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
공군 창설 (3)
연구소를 활성화하고 이틀이 지난 날.
그리고 성현이 대피소에 오고 처음으로 맞이한 일요일이었다.
“아빠, 나 저기까지 달려간닷!”
“어허, 조심해. 넘어진다.”
왁자지껄한 대피소의 공터.
뜨거운 햇살과 무더운 공기로 연신 땀을 훔치지만, 모두의 표정은 밝고 미소가 가득했다.
일요일 오전. 대피소의 입구 공터가 개방되고, 원하는 거주민들 모두가 지상에 올라와있었다.
신청한 거주민이 대략 1만 5천명이 넘었지만, 이를 충분히 수용할 만큼 넓은 공터여서 그다지 비좁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사령관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큰 결정을 해주셨습니다.”
“별말씀을요. 저도 미처 이런 부분까지 생각지 못했는데, 의장님 덕분입니다.”
이틀 전 연구소를 활성화 하고 돌아온 저녁.
관사로 찾아온 의장이 주민들을 위해 한 가지 건의를 했다.
안영식 의장은 지상의 공터를 휴일에 한해 일정시간 동안 거주민들에게 개방하면 좋겠다는 의견을 성현에게 전했다.
주민들에게 삶의 활력을 주고자하는 의도였고, 성현도 좋은 생각이라며 흔쾌히 들어주었다.
의장과 성현은 너른 공터의 바깥쪽에 돗자리를 펴고 앉아 주민들을 바라보며 서로에게 덕담을 나누고 있었다.
“날도 더운데, 시원한 맥주 한잔 하시겠습니까?”
“시원한 맥주라면 거절할 수가 없죠. 허허허.”
성현은 곧바로 창고에 넣어둔 차게 얼린 캔 맥주를 몇 개 꺼냈다. 캔 맥주를 개봉하자 ‘치익’ 하며 탄산과 함께 풍미 가득한 거품이 새어나왔다.
시원한 맥주를 한모금한 안영식 의장이 성현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사령관님의 그 신비한 능력은 볼 때마다 놀라지 않을 수 없군요.”
성현이 허공에서 캔 음료를 꺼내는 모습을 보고 안 의장이 경탄해 하며 말했다. 몇 번을 보고 또 보아도 매번 신기하기만한 능력이었다.
성현은 그런 의장을 보고 옅게 미소만 지었다.
“아저씨.”
“응?”
성현과 의장이 맥주를 마시며 담소중일 때, 해미가 시큰둥한 표정으로 다가와 성현을 불렀다.
“아니, 줄리가 저하고 안 놀고 애들하고만 놀려고 하잖아요.”
성현은 저만치 떨어진 곳에서 또래의 아이들과 소꿉놀이가 한참인 줄리를 한번 보고, 해미를 돌아봤다.
“그렇게 붙어 있고 또?”
“그건 그거고요! 쳇!”
해미가 삐친 듯 홱 하고 돌아앉으며 구시렁댔다.
지금 성현의 관사에는 식구가 한 명 더 늘었다. 줄리라는 다섯 살 여자아이가 성현과 해미만 있던 관사에 함께 살고 있었다.
이틀 전 성현이 관사에 돌아오고 한참이 지나서야 들어온 해미가 펑펑 울면서 줄리하고 함께 살게 해달라고 말했다.
이야길 들어보니 줄리라는 아이는 얼마 전 고아가 되었다고 한다.
오산 공군기지 방공호에 아버지와 함께 피신했지만, 안타깝게도 그 아버지는 정찰 임무를 나가서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고 했다.
그런 줄도 모르고 줄리를 만나러 나섰다 못 찾고, 수소문해보니 보육원에 있는 걸 뒤늦게 알게 된 해미는 여태 그곳에 같이 있다 왔다고 했다.
줄리가 눈에 밟혀 오도 가도 못하다 밤이 깊어서야 줄리가 잠든걸 보고 겨우 돌아온 것이다.
성현은 그런 해미의 마음이 갸륵하고 예쁜 탓에 그길로 보육원을 찾아가 줄리를 데리고 왔다.
물론 줄리도 좋아했음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성현도 줄리라는 아이가 마음에 들었다. 떼쓰지도 않고, 또래답지 않게 차분하고 예의가 발랐다.
