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판멸망한 세계의 게이머-30화 (30/176)

# 30

공군 창설 (1)

“해밀턴 중령, 받아 주는 건 문제가 없다. 하지만 쉽지도 않다. 먼저 당신들이 대피소에 가게 된다면 우리의 지휘 아래에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되고, 우리의 지시에 따라야 한다. 우리는 다수의 민간인을 보호하고 있다. 통제되지 않는 상황을 원치 않는다. 내 말, 이해하나?”

“하지만, 우리는 동맹으로써…….”

해밀턴 중령이 동맹임을 들먹이며 한미상호방위 조약에서 우선시 되는 지휘권을 들어 말하려 했지만 성현이 말을 잘랐다.

“해밀턴 중령. 현실을 직시 못하는 멍청한 말은 하지 않길 바란다. 한미 동맹이 지금도 유효할 거라 생각하나?”

“……그, 그렇지만.”

해밀턴 중령도 모자란 이가 아니었으나, 고정관념으로 인해 사고가 경직되어 있었다.

동맹이고 우방이지만, 미군이 한국군보다 우위에 있다는 생각 때문에 조건 없이 자신들을 받아줄 거라 생각했다.

“당신 생각이 모두의 생각과 같다면, 단 한 명도 받아줄 수 없다. 그리고 무익한 대화를 지속할 이유도 없겠지.”

성현은 단호하게 말을 하고 대화를 끝낼 뜻을 전했다.

성현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주변에 있던 미군들이 성현과 해미 주위를 포위했다.

“이건 무슨 뜻이지?”

성현이 대화 중에 잠시 올린 바이저를 내리며, 주변을 휙 둘러보며 말했다.

“모두 물러서! 죄송합니다, 대령님. 위해를 가할 뜻은 없습니다.”

해밀턴이 부하들에게 소리치며, 성현에게 급히 사과했다.

사실 성현과 해미를 억류할까도 생각했지만, 그 결과가 절대 좋지 않다고 최종 판단했다.

이대로 성현과 일행의 신변을 구속해 대피소로 안내하라고 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곳에 간다한들 장악할 병력이나 인원이 절대 부족했고, 도리어 자신들이 위험한 지경에 빠질 게 불 보듯 뻔했다.

“운 좋은 줄 알아야 할 거다.”

해밀턴 중령과 그 부하들은 방금 전 자신들이 생사의 갈림길에 섰었음을 알지 못했다.

성현은 한번 손을 쓰면 적당이란 없었다.

먼저 적대하는 순간 철저하게 배제하려 했다.

“다시 한 번 사과드립니다. 대령님. 무슨 뜻인지는 충분히 알겠습니다.”

“뭐, 사과는 받아주지 하지만! 한 번 더 이런 일이 있으면 각오하는 게 좋을 거야.”

성현의 경고에 해밀턴 중령은 무슨 자신감으로 저런 말을 하는지 알지 못했지만, 말을 듣는 순간 근원을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침습함을 느낄 수 있었다.

“후-우. 알겠습니다.”

“어떻게… 결정은 했나?

“이 문제는 모두의 의견을 들어야 할 듯합니다. 죄송하지만, 잠시 시간을 주시겠습니까?”

해밀턴 중령이 당장은 자신이 모두를 대변해 협의 중이지만, 혼자 독단으로 결정할 사안은 아니었다.

“좋아, 시간을 주지. 그리고 한 가지 더. 부당한 대우나 불합리한 지시는 없을 거다. 당신들의 기본권은 대피소의 다른 이들과 같은 수준으로 보장해 줄 수 있다. 단, 이유 없는 지시 불이행이나 개별 행동은 절대 용납되지 않는다는 점 확실히 해서 결정해 주기 바란다.”

성현은 사실 이들의 합류에 상당히 긍정적이었다.

대부분이 고급인력이다.

전투기와 헬기의 파일럿만 110여 명에, 각 기체를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이들이 모두 있었다.

