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판멸망한 세계의 게이머-28화 (28/176)

# 28

진화의 시작 (2)

극초신성 사태 발생 9일 차.

제주 V-1 대피소.

“어떻게 되었나!”

이재문 대통령이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며칠 면도를 못 했음인지 덥수룩한 수염에 상당히 초췌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구역 회복을 위해 투입된 병력은 사실상 전멸한 것으로 보입니다.”

“도대체 어쩌다 이 지경까지…….”

“대통령님!”

정안식 비서실장의 보고를 듣던 이재문 대통령이 현기증이 일어 일순 비틀거렸다.

제주도 V-1 대피소는 한라산 국립공원 남서쪽에 위치해있었다. 대피소는 기존 핵 방공호를 크게 확장해 모두 3개 구역으로 개별 격리가 가능한 곳이었다.

1구역은 군 병력, 2구역은 일반 시민, 3구역은 VIP인사들이 거주하는 구역들로 나뉘어있었다.

전국의 대피소 중 가장 많은 군 병력이 배치됐고, 모두 전군에서 고르고 고른 최정예들로 특전사령부 예하 7개 특전여단에서 차출된 950명, 해군 특수전 전단(UDT/SEAL) 9개 팀 63명, 4개의 기갑여단에서 차출된 1,050명, 포병 1개 대대, 헬기 중대, 의무 중대, 정비 중대, 방공 중대, 공병 중대 등 도합 7,800명의 병력으로 구성되어있었다.

2구역은 일반 시민 1만 2천 명이 대피해있었고.

3구역은 1,249명의 VIP 인사들 중 927명이 피난한 상태였다.

그리고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최고위직 인사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남은…, 병력은?”

이재문 대통령은 말할 기운조차 없는 듯 힘겹게 입을 열었다.

“…….”

정안식 비서실장을 비롯한 상황실에 있는 모두가 입을 굳게 다물고 대답을 하지 못했다.

“허어…….”

그 의미를 대통령도 모르지 않았다.

절망적이다.

더는 없다.

이젠 더 이상 자력구제의 희망조차 걸어볼 전투 인력이 없었다.

이번에 투입된 이들이 짜내고 짜낸 병력으로, 대통령 경호실 소속 전원과 3구역에 있던 남은 전투 병력의 전부였다.

상황실에 암울한 정적만이 감돈다.

사태 발생 당일 3구역의 지휘부는 정신을 차리는 즉시 상황 파악을 시작했었다.

그 결과 외부와의 모든 통신은 단절되었음을 확인했고, 완전히 고립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3구역과 달리 1구역과 2구역에는 큰 문제가 있음을 확인했다.

이제 와 뒤늦은 후회였지만, 당시 의식을 차린 생존자를 3구역으로 받아들였어야 했다.

1구역은 전체 군 병력의 10%가 조금 안 되는 600여 명이 정신을 차렸었고, 2구역은 약 30%인 4,000여 명이 의식을 차렸다.

그리고 수 시간이 지나 의식이 없던 이들은 발작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고, 서너 시간 만에 이들은 좀비로 변해버렸다.

이후 2개의 구역은 아비규환에 빠지게 되었고, 생지옥으로 화했다.

가족이자 친구이며 전우였던 이들을 상대로 초기 대응이 변변치 못했고, 이는 사태를 키우는 원인이 되었다.

상황을 인식하고 대응을 시작할 때쯤엔 이미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사태는 심각한 수준에 이르러 있었다.

급히 3구역의 지휘부가 경비대 병력을 투입했지만, 1만이 넘는 좀비들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투입된 병력은 2구역 진입 10여분 만에 다수의 사상자를 남기고 모두 퇴각하고 말았다.

그렇게 3구역은 강제적인 여건으로 외부와 폐쇄를 단행했다. 그리고 사태 발생 9일 차 되던 오늘, 필살의 각오로 나선 237명의 병력까지 모두 잃었다.

상황실에 자리한 모두는 음울한 분위기 속에 멍한 눈들로 넋을 놓고 있었다.

