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판멸망한 세계의 게이머-38화 (38/176)

# 38

움직이는 세력들 (2)

제주도 서남부 모슬포 항 인근.

성현은 대원들을 쉬게 하고, 캠프 헨리에 갈 때와 달리 한 대의 헬기를 직접 조종하고 있었다.

캠프 헨리에 갈 때는 그 부대에서 근무 경험 있고, 내부 사정에도 밝은 대원이 있어 동행 시켰지만, 지금 제주에서 할 일은 혼자가 더 편했다.

그리고 스킬의 능력을 가감 없이 느끼며, 즐기고 있었다.

자유로이 창공을 누비는 헬기 조종은 처음 자동차의 핸들을 잡았던 설렘과는 또 다른, 차원이 틀린 재미를 선사했다.

“내가, 꼭 랩터도 반드시 몰아본다.”

성현은 초음속을 돌파해 가공할 속도로 전장을 누비는 것을 꿈꾸며, 홀로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한참 헬기 조종에 재미가 들려 있던 성현은 어느덧 목적했던 장소 인근에 도착해 있었다.

“저기군.”

빠르게 대각선을 그리며 하강한 헬기가 대정중학교라 큼직한 글씨가 써져있는 학교 건물을 지났다.

헬기를 인조 잔디가 깔린 학교 축구장에 착륙시킨 성현은 캐노피를 열고 재빠르게 뛰어 내렸다.

“어느 정도로 해야 하나?”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며 뭔가를 가늠한 성현은 축구장 곳곳을 얕게 파헤치고 다녔다.

“이정도면 충분하겠지.”

대략 10여분 정도 몸을 움직인 성현은 만족한 얼굴로 다시 헬기에 올라 이동을 시작했다.

이후 대정서 초등학교, 사계 초등학교, 대정문화 체육센터 축구장, 한경 체육관 운동장, 신창중학교, 예래 초등학교, 안덕면 운동장까지 처음 갔던 대정중학교 까지 하면 모두 8군데를 헤집고 다녔다.

오후 3시경부터 시작한 작업은 시간은 지나 태양이 수평선 가까이 인접 할 때 쯤 끝이 났다.

“멋진데.”

노을이 드리운 해안가는 묘한 보랏빛이 감도는 신비로운 색감을 드리우고 있었다.

하늘은 온통 주황빛으로 물들어 아름다운 장관을 연출해 냈다.

“다음에 해미랑 줄리도 헬기 태워서 보게 해줘야겠다.”

문뜩 해미와 줄리가 떠올랐다.

순수하게 보고 싶다는 감정이었다.

함께한 시간은 짧았지만, 그 존재감만으로 벅차오르는 느낌에 성현도 새삼 놀랐다.

“금방 돌아갈게.”

흐뭇한 미소를 가득 머금은 성현은 혼잣말을 하고 홀로 보기에 아까운 풍경을 두고 감성에 젖어들었다.

“슬슬 복귀하자.”

태양이 수평선 밑으로 완전히 모습을 감추고서야 기수를 돌려 우도로 향했다.

성현이 우도에 도착했을 때는 한참 저녁식사 준비로 분주했다.

선발대에 참여한 이들 중 마침 낚시에 일가견이 있는 이들이 있었고, 인근 낚시 용품점에서 채비를 가져와 방파제에서 낚시를 했다.

운이 좋았던 탓인지 실력이 좋은 것인지 상당히 많은 물고기를 낚아 올렸다. 한 대원이 대어 벵어돔 세 마리를 잡았다며 너스레를 떨고 있었다.

거기에 예상치 않게 두식이 회를 뜨며, 매운탕을 끓이고 있었다.

알고 보니 두식은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일식집 보조부터 시작해 오래전에 일식요리사 자격증을 취득한 진짜배기였다.

성현은 두식이 상당히 굴곡진 삶을 살았음을 짐작했다. 조만간 날을 잡아 깊이 있는 대화를 한번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자-, 다 됐습니다.”

두식은 없는 재료가 많았지만 주변 텃밭을 뒤져 제법 구색도 맞추었다.

성현은 보기만 해도 침이 꿀떡하고 절로 넘어갔다.

원체 해산물을 좋아하기도 특히 회는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성현이었다.

“모두 식사들 하시죠.”

두식이 메인요리인 매운탕을 가지고 오자 너나 할 것 없이 수저를 들었다.

공군 소속의 미군들도 입맛에 맞는지 저마다 엄지손가락을 치켜든다. 그리고 조금 매운지 손부채질로 연신 입 주위를 식혔다.

성현은 큼지막한 회 한 조각을 초장에 듬뿍 찍어 입안에 넣었다.

‘죽여주는 구나.’

