두 고친다고 하는데, 성현이 혹시 이상한 종교에 빠진 건 아닌지 걱정하는 이도 있었다.
성현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띠고 이들을 데리고 집하장 공동으로 이끌었다.
그리고 수많은 이가 지켜보는 앞에 고장 난 기기들을 차례로 고치는 기적을 보여줬다.
포신이 휜 기관포를 시작으로 문짝이 찌그러지고, 범퍼가 박살이 난 험비를 찰나의 순간에 고쳐냈다.
마지막으로 외부에서 가져온 승용차를 고쳐 시동을 걸어줬다.
이를 지켜보던 모두가 얼이 빠지고, 어찌 된 영문인지 물었다.
성현은 있는 그대로 전해줬지만, 사실 그대로 받아들이는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하물며 최 중령까지 진실은 따로 있지 않냐, 물을 정도였으니 다른 이들은 말하나 마나였다.
하지만 중요한 건 성현이 고장 난 기기들을 고친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성현은 스크롤을 사용해서 마법 같은 일을 벌이고 나서 몇 가지 조사를 지시했다. 헬기 조종이 가능한 사람이 몇이나 있는지 하고, 조종을 한다면 어떤 기종까지 가능한지 여부였다.
대피소 군 편재 자체가 보병 위주였고, 당장 부대 내에는 그런 인재가 없었다.
“대령님 총 26명의 조종사를 찾았습니다.”
“좋았어! 어떤 사람들이야?”
“모두 일반 거주자입니다. 공군 출신 민항기 조종사 14명 가운데 5명은 헬기 조종도 가능하답니다. 9명은 육군항공대 출신 헬기 조종사였다고 합니다. 나머지 12명은 헬기 조정 자격증을 취득한 이들입니다.”
“조종 가능 기종은?”
“모두 기종엔 크게 구애받지는 않는다고 합니다.”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있었다.
이는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정부에서 대피소 계획을 입안하면서부터 선별한 이들이기 때문이었다.
한 분야 이상의 전문 지식이나 기술을 익힌 자. 또는 학문과 예술 분야에 뛰어난 업적이 있는 이들이 대피소에 올 수 있는 최소한의 자격이었다.
이런저런 재주가 많은 이들이 모이다보니 헬기 조종이 가능한 이도 예상보다 많았다.
“아주 좋아!”
성현은 그길로 헬기를 구하러 갈 뜻을 전하고 그 즉시 대피소를 나섰다.
헌데 출발 직후 문제가 생겼다.
트랜스듀서 무전기는 단거리 통신만 가능해서 장거리 통신용인 FM 무전기를 챙겼는데. 대피소에서 약 15㎞ 정도 벗어나자 통신이 되지 않았다.
성현은 대피소에 그사이 어떤 문제가 생긴 줄 알고 해미와 급히 돌아갔지만, 다행히 대피소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단순히 무전기 문제로 보고 다른 무전기로 교체해서 나선 길에 또 다시 통신 불능.
시험해본 결과 15㎞이상 떨어지면 FM 무전기는 통신이 불가했다.
FM 무전기 대신 AM 무전기로 바꾸고 출발했지만, 다시 돌아와야만 했다. 앞서와 같은 결과가 나왔던 거다.
혹 내구도 회복스크롤을 사용하면 통신이 가능할까 했지만, 이는 기기적인 결함이 아닌 문제여서 스크롤로 해결되지 않았다.
이건 심각한 문제 그 이상이다.
차후 원거리 작전을 하게 되면, 죽이 되던 밥이 되던 복귀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는 말과 같다.
이론상 AM 무전기는 전리층을 타고 지구 반대편까지 통신이 가능하다.
FM, AM 무전기 둘 다 15㎞라는 선을 긋고 통신이 안 되는 건 딱 하나의 가정만이 남았다.
극초신성의 여파. 이것밖에 없었다.
여러 테스트를 하느라 날이 저물어 어쩔 수 없이 계획은 하루 더 미루어졌다.
