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7
움직이는 세력들 (1)
“중령님! 외각 경비조에서 급전입니다. 소속 불명의 대대급 병력이 남쪽에서 접근중이랍니다!”
점심 식사를 위해 단체 급식소를 찾은 최동원 중령은 식사 도중 깜짝 놀랐다.
“지금 즉시 전 부대 전투 대비 태세로 전환하고, 당장 투입 가능한 병력들을 집하장으로 모두 모아!”
최동원 중령은 들고 있던 수저를 내던지듯 내려놓고, 밖으로 달려 나가며 지시를 내렸다.
“서둘러!”
부아앙.
숨 가쁘게 달려 나와 급식소 인근에 주차해 놓은 차량을 타고 집하장으로 내달렸다.
최동원 중령이 집하장에 도착했을 무렵 성현을 따라 제주도 정찰에 나선 전투 부대 5팀과 연구소 상주 팀을 제외한 3개 팀 전원이 모여 있었고, 경비대 소속 90여명의 군인들이 급히 집결해있었다.
“모두 잘 들어라 현재 우리 대피소 인근에 소속 불명의 병력이 접근하고 있다. 아군인지 적군인지 피아 구분이 명확하지 않다. 전투는 최대한 피해야겠지만, 만약 전투가 발생한다면 절대 주저치 마라. 이상, 모두 탑승!”
8대의 험비와 바라쿠다 3대 그리고 육군의 발이라고 불리는 K-511 ‘두 돈반’ 3대에 병력을 가득 싣고, 집하장을 출발했다.
“중령님, 혹시 모르니 공군도 출동 시키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아무래도 좋게 끝날 것 같지 않습니다.”
1팀 부대원 중 하나이고, 부 팀장인 박진한 중위가 최 중령에게 말했다.
“네 말이 맞는 거 같다. 어찌 되었든 우리는 이전 지휘부를 무력 진압한 반정부 세력으로 보일뿐일 테니.”
제아무리 전 지휘부가 죽일 놈들이었다고 하나 외부에서 볼 때 성현과 현재 대피소의 지휘부는 쿠데타 세력으로 비쳐질 뿐이다.
‘먼저 칠까?’
최 중령은 선제공격에 대한 생각을 잠시 했지만, 이내 그러한 생각은 떨쳐냈다.
영문도 모른 체 죽어나갈 군인들이 대다수일 터였다.
함부로 적대 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하는 게 최선이라 생각했다. 공격 헬기가 공중에 떠있는 것만으로 절대 도발적인 행동은 하지 못할 것이다.
띠릭.
“최 중령이다. 해미 씨에게 연락해 헬기 수렴해서 즉시 공군 출동 준비 시켜. 그리고 최대한 빠르게 지원 위치로 이동 하도록. 이상.”
최동원 중령은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해미가 가지고 있던 헬기까지 출동 시켰다.
무력 충돌은 가급적 피해야 할 테지만, 발생한다면 최선을 다할 생각이었다.
* * *
최동원 중령을 태운 험비가 정비된 고속도로를 달려 소속 불명의 부대에 접근했다.
“제기랄!”
경비대 1개 조가 그들에 의해 제압되어 있었다.
최 중령은 미리 경비대를 철수 시키지 않은 것을 자책했다.
잠시 어떻게 대응할지 생각하는 사이 I-5 대피소 공터에서 이륙한 헬기들의 로터 소리가 들려왔다.
투타타타.
인근 상공까지 접근한 바이퍼 전투 헬기가 정지비행을 하며 소속 불명의 군인들을 에워쌌다.
전투 헬기들은 당장이라도 하부의 전용 회전포탑에서 불을 뿜을 듯했다.
경비대를 제압한 이들은 최 중령이 중장갑 차량과 미니건으로 무장한 험비를 타고 올 때부터 동요하기 시작하더니 바이퍼 공격 헬기를 보고는 혼비백산했다
“모두 진정해라!”
