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판멸망한 세계의 게이머-33화 (33/176)

# 33

공군 창설 (4)

후두두두, 팅팅!

배출구에서 방출된 황동 빛 탄피들이 쏟아지고 바닥에 떨어져 사방으로 튄다.

“유탄!”

5팀 팀장인 김영기 중위의 외침에 두 명의 대원이 복창하며, K201 유탄 발사기의 방아쇠를 당겼다. 특유의 발사음을 내며 사출된 탄환이 전방의 좀비들을 휩쓸었다.

꽈광!

몸통에서 떨어져 나간 살점들이 비산하고 모락모락 달구어진 핏덩이들이 벽면에 타고 흘러 내렸다.

달려오던 좀비들은 그 형태조차 온전한 놈을 찾기 어려웠다.

“산개해서 경계한다.”

물류 창고와 이어진 마트 복도의 좀비들을 정리한 전투 부대 5팀 대원들은 4인 1조로 나뉘어져 산개해 자리를 잡았다.

“막내야!”

“소위 이승우!”

5팀의 막내 이승우 소위가 화들짝 놀라 대답을 하고, 팀장인 김영기 중위를 바라봤다.

“자식아 주머니 터지겠다.”

“헤헤, 보셨습니까?”

능글맞은 얼굴로 대꾸하는 이승우 소위였다.

일반 거주민에 비해 보급 사정이 좋은 전투 부대원이지만, 항상 부족한 게 많았다.

특히 기호식품의 경우는 보급 자체가 없던 상태라 잠시 여유가 생기자 이것저것 챙기기 바빴다.

“적당히 해 인마. 가져가는 건 자유다만, 그렇다고 경계 늦추지 마라. 무슨 말인지 알지?”

“넵! 팀장님.”

김영기 중위는 팀원들에게 그리 빡빡하게 굴지는 않았다. 목숨을 걸고 임무 수행중인데 이 정도의 전리품은 가질 자격이 된다고 생각했다.

-영기야 너 네 팀도 퇴출 시작해라.

“넵, 대령님 알겠습니다.”

1시간 가까이 대형 마트의 창고에 적재된 물자들을 경비대 5개조 50명이 컨테이너로 옮겼고, 그 작업이 완료되었음을 알리는 성현의 무전이었다.

“후방 경계 하며 퇴출 시작한다.”

김영기 중위는 무전으로 팀원들에게 명령을 하달하고, 제일 외각의 병력들에게 수신호를 보냈다.

외각의 대원부터 차례로 이동을 시작했고, 그 다음 대원의 어깨를 두드렸다.

엄호하는 대원의 어깨를 두드리는 행위는 다음 순번임을 알리는 일종의 신호였다.

* * *

투타타타.

두 곳의 대형 마트와 하나의 물류 창고를 탈탈 털고 복귀하는 헬기 안은, 대원들 간 물물교환 때문에 시끌벅적했다.

성현도 이를 두고 별 말을 하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좀 더 챙겨주지 못해 안타까울 따름이지 본인들이 필요해 직접 챙겨온 물건을 두고 야박하게 굴지는 않았다.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아야 하는데…….’

작전을 마치고 홀가분한 대원들과 달리 성현은 하루가 달리 고민이 깊어지고 있었다.

오늘만 해도 40피트짜리 컨테이너 20개 분량의 식료품과 물자들을 구했지만, 어찌되었든 한시적인 효과가 있을 뿐이었다.

생산이 없는 물자 소비는 끝이 있기 마련이다.

성현이 생각에 몰두한 사이, 어느덧 헬기는 대피소 상공에 도달했다.

“아저씨-, 고생 하셨어요.”

최근 들어 줄리를 보느라 성현과 외부 작전에는 함께 하지 못한 해미가 터널 입구로 마중을 나와 성현을 반겼다.

“아저씨, 무슨 고민 있어요?”

평소와 달리 안색이 그리 좋지 못한 성현의 신색을 살피며 해미가 물었다.

성현에 한해서만큼은 누구보다 눈치가 빠른 해미였다.

“흐음, 너도 알다시피 당장에 우리가 물자를 조달하고는 있지만 이건 한정적인 것들이야. 언젠가는 우리가 물건들을 직접 만들어야만 할 때가 올 테고, 곡식들을 키워 농사도 지어야 해. 문제는 알지만 해답은 찾기가 힘드네.”

성현은 하소연 하듯 해미에게 근심들을 털어놓았다.

성현의 지시로 지휘부 내부에서 대안을 찾고 있지만, 내놓은 방법들은 하나같이 현실에 맞지 않았고, 뚜렷한 방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었다.

“어찌되었든 안전이 확보된 지상의 넓은 부지가 반드시 필요해. 한데 문제는 그럴 땅이 있어도 이를 유지할 병력이 있느냐 인데…. 이걸 모두 해소할 방법이 없다.”

앞서 연구소처럼 대형 장벽을 세우고 일정한 지역을 좀비들의 침입을 막는 방법도 생각했다.