그리고 가장 큰 이유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귀여웠다.
내 자식은 아니지만 이런 아이가 내 자식이었으면 할 정도로 성현의 가슴에 부정(父情)을 일깨워 줬다.
“줄리.”
“파파-.”
성현의 부름에 줄리가 크게 대답했다.
흙 묻은 손을 ‘탁탁’털고, 조막만한 발로 뛰어온다.
줄리는 성현을 파파라고 불렀다.
그리 하라고 시킨 것도 아닌데 성현의 관사로 오고 난 다음날부터 그리 불러 성현을 놀라게 했다. 어쩌면 충격을 최소화 하려는 자기방어기제가 작용한건지도 몰랐다.
성현은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했고, 줄리의 아픈 상처를 들추어 내지 않도록 해미와 노력 중이었다.
달려온 줄리가 성현의 가슴에 안겨들었다. 그리고 꺼칠한 성현의 턱수염을 인형 같은 손으로 만지며, 신기한 눈으로 바라본다.
“어이쿠 이뻐라. 우리 줄리 친구들이랑 놀고 있었어?”
“응! 파파 애들이 나랑 놀재. 나 다시 놀러 가도 돼?”
“그럼. 잠깐만, 파파가 시원한 음료수 줄 테니 가져가서 친구들이랑 나눠 마실래?”
“응!”
“흥! 줄리 나뻐.”
성현이 줄리와 다정히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던 해미가 약이 올라 말했다.
“파파, 마마 왜 그래?”
줄리가 해미를 가리키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아-, 마마가 줄리랑 놀고 싶어서 그런가봐 줄리가 마마 달래줄래?”
“응, 내가 친구들하고 같이 달래 줄게.”
줄리가 성현의 품에서 내려와 해미의 곁에 갔다.
그리고 앞에 쪼그려 앉더니 양손에 턱을 받치고 올려다봤다.
그 모습이 어찌나 귀여운지 성현이 왜 딸 바보, 딸 바보 하는지 알 것 같았다.
“에구구 내가졌다. 넌 왜 이리 예쁜 거니.”
해미도 참지 못하고 줄리를 안아 들고 볼을 비빈다. 그러고선 성현이 챙겨준 음료를 바리바리 싸들고 줄리와 놀던 아이들이 있는 곳으로 갔다.
그곳에서 해미가 각종 과자며 음료를 꺼내 줄리와 잘 놀아줘서 고맙다고, 앞으로도 친하게 지내면 맛있는 거 많이 준다고 아이들의 환심을 사고 있었다.
아이들의 환호성이 크게 들리고, 모두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때.
흐뭇한 표정으로 지켜보던 성현이 갑자기 벌떡 일어서서 얼굴을 굳혔다.
예민한 성현의 감각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분명 소음기를 장착한 총성이었다.
띠릭.
“박 대령이다. 상황 보고해.”
-단결! 외각 1차수비대 11조 이준수 소위입니다. 좀비들의 움직임이 다소 활발합니다. 방금 4마리 처치했고, 200미터 안에 열화상이 감지되는 좀비가 모두 8마리입니다. 100m 내외로 접근 시 제거중입니다. 이상.
경비대는 총 세 개의 방어라인을 구축하고 있었고, 1차 2차 3차에 이르는 다중 경계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수풀이 우거진 산의 중턱이라 음지에는 몸을 숨긴 좀비들이 상당했다.
매일같이 정찰을 겸한 좀비 소탕이 이루어지지만, 하루만 지나도 또 다른 좀비들이 자리를 메우는 실정이었다.
‘이상한데.’
좀비들은 해가 중천일 때는 아무리 그늘에 있어도 움직임을 최소화했다.
또한, 일정거리 안으로 다가가지 않으면 반응 하지 않는다.
하지만, 경비조의 보고는 활발 하다였다.
이건 지속적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말과 같았다. 심상치 않은 움직임에 성현은 어떤 변화가 있음을 짐작했다.
“전 경비조에 알린다. 단 한 마리도 접근하지 못하게 만전을 기해라. 지금부터 상황은 실시간 보고한다. 이상.”
성현의 명령이 떨어지자 동시다발적으로 복명복창하는 무전이 터졌다.