세가 불리함을 깨달았는지 소속 불명의 군인 측에서 한 사람이 나와 군인들의 동요를 막았다.
“우린 싸우고자 온 게 아니다. 여기 지휘관이 누군가?”
경비대원들을 제압하는 적대 행위를 먼저 했음에도 뻔뻔하게 나왔다.
“나다.”
최 중령이 험비에서 내리며 말했다.
뒤이어 장갑 차량과 수송 차량에서 내린 군인들이 최 중령을 호위하며 맞은편 군인들을 향해 경계 태세를 갖추었다.
“오해가 있는 거 같은데, 우선 총구부터 좀 내리는 게 어떤가? 그리고 가능하면 저 헬기들도 치우고 대화로 풀도록 하지.”
상대측 지휘관으로 보이는 이가 앞으로 나서며 말하자 최 중령은 콧방귀를 끼며 말했다.
“우리 대원들을 잡아놓고 할 소리는 아니지 않나. 당장 우리 대원들부터 풀어 주는 게 순서 아닌가?”
“풀어 줘야겠지만, 지금 당장은 힘들 것 같군. 늦었지만 통성명이나 하지. 난 I-3 대피소 소속 신동호 대령이다. 그쪽이 최동원 상사?”
신동호 대령의 말에 붙잡힌 경비대원 중 사병 일부가 고개를 푹하고 꺾었다.
최동원 중령은 이들이 경비대원들을 통해 일부나마 대피소의 정보를 습득했음을 알았다.
“아! 최 중령라고 불러야 되나? 뭐 그런 게 중요한건 아니겠지.”
최 중령은 그의 말투가 상당히 거슬렸지만, 딱히 대꾸할 말은 없었다.
직급 자체는 상사인 것이 맞았고, 중령이란 직급은 대피소의 군을 재정비 하는 과정에서 부득이하게 붙인 비인가 직급일 뿐이었다.
“최 중령, 어쩌면 우리는 말이 잘 통할 것도 같은데 말이야.”
“원하는 게 뭐냐?”
상대가 대령이라 한들 세상이 이 지경으로 변한 마당에 납작 엎드릴 필요는 없었다. 세력 간에 대화로 이끌면 될 일이었다.
“나도 명령을 받고 움직이는 입장이니 이해 바라네.”
“서로의 입장을 알려주기 위해 오지는 않았을 텐데. 여기 온 목적을 말해.”
최 중령은 말을 빙빙 돌리는 신동호 대령에게 좀 더 거칠게 말했다.
“첫 만남이 매끄럽지 못해 아쉽게 됐어. 우리의 잘못이 큰 탓이니 내가 이해하지.”
잠시 무슨 생각을 하는지 뜸을 들인 신동호 대령이었다.
“우선 사과부터 하지. 귀측 군인들에 대해 우리가 한 행동은 잘못되었네. 풀어줘라.”
최동원 중령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상대측에서 너무 쉽게 인질이라 할 수 있는 아군 병력을 풀어줬다.
의도가 어찌되었든 시기적절하게 경계심을 늦추는 효과를 신동호 대령이 얻었다.
최 중령은 상대가 만만치 않은 자임을 짐작했다.
상대가 저리 나온다면, 공격할 명분도 없을뿐더러 매몰차게 행동하기도 쉽지 않았다.
“어떻게 사과를 받아 주겠나?”
“그 사과 받아주지. 하지만 아직 대답은 듣지 못했다 이곳에 온 이유가 뭔가?”
앞서보다 조금 누그러진 최 중령의 말이었다.
“우린 다른 대피소의 현황을 살피기 위해 왔을 뿐이다. 그리고…….”
“그리고, 뭔가?”
“I-5 대피소와 우리는 동류다 할 수 있다. 우리 또한 이전 지휘부를 배제하고 새로운 지도부를 형성했다. 이런 마당에 서로 적대할 필요는 없는 거 같다.”
어쩌면 I-3 대피소에서 온 신동호 대령의 말에 틀린 바는 없었다.