성현의 지론은 회는 초장 맛으로 먹는 다는 것 이였다. 몇 번 씹지도 않았건만 아이스크림 녹듯이 사르르 하고 생선살이 녹아든다.

순식간에 식도를 타고 위장으로 넘어갔다.

“저, 대령님. 입맛에 맞으신가요?”

성현이 눈을 감고 맛을 음미할 때 오늘의 주방장을 자처한 두식이 말을 걸었다.

“이건 음식이 아냐, 예술이다. 힘든 일 있음 언제든 이야기해. 그리고 앞으로 종종 부탁 좀 하자.”

“넵, 언제든 말씀만 하십시오.”

최근 들어 두식은 자존감을 잃어가고 있었다.

성현의 옆에서 할 수 있는 일 보다 없는 일이 많았고, 그에게 불필요한 사람인건 아닌지 하는 생각으로 심적으로 많이 힘들었었다.

성현의 칭찬 그 한마디에 순식간에 시름을 털어내고 활력을 찾았다.

뭔가 해냈다는 성취감과 함께 보람도 느꼈다.

“헤헤, 이 매운탕도 좀 드셔보시죠.”

매운탕을 한술 떠 입에 가져다 댄 성현은 이 또한 여태껏 맛본 매운탕 중에 수위에 꼽을 만 했다.

“이 녀석! 넌 인마 이런 재주 있음 진작 말을 해야 할 거 아냐. 좋아, 아주 좋아!”

대피소에 있을 때 해미가 자주 요리도 해주고 단체 급식 또한 음식이 나쁘지 않았지만, 지금 먹은 음식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성현을 비롯한 모두가 만족할 만한 저녁식사였고, 간만에 과식다운 과식을 한 성현은 여운을 즐기듯 배를 쓰다듬었다.

그리고 모두에게 한 시간 정도 소화도 시킬 겸 편히 쉬도록 했다.

한 시간 후.

저녁 식사가 끝나고 충분한 휴식을 취한 대원들을 소집했다.

성현은 헬기 2대를 한 팀으로 묶어 몰이를 시작할 위치와 이동 동선을 알려주었다.

GPS 활용이 안 되는 탓에 헬기의 주조종사들이 연신 자신의 지도에 성현이 알려준 포인트를 체크하며 꼼꼼하게 동선을 그렸다.

작전 브리핑을 끝으로 시간을 확인하니 22시 10분을 넘기고 있었다.

“너희는 여기 숙소에서 대기해라. 특별히 지금 할 일은 없다. 정 심심하면 험비타고 순찰 한번 돌던지, 그도 아니면 밤낚시도 괜찮은 거 같고, 험.”

“넵!”

성현은 공군 전력만 필요한 상황에서 전투부대원들과 두식, 용칠은 숙소에 남도록 했다.

덧붙여 은근히 낚시를 하도록 종용했다.

“자-, 모두 탑승해.”

도합 17대의 전투 헬기를 창고에서 꺼낸 성현은 자신이 직접 한 대의 헬기에 올라탔다.

31명의 조종사들은 해밀턴 중령을 제외한 2명씩 짝을 이루어 각자의 헬기에 탑승했다.

성현이 캠프 헨리에서 추가로 얻은 공격 헬기로 인해 해밀턴 중령은 의도치 않게 단독 비행을 해야만 했다.

우도에서 이륙한 헬기들이 성현을 선두로 제주도 남서쪽을 향해 나아갔다.

“모두 정해진 위치로 이동해서 작전 시작한다.”

-1팀 카피.

-2팀 카피.

임무 시작을 알리는 성현의 무전에 각 팀별로 답하며, 저마다 지정된 포인트로 기수를 돌렸다.

맑은 날씨에 달빛도 밝아 변화무쌍하다는 제주날씨도 오늘만은 성현의 작전에 한몫 거들고 있었다.

*  *  *

그어어어.

수백 수천을 넘나드는 좀비 때가 한데 뭉쳐 괴성을 질러댔다.

길게 늘어져서 오는 좀비들이 떨어져 나갈까, 헬기들은 저공비행으로 속도를 조절하며 계속해서 몰이에 박차를 가했다

좁은 틈을 비집고 달리는 좀비들은 넘어져 허우적댔다.

한데 뭉쳐 달리던 좀비들이 서로를 짓밟으며, 끊임없이 헬기들을 따라 대이동을 하고 있었다.

- 1팀 최종 위치 도착.

- 4팀 최종 위치 도착.

첫 무전 도착 하고 5분 사이에 7개의 팀이 최종 위치에 도달했음을 알려왔고, 성현의 지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 한 팀 남았다.’

성현은 각각의 몰이 포인트 중간 지점인 모슬봉 상공에서 호버링 중이었다.

또한, 전파수신제한 거리를 고려해 15㎞를 넘지 않도록 신경 썼음은 당연했다. 가장 먼 곳이 13㎞ 남짓 되었다.

