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판멸망한 세계의 게이머-48화 (48/176)

# 48

양자산 토벌 (4)

경기도 평택의 캠프 험프리스.

미 육군 제 2보병사단 관할의 전투항공여단으로 다수의 공격 헬기와 수송 헬기 등이 있는 항공지원 여단이다.

성현은 필요한 물품과 의도했던 대로 상당수의 기체들을 챙길 수 있었다.

이후 성현은 시간을 지체치 않고 캠프 험프리스를 나섬과 동시에 우도로 향했다.

정확히 성현이 우도를 떠난 지 7일째 되는 날이었다.

“어쭈, 이것봐라.”

우도에 도착해 숙소로 사용하던 펜션 상공에 이르러 내려다보니, 수영복인지 속옷인지만 입은 대원들이 일광욕을 하고 편을 나눠 축구가 한참이었다.

성현은 헛웃음이 나왔다.

“여긴 딴 세상이네.”

어쩌면 머지않은 시점 제주도에서의 생활이 저리 되지 않을까 성현은 생각했다.

그리고 살짝 약이 오르기도 했다.

누구는 생고생을 하며 이리 뛰고 저리 뛰어 다녔는데 신선노름 중인 대원들이 얄밉기도 했다.

성현의 헬기가 펜션 앞 공터에 착륙하자 어슬렁거리며 나타난 두식이 화들짝 놀라 경례를 했다.

“다, 단결!”

두식은 소식을 전하러온 전령으로 생각했는데 성현임을 확인하고 깜짝 놀랐다.

“세월 좋아 졌네. 전부 집합!”

성현이 집합을 외치고 1분이 되지 않아 제주도 정찰팀 전 대원이 모여 들었다.

“어쭈구리 복장 봐라.”

성현은 기도 안찬다는 표정이었다.

급히 군복을 입었던 터라 단추가 엇나간 이도 있고, 지퍼를 제대로 채우지 못한 대원도 몇몇 있었다.

그리고 대부분이 군화는 어디 팔아먹었는지 신고 있지 못했다.

“앉으면서 정신, 일어서면서 통일. 시작!”

““정신!””

““통일!””

미군들이 많았던지라 영어로 말하던 공군소속 대원들도 성현의 눈치를 보다 어느새 한국어로 말하며 기합을 받았다.

30분후.

““저엉-신.””

““토옹이일.””

땀을 비 오듯이 흘리며 어깨동무 중인 대원들이 파도를 탄다.

“그만! 너희들이 할 일이 없어 쉬고 있는 건 본관도 충분히 이해한다. 쉴 수 있을 때 충분한 휴식은 나도 장려하는 바다.”

성현도 이들의 행태가 마냥 못마땅하지는 않았다.

다만.

“하지만! 그 누구도, 단 한 명도 경계 하는 놈들이 없었다. 기본적인 수칙조차 지키지 않은 너희들은 직무유기다. 만약! 이 헬기가 적이었다면! 이곳에 적들이 침투했다면! 니들은 모두 죽었다. 내말이 틀린가!”

““맞습니다!””

“이번은 이 정도에서 그치지만 차후에 이와 같은 일이 또 발생한다면 모두 각오하는 게 좋을 거다 알았나!”

““예! 알겠습니다!””

모두가 하나가 되어 답을 하고 거친 숨들을 헐떡인다.

“천두식, 강용칠외 전원 해산!”

““해산!””

“니들은 좀 따라와라.”

성현은 두식과 용칠을 데리고 한적한 바닷가 쪽으로 갔다.

“설명해 봐.”

사실 두식과 용칠은 좀 억울한 면이 없잖아 있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모두가 순번을 정해 경계임무를 서고 군복을 벗은 적이 없었다.

성현이 도착하기 1시간 전 쯤부터 팀을 나눠 축구 시합을 시작 했다.

내기는 지는 쪽이 당일 저녁 준비와 경계를 맡기로 했다.

소소한 내기였다.

하지만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정말 시기가 절묘하게 맞아 떨어져 지금에 이른 것이다.