이때 누군가 정적을 깼다.

“도대체 원인이 뭡니까? 3구역을 제외한, 왜 1, 2구역만 그리 변한 겁니까?”

해병대 사령관 이진구 중장이 인간이 좀비로 변한 것을 두고, 악에 받쳐 소리쳤다.

사태 당일 2구역 지원을 위해 함께 나섰다가 후퇴 과정에서 머리를 크게 다친 이진구 중장은 오늘에서야 겨우 병상에서 일어났고, 2구역으로 병력을 재투입한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참석해 있었다.

“현재로서는 명확히 정의하기 힘듭니다. 다만 지표면에서 가까울수록 문제가 있는 걸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1구역이 지표면에서 50m 정도였고, 2구역이 110m, 저희가 있는 3구역은 300m 이상 입니다. 1구역에 비해 2구역은 의식을 차린 비율이 세 배 이상 높았습니다. 그리고 저희 3구역은 단 한 명도 의식을 차리지 못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좀 더 많은 견본과 데이터가 필요하지만, 분명 지표면에서 깊을수록 어떤 상관관계가 있어 보입니다.”

최필 보건복지부 장관이 푸념하듯 답해줬다.

하지만 이 마당에 그런 사실을 안다 한들, 무슨 의미가 있나 라는 생각을 했다.

“만일 여기서 버틴다면 얼마나 시간이 있겠소?”

최악의 현실이지만 어떻게든 살고픈 인간의 본성인지, 이주혁 국방부 장관이 물었다.

“모든 물자는 2구역에 있었다고 보면 됩니다. 3구역에는 최소한의 예비 물자만 있습니다. 900여 명이 약 한 달간 좀 더 아낀다면 한 달 보름에서 두 달은 가능할 거 같습니다.”

“겨우 두 달…….”

대피소 현황을 비교적 정확히 파악하고 있던 정안식 비서실장이 답하자. 몇몇이 죽을 날 받은 시한부 환자처럼 중얼댔다.

“아직 포기하기엔 이릅니다. 저희 대피소와 달리 전체 거주 구역이 지하 300m에 가까운 곳도 있고, 그 이상인 곳들도 있습니다. 분명 안정적인 대피소가 있을 것이고, 필히 찾아올 겁니다. 이곳에 대통령과 이하 장차관 대부분이 여기 있는 이상 반드시 찾아오리라 봅니다.”

조금은 희망적인 말을 하는 정안식 비서실장이지만, 어디까지나 가능성일 뿐이었다.

그의 말에 모두가 회의적이지는 않았지만, 스스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마냥 구조를 기다리는 건 피를 말리는 일이었다.

“통신 채널 24시간 열어두고, 상황실에 항시 인력을 배치해주게. 그리고 다른 이들에게 소식을 전하고 물자를 아낄 수 있는 부분은 최대한 아껴보도록 방법을 모색하세. 반드시 방법이 있을 거야.”

조금이라도 기운을 내도록 말해보지만, 이재문 대통령부터도 침통한 표정을 지우지 못했다.

오늘 희생한 이들에 대한 죄스러움과 이렇게라도 살아보려고 하는 자신에 대한 책망이 얼굴에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  *  *

경기도 양평에 위치한 양자산.

I-3 대피소.

타앙!

국군의 제식 권총인 K5 총구에서 불꽃과 함께 허연 연기가 튀어 나왔다.

“크윽.”

총탄을 맞은 50대의 중년인이 믿어지지 않는 듯, 두 눈을 부릅떴다. 그리고 상의를 더듬거리며 뿜어지는 선혈을 막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네, 네놈들이 기어코…….”

탕탕!

두 번의 총성이 더 울리고, 중년인은 끝내 바닥에 쓰러져 숨을 거뒀다.

“시신 치우고, 상황 보고할 수 있도록 해.”

“네! 중장님.”