그 후에도 몇 차례에 걸쳐 좀비를 사살했다는 무전과 이상행동을 보이는 좀비들로 인해 조금 소란했지만, 방어 라인을 헤집고 들어오는 사고는 발생하지 않았다.
오후 4시가 지나자 거주민들에게 대피소로 이동할 시간임을 알리는 방송이 공터에 울려 퍼졌다.
-주민 여러분 공터 개방 시간이 다되었습니다. 아쉽더라도 안내방송에 따라 모두 대피소 안으로 이동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방송을 들은 거주민들은 하나 둘 주변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터널 입구 부근에 있던 거주민부터 이동을 시작했고, 모두가 서두르지 않아 안전하게 첫 외출을 마무리 했다.
평소보다 이른 시간에 터널의 입구 봉쇄를 명령한 성현은 늦었지만, 오늘 고생한 대원들에게 휴식하라 명령했다.
그리고 군 지휘관 소수만 대동해 연구소에서 돌아온 정우현 소장을 찾았다.
오늘 낮에 있었던 좀비들의 이상행동에 미심적은 부분이 많았고, 그나마 좀비 연구를 시작한 정우현 소장이 아는바가 있는지 조언을 구했다.
연구소 활성화와 더불어 정 소장의 요청으로 살아있는 좀비들을 실험재료로 잡아다줬고, 지금은 좀비 연구가 한참이었다.
처음 연구원들은 두려워했지만, 팔다리 없이 강철 안면 가리개를 한 좀비들에게 빠르게 적응하고 있었다.
“안 그래도 사령관께 내일은 보고를 올릴 생각이었습니다.”
“특이사항이 있습니까?”
“저희에게 인도된 좀비에게 일종의 면역 반응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좀 더 신중을 기하다 보니 보고가 늦었습니다.”
“면역 반응이라니요?”
예상 못한 답변에 성현은 깜짝 놀랐다.
“지금 좀비들에게 행해지는 실험중 하나가 자외선 반응 테스트가 있습니다. 자외선에 10분간 노출시키고, 10분간 회복기를 주는 식으로 실험을 진행 중입니다.”
“네, 본격적으로 실험에 들어갔다는 보고는 들었습니다.”
“그 결과, 20회에 걸친 테스트를 마친 좀비는 최고 1시간 36분여 만에 자연 발화하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현재 일반 좀비는 50여분 정도임을 감안하면, 2배에 가까운 시간을 버텨냈다고 보시면 됩니다.”
“흐음…. 처음 좀비들에게 이와 같은 실험을 한 적이 있는데 그때는 30분 정도였습니다.”
성현은 대피소에 들리기 전에 자신이 행했던 실험을 떠올리며 말했다.
“좀 더 연구를 해봐야 확실해 지겠지만, 좀비들은 자외선에 일종의 면역력이 생기는 것으로 판단됩니다.”
정우현 소장의 말에 성현은 물론, 함께 온 군 수뇌부들은 좋지 못한 소식에 자못 심각한 얼굴을 했다.
머지않은 시일 내에 외부에서 행해지는 모든 작업에 난항이 예상되는 바였다.
“……좋은 소식은 아니군요.”
“저도 이런 소식을 전하게 되어 유감입니다.”
“계속 고생해 주십시오. 아참, 그…. 2차 감염 가능성에 대한 결과는 나왔습니까?”
성현은 연구를 시작한지 며칠 되지 않아 재촉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이왕 만나게 되었을 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우선 결과부터 말씀 드리자면, 현재까지는 2감염은 없다는 게 저와 연구진의 소견입니다. 동물 실험과 좀비들과 직간접적으로 접촉한 사람들의 조직과 혈액을 채취해 현대 과학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검사를 했지만, 감염으로 인한 이상 징후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휴우-, 그나마 반가운 소식이군요. 감사합니다.”
성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정우현 소장의 말을 듣고 완전히 안심하기는 이르지만, 매우 긍정적인 말임이 틀림이 없었다.
“정 소장님, 당분간은 귀찮으시더라도 일별로 연구 결과를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알겠습니다. 내일부터 서면보고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성현은 소장의 관사를 빠져나와 지휘관들을 돌려보내고, 자신의 관사로 향했다.