장기적으로 보면 내구도 회복스크롤도 한정적이었고, 이런 전문 인력이 반드시 필요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강제적으로 데려가거나 불평불만 분자를 데려갈 생각은 없었다.

자유의사로 결정하되 그 결정에는 의무와 책임이 따름을 확실히 했다.

잠시 후.

“대령님. 모두가 따르겠다는 의견입니다. 저희를 대피소에 받아주십시오. 하지만, 이것 한 가지만 약속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무리한 요구만 아니라면, 내 선에서 가능한 일은 들어주도록 하지.”

“만일 본국과 연결되어 저희가 떠나려 할 때는 보내주신다는 약속을 해 주십시오.”

이들의 요구는 일견 타당한 부분이었다.

문제는…….

“어려운 요구는 아니다. 가능하다. 하지만 이 문제에는 명확히 해둘 필요가 있다. 당신들의 안전은 어디까지나 대피소 안에서만 보장하는 것이고, 당신들이 본국으로 돌아갈 때는 나의 보호를 받을 수 없다. 자력으로든, 본국의 지원을 받아서 가야 한다는 점이다.”

해밀턴 중령은 조금 기대어 보려는 마음이 없잖아 있었다.

본국과 연락되든 그도 아니면 최소한의 소식을 접하게 된다면, 성현과 그가 있는 대피소의 도움을 받아 떠날 생각이었다.

하지만 성현의 명확한 선 긋기에 작게나마 이용해보려던 생각은 깨끗이 털어 버렸다.

*  *  *

I-5 대피소 인근 경부고속도로 하행선은 도로정비가 한창이었다.

쿠르르.

25톤 크레인에 장착된 V8 엔진이 거친 배기음을 토해내며, 고속도로를 가득 메우고 있던 차량을 갓길에 정리 중이었다.

“어이. 종만이. 저기 2톤 트럭부터 옮겨야 중심이 맞잖아. 균형 좀 보고 하라고 몇 번 말해. 두 번 일할래!”

“아따, 반장님이 직접 해보쇼. 이놈부터 치워야 저거 꺼낼 거 아뇨.”

작업반장으로 보이는 이가 돌아다니며, 뭐가 마음에 안 드는지 연신 열을 올리고 있었다.

이에 못마땅한 크레인 기사가 툴툴거려보지만, 밉보여 좋을 건 없던 터라 구슬땀을 닦아내고는 계속해서 작업에 몰두했다.

“중령님! 대령님 무전입니다.”

“기다려!”

최동원 중령은 인근 지역 위력정찰을 마치고 도로정비 중인 곳에 대기하고 있었다.

현장에도 경비 인력이 상주 중이었지만, 성현이 돌아오면 함께 복귀하기 위해서 기다리고 있던 참 이었다.

마침 성현의 무전이 왔고, 그만큼 가까이 왔음을 알았다.

-아아, 들려?

“단결! 대령님. 최 중령입니다. 바로 오시지 않고, 혹 전달하셔야 할 내용이 있으십니까?”

-그래, 좀 급하다. 곧 헬기 10대가 대피소 공터에 착륙예정이니까. 애들 안 놀라 게 미리 연락해두고, 거주지 경내로 370명 좀 넘게 데려갈 차량 수배도 좀 해 놔라. 지금 1차로 195명 데려가는 중이다.

“네에?”

아닌 밤중에 홍두깨도 아니고, 뜬금없는 성현의 무전에 저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이었다.

-동원아. 자세한 이야기는 만나서 하도록 하자. 일단 내가 데려가는 사람들은 미군이다. 관리과에 문의해서 영어 가능한 사람 네댓 명 불러서 이 사람들 인적사항 체크하고 쉴 곳부터 마련해줘라. 아직 남은 사람들 있어서 난 한 번 더 다녀와야 한다.

“네, 대령님. 알겠습니다. 그럼 대피소에서 뵙겠습니다. 단결!”

추가 설명이 필요한 일이었지만, 군은 상명하복이 우선된다.