김성무 중장 국군기무사령부 사령관이었다. 극초신성 사태가 없었다면, 가을 군 개편 때 최우선으로 좌천될 인사 중 하나였다.

대선개입 혐의와 사이버 댓글 공작 혐의로 조사가 진행되었지만, 친 정치 세력의 도움을 받아 극초신성 사태 직전까지 자리를 지킬 수 있었다.

“우리가 그리 호락호락 당할 줄 알았나?”

김성무 중장은 차게 웃으며, 입꼬리를 올렸다. 김 중장이 득의에 차 있을 때 다가오는 발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충성! 보고 드립니다. 저항세력 일망타진되었습니다. 저항 지도부 37명 중 의장 외 4명 사살되었고, 32명 구속했습니다. 또한, 가담한 병력 중 끝까지 저항한 53명은 사살되었고 나머지 병력은 무장해제 후 전원 구속했습니다. 일반 병력은 가담 정도에 따라 회유 중입니다. 이상입니다.”

“신 대령. 다 필요 없어. 지도부 놈들하고 영관급 이상은 모조리 총살시켜. 그러고 나서 선별 시작해. 어중간하게 우리 쪽으로 귀순한 놈들은 언제든 등 돌릴 수 있음이다. 가봐!”

김성무 중장의 잔인한 명령에 신동호 대령은 입술을 짓씹었다.

허나 이미 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넜고, 한배를 탄 이상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넵! 바로 조치하겠습니다. 충성!”

김성무 중장은 대피소 내 자신의 우호 세력을 이끌고, 무력으로 I-3 대피소를 장악했다.

김 중장의 총탄에 죽은 의장은 친정부 인사였고, 대부분의 지도부 인사들과 김 중장은 견원지간이나 마찬가지였다.

자연스럽게 대피소 내의 군을 장악한 김 중장에게 견제가 시작되었고, 상호 간에 의견 충돌이 잦아지더니 끝내 일이 터졌다.

김 중장은 근일내로 군 지휘관을 친정부 인사로 교체한다는 소식을 비선을 통해 전해 듣고 먼저 손을 썼던 것이다.

“다른 곳은 어찌 되고 있으려나. 청계산 I-5 대피소가 조 의원님이 의장으로 내정되었다고, 했으니 거긴 별문제 없겠구먼. 조만간 소식을 알아봐야겠어.”

이미 극초신성 사태 이전. 자신과 뜻이 맞는 인물들과 접촉을 했었고, 의견 합일을 보았다.

전 정부의 비호를 받았던 이들은 현 정부 들어 끈 떨어진 연 신세가 되어 있었다.

그러던 차에 이들에게 기회가 왔다.

현시대에 절대 가능하지 않은 일이었지만, 뜻하지 않은 사태를 기회로 삼아 쿠데타를 획책했던 것이다. 김 중장과 같은 뜻을 품은 이들이 각대피소에 흩어져 때를 기다리고 있음이었다.

*  *  *

“아저씨, 이제 더 필요한 거 있어요?”

“아니…, 필요한 건 진작 찾았지.”

새로운 취미에 눈을 뜬 성현은 아직도 배가 고픈 표정이 역력했다. 해미의 도움으로 10개의 격납고를 강제로 열었고, 그곳에 있던 모든 기체를 챙겼다.

당장에 필요하지도 그렇다고 운용이 가능하지도 않지만, 단 하나도 남겨두고 갈 이유가 없었다.

C-3 격납고를 마지막으로 더 이상 남은 격납고가 없었다.

마지막 기체를 챙기고, 창고를 열어 최종 확인을 했다.

AH-64D 아파치 롱보우 (2)

AH-64E 아파치 가디언 (4)

AH-1Z 바이퍼 (8)

공격 헬기만 무려 14대를 챙겼다.

그리고 원래 필요로 했던, 수송 헬기는 CH-47D 치누크 4대와 블랙호크로 불리는 UH-60 6대를 찾았다.

치누크 헬기는 승무원이 3명, 완전 무장한 병력 30명을 태울 수 있고 블랙호크는 조종사 2명에 최대 13명까지 수송할 수 있는 중형 헬기였다.

