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5
양자산 토벌 (1)
투타타타.
청계산에서 이륙한 헬기가 정동 방향에 위치한 양자산 인근을 비행 중이었다.
“여기는 I-5 청계산 소속 박성현 사령관이다. I-3 대피소에 착륙 허가를 요청한다. 이상.”
-방문 목적을 밝히기 바란다. 이상.
“김성무 중장님에게 투항 의사를 전달하러 왔다. 그리고 선물로 드릴 공격 헬기 한 대를 가져가는 길이다. 이상.”
-잠시 대기 바란다. 대피소 상공 5㎞ 안으로 접근은 불허한다. 이상.
성현은 상대측의 요구대로 5㎞ 인근 상공을 돌며 무전이 오기를 기다렸다.
-여기는 I-3 대피소다. 대피소 기준 남동 방향 1.2㎞ 부근 골프장으로 착륙을 허가한다. 유도에 따라 주기 바란다. 이상.
“알겠다, 이상.”
양자산 대피소에도 입구 부근에 상당한 넓이의 공간이 있었지만, 성현의 착륙을 허용 하지는 않았다.
지휘부에서는 한 짓이 있으니 조심스런 태도를 취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흥! 도둑이 제 발 저린 다는 거지.”
성현은 같잖은 놈들의 생각을 비웃으며, 지정한 위치로 헬기를 이동시켰다.
상공에서 내려다 본 골프장은 산 중턱을 깎아 조성되어있었다. 도합 18개의 홀로 만들어진 골프장이었다.
“저기군.”
골프장의 주차장으로 보이는 곳에 붉은 색의 연막탄이 피어오르고 있었고, 그 주변에는 다수의 병력이 기다리고 있었다.
후위위윙.
헬기를 무사히 착륙시킨 성현은 엔진의 시동을 꼈다. 완전히 로터가 정지하자 캐노피를 열고 지상에 내려왔다.
“당신이 박성현인가?”
“맞습니다.”
소령 계급을 단 군인이 손에든 태블릿으로 성현과 사진을 비교하며 물었다.
성현이 헬멧을 쓰고 있지만 바이저를 열고 있어 상대가 얼굴을 알아보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주민등록증에 있는 사진이 몇 년 지났음에도 본얼굴과 크게 달라진 점은 없었다.
“투항하겠다고 한 게 맞나?”
“예, 그리고 김성무 중장님께 선물로 드릴 이놈을 가지고 왔죠.”
성현이 헬기의 동체를 두드리며, 웃는 낯으로 대답했다.
조금은 가벼워 보이면서도 낮은 자세로 임했다.
괜히 놈들에게 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말투에도 상당히 신경을 썼다.
“신동호 대령님은 어디계시고, 당신 혼자만 온 거지?”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는 소령이 날카로운 눈매를 번뜩였다.
“아-, 신 대령께서도 한두 시간 안에 도착할 테니 걱정 안 해도 될 겁니다.”
“흠, 출발은 하셨다는 거군. 알겠다.”
소령은 신동호 대령이 원래 계획과는 달리 성현을 회유해 투항시켰다고 생각했다.
”그나저나 중장님을 뵙고 인사도 드려야 할 텐데…….”
“안 그래도 뵙게 될 거다.”
성현은 상대 장교가 상당히 냉소적인 태도로 일관하는 것이 거슬렸지만, 그것도 잠시다 생각하고 속없는 사람처럼 실실 웃으며 참아냈다.
“확인해.”
소령이 옆을 돌아보며 말하자.
두 명의 군인이 성현의 몸을 수색하기 위해 다가왔다.
“소령님. 군복 안에 이상한 옷을 덧입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헬멧은?”
몸수색을 하던 군인 하나가 성현의 군복 안쪽의 라이트 아머와 머리에 쓴 헬멧을 보고 말했다.
“얼마 전 부상을 입고, 부득이 하게 깁스 대용으로 쓰고 있는 겁니다. 전신 화상이라 어쩔 수 없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놔둬. 너는 헬기를 끌고 대피소로 가도록해. 나머지는 모두 이동한다.”
독특한 복장이지만 무기를 숨길만한 특이 사항은 없던 터라 소령은 그냥 두게 했다.