“괜찮으시겠습니까? 이거 문제 생겨도 저희가 알 수가 없으니…….”
“걱정할 필요 없어. 해미나 나보다 대피소 안전이나 신경 쓰도록 해.”
최동원 중령이 걱정스레 말하지만 성현은 불필요한 걱정이라며, 대피소 관리에 집중하라 전했다.
다음날.
성현과 해미는 당일 왕복할 예정으로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남하를 시작했다. 둘은 라이트 아머와 헬멧만 쓰고 단출한 차림으로 출발했다.
“아저씨. 저기 좀비요.”
“해미야, 버려-. 그냥 가자.”
그리고 소수의 좀비는 아예 무시하고 달리는 데 전념했다.
오직 앞만 보고 달렸다.
오전 9시경. 전투부대 부대원들의 마중을 받으며 출발해, 약 1시간여 만에 오산에 도착했다.
거의 시속 50~60㎞를 넘나드는 속도로 강행군 한 것이다.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스피드와 지구력이었다.
목적지는 오산공군기지 K-55.
대한민국 공군과 주한미군의 합동기지로 미 공군 관할인 곳이다. 미 공군 태평양 지역 가장 큰 공군기지이자 태평양 공군 예하 제7공군의 본부이기도 하다.
예전에는 그림의 떡이겠지만, 지금은 그야말로 노다지나 다름없다.
“잠시만 쉬었다 가자.”
성현은 좀 지치고 힘든 반면, 해미는 아직 여력이 남았는지 팔팔하다.
쉬는 동안 성현은 지도를 펼쳤다.
시중에 있는 모든 지도는 군부대나 군 시설은 표기되어있지 않다. 하물며 군용 지도도 마찬가지로 이를 표기하지 않고, 격자만 추가되어 그어져 있다.
과거 인터넷이 될 때도 검색을 하면 엉뚱한 지형을 표기하던가 검색조차 되지 않는다.
성현이 펼친 지도는 2급 기밀 작전 지도였고, 오산기지는 물론 기지 내 활주로까지 상세히 나타나 있었다.
“이제 조금만 가면 되겠다.”
성현도 군복무시절 오산기지에는 와 본 적이 없어 정확한 위치는 지도를 보고서야 알게 되었다.
피식피식.
명품 쇼핑을 앞둔 뭇 여인처럼 성현은 살짝 들뜨고 기대 만발이다. 이제 멀지 않은 곳에 대규모 쇼핑 천국이 기다리고 있었다.
파바바팟.
성현과 해미는 잠시의 휴식을 끝내고 다시 날듯이 달려 나갔다.
바닥을 박차는 힘이 어찌나 대단한지 발을 디딜 때마다 공기가 동심원을 그리며 퍼져나갔고, 먼지가 뒤로 흩날리며, 바람 소리가 요란했다.
그러길 몇 분 후.
오산공군기지 후문 근처에 다다르자 드디어 기지의 출입구가 눈에 들어왔다.
기지 입구를 지키던 초소는 텅 비어있었고, 수많던 군인들과 군속들은 그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우선 격납고를 찾아야 한다.’
성현은 외각 경비 초소를 지나 안으로 들어섰다.
멀리 관제탑이 눈에 들어오자 성현은 그곳을 기준으로 잡고 달려 나갔다.
흰색 3층 건물을 지나자 활주로가 나타났고, 그 끝에 대형 창고들이 줄을 지어 세워져 있었다.
격납고가 분명했다.
“해미야, 이쪽이야-.”
“네-.”
해미가 활주로에 있는 거대 수송기 C-5B 갤럭시에 한눈을 팔다 성현의 말에 급히 쫒아갔다.
C-5B 갤럭시의 동체 크기는 에어버스 A-380과 비슷하다. 가격도 가격이지만 수송 능력이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일예로 공수 전차 4대를 동시 투하하고, 70여 명의 공수 부대원을 수송해서 어지간한 보병 중대 병력을 한 번에 적진에 투입하고, 실어 나를 수 있었다.
