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판멸망한 세계의 게이머-39화 (39/176)

# 39

움직이는 세력들 (3)

“각 팀별로 상황 보고!”

성현의 다급함 목소리가 무전을 타고 전해졌다.

그리고 여전히 불길이 치솟는 폭발 현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제길, 어쩌다 이런 실수를!’

생각 이상으로 최근 일이 잘 풀린 탓에 긴장이 풀려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범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실은 달랐다.

실수지만 실수가 아님을 성현은 몰랐다.

지금 자신이 짊어진 삶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 것인지. 본인은 인식 못하고 있었다.

게이머의 특성으로 상태이상에 저항력이 높아 자각하지 못할 정도로 옅어져 있었음을.

원래 강단이 있고, 상당한 리더십도 있지만, 지금은 4만 명에 이르는 사람들을 선도해야만 하는 자리에 올라 있었다.

그것도 생존이라는 대명제를 두고 모인 이들이었다.

항상 과부하에 가까운 부담을 안고 있음을 인지하지 못한 거다.

그리고 자신과 인연으로 엮인 이들에 대한 책임감이 언제나 스스로를 옭아매고 채찍질 하고 있어, 지속적인 스트레스 상태였다.

평소라면 하지 않을 실수를 하는 것이 어찌 보면 당연할 지경이었다.

게이머의 특성 덕을 보고 있지만, 그로 인한 반대급부로 자각 하지 못해 스스로 다잡을 계기가 주어지지 않았다.

-2팀 피해 전무합니다.

-4팀 무리 없이 빠져나왔습니다.

6번째 무전까지 듣고 성현은 크게 숨을 뱉어냈다.

-3팀 일시적인 기체 불안정 발생했으나 현재 아무 문제없이 기동 중입니다.

7번째 무전도 큰 탈이 없음을 확인했고, 이제 하나의 무전만 남았다.

“해밀턴, 해밀턴 응답해라! 1팀 아무나 대답 좀 해봐!”

-사령관님. 1팀 조나단 대위입니다. 저희 헬기는 무사합니다만, 해밀턴 대령님은 현재 통신 두절 상태입니다.

1팀에 속한 다른 팀원의 보고였다.

“해밀턴!”

성현은 더는 무전이 오기만을 기다리지 못하고, 해밀턴을 찾아 빠른 속도로 헬기를 몰았다.

그리고 1팀이 있었던 폭발의 중심을 지나면서 직접 눈으로 보았다.

축구장이었음을 짐작되는 그 어떤 형상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곳엔 크리에이터를 방불케 하는 거대한 구덩이와 축구장 바로 옆에 있던 4층짜리 학교 건물은 반파되어 붕괴되기 일보 직전이었다.

폭발의 충격이 어떠했는지 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불안감이 증폭되고 안 좋은 생각이 스멀스멀 떠오를 때였다.

-대, 대령님.

“해밀턴! 괜찮나? 다치지 않았어?”

-아, 죄송합니다. 잠시 정신을 잃은 거 같습니다. 우선 헬기는 불시착했고, 저는 다친 곳이 거의 없습니다. 근데 이거 헬기가…….

“그딴 헬기 한두 대 없어도 상관없다.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야.”

헬기야 잃어도 그만이라 생각했다. 자신의 부주의로 다친 사람이 없다는 것만으로도 하늘에 감사했다.

*  *  *

성현은 해밀턴이 불시착한 곳으로 가서 그를 만났다.

해밀턴은 무전으로는 안 다쳤다고 했지만, 실상은 달랐다.

숨 실 때 마다 가슴 통증을 호소하는 것이 늑골에 금이 간 듯했고, 전신에 자잘한 상처를 입고 있었다.

‘포션이라도 사두었다면 이럴 때 유용했을 텐데…….’

성현은 원래 게임에서도 포션을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물론 그때는 궁핍한 탓에 사치라 생각했었다.

해미에게 넉넉한 자금을 받아 여유가 있었을 때는 해미가 힐러인 터라 포션의 필요함을 느낄 수도 없었다.

생각을 거듭 할수록 아쉽기만 했다.

“해밀턴은 아침 일찍 후송하도록 한다.”

늦은 새벽이라 I-5 대피소로 보낼 수도 없었다. 응급조치를 하고, 내일 오전에 한 명을 동행해 복귀시키기로 했다.

그런 일련의 조치를 하고 나서야 성현도 방으로 돌아와 잠시 쉴 틈을 찾았다.

“아참, 레벨 업.”

박성현

레 벨 : 10   (EXP 89.45 %)

직 업 : 무기 전문가 [1차 전직]

근력 12 (+10) → 22 ▲

민첩  9 (+10) → 19 ▲

내성  9 (+10) → 19 ▲

마력  5 (+10) → 15 ▲

체력 14 (+10) → 24 ▲

보너스 스텟 : 10

“10레벨이라고?”

생각보다 많이 오른 레벨에 살짝 당황했다.