딸각.

무전을 전해오는 팀의 위치와 연동된 폭발 스위치의 플라스틱 락(Lock) 덮개를 올렸다.

마지막 남은 팀에서 무전이 오기를 기다렸다.

앞서 낮에 다녀온 운동장과 축구장에는 각 포인트 별로 300㎏ 상당의 TNT 폭탄을 매설했다.

모두 8군데, 합치면 무려 1.6톤에 해당하는 양이었다.

이정도의 폭약을 매설하고도 창고에는 약 40여 톤에 육박하는 TNT가 남아있었다.

-5팀 최종 위치 도착!

드디어 기다리던 마지막 팀이 무전을 알려왔다.

“해밀턴. 리턴 카운트와 익스플로전 카운트 진행해.”

-카피 뎃. 카운트 3, 2, 1 제로!

해밀턴의 카운트 제로에 맞춰 헬기들이 전속으로 폭발 공역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스킬창’

〔 스 킬 창 〕

*액티브*

[특수]무기기술자

-공격력, 속도, 범위, 명중 50% 증가 (적용 시간 10분, 재사용 대기시간 1시간)

[일반]강타

-공격력 30% 증가(재사용 대기시간 3분)

*패시브*

[특수]무기전문화

-모든 무기 사용가능 및 공격력 50% 증가(활성화)

‘패시브는 활성화 되어있다. 액티브 스킬, 이번엔 둘 다 쓴다.’

액티브 스킬은 성현이 능력을 각성하고 단 한 번 두식과 용칠을 구할 때 사용하고 이번이 두 번째였다.

더군다나 특수 스킬과 일반 스킬을 동시에 사용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카운트 10, 9…, 1, 제로!

공격 헬기들이 정지 비행에서 급가속해 10초 동안 이동할 수 있는 거리는 대략 300m 이상, 상승고도는 80m 정도였다.

성현은 이 정도라면 폭발의 유효 범위에서 벗어나기에 충분하리라 생각했다.

틱티티티틱.

해밀턴의 제로 카운트와 동시에 성현은 손에 들고 있던 원격 폭파장치의 스위치의 동시에 켰다.

쿠쿠쿠쿵. 콰쾅!

성현이 있는 곳에서 가장 가까운 2㎞에 위치한 대정중학교 운동장에서 눈부신 섬광과 함께 거대한 폭발이 터져 나왔다.

[레벨 업! 보너스 스텟 1을 획득 하였습니다.]

[레벨 업! 보너스 스텟 1을 획득 하였습니다.]

…….

…….

…….

시야 가득 레벨 업을 알리는 텍스트가 나타났지만, 그 기쁨도 잠시.

“……시발 조땠다.”

성현은 저도 모르게 욕설 섞인 말로 속마음을 내뱉었다.

거대한 버섯구름이 하늘로 충천하며, 화염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폭발의 충격파가 동심원을 그리며 삽시간에 성현이 있는 곳까지 도달했다.

충격은 없었지만, 세찬 바람에 지근거리에서의 폭압은 무시 못 할 수준임을 짐작케 했다.

폭발의 규모가 성현이 상정했던 것과는 너무 큰 차이를 보이고 있었다.

-Inability to steer!!

-Holy Shit!!

무전에서 다급한 말들이 쏟아졌다.

조종이 불가능할 정도의 후폭풍에 휩쓸린 헬기들이 우왕좌왕 하고 있음을 여과 없이 들려왔다.

성현의 계산은 틀린바 없었지만, 그 계산에 들어간 수치 자체가 잘못되어 있었다.

155mm 곡사포 고폭탄을 기준으로 무게를 45㎏이라 생각했고, 이를 그대로 폭약의 무게로 환산한 미친 오류를 범했다.

고폭탄의 탄두에 들어있는 작약의 무게는 사실상 7㎏ 정도에 불과했으니 무려 38㎏의 오차가 발생한 거다.

155mm 고폭탄 한발의 살상반경이 약 1,000m²(300평)정도 된다.

운동장의 면적은 대략 7,000m²(2,100평)이고 고폭탄 7발이면 운동장 전역이 사실상 살상반경에 들어간다.

성현은 7발*7㎏=50㎏에 불과할 폭탄을.

7발*45㎏=315㎏ 라는 치명적인 실수를 범했다.

6배에 해당하는 300㎏을 매설한 거다.

거기에 더해진 스킬 능력으로 증폭된 폭발의 위력은 지금 눈앞에 펼쳐져있었다.

사실상 지속 스킬을 제외한 1회용인 강타 스킬의 영향으로 첫 번째 폭발은 TNT 1톤을 상회하는 위력을 보였고, 지금 눈앞에 그 결과가 펼쳐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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