하지만 작게는 수천 평에서 많게는 수십, 수백만 평에 이르는 공간을 그리 만드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만한 공간을 에워쌀 컨테이너도 부족하지만, 고작 500명 정도뿐인 전투 인력으로 행정 구역상의 작은 읍면동조차 제대로 방비하기 힘든 일이었다.

“에구구, 그러네요. 당장 좀비들을 줄여도 또 나타나서 채워지니까요. 작은 섬 같으면 한번 잡으면 다시 들어올 구멍도 없을 텐데.”

“그래 섬 같으면… 섬? 섬!”

성현은 해미의 말을 듣다 번뜩이는 생각에 눈을 크게 떴다.

“해, 해미야. 넌 정말!”

몇 차례 해미를 통해 깨달음을 얻었던 성현은 또 한 번 자신을 개안시켜준 해미를 다시 바라봤다.

“해미야, 넌 신이 내게 준 가장 큰 선물일거다. 고맙다.”

“에이, 아저씨야 말로 저한테 그런 사람이에요. 제 생명의 은인이기도 하구요.”

해미는 성현의 칭찬에 부끄러운지 몸 둘 바를 몰라 몸을 배배꼬았다.

그날 저녁.

거주지 내 중앙 지휘본부 대회의실.

“괜찮은 방법 같습니다. 현재 대피소 인근을 개발하고 방비하는 데는 한계가 있지만, 섬이라면 한번 해볼 만할 거 같습니다. 제대로 소탕한다면 안전은 두고두고 보장되지 않겠습니까.”

“맞습니다. 고립되었다고 하지만 이곳 대피소 보다 안정적인 생활이 가능할겁니다. 어느 정도 면적을 가진 섬이냐가 문제겠지만, 무엇보다 좀비가 없는 지상에서라면 할 수 있는 일이 무궁무진할겁니다.”

성현은 우선 군 수뇌부만 불러들여 회의를 하고 있었다.

최동원 중령을 비롯한 전투 부대 팀장 다섯 명, 경비중대 중대장 네 명, 그리고 새로이 발족한 공군의 해밀턴 중령이 자리했다.

그리고 두식과 용칠은 실과 바늘처럼 성현의 지근에서 보필 중이었다.

“대령님, 혹시 염두에 두신 섬은 있으십니까?”

최동원 중령이 성현에게 생각을 묻자 장내의 시선이 모두 모여들었다.

“여러 곳을 생각 중이지만, 첫 번째로 생각한 곳은 제주도다.”

웅성웅성.

성현이 제주도라고 이야기 하자 장내는 어수선해졌고, 걱정스런 눈으로 최 중령이 다시 물었다.

“흐음, 대령님 혹시 제주도에 있는 대피소가 건재 하다면 어쩌실 생각이십니까?”

성현도 알고 있었다.

제주도 V-1대피소에는 대통령과 그 외 주요부처 장차관등 정부의 수뇌부들이 있고, 전국에서 가장 많은 수의 군인과 정예 부대가 대피해 있음을 알고 있었다.

이들과 필연적으로 부딪힐 수밖에 없는 실정이었다.

이미 정부에서 임명된 의장을 비롯한 지휘부를 일소 한 상태였고, 그들이 보기에는 I-5 청계산 대피소의 현 지휘부는 쿠데타세력 또는 반정부 세력으로 규정될 것이었다.

상호간에 대화로 풀 수 있는 선을 넘어서 있었다.

만에 하나 적대적인 상황이 발생한다면, 성현과 해미가 있다하지만 부대 간 전투에서는 결코 극복하지 못할 만큼의 격차가 있었다.

“사태 발생 이후 보름이 지났다. 여기서 의문이 든다. 만약 V-1 대피소가 건재하다면 가장 먼저 각 지역의 대피소와 연계는 못하더라도 상황파악을 위해서라도 뭐라도 했을 거라는 거지.”

자신들은 벌인 일이 있어 외부와 연락을 꺼리지만, V-1 대피소는 반드시라고 할 만큼 다른 대피소의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노력을 해야 했다.

“V-1대피소에서 헬기나 비행 수단을 이용하지 못한다 해도, 배 한 두 척 수리해서 해상을 통해 한강을 이용한다는 생각을 못했을까? 이곳까지 오는 게 과연 힘든 일일까?”

언제부터인지 성현이 의문을 가지고 있던 생각이었다.

전자기기가 아닌 엔진 자체가 고장 난 경우는 없었다. 고로 마음만 먹었다면 V-1 대피소에서 충분히 전국의 대피소에 해상을 통한 인편을 보내었어도 남을 시간이라 생각했다.

“우선은 정찰이다. 이후의 문제는 그때 가서 상황에 따라 대처하자. 언제가 되었든 부딪혀야할 일이다.”

성현의 지적에 충분히 공감하는 지휘관들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 * *

다음날 오전.

성현은 먼저 의장을 만나 대피소 전체의 이주를 고려하고 있음을 알렸다.

“나쁘지 않은 생각입니다만, 한두 명도 아닌 거주민 전체를 단번에 수송할 방법이 있겠습니까?”