현실에서의 첫 레벨 업.

더군다나 폭업이었다.

세상 누구도 겪어보지 못한 일에 감회도 남다름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하하, 자다 깜짝 놀랐겠는걸.”

한참 단잠을 자고 있다가 레벨 업 소리에 놀랐을 해미가 떠올라 장난가득 한 웃음을 흘렸다.

“그건 그렇고…. 보너스 스텟은 내성과 민첩을 일단 하나씩 찍으면 되고, 다음은 뭐를 올려야 하나?”

스텟은 앞자리의 숫자가 바뀔 때 마다 효율이 2배 가까이 상승하는 효과가 있었다.

민첩과 내성이 현재 19. 스텟 하나씩만 찍으면 20대로 진입할 수 있었다.

그리하고 나면 8개의 보너스 스텟이 남았다.

“제주도에서 이대로만 진행한다면 최소 20레벨까지는 올릴 수 있다. 그렇다면…….”

성현은 거침없이 보너스 스텟을 분배했다.

박성현

레 벨 : 10  (EXP 96.55 %)

직 업 : 무기 전문가 [1차 전직]

근력 20 (+10) → 30

민첩 10 (+10) → 20

내성 10 (+10) → 20

마력  5 (+10) → 15

체력 14 (+10) → 24

보너스 스텟 : 0

남은 스텟 8개는 근력에 투자했다.

힘은 남성성을 상징하는 하나의 잣대로도 평가된다. 육제의 강함은 남자들의 로망 중 하나이기도 하다.

사실 해미보다 약하다는 게 작은 트라우마로 자리 잡고 있기도 했다.

전신에서 끓어오르는 힘은 그 무엇도 할 수 있음을 말해주는 듯했고, 몸은 날아갈 듯이 가벼웠다.

“이정도의 고양감이라…….”

서서히 가라 않고 있는 것 같지만, 당장은 잠조차 쉬이 이룰 수 없을 만큼 활력이 넘쳤다.

“아, 그러고 보니 스킬도.”

성현이 불러낸 스킬창에는 두개의 스킬이 레벨 업에 따라 개방 되어 있었다.

〔 스 킬 창 〕

*액티브*

[특수]무기기술자

-모든 무기 공격력, 속도, 범위, 명중 50% 증가 (적용 시간 10분, 재사용 대기시간 1시간)

[일반]강타

-무기 공격력 30% 증가 (재사용 대기시간 3분)

[일반]이연격

-유효한 공격 성공 시 동일한 추가타 적용 (재사용 대기시간 3분)

*패시브*

[특수]무기전문화

-모든 무기 사용가능 및 공격력 50% 증가

[일반]마력부여

-마력 1당 1%, 공격력 추가상승 (15% 상승)

“역시나 풀리는 스킬은 게임하고 같네. 이연격하고 마력부여라…….”

게임에서도 상당히 유용한 스킬이지만 현실에서 활용도가 높은 스킬이기도 했다.

“격투가나 근접 계열 딜러였음 큰일 날 뻔 했다. 현대 무기에 대한 어드밴티지가 있는 무기전문가가 진짜 신의 한수였어.”

만일 다른 직업을 선택했다면 현실에 크게 도움을 받지 못했음을 상기하자, 또 한 번 자신의 결정이 옳았음을 느꼈다.

다만 성현에게 힐러나 마법사는 처음부터 고려대상이 아닌 게 함정이랄 수 있었다.

“아니 골드는 또 언제 이만큼 쌓였냐. 쓸 수도 없는 건 왜 주는 건데? 차라리 좀비들이 아이템이라도 뱉게 해주던지.”

[ G 2,452,937 ]

창고의 아래에 찍혀있는 반짝이는 골드를 보며 성현이 한탄했다. 대략 150만 골드 이상이 증가해있었다.

상점이 있는 것도 아닌데 늘어만 나는 골드가 야속하기만 하다.

차라리 꺼내 쓸 수라도 있으면, 하다못해 물질적인 가치라도 있을 텐데 이건 말 그대로 숫자에 불과했다.

*  *  *

일출이 시작될 시간. 날씨가 그다지 좋지 못했다.

금방이라도 비를 뿌릴 듯 하늘은 거무스름했다.

이맘때쯤이면 슬슬 장마가 시작될 시기이긴 했지만, 지금 날씨가 장마로 인한 것인지 폭풍이 오고 있는 것인지 알 길이 없었다.

일기예보가 있는 것도 아니라 날씨의 변화는 실시간으로 겪어 보고서야 알 수 있었다.

“비행이 가능하겠나?”

점차 거세지는 바람에 성현이 물었다.

“아직은 괜찮을 듯합니다. 이 정도라면 무리 없습니다.”

해밀턴을 데리고 갈 주조종사인 조나단 대위가 문제없음을 말했다.

사실 헬기의 테일로터(꼬리회전날개)의 출력보다 강한 바람이라면 큰 문제겠지만, 전투 헬기의 강력한 출력이라면 순간 풍속이 10m/s이상의 강풍도 뚫고 갈만 했다.