그리고 뒤에 대기하고 있던 조종사에게 헬기를 가져오게 하고, 성현을 데리고 장갑차에 올랐다.
“이정길 소령이다. 청계산 소속 박성현임을 확인했다. 신동호 대령님도 곧 도착한다는 전갈이다. 박성현을 데리고 우리는 지금 출발 한다. 이상.”
-본부. 확인했습니다. 중장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이상.
무전을 끝으로 장갑차는 출발했다.
골프장에서 대피소 까지는 비포장도로였지만, 비교적 잘 닦인 길이 나있었다.
포장도로에 비해 승차감은 형편없었지만, 참아줄만 했다.
삼사 분 정도 가파른 길을 오르고 나니 평평한 지형에 장갑차가 들어섰다.
그리고 곧이어 포장된 도로를 타고 내리막으로 내려감을 알게 되었다.
“이제 터널에 들어섰나봅니다?”
성현의 물음에도 소령은 별다른 대꾸가 없었다.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리는 게 비웃고 있음을 충분히 알게 했다.
묘하게 기분을 더럽게 만드는 자였다.
“왜, 여기까지 오니 겁나나?”
“겁날게 뭐 있겠습니까? 중장님한테 투항하고 선물까지 가져왔는데 내치시기야 할까요. 하하.”
“흥, 딴에는 그렇기도 하군…….”
이후 성현도 더는 말을 붙이지 않았다.
투두둥둥.
장갑차가 서서히 감속하며 완전히 정차했다.
후방 해치가 열리고, 10여 명의 군인들이 밖에 서 있었다.
“내려라. 중장님이 기다리고 계신다.”
성현은 장갑차에서 내리며 주위를 둘러봤다.
‘우리 집하장과 비슷한 곳이다.’
수십 미터의 높이의 천장이 눈에 보였다.
아치형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공동이었다.
“따라와라.”
자신을 데리고 온 소령이 앞장서고 양옆과 뒤에 여러 명의 군인들이 성현을 감싸고 걸어갔다.
* * *
너른 회의실 안에는 삼십에 가까운 군인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부관으로 보이는 자들과 헌병차림의 군인들도 문과 벽 쪽에 시립해 있었다.
“자네가 박성현인가?”
“네, 맞습니다.”
“크흠. 내가 김성무 중장이다. 어찌 되었든 잘 됐구먼. 투항한다고 했다지?”
“신동호 대령이 중장님 휘하에 있다는 소리를 듣고 바로 그리하겠다고 했습니다. 이리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그래? 크하하하.”
김성무 중장은 기분이 몹시 좋았다.
신 대령은 제거하겠다고 했지만, 일이 잘 풀렸는지 알아서 굽히고 들어왔다.
신 대령이 오면 크게 칭찬해 계급도 올려줄 생각까지 했다.
“여기 계신 분들이 모두 이곳 I-3 대피소를 대표하는 분들이시군요.”
“이제 자네도 한 자리 해야지. 내 휘하에 들었고 전력도 크게 보탰지 않나. 군에서 중사로 제대 했다고 했지? 어디보자 대위 정도면 너무 낮지도 않고 적당해 보이는군. 어떤가?”
김성무 중장은 투항했다고는 하나 성현을 크게 쓸 생각이 없었다.
그리고 조금만 이상한 낌새가 있으면 제거할 생각이었다.
지금 대위를 시켜준다는 것도 성현의 반응을 보기위한 한번 떠보는 수작질에 지나지 않았다.
“하-아, 이 새끼 하는 짓이 꼭 삼류 양아치 삥 뜯고, 차비 주듯 씨불이고 있네.”
“…….”
한순간에 돌변한 성현의 태도와 말에 입만 벙긋하며 누구도 말을 잇지 못했다.
“저, 저…….”
“저저, 뭐! 이 쌍노무 새끼야. 마침 한 자리에 다모여서 수고를 덜어주네 니들 다 뒤졌으니까. 손잡고 저승 갈 준비나 해라.”
성현이 헬멧의 바이저를 내리며 말했다.
“잡아!”
성현을 이곳까지 데려온 이정길 소령이 소리쳤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헌병과 군인들이 성현을 덮쳐왔다.
타타타탕.