“물론 쉽지만은 않겠지만, 불가능 하지는 않습니다. 제가 생각해둔 방법이 있습니다. 의장님께서는 이주에 대비한 준비를 우선 부탁드립니다. 저희가 정착할 섬과 이주민 수송 계획이 확정되면 그때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흐음, 알겠습니다. 그럼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테니 사령관께서 고생해 주십시오.”

안영식 의장은 성현의 독단에 가까운 일방적인 통보에 이의를 제기할 수도 있지만, 그리 하지 않았다.

성현의 행보가 자신이 생각하는 일반적인 틀에서 이루어지길 바랄 수는 없었다.

비범함을 넘어 추측조차 할 수 없는 능력을 가진 성현이었다.

일반인의 범주에 속한 자신의 잣대로 마음대로 재단해 판단하는 우를 범하고 싶지 않다는 게 안영식 의장의 속마음이었다.

“의장님. 그럼 다녀와서 뵙도록 하죠.”

성현은 의장과 짧은 악수를 하고 의장실을 나와 자신의 집무실로 향했다.

“대령님, 대피소 전 관리 부서에 공문 하달했습니다.”

성현의 수석 보좌관으로 있는 두식이 오전 업무 보고를 하고 있었다.

의장에게는 직접 대면해서 알려 줬지만, 각 관리부서에는 서면으로 이주 계획에 따른 준비를 서두를 것을 통보했다.

“그래, 그리고 시설 관리과에 지금 진행되는 모든 공사 전면 중지하라 전하고, 활주로 공사에 총력을 기울이라고 전달해.”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연구소 소장님께서 직접 뵙길 청하시는데 만나보시겠습니까?”

“혹시 밖에 계신건가?”

성현이 시계를 힐끔 보고 원래 같으면 연구소에 출발 시간이 지났음을 확인하고 물었다.

“네, 대령님. 대면보고 드릴 문제가 있다고 하셨습니다.”

연구소 소장이 출근조차 미루고 성현을 찾아왔다. 만일 시급을 다투는 일이라면 늦은 밤이라도 했을 것이고, 그 정도는 아니지만 중요한 사안임이 틀림없었다.

“들어오시라고 해.”

두식이 나가고 연구소 정우현 소장이 성현의 집무실로 들어섰다.

정우현 소장은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 2가지를 성현에게 전해 주었다.

나쁜 소식은 이미 예상하고 있던 내용이었지만, 상황이 더욱 악화 된 내용이었고, 좋은 소식은 성현의 엉덩이가 들썩일만한 일이었다.

“후우-, 시일이 대폭 줄었군요. 빠르면 20일이라…. 알겠습니다.”

좀비의 자외선에 대한 면역력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가파르게 상승한다는 보고와 함께 최소 20일에서 길면 30일 안에 완전한 면역을 갖추게 된다는 소식이었다.

이미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상당히 빠른 시점에서 좀비들이 대낮에 활보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

어차피 벌어질 일이고, 막을 수 없다면 완벽하게 대비를 하는 수밖에는 도리가 없었다. 이주시기를 앞당겨야 하는 이유가 추가되었음이다.

“그리고 생장 촉진이라는 말씀은 얼추 말뜻은 이해가 갑니다만, 잘 모르겠습니다. 이 부분 추가 설명을 좀 부탁하겠습니다.”

“아, 네.”

정우현 소장도 설명할 부분이 많았던 탓에 생략된 부분이 있음을 잘 알고 있었다.

“처음 식품 관리과에서 재배중인 식물들이 비정상 적으로 생장이 빠르다는 것을 확인하고 저희 연구소에 의뢰했었습니다. 연구가 고작해야 4일 정도라 좀 더 많은 샘플들이 필요하지만 기본적으로 신장촉진, 개화촉진, 종아 발아촉진 등 모든 생장이 3배가량 높아졌다고 확인되었습니다.”

“모든 식물들이 그렇다는 말씀입니까? 그렇다면…….”

“쉽게 말씀드려 과수 나무에 열매가 3배는 많이 열리고, 환경만 주어진다면 1년에 1번 수확하던 것을 3번은 수확 할 수 있다는 말과 같습니다. 지금 37종의 씨앗을 가지고 발아 중입니다. 좀 더 시간을 주시면 정확한 데이터를 산출할 수 있을 듯합니다.”

획기적으로 식량난을 타파할 수 있다는 소리였고, 이는 단순히 3배라는 수치로 치부할 문제가 아니었다.

“혹 영양이 부족하거나 인간이 섭취했을 때 어떤 문제가 있지는 않겠습니까?”

문뜩 빠른 생장이 다른 문제를 품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되는 성현이었다.

“영양소엔 아무런 문제가 없고 오히려 더욱 많은 영양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인체에 유해한 성분은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아시다시피 저희 연구소에 장비와 설비는 어느 곳에 견주어도 뒤지지 않습니다. 검출되지 않았다는 것은 없다는 말과 같다고 보시면 됩니다.”

성현은 정우현 소장의 말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완전히 낙관하기는 이르지만, 이 정도의 답을 들은 것만으로도 충분히 안전하리라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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