듣던 성현은 변명 같긴 했지만 두식이나 용칠이 거짓말을 고할 이들은 아니어서 좀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험! 어찌되었든, 잘못한건 잘못한 거다. 좀 잘하자 인마.”

“……네, 대령님.”

둘은 풀죽어 대답하고 고개를 숙였다.

“고개 들고, 어깨 펴라. 사내놈들이 그만한 일로 그러냐.”

덩치에 안 맞게 소심한 둘을 성현은 다독였다.

“내가 이리온건 다름이 아니라 전해줄 이야기도 있고 공군들은 따로 할 일이 있다. 가자, 모두 모아놓고 이야기 해줄 테니.”

성현은 대원들을 모아놓고 지난 일들에 대해 알려줬다. 다른 대피소와 충돌이 있었고 대부분의 병력과 거주민들을 흡수한 사실을 말해줬다.

그리고 이곳에 남은 공군들에게 하나의 임무를 하달했다.

“전투는 필요 없으니 모두 각자 한 대씩 몰도록 해라. 그리고…….”

모두에게 각자 단독 비행하도록 지시한 성현은 일출 2시간 전인 새벽 2시 30분경부터 제주 전역에서 몰이를 시작해서 동쪽으로 모으도록 했다.

좀비들을 모아 해가 뜰 시간까지 몰기만 한다면 당연히 근처에 한정된 장소에 피할 수밖에 없었다.

“빠르면 3일, 늦어도 5일 안에 돌아온다. 그때까지 매일 같은 시간에 시행하면 된다.”

그렇게 차곡차곡 모으게 되면 성현이 돌아와 좀 더 쉽고 많은 수의 좀비들을 빠르게 해결이 가능했다.

어쩌면 단 한 번의 사냥으로 제주도 대부분의 좀비들을 처리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모두 알아들었나?”

“네, 대령님. 충분히 이해했습니다.”

“좋아. 그리고 영기 너는 계속 여기 남아서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공군들을 호위해라.”

“네, 대령님!”

전투부대 5팀장인 김영기 중위가 힘차게 답하자 성현은 회의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크흠! 출출한데 밥은 먹고 가자.”

성현이 두식을 바라보며 고갯짓을 하자 두식은 성현이 뭘 원하는지 단번에 알아차리고 잽싸게 움직였다.

“아이고, 안 그래도 어제 저녁에 잡아둔 활어가 아주 물이 좋습니다.”

성현은 말만으로도 군침이 돌아 ‘꿀꺽’하며 목젖이 꿈틀댔다.

앞서보다 준비가 잘된 탓인지 매콤한 매운탕에 갖은 양념과 채소가 곁들어지고, 두툼한 생선회가 썰어졌다.

성현이 우도에 온 목적은 원래 이것이었고 오는 도중에 생각해낸 좀비 몰이는 부가적인 것임을 아는 이들이 없었다.

*  *  *

I-3 대피소에 돌아온 성현은 대피소 입구 정리를 손수 하고 있었다.

번쩍!

다 부서지고 기동 자체가 불가능한 전차와 자주포를 내구도 회복스크롤로 고쳐내어 창고에 수납했다.

짝짝짝.

구경하는 대원 하나가 자기도 모르게 박수를 치다 뻘쭘해 했다.

내일부터 거주민들을 대대적으로 수송할 예정이기에 충분한 공간 확보는 필수였다.

청계산 대피소 공터에 비해 좁다고는 하지만 이곳역시 축구장 2개 넓이는 되는 넓은 공간을 가지고 있었다.

치누크 헬기의 경우 10대는 능히 동시 이착륙이 가능한 공간이었다.

“다했다.”

성현은 천마 대공 궤도장갑차 5대, K9 자주포 10대, K-21 보병전투 장갑차 5대, K-2 흑표 전차 7대를 고치고 창고에 수납하는데 10여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

전혀 힘든 일이 아니었지만, 이를 지켜보는 이들에겐 너무도 대단하게만 보일뿐이다.