하지만 그들이 움직이기도 전에 성현의 손에는 자동소총 한 자루가 들려있었고, 맹렬한 기세로 불꽃을 뿜어냈다.
퍼퍼펑. 퍼겅!
달려오던 병사들의 몸통이 벌집처럼 관통되어 피 비를 뿌렸다.
몸통이며 머리가 폭죽 터지듯 폭발해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런다고 살 것 같냐.”
모두 현역 군인들이라 그런지 엄폐하는 속도가 기가 막혔다.
하지만 성현은 그들을 비웃었다.
타타타타탕!
총탄이 두터운 테이블을 관통해 스펀지처럼 부수고 지나갔다. 나무 파편들이 비산했고, 뒤에 숨은 군인들의 비명이 끊이지 않았다.
성현은 긴 테이블을 돌며 총을 난사했다. 어차피 살려둘 놈 하나 없었다.
이곳에 오기 전 양자산 대피소에 대한 충분한 정보를 들었다. 이전 청계산 대피소의 지휘부 놈들보다 더한 놈들이었다.
충분한 거주 공간이 있음에도 관리하기 편하다는 명목으로 수만 명의 민간인들을 비좁은 공간에 모아놓고 사육하다시피 했다.
그리고 젊고 예쁜 여자들은 유부녀든 뭐든 상관치 않고 강제 추행과 성폭행을 일삼았고, 반항하는 이들은 본보기로 그 자리에서 사살했다.
그런 짓을 하는 놈들 모두가 한 자리에 모여 있었다.
해충 같은 놈들은 박멸하는 게 모두에게 이로운 일이다.
타타타탕.
회의장은 한순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바닥에 엎드린 놈들의 등과 머리를 관통한 탄환들이 바닥까지 파고들었다.
회의장 벽면은 시뻘건 핏물들이 흘러내렸고, 바닥에 흥건하게 고여 있었다.
“사, 살려-.”
퍼펑! 한 놈이 급히 회의장 문으로 달려가다 총탄에 머리통이 폭발하듯 터져 나갔다.
벌컥!
회의장 문이 열리며, 한 장교를 필두로 10여명의 군인들이 들이 닥쳤다.
“이, 이런! 모두 사격!”
따다당. 탕탕.
티팅팅팅.
권총과 자동소총에서 발사된 탄환들이 성현의 아머에 맞고 사방으로 튕겨 나갔다.
성현은 날아드는 총탄을 고스란히 받아들였다.
장교와 병사들이 미친 듯이 방아쇠를 당기며 탄창이 모두 소진될 때까지 쏘아 댔다.
“다했냐? 그만큼 쏴댔으면 미련도 없겠네.”
성현은 느긋하게 창고에서 꺼낸 새 탄창을 갈아 끼웠다.
“잘 가라.”
남을 죽일 생각을 했으면, 그만한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하는 법이다.
“히익!”
타타타탕.
짧은 헛숨을 삼키던 장교는 머리통이 사라져 바닥에 널브러졌다. 걸쭉한 희고 멀건 핏물들이 사방으로 튀어 나갔다.
장교를 관통한 탄환이 뒤에 있던 병사를 뚫고도 힘이 남아 복도 끝까지 날아가 박혀들었다.
넋을 놓고 있는 병사들도 예외는 없었다. 모두 중기관총에 관통된 듯 갈가리 찢겨져 나뒹굴었다.
성현은 회의장을 돌며 살아있는 모든 이들을 확인 사살했다.
그리고.
“일어나 이 새끼야.”
김성무 중장이 테이블 밑에 머리를 처박고 있다 성현의 목소리에 덜덜 떨며 머리를 들었다.
“사, 살려주시게 시, 시키는 대로 다 하겠네.”
“까는 소리 하지 말고 일어서. 어라, 안 일어서? 지금 여기에 바람구멍 내줘?”
성현이 김성무 중장의 머리맡에 총구를 들이대며 말하자 김 중장이 벌떡 일어섰다.
“허억!”
김성무 중장의 눈에 회의장의 처참한 모습이 고스란히 들어왔다.
온전한 이가 단 하나도 없었다. 몸통의 3분의 1이 사라진 시신이 테이블위에 쓰러져있고, 머리통 없는 시신이 주변에 산재해있었다.
