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2
원치 않은 만남 (3)
콰콰쾅!
피날레를 장식하는 거대한 폭발이 제주 남부를 휩쓸고 있었다.
작은 폭죽을 터트려도 기분 좋은 탄성을 내뱉고는 하는데 이런 거대한 폭죽을 가지고 직접 터트리는 느낌은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었다.
그 짧은 순간에 얻는 파괴적인 쾌감은 아찔할 만큼 강렬했다.
[레벨 업! 보너스 스텟 1을 획득 하였습니다.]
[레벨 업! 보너스 스텟 1을 획득 하였습니다.]
2번의 레벨 업을 했다는 메시지가 나타나 잠시 시야를 가렸다.
“17레벨이라… 스텟은 20레벨 되면 한 번에 찍어야겠다.”
앞서 두 번의 몰이사냥으로 이미 15레벨의 끝자락에 올라있던 레벨은 이번 몰이를 끝으로 17레벨에 이르러 있었다.
오늘만 3번에 걸친 몰이로 도합 16만 마리에 이르는 좀비들을 사냥했다.
“좀 더 시간을 들인다면 이삼일이면 어느 정도 정리가 될 거 같은데.”
오후 늦게 시작한 폭약 매설 작업은 좀비들이 활동시간과 맡 물려, 많이 설치하지 못했다.
하지만, 작정하고 시작한다면, 삼일 안에 제주 전역을 커버하는 게 결코 불가능할 일은 아니었다.
“모두 복귀한다.”
성현의 지시에 임무를 마친 모든 헬기들이 우도로 기수를 돌려 빠른 속도로 제주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우도의 펜션에 도착해 시간을 확인하니 새벽 3시 2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대원들은 하나둘 잠자리에 들었지만, 성현은 밖을 서성이고 있었다.
저녁 늦게 까지 내리던 비는 그친지 오래고, 언제 그랬냐는 듯 거센 바람은 살랑대는 미풍으로 변해 있었다.
폭풍우가 지나간 하늘은 맑고 반짝이는 별빛들로 가득했다.
성현은 휘황찬란한 달빛을 벗 삼아 한참을 산보하듯 해안가를 거닐고 있었다.
좀처럼 심란한 마음이 가시지 않았다.
스스로에게 ‘왜’라는 물음을 던지지만 알 길이 없었다.
“후-우.”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내뱉으며 천천히 이완시켜 보지만 막연한 답답함은 그대로였다.
“그래도 잠은 좀 자야지.”
성현은 일출이 가까워질 때가 되어서야 숙소로 발길을 돌렸다. 그리고 어렵사리 잠자리에 들어 눈을 붙일 수 있었다.
* * *
똑똑.
“대령님!”
성현은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들어오라는 말을 하지 않았음에도 두식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무슨 일이야?”
성현은 어지간한 일로 두식이 이러지 않음을 알고 마음대로 문을 열고 들어온 일에 대해서는 따지지 않았다.
“지금 대피소에서 소식을 전하기 위해 헬기가 오고 있습니다. 도착 전에 먼저 무전을 보내왔습니다.”
“……빨리 말해봐.”
어쩌면 자신을 불안하게 만든 원인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그게, 사모님이 대피소에 왔다는 반가운 소식입니다.”
두식이 헤벌쭉 웃으며 말하는데 성현은 멀뚱멀뚱 그런 두식을 처다만 본다.
“무슨 개소리냐?”
“네에?”
“무슨! 개소리냐고!”
“저… 무전에서 대령님 사모님이 다른 대피소의 보호를 받아, 저희 대피소로 오셨다고 합니다.”
성현의 카랑카랑한 고함에 두식이 화들짝 놀라 다시 한 번 내용을 빠르게 말했다.
“하-. 지지리 질긴 년이네.”
“…….”
성현의 반응이 반가움과는 완전히 상반되고 정상적이지 않았다.