두식과 용칠이 차량을 몰고 왔지만, 여러모로 생각이 복잡한 성현은 좀 걷겠다고 전하고 둘도 쉬도록 돌려보냈다.
다분히 걸음은 무거워 졌다.
좀비의 2차 감염 우려는 많이 가셨지만, 자외선에 대한 면역이 생긴다는 건 생각지도 못했다.
대책이 필요했다.
관사에 성현이 도착하자 어린이 애니메이션을 보고 있던 줄리와 저녁을 준비 중이던 해미가 성현을 반겼다.
찌푸린 미간이 펴지고, 잠시나마 시름을 덜어내는 순간이었다.
활기찬 줄리의 웃음소리. 해미의 덜렁거리며 분주한 모습이 성현에게는 작은 행복을 선사했다.
* * *
청계산 정북 방향 5㎞.
양재IC 인근 대형마트에 성현이 모습을 드러냈다.
상공에는 저공으로 호버링 중인 3대의 치누크 헬기가 떠있었고, 성현은 치누크 헬기가 착륙할 공간을 확보하기위해 단신으로 강하를 시작했다.
70m에 이르는 헬기 레펠을 타고 내려오다 모자란 레펠의 길이로 인해 지상 30m 부근에서 그대로 몸을 던졌다.
콰쾅!
성현이 착지하며 디딘 승용차의 천장이 크게 내려앉으며 사면의 창이 폭발하듯 터져나갔다.
“휘유-.”
건물 10층 보다 높은 곳에서 자유 낙하해 떨어져 내렸지만, 인간의 범주를 넘어선 육체의 힘과 라이트 아머에 의해 상쇄된 낙하 데미지는 별다른 충격을 주지 않았다.
잠시 주변을 살펴보고 빠르게 주변 차량들을 창고에 넣으며, 공간을 확보하기위해 움직였다.
대형 트레일러 차량이 다수인 물류이동 창고의 주차장이 삽시간에 치워졌고, 치누크 헬기가 충분히 이착륙할 공간을 만들어냈다.
띠릭.
“동시 착륙은 힘들다. 1호기부터 차례로 착륙하고 순서를 기다리도록 해.”
-라져. 댓!
여러 대의 헬기가 동시 착륙할 공간은 되지 못했고 한 대씩 차례로 내려와 성현이 헬기를 수납해야만 다음 헬기가 착륙할 수 있었다.
마지막 헬기까지 지상에 착륙하고, 로터가 완전히 정지하자 조종사들도 모두 내려왔다.
“조종사들은 모두 장갑차에 탑승해라”
헬기 조종사들은 미리 꺼내어 놓은 바라쿠다 장갑차량에 탑승해 혹시 모를 전투에 휩쓸리지 않도록 조치했다.
“전투 부대원들은 건물 진입해서 소탕작업 시작한다.”
모든 준비가 완료되자 성현은 전투 부대원들의 진입을 명령했다.
이미 채비를 끝낸 2개 팀의 전투 부대원들이 신속히 움직여 마트로 돌입했다.
“경비대 3개조는 외각 경계를 계속하고 범위를 좀 더 넓힌다. 나머지 조는 전투 부대의 진압완료 신호에 따라 작업을 시작한다.”
전투 병력은 도합 104명.
직속 전투부대원 2개 팀 24명과 경비대 병력 8개조 80명으로 구성되어있었다.
타타타탕.
주차장 외각에서 경계 범위를 넓히던 대원들의 총구에서 불꽃이 튀었다.
녹음이 짙은 가로수 사이로 산발적인 좀비들의 움직임이 포착되었고, 첫 조우와 동시에 총성이 일었다.
따다다당.
건물 내부에서도 전투가 한참인지 10여분동안 수십 차례의 총성과 좀비들의 괴성이 난무했다.
치직.
-대령님! 물류창고 진압 완료했습니다.
“알겠다.”
무전을 받은 성현은 짧은 대답을 마치고 건물 진입로 앞에 40피트짜리 대형 컨테이너 다수를 꺼내 놓았다.
“외각 경계조를 제외한 모든 대원들 작업 시작한다.”
성현은 지시를 내림과 동시에 캐릭터 창고를 열고 대원들이 쓸 카트와 대차들을 쏟아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