“대피소 전체에 방송이 가능한 곳으로 안내해.”
* * *
“아아!”
성현이 있던 건물 같은 층에 마침 상황실이 있었고, 멀리 가지 않고도 방송 장비를 쓸 수 있었다.
“이거 되는 거 맞지?”
“네, 넵. 스, 스피커를 타고 우, 울리는 목소리가 들리지 않으십니까?”
“어, 그러고 보니 그러네.”
상황실안에는 단 한 명의 병사를 제외한 모두가 성현이 쏜 총탄에 저승행 열차를 탔다.
처음부터 죽일 의도는 없었지만 먼저 발포했고, 그런 상황에서 봐줄 성현이 아니었다.
“모두 잠시 방송에 귀 기울여 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I-5 대피소 사령관입니다. 현시간부로 I-3 대피소는 저의 관할 아래에 있습니다. 상급 지휘관들은 모두 즉결처분되었고 김성무 중장은 본관에게 체포되어 있습니다.”
대피소 전역에 울리는 방송에 모든 거주민들이 하던 일을 멈추고 집중해 들었다.
“일반 거주민 여러분에게는 위해를 가할 뜻은 없습니다. 안심하시고 자신이 거주하던 곳으로 잠시 피해 계시기 바랍니다. 전투에 휘말리게 되면 위험합니다. 이점 반드시 숙지해 주시기 바랍니다.”
거주민들은 각 구역에서 할당된 일을 하다 성현의 방송을 듣고 어리둥절했다.
대관절 무슨 일인지 몰라 자신들을 관리하는 이들의 눈치를 살폈다.
어쩔 줄 모르는 건 대피소 관리직에 있는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일단은 윽박질러 거주민들을 겁박해, 함부로 움직이지 못하게 하고 있었다.
“혹시 이런 상황에서 거주민들을 붙잡고 있는 놈들은 상황이 종료되면 모두 잡아들일 겁니다. 경중에 따라 벌을 받게 될 겁니다. 경거망동 하지 말기 바랍니다. 때늦은 후회를 하고 반성을 해도 자비는 없습니다.”
시기적절한 방송에 눈치 빠른 이들은 거주민들을 피하게 하고, 자신도 살길을 찾아 도망쳤다.
“아-, 그리고 이 방송을 듣는 군인들은 모두 무장 해제하고 대피소 입구로 나가기 바랍니다. 그럼 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적대행위를 하거나 반항하면 필히 죽을 겁니다.”
성현은 한 명이라도 더 살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다한들 모두를 살릴 의무나 책임 따위가 있지는 않았다.
“끝까지 저항 할 사람들은 해도 된다. 선택은 니들이 한 거고 결과도 니들 몫이니까.”
확실하게 경고를 하고 정리할 생각이었다.
“자-, 이정도면 알아들었을 테고… 슬슬 시작해야지. 그전에…….”
성현이 고개를 돌려 구석에 풍 맞은 듯 떨고 있는 김성무 중장을 바라봤다.
“마지막으로 할말은?”
“살려, 살려 주시게! 시, 시키는 대로 다 하지 않았나. 제, 제발!”
“쯧,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고 했지. 근데…. 난 그런 게 안 되더라. 어떻게 죽도록 미운데 죄만 미워하고 인간이 용서가 돼? 죽일 놈은 죽일 놈이고, 살릴 놈은 살리는 게 나한테는 인지상정이다. 잘 가라는 말은 안하마. 지옥에나 가라.”
타앙!
수만 명의 생살여탈권을 한 손에 쥐고 폭정을 일삼던 그의 마지막은 비루했다.
성현에게 구차하게 목숨을 구걸하다 비참하게 끝이 났다.
머리 없는 시신이 뒤로 넘어갔다.
“넌 딴 데 가지 말고 방송하고 있어라. 군용 회선 모두 열고 무전으로 내가 한 말과 같이 전달해. 내가 한 말 기억하지?”
“네, 넵!”
“그래. 잘하고 있으면 내가 특별히 넌 좀 봐주마. 잘해라.”
성현은 병장 계급을 단 군인의 어깨를 한번 두드려 주고 상황실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