이를 확인한 두식은 두 번째 소식을 전해야 하나 생각했지만, 나중에 더한 소리를 듣기 전에 입을 열었다.
“그, 그리고… 해미양이 대피소를 나갔다고 하는데 전일 나가서 돌아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
두식의 말이 현실 같지 않은 성현은 천천히 들은 내용을 되새겼다.
“이런 개 같은!!!”
성현의 얼굴이 흉신악살처럼 구겨지고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꽈광! 와장창창!
성현이 닫힌 창을 부시고 그대로 뛰쳐나갔다.
폭발하듯 비산하는 유리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밖으로 튀어 나갔다.
급히 창고를 열고, 일언반구도 없이 성현은 헬기를 타고 날아올랐다.
“지금 오고 있는 게 누구야!”
-조나단 대위입니다.
“내게 전해야 하는 내용 토시하나 빠트리지 말고 말해!”
성현은 헬기의 기수를 북으로 향하면서 우도로 오고 있는 헬기에 무전을 쳤다.
-먼저 폭풍우로 소식이 늦었습니다. 사령관님의 부인되시는 분이 I-3 양자산 대피소에 계셨는데 그쪽에서 사령관님의 부인임을 알고 이틀 전 저희 대피소로 호위와 함께 와계십니다. 그리고 해미양은 전일 대피소를 나선 후 제가 출발하기 까지 돌아오시지 않았습니다. 이상입니다.
성현은 무전에 답도 하지 않고, 이를 뿌드득하며 부서지게 갈았다.
“이 개 같은 상황에 연루된 것들은 단 하나도 가만두지 않는다. 네 년이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왜 왔는지는 중요하지 않아. 해미한테 무슨 일이 있으면 모두 곱게 쳐 죽이지 않겠다.”
성현은 단번에 해미가 대피소를 떠난 이유를 파악해 냈다. 분명 바람난 아내가 오고 나서 무슨 일을 벌였음을 유추했다.
이는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누구든 짐작가능한 일이었다.
성현은 한계에 달한 항속임에도 조종간을 계속해서 밀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빨리, 1분 1초라도 빨리 가고자하는 생각에 마음이 급했다.
“그래 스킬!”
*액티브*
[특수]무기기술자
-공격력, 속도, 범위, 명중 50% 증가 (적용 시간 10분, 재사용 대기시간 1시간)
성현은 직업 전용 스킬을 사용했다.
후아악!
한계 항속인 400㎞에 육박하던 속도가 찰나의 순간 600㎞에 이르렀다.
가공할 속도로 헬기는 창공을 직선으로 가로지르며 앞으로 튀어 나갔다.
* * *
성현이 탄 헬기가 청계산 대피소 상공에 도착하자 미친 듯이 하강을 시작했다.
쿠쿵!!
거칠다 못해 막무가내인 착륙이었다.
헬기의 하부가 찌그러지며 크게 파손 되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무기를 적재하고 있지 않아 충격에 따른 유폭은 일어나지 않았다.
성현은 케노피가 열리자마자 뛰어내려 대피소 입구로 무시무시한 속도로 달려 나갔다.
입구 경계 중이던 대원들이 불시착에 가까운 착륙 광경을 보고 달려 나오고 있지만, 성현은 무시하고 입구 경계 초소에 도착했다.
“단결!”
“동원이 지금 어디 있나?”
경례를 한 대원은 성현의 무시무시한 표정을 보고, 얼어붙었다.
“동원이 어디 있어!”
성현에게 광포한 기운에 억눌린 대원 하나가 떠듬떠듬 입을 열었다.
“주, 중령님은 지금 집하장 경비대 본부에 계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내가 왔다고 전하고 나와 있으라고 전해!”
성현은 할 말을 마치고 차량도 없이 가공할 속도로 뛰어 갔다.
30에 도달한 근력 스텟의 힘으로 거의 시속 70㎞에 가까운 속도로 성현은 내달렸다.