다만, 일이 일으킨 동기가 달랐고, 그 차이는 메울 수 없는 간극이 존재했다.
“사실인가?”
“사실이다. 그리고 내가 듣기론 박성현이란 자가 I-5 대피소를 대표한다고 들었는데, 그는 어디 있는 건가?”
성현이 어딘가로 간 사실은 당시 현장을 보는 눈도 많아 알음알음 알고 있지만, 제주도 정찰 중임은 말단 사병들은 알 수 없었다.
그러한 사실까지는 신동호 대령에게는 전달되지 못했다.
“피차간에 그런 부분까지 설명 해줄 이유는 없다. 그리고 우리와 대화를 계속하려면 박성현 사령관님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지켜 줘야하지 않겠나? 세상이 이런 마당에 한 세력의 우두머리로 대우하는 게 맞는다고 본다. 그렇지 않나?”
자신이 존경하고 따르는 성현이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이들에게 얕잡혀 보이길 원치 않는 최 중령의 말이었다.
“그렇기도 하군. 알겠다. 그리 하도록 하지. 박 사령관께서 자리에 안 계셔서 뵙지 못하는 게 아쉽지만 하는 수 없지.”
너무도 순순히 인정하는 모습에 진심으로 상대를 존중하는 걸로 비춰 졌다.
최 중령도 경계심이 일부 옅어지고 있음을 느꼈다.
“이제 어쩔 셈인가?”
“원래 계획은 서울 인근 대피소와 연계를 위해 방문하는 것인데. 우리 병력들을 대피소에 하루 묶게 해줄 수 있겠나?”
“불가하다.”
신동호 대령의 말에 즉답하는 최동원 중령이었다. 속을 알지 못하는 이들을 받아 괜한 위험을 감수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그렇군, 그럼 어쩔 수 없지. 그렇다면 여기에 더 있어 본들 좋을 게 없겠지. 더 지체 했다간 우리도 날이 저물기 전에 복귀를 못하는 상황이 올 듯하군. 우리는 이대로 떠나도록 하겠네.”
신동호 대령이 곁에 있는 부관에게 철수 명령을 내리고 최동원 중령을 바라봤다.
“설마 저항의사가 없는 우리에게 저 무시무시한 헬기로 공격하지는 않겠지?”
“오겠다는 사람은 말려도 가겠다는 이들을 막지는 않는다.”
신동호 대령의 속내를 짐작하지 못하는 최동원 중령은 의구심은 남았지만, 더 이상 문제를 키우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군, 알겠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박성현 사령관이 자네와 같은 부대 출신이 맞나?”
최동원 중령은 딱히 맞다 아니다 답을 주지 않고, 시선을 고정해 신동호 대령을 바라봤다.
“흐음…. 오늘은 서로 좋지 못한 모습으로 만났지만, 다음에는 웃는 낯으로 봤으면 좋겠군. 모두 복귀한다.”
* * *
“일이 묘하게 됐어.”
I-3 대피소로 복귀하는 중에 신동호 대령은 혼잣말을 하며, 생각에 잠겨있었다.
“대령님, 이대로 저희가 복귀하는 게 맞습니까?”
“생각지도 못한 복병을 만났는데 도리가 없다. 이 소령도 봤다 시피 당장 놈들이 보인 전력만으로도 지금 우리 부대로는 어림도 없다. 하물며 대피소 전체와 비교해도 우리가 불리해.”
신동호 대령은 지상군은 둘째치더라도 공격 헬기를 보는 순간 앞이 캄캄해졌다.
그때부터 피를 말리는 순간이었다.
이를 내색하지 않기 위해 엄청난 심력을 기울였고, 인질을 풀어줄 때도 극심한 갈등 끝에 내린 결론이었다.
인질을 잡고 있지만 효용 가치를 생각해야했고, 이후 있을 상황까지 두루 살피지 않을 수 없었다.