불합리한 명령도 아닌 다음에야 급할 건 없다 성현이 돌아오면 자초지종을 들을 수 있을 것이었다.

“지휘본부. 최 중령이다.”

-단결! 여기는 지휘본부 이승우 소위입니다. 말씀하십시오.

“관리과 호출해서 영어 회화 가능자 다섯 명 대피소 입구에 대기시키고, 거주지까지 이동할 차량도 확보해라 인원은 370명 정도로 예상된다. 이상.

-확인했습니다. 영어 회화 가능자 관리과 직원 다섯 명, 370명 거주지 이송할 차량 지급으로 수배하겠습니다. 이상.

“그래, 수고.”

지휘본부와 통신을 끝낸 최 중령은 주파수를 맞추고, 터널 입구 경비대를 호출했다.

“터널 경비대. 최 중령이다. 들리나?”

-단결! 경비대 3조 중위 정상혁 말씀하십시오.

“아-. 혁이 네가 오늘 근무구나. 잠시 후 공터에 헬기 착륙할 거다. 당황하지 말고, 대령님이 미군 애들 데려오시는 거니 잘 받아놔. 지휘본부에서 차량하고 데려갈 사람 곧 도착할 거다.”

-미군이요?

“그래, 나도 자세한 건 몰라. 대령님 오시면 여쭤봐야지. 일단 그리 알고 애들 단속해라. 나도 지금 그리로 출발한다. 이상.”

-네. 중령님 알겠습니다. 잠시 후 뵙겠습니다. 이상. 단결!

*  *  *

투타타타타.

치누크 헬기의 고출력의 터보 샤프트 엔진 2기에서 뿜어지는 로터음이 I-5 대피소 입구 전역에 울려 퍼졌다.

공중에 상당수의 헬기가 호버링 [hovering]하며, 부여된 순번에 따라 착륙 차례를 기다렸다.

도합 4대의 치누크 헬기가 안전하게 착륙하자 뒤를 이어 블랙호크가 빈자리를 찾아 질서 있게 하강했다.

1차 수송을 마치고 떠난 헬기들이 이륙한 지 30분도 채 되지 않아 왕복을 완료했고, 조종사 포함 도합 374명의 미 국적을 가진 군인과 군속들을 이송되어왔다.

후우웅.

대피소 입구의 공터는 흩날리는 흙먼지로 눈을 뜨고 있기 힘들 정도였다.

“자, 빨리빨리 움직여.”

고글을 쓴 전투 부대원들이 얼굴을 할퀴듯 스치는 바람을 뚫고 헬기에 접근해 이송된 이들을 대피소 터널로 안내하기 시작했다.

서서히 로터의 회전을 줄이던 헬기들이 완전히 정지하자 조종사와 승무원까지 모두 지상에 발을 디뎠다.

“단결! 수고하셨습니다. 대령님.”

부대원들을 인솔해 이송을 돕던 최동원 중령이 성현에게 다가왔다.

“그래. 동원이 너도 수고가 많다.”

성현은 가볍게 최 중령의 어깨를 두드려주고, 공터를 가득 메우고 있는 헬기들을 바라봤다.

오산 공군기지에서 얻은 수송 헬기들을 내구도 회복스크롤로 고치고, 이를 활용해 단시간에 이송을 마쳤다.

그사이 작은 소란과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당연한 반응들이었다.

성현이 허공에서 헬기들을 꺼내는 모습을 이송되어온 이들 모두가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다.

또한 번쩍이는 종이로 헬기들을 단숨에 새것처럼 수리해 내는 마법과 같은 이적을 생생히 지켜보았다.

이들은 성현이 자신들을 구원하기 위해 온 신의 대리인으로 생각했다. 신의 사도, 신의 사자로 부르며 성호를 긋는 이들도 더러 있었다.

그런 경탄 가득한 소리와 경외에 찬 시선을 한 몸에 받은 성현은 이들을 이송해 왔다.

“해밀턴, 이리와 인사해라. 여기는 대피소 전투 부대 부대장 최동원 중령이다. 동원아, 이 사람은 해밀턴 중령이다 서로 인사해.”