나선형 내리막길을 순식간에 지나친 성현은 어느덧 집하장에 도달하고 있었다.
경비대 본부로 향한 성현이 막 부대 입구에 도착할 때 최동원 중령이 본관에서 나서고 있었다.
“단결! 미리 무전이라도 주시지 그러셨습니까?”
최동원 중령이 그다지 밝지 못한 얼굴로 성현에게 인사했다.
“동원아, 지금 내가 얼마만큼의 인내심을 발휘하는지 모를 거다. 지금부터는 내가 묻는 말에만 답해다오.”
성현의 쇠 끓는 목소리에 진한 살기마저 감돌고 있었다.
“혀, 형님.”
최동원 중령이 놀라 사석에서나 하는 호칭으로 불렀다.
성현의 이런 모습을 과거에 한번 본적이 있었다.
7년 전 소말리아 작전 중에 자신이 부상을 입고, 적들에게 사로 잡혔을 때 단 한번 성현이 미친 듯이 살육을 자행한 적이 있었다.
지금의 모습이 그때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는 게 최 중령의 생각이었다.
“해미의 행방은 찾았나?”
성현은 상당히 과하게 해미에게 집착 아닌 집착을 하고 있었다.
같은 각성을 하면서 유대감이 크게 증폭되고, 세상에 자신을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여서 더욱 그런지도 몰랐다.
해미의 존재 자체가 성현에게 그 무엇보다 큰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아직 입니다.”
성현의 얼굴 근육이 꿈틀대며, 일그러졌다.
성현은 당장이라도 자제력을 잃을 것 같은 느낌에 잠시 눈을 감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지금 폭주하게 된다면 어찌될지 스스로 두려웠다. 두 번 다시 본래의 자신으로 돌아가지 못할 것만 같았다.
“후-우, 그년이 혼자 오지 않았다고 들었다. 데려온 놈들에 대해 자세히 말해봐라.”
“네에?”
“내 마누라라고 하는 그년을 데려온 놈들이 누구냐고 물었다.”
“혀, 형수님을 말씀하시는 건 아니시죠?”
성현이 눈을 돌려 최 중령과 마주 봤다.
이글거리며 타오르는 성현의 눈을 최 중령도 감히 마주보지 못하고 눈을 내리깔았다.
“내 탓이겠지.”
성현은 자신을 탓했다.
“미리 말을 했어야 했는데. 늦은 거 같다. 우선 그년은 더 이상 내 마누라가 아니다. 바람난 그냥 더러운 년일 뿐이고, 세상이 이지경이 되면서 이혼을 미처 못 했다.”
최동원 중령에게 사전에 이러한 내용을 알려줬었다면, 지금과 같은 사단이 나지 않았을지도 몰랐다.
“그, 그런 일이…….”
“만약 그년이 와서 아무런 일이 없었다면 나는 그 일을 덮고 모질게도 질긴 목숨 그냥 살게 했을지도 모르겠다. 한데 지금은 아니다. 만일 해미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난 절대 용서할 생각이 없다. 다시 묻는다. 그년 데려온 놈들이 누구냐?”
“사실…….”
최 중령은 양자산 대피소와 얽힌 일들을 상세히 알려주고, 병력들도 지금 대피소에 들어와 있음을 알려줬다.
“지금 대피소에 있다는 양자산 병력 모조리 잡아들이고 가둬 놔. 결코 좋은 뜻에서 온 놈들이 아닐 거다.”
최동원 중령도 돌이켜보니 이상한 점이 한둘이 아니었다. 이유진을 데려다 주고 굳이 복귀를 미루고 있는 것이든 뭐든.
항시 이유진 옆에 붙어있는 신동호 대령이 그저 호의로 그러한 게 아님을 성현의 말을 듣고 모든 게 퍼즐 맞추듯 맞춰졌다.
“이 개새끼들이 설마!”
“대원들에게 전달하고 너는 나를 따라와라. 우선 줄리부터 봐야겠다.”