그리고 당장에 운용이 불가능하지만, 다다익선이라는 생각에 전투기인  A-10 선더볼트II 12대, F-16C/D 파이팅 팰콘 12대를 자신의 창고에 고이 넣어두었다.

다만, 두 기체 모두 노후 기종인 탓에 왠지 모를 아쉬움이 남았다.

“해미야. 이제 이쪽은 볼일 다 끝난 거 같다. 병기창 찾아보고 거기만 들렸다 돌아가자.”

“네-.”

성현이 먼저 해미가 뚫어 놓은 큰 구멍을 통해 밖으로 나서고, 해미가 곧바로 뒤를 따라 나왔다.

성현은 활주로로 나서다 멈칫했다.

“이것들도 아까운데…….”

생각보다 행동이 빠르다.

가져갈까 말까라는 생각과 동시에 손은 이미 C-5B 갤럭시의 동체에 가져다 대고 있었다.

“헐. 아저씨 이것도요?”

관심 없어 보이던 성현이 어지간한 여객기 크기의 수송기를 챙겨 넣자 해미가 의아한 듯 물었다.

“놔두면 어차피 고철 밖에 안 돼. 그리고 잘만 활용하면 충분히 쓸 곳은 있을 거 같아. 저기 앞에 한 대 더 챙기고 가자.”

C-5B 갤럭시 두 대를 창고에 넣은 성현은 다시 지도를 펼쳤다.

“남서 방향.”

병기창은 관제탑을 기준으로 남서쪽으로 약 200m 떨어진 곳에 있었다.

파바바밧.

성현과 해미는 대략적인 위치를 확인하고 달리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넓은 활주로를 벗어나 관제탑 부근에 다다랐다.

전력 질주가 아닌 가볍게 뛰고 있는 둘이지만, 시속 40㎞는 넘나드는 가공할 스피드로 기지를 가로지르고 있었다.

관제탑을 지나 용도를 알 수 없는 큰 건물의 코너를 돌 때였다.

비릿한 혈향과 역겨운 냄새가 확하고 풍겨왔다.

“좀비 시체다!”

코너를 돌자마자 급히 멈춰선 성현은 주변을 경계했다.

수백 구의 시체 더미가 성현과 해미 앞에 나타났다.

전투가 치열했음인지 상당히 넓은 공간에 좀비와 인간의 시체들이 한데 뒤섞여 흩어져있었고, 각종 총화기가 사방에 널려있었다.

“여기서 싸웠나 봐요. 어쩌면…….”

시멘트와 아스콘으로 포장된 길은 전투의 후유증으로 온통 뒤집어져 있으며, 곳곳에 탄환 자국들이 가득했다.

그리고 달리 말하면, 생존자들이 있었다는 반증이었다.

“대부분이 미군들이다. 모두 죽은 건가?”

사람들과 좀비 모두가 미군 특유의 디지털 문양이 들어간 군복을 입고 있었다.

헤지고 찢어져 선혈이 낭자했지만, 충분히 미군이었음을 알 수 있는 특징들이 남아있었다.

둘은 천천히 걸음을 떼어내며 살펴봤지만, 살아있는 이들은 찾을 수는 없었다.

그리고 수없이 봐온 좀비 시체와 크게 다른 점도 발견하지 못했다.

“외국인 좀비라 해서 특별히 다른 점은 없는 것 같네요.”

해미는 상당히 무섭고 징그러운 현장이지만, 살짝 미간만 찌푸린 체 덤덤한 얼굴로 일관했고, 그에 대한 감상도 내놓았다.

“그래. 내가 봐도 특이한 점은 없는 거 같다. 다른 생존자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부디 무사하길 빌어야지. 그만 가자.”

생존자가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했지만, 전투 이후 살아남은 이들이 있는지는 확신하기 어려웠다.

자신들 앞에 스스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이상 숨은 생존자를 찾을 길은 요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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