하지만 성현의 목표는 이륙거리도 길고, 운용에 제약이 많은 C-5B 가 아니다.
성현은 길이가 50미터 폭이 30미터가 넘는 대형 격납고 앞에 섰다.
콰콱!
성현이 손가락도 들어가지 않은 좁은 틈을 비집고 힘을 쓴다.
격납고의 문은 누운 갈지자(之) 형태로 늘였다 줄여 개폐를 할 수 있도록 고안된 특수 도어(Door)였다.
‘내 힘으로는 무리다.’
어지간한 공습에도 버틸 정도로 두텁고, 단단하게 만들어진 곳이었다. 게이머로 각성한 성현의 힘으로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
“해미야. 이거 좀 열어줄 수 있을까?”
“네-에. 아저씨 뒤로 비켜보세요.”
성현이 뒤로 훌쩍 물러서자 해미는 허공에서 자신의 키만 한 스태프를 꺼내 들고 문을 힘껏 내려쳤다.
쾅-!
후드드득.
“와! 아저씨 이거 대따 단단해요.”
해미가 자신이 타격한 부분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후려친 부분을 기준으로 직경 50cm가 넘는 콘크리트가 부서져있었고, 그 안에 움푹 팬 철벽이 나타났다.
“이거 C4라도 써야 하나…….”
“아저씨 나와 봐요. 와, 열 받네.”
해미가 어깨를 돌리고 스태프를 다시 굳게 잡았다.
까강! 콰쾅! 콰앙!
성현은 저러다 해미의 스태프가 먼저 부러지는 건 아닌지 불안했다.
두꺼운 콘크리트 조각들이 사방으로 날아다니고, 육중한 문이 젤리처럼 출렁이기까지 했다. 자욱한 먼지는 덤이다.
하지만 철벽은 움푹움푹 파일 뿐 아직 뚫리지 않았다.
“이 씨!”
해미가 전력을 다하려는 듯 도움닫기를 하고, 스태프를 크게 뒤로 제쳐 내지른다.
쾅-!!
고막을 파열시키듯 엄청난 데시벨의 폭발음에 성현은 깜짝 놀랐다.
10여 미터를 떨어져 있는 상태인데도 충격파에 몸이 흔들릴 지경이었으니 어지간한 미사일급의 파괴력에 비견 할 만했다.
질기게도 버티던 철판이 우그러들어 끝내 안쪽으로 찢어지며, 직경 70cm 정도의 구멍을 만들어냈다.
“해미야 수고했다.”
“히히.”
성현이 수고했다며 해미의 헬멧을 쓰다듬었다.
마냥 좋다며 헤실헤실 웃는 해미를 뒤로하고 찢겨나간 틈을 들여다봤다.
기종을 알 수 없는 기체들이 큰 천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격납고의 크기로 보아 많으면 5~6대 정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고작 2대가 다였다.
“우차.”
성현이 좁은 공간을 비집고 들어가자 해미도 곧장 따라 들어왔다.
추르륵.
성현이 덮여있던 천을 걷어냈다.
“……대박.”
AH-64D 아파치 롱보우. 무장이 풀 장착된 상태였다.
우선 눈에 보이는 무장이 AGM114(대전차 미사일 헬파이어)8발, Hydra-70 로켓 38발, M230 체인건이 보였다.
M230 체인건은 구경이 30mm 최대사거리가 4.5㎞에 달하고 M789, M799 다목적 유탄, 고폭탄 등을 난사할 수 있다.
정확도가 낮다 하나 지역 초토화가 가능해 대인 살상능력은 어마어마하다.
“휘유-. 목적은 이놈이 아니지만, 으흐흐!”
“아저씨 이상해요…….”
성현은 아파치 롱보우 2대를 창고에 넣고, 세상을 다 가진 얼굴을 하고 있었다.
“병기창도 털어야겠다.”
한 가지 목적이 더 생기는 순간이었다.
어떤 식당은 메인디쉬 보다 애피타이저가 맛있는 집이 있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