뒤돌아 생각하면 할수록 등골을 타고 식은땀이 흘러 내렸다.
“그건 그렇고. 사령관이라는 박성현이란 놈이 이상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건데…. 들은 사실이 반만 맞는다고 해도 이건 상상할 수도 없군.”
인질이던 병사가 말한 내용을 듣고 처음에는 이놈이 미친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했다.
허공에서 컨테이너를 꺼내며, 헬기를 순식간에 사라지게하고, 또 다시 나타나게 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또 고장 난 물건을 빛으로 고쳐내는 능력이 있다고 말했다.
“다 죽어가는 사람을 살려? 단체로 미쳤거나 약을 한 것도 아니고, 당최 믿을 수가 있어야지.”
사실 다 죽어 가는 사람을 살린 것은 해미였지만, 병사들이 중구난방으로 떠들어대어 정확히 알아듣지는 못했다.
“어찌되었든 우리와 정반대에 선 놈들이라 같은 편으로 끌어 들이는 건 힘들어. 하지만, 놈들이 가진 전력이 너무 아까워.”
신동호 대령은 자신의 대피소에서 출발 전 받은 태블릿을 꺼내어 데이터를 불러냈다.
한참을 태블릿을 터치하더니 이윽고 원하는 자료를 찾아냈다.
전 국민의 인물정보가 들어있는 자료였다. 최동원 상사를 중심으로 인물 검색을 해서 어렵지 않게 성현을 찾아냈었다.
“오호라, 이건 예상치 못했는데.”
놀라운 정보가 하나 있었다.
“하하하. 좋은 미끼. 아니지, 조커가 될 수도 있는 패가 있다는 말이지.”
무심코 보던 인물 정보에서 뜻밖의 사람이 있었고, 이를 이용한다면 생각지도 못했던 좋은 방법이 있을 것도 같았다.
“모두 힘들더라도 행군 속도를 올려라, 날이 저물기 전에 필히 복귀해야 된다.”
* * *
“모두 고생이 많다.”
-대령님. 벌써 돌아 오셨습니까?
성현을 제외한 차 상위 지휘관인 해밀턴 중령이 성현의 무전을 받고 대답했다.
우도의 가장 긴 꼭짓점을 일직선으로 연결해도 4㎞ 남짓인 탓에 어디서도 무전에는 제한이 없었다.
“일이 일찍 끝났다. 성과는 있나?”
성현은 캠프 헨리에서 돌아와 우도 상공에 도달해있었다. 예상 했던 시간보다 이른 시간에 도착한 탓에 우도에서는 좀비 소탕이 아직 진행 중인 상태였다.
-전일 저희가 깨끗이 청소한 듯합니다. 현재까지 단 2마리의 좀비만 발견했고, 제거 완료 했습니다.
우도가 그리 작은 섬이 아니지만 9대의 헬기로 전체를 돌아보는 데 많은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면적이 5.9㎞²의 땅덩어리는 차 한 잔 마실 시간에 몇 바퀴를 돌고도 남는 크기라 할 수 있었다.
“알겠다.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돌아보고 깨끗하다면 모두 복귀해라. 오늘부터 제주도에서 야간 작전을 시작하는 만큼. 낮 시간에 충분히 쉬는 게 좋겠다.”
-네, 대령님 알겠습니다.
성현은 전날 묵었던 펜션 인근에 헬기를 착륙시키고, 대원들이 돌아오길 기다렸다.
“보자…. 무턱대고 몰아와서 미사일만 날려서는 미사일 소모도 소모지만, 매번 재보급에도 시간이 걸린단 말이지.”
성현은 대원들을 기다리며, 야간에 몰이사냥을 어떻게 진행할지 고심했다.
어제처럼 한다고 가정했을 때는 우도처럼 작은 섬은 괜찮을지 몰라도 효율이 너무 떨어졌다.
수천도 아니고 수만을 넘어 수십만에 이르는 좀비를 처리하는 데는 방법을 달리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