“삼다도가 괜한 말은 아닌가보다. 조심해서 복귀하도록 하고, 기상이 좋지 못하면 대피소에서 대기해. 해밀턴에게도 그리 전하도록 하고. 더 늦기 전에 어서 출발해.”

“넵, 대령님. 알겠습니다.”

해밀턴을 태운 헬기가 이륙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빗방울이 돋기 시작했다.

그리고 정오 무렵부터 점차 빗줄기가 굵어지더니 어느새 굵은 장대비가 되어 쏟아져 내렸다.

성현은 예상치 못한 날씨에 발이 묶여 버렸다.

제아무리 공격 헬기를 타고 하는 작전이라지만, 이런 날씨에는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었다.

“오늘 작전은 취소다. 날씨가 풀릴 때까지 모두 휴식 하라 전해라.”

“알겠습니다.”

언제 출동 명령이 떨어질지 몰라 모두 펜션에 있는 식당에 모여 있던 차였다.

성현은 두식에게 전달사항을 하달하고 다시 자신의 방으로 왔다. 계획 했던 작전은 악천후로 뒤로 미룰 수밖에 없었다.

창가에 서서 펜션 밖을 내다보니 풍속계가 눈으로 쫒지 못할 만큼 빠르게 돌고 있었다.

파도는 높다 못해 방파제를 넘어 크게 솟구쳤고, 강풍에 나무들은 쓰러질 듯 옆으로 기우려져 있었다.

쿠르르릉 쾅쾅.

번쩍, 번개가 치더니 천둥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설마, 태풍인가?”

일반적인 날씨가 아니었다. 장마로 인한 날씨로 보기에는 기상 상태가 예사롭지 않았다.

“하필이면 이럴 때에…….”

한시라도 빨리 제주도의 좀비들을 소탕하고 대피소의 사람들을 이주시켜야 하는데 시간만 축내게 생겼다.

“하아… 이럴 줄 알았으면 차라리 대피소에 잠시 다녀올걸 그랬네.”

해미도 보고 싶고, 줄리도 잘 지내고 있는지 너무 궁금했다.

하루라도 빨리 제주도 좀비들을 소탕하기위해 대피소에 다녀오는 시간도 아꼈건만, 부질없는 짓을 했음이다.

똑똑.

“들어와.”

“대령님, 날씨도 이렇고 해서 부침개하고 간식거리 좀 만들었는데, 좀 드시죠.”

안 그래도 울적한 차에 두식이 적절한 타이밍에 와줬다.

“가자, 날씨도 이런 참에 모두 한잔하고 푹 쉬자.”

성현이 펜션의 식당으로 가자 이미 다들 모여 성현을 기다리고 있었다.

용칠은 어디서 구해 왔는지 깻잎을 잔뜩 씻고 있고, 그 옆에는 반죽에 갠 깻잎으로 부대원 하나가 전을 붙이고 있었다.

이미 상당량의 파전이 구워져 있었고, 골뱅이 통조림으로 만든 무침도 빨갛게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알다시피 기상이 최악이다. 오늘 중으로 작전 이행은 불가능하다는 생각이다. 모두 고생도 했고 하니 오늘은 한 잔씩들 하고 푹 쉬도록 한다.”

자리한 모두가 크게 대답하고, 왁자지껄 떠들어댔다.

성현은 창고를 열어 여러 가지 주류와 음료를 적당히 꺼내고, 자신도 한자리 잡고 앉았다.

“대령님, 한 잔 받으시죠.”

“그래.”

두식이 성현의 잔에 소주를 가득히 따랐다. 성현도 두식의 잔을 채워주고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며 잔을 나눴다.

쌉싸래하면서 달짝지근한 소주가 유달리 입에 착하고 감긴다.

성현은 주당은 아니지만 술은 즐길 정도는 마실 줄 알았다. 다만, 주량이 그리 쌘 편은 아니었다.

헌데 각성이후에는 취기조차 쉬이 느껴지지 않았다.

‘각성 덕분에 취하지도 못하는구나.’

취하는 것도 상태이상의 하나인 것인지 예전 같으면 인사불성은 아니더라도 제법 취기가 올랐을 법 했지만, 몸이 살짝 달아오를 뿐 그이상의 변화는 없었다.

성현을 제외한 모두가 얼큰하게 술이 올라 하나둘 자리를 떠났다.

성현의 생각은 깊어지고 있었다.

‘좀 더 속도를 내야 할 텐데…….’

입으로는 연신 술을 들이키면서 머릿속은 계속해서 제주도 좀비소탕 생각뿐이었다.

하루라도 빨리 모두에게 안정된 공간에서 불안에 떨지 않는 장소를 마련해 주고 싶었다.

개인의 만족만을 바라보고 살리라 다짐했던 성현은 어느덧 모두와 함께하는 삶을 추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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