빠릿빠릿한 자세로 해밀턴 중령이 다가왔다.

그의 태도가 앞서와 달리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빈 공간에서 헬기를 꺼내고, 헬기가 착륙하기도 전에 수십 미터 상공에서 뛰어내리는 초인적인 능력을 보았다.

원래 미국은 히어로에 열광하는 나라이고, 해밀턴 중령은 그중에서도 도가 지나칠 정도로 히어로 매니아였다.

그런 해밀턴 중령은 성현에게 진심으로 신복해있었다.

“환영합니다. 최동원 중령입니다.”

“반갑습니다. 저는 해밀턴 중령입니다.”

성현의 소개로 두 사람은 악수를 하고 인사를 나누었다.

최동원 중령은 장기간 해외 파병을 해서인지 외국어에 친숙했고, 미군과 합동작전도 많이 한 터라 해밀턴 중령과 대화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

성현이 보기에도 상당히 능숙해서 다행이다 싶었다.

“두 사람 다 할 말이 많겠지, 안으로 들어가서 이야기 나누고 있어. 나는 할 일이 있어 한 번 더 다녀와야 할 듯싶다.”

“대령님. 무슨 볼일이?”

“아-. 사실 이 사람들 이송하느라 못 챙긴 게 많아. 나 기다리지 말고 이야기들 하고 있어 저녁 전에는 돌아오마.”

“그랬군요. 알겠습니다. 조심해서 다녀오십시오. 단결!”

성현은 최 중령과 대화를 마치고, 뒤돌아 이송을 마친 헬기에 다가갔다. 그리고 블랙호크 한 대만 남기고 모두 창고에 수납했다.

“해미야 가자-.”

해미가 귀여운 백인 꼬마 아가씨와 놀다. 성현의 부름에 급히 달려왔다.

“와! 아저씨 봤어요? 이름은 줄리라는 데. 저 애 완전 인형이에요. 인형. 나도 영어 좀 열심히 배울걸.”

성현이 봐도 무척 귀여운 꼬마 숙녀였다. 4~5살 정도로 보이는 금발의 여자아이도 해미가 싫지는 않은지 처음 봐서부터 손을 잡고, 쉬이 떨어지지 않았었다.

마음은 통하지만 대화에 어려움을 겪은 듯 해미가 아쉬워했다.

“그래. 너만큼 귀엽긴 하다.”

성현이 어느새 헬멧을 벗은 해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난 애 아니거든요!”

해미가 뭐가 맘에 안 드는지 새초롬한 표정을 지었지만, 그마저도 귀여운 성현은 해미의 손을 잡고 블랙호크에 탑승했다.

“자, 출발해.”

조종사가 손으로 오케이 사인을 보내고, 엔진 출력을 높였다. 로터가 급가속하며 서서히 공중으로 기체를 띄웠다.

*  *  *

해질녘이 다되어서야 대피소에 돌아온 성현은 일과를 끝낸 이들과 그렇지 않은 이들 모두를 소집했다.

군에서는 전투 부대 팀장급 이상이 참석했고, 새로이 정비된 경비대 네 개 중대 중대장들도 자리했다. 또 의장을 비롯한 관리본부의 부장 전원이 소집되었다.

“의장님. 오늘 회의는 제가 주관하겠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공식 석상에서 안영식 의장을 배려한 성현의 발언이었다.

“별말씀을요.”

자신을 인정하고 있다는 표현임을 안영식 의장도 모르지 않았던 터라 고마움에 고개를 살짝 숙여 성현의 말을 받았다.

“오늘 회의를 소집한 이유는 금일 대피소에 이송된 미군과 그 군속에 대한 처우에 대한 부분과 차후 외부활동에 대한 계획을 알려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사실 오늘 회의는 상호 간에 의견을 조율하고 토의하는 형식이 아닌, 성현의 향후 대피소의 운영에 대한 포괄적인 계획을 듣는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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