최동원 중령이 지휘 본부에 무전을 보내고 전투부대와 전 경비 병력을 불러 모았다.
그리고 양자산 병력을 구금하도록 지시했다.
대원들의 안전을 위해서 조금이라도 반항하는 놈은 그 자리에서 사살해도 좋다는 지침과 함께.
부르르릉.
차량을 몰고 있는 최동원 중령은 성현에게 미안한 마음뿐이었다.
좀 더 성현의 마음을 헤아리고 있었다면, 해미와 바람난 성현의 부인이 만나는 것만은 어떻게든 막을 수 있었을 거다.
그리 했다면 해미가 대피소를 떠나는 최악의 상황만은 어떻게든 모면했을 터였다.
자신의 부족한 대처로 일이 크게 번졌다 생각했다.
“형님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동원아, 그만.”
성현은 최동원 중령이 미흡한 점은 있었지만, 이를 탓할 생각은 없었다.
어찌되었든 모든 게 자신을 생각해서 한 행동이었고, 나름 노력했음을 보지 않아도 짐작하고 있었다.
“자책할 필요 없다. 무슨 일이 있어도 해미는 내가 다시 찾아 올 거다. 그때 해미에게 미안한 게 있다면 사과해라. 그거면 된다.”
“알겠습니다, 형님.”
최동원 중령은 가속 페달을 힘껏 밟으며, 거주지로 향했다.
* * *
“마땅히 돌봐줄 사람이 없어 잠시 이곳에 데려다 놨습니다.”
성현은 보육원 앞에 도착하자 차에서 내려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엉성하게 만들어진 작은 놀이터의 구석에 줄리가 멍하니 앉아 있는 모습이 보였다.
내 자식은 아니지만, 처음 볼 때 부터 남다른 정을 느끼고 있는 아이였다.
가슴 깊은 곳에서 애틋함이 밀려온다.
그리고 미안했다.
격지 않아도 될 일을 또 한 번 겪게 했음이다.
“줄리야.”
성현의 목소리에 작은 줄리의 고개가 돌아봤다.
“……파파? 파파!”
줄리가 큰 눈망울에 가득 눈물을 머금고 달려와 성현의 품에 안겼다.
“으아앙. 파파 왜 이제 왔어. 마마 찾아줘 마마.”
성현은 줄리를 꼭 보듬어 안고 ‘그래그래’ 하며 등을 토닥였다.
한참을 훌쩍이던 줄리를 겨우 진정시킨 성현은 내려놓고 눈을 마주보았다.
“파파가 반드시 마마 찾아올 테니 걱정 마. 알겠지.”
“정말? 파파 약속해. 꼭 마마 데려와야 돼!”
성현은 애처로운 눈길로 줄리를 보다. 줄리의 얼굴에 난 흔적을 보고, 이를 악물었다.
“……줄리 얼굴이 왜!”
성현이 줄리의 왼쪽 뺨이 퍼런 멍 자국을 보고 최동원 중령을 바라봤다.
차분한 목소리였지만, 눈빛만큼은 사람을 태워죽일 정도로 뜨거웠다.
줄리가 놀랄까 어떻게든 화를 억누르고 있음이다.
“어제 줄리가 해미 씨를 찾아 관사에 갔다 그만…….”
“그래 그랬어. 도저히 인간으로 대접해 줄 조금의 이유도 없네. 차라리 다행이다.”
성현은 어쩌면 안도했다.
한때나마 사랑했던 여자고 함께 살을 부대끼며 살았다.
그러나 지금, 그나마 남아있던 미운 정마저 활활 태워 없어져버렸다.
“줄리야. 파파가 다섯 밤 세기 전에 온다는 약속을 지켰지?”
“응. 파파 약속 지켰어.”
“그럼 이번에도 파파와 약속하나 하자 파파가 다섯 밤 세기 전에 마마도 꼭 데려올게. 우리 줄리 기다려 줄 수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