성현을 바라보는 대원들의 눈빛이 초롱초롱 빛이 난다.

다음날.

오전 일찍부터 거주민들에게 방송을 통해 이동을 지시했다.

I-3 대피소 거주지에는 대규모 집단수용 시설이 11개있었고, 한 곳당 대략 3천여 명에 이르는 이들이 모여 살고 있었다.

개별 거주공간이 충분히 남아돌았지만, 이전 지휘부는 거주민들에게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성현은 그 점이 몹시도 화가 나고 안타까웠다.

그래서 더욱 놈들이 용서가 안 되기도 했다.

대피소의 집하장과 같은 용도로 쓰이는 이곳 대공동에 거주민들의 발걸음이 끊이질 않았다.

오늘은 A, B 두 개의 시설에 있는 거주민들을 수송할 계획이었다.

거주 구역은 대공동과 수평으로 연결된 터널 안쪽에 있었고, 폭 30여 미터에 이르는 입구 부근에는 장갑차와 험비로 중무장한 병력이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하고 있었다.

“김성근 씨 맞습니까?”

“네, 제가 김성근 맞습니다.”.

“옆에 계신분이 부인이신 조영해 씨와 따님인 김주희양 맞으시죠? 근데 둘째 따님은 안계십니까?”

“네, 제 처와 딸아이가 맞습니다. 그리고…. 제 둘째 딸아이는 죽었습니다.”

면담중인 대원이 태블릿에 검색된 사진과 거주민을 비교하며, 확인을 했다.

“크흠, 죄송합니다. 일단 신원 조사는 끝났고, 여기 보시면 이전 대피소 지도부 명단이 있습니다. 피해사실이 있으시면 그 해당 이름 옆에 그대로 적으시면 됩니다. 직접 당하신 게 아니더라도 상관없으니 마음 놓고 적어주시면 됩니다. 단, 거짓일 경우 나중에 무고죄로 처벌 받으니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경계 중인 대원70여 명을 제외한 40여 명의 부대원들이 개인 또는 가족 단위의 사람들과 면담하고 있었다.

인적 사항을 파악하고, 사전에 배포된 대피소 지도부 명단을 가지고 죄지은 놈들을 찾아 행위를 입증할 증언을 모았다.

김성근이라는 한 가족의 가장이 뭔가를 적으려다가 머뭇거리고 있었다.

“걱정 마시고 적으시면 됩니다. 저희 사령관님은 너그럽지만 나쁜 놈들한테까지 관용을 베풀지 않습니다. 반드시 처벌하고 두 번 다시는 놈들과 마주칠 일이 없을 겁니다.”

이미 이와 비슷한 거주민들이 많았고, 면담 중인 대원은 이들을 편하게 하는 멘트를 반복하고 있었다.

“저, 정말입니까? 그 개만도 못한 놈들을 벌주신다는 게 사실입니까?”

김성근은 면담장으로 사용되는 작은 천막에서 아내와 딸을 내보내고 홀로 남아 질문을 했다.

“예. 반드시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이상의 벌이 내려질 겁니다.”

김성근이 혹시나 하며 물었는데 속 시원한 답을 해주는 군인의 손을 덥석 하고 잡았다.

“크흐흑. 이박명이라는 중위 놈이 제 처와 두 딸을 강간했습니다. 그것도 제가 보는 앞에서… 흐흐흑. 그리고 둘째 딸아이는 충격으로 그만 자살하고 말았습니다. 그놈을 제 손으로 찢어 죽이고 싶었지만, 못했습니다. 부탁드리건대 재판이나 벌을 내리실 때 제가 볼 수 있게 해주십시오. 흑흑흑. 부탁드립니다.”

여태 백여 명에 가까운 이들을 면담했지만, 이번은 좀 달랐다.

으드득.

듣고 있던 대원의 이가 갈리고, 얼굴이 시뻘게져 혈압이 치솟았다.

“걱정 마십시오. 제가 반드시! 사령관님께 직접 말씀 올려서라도 그리하게 해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리만 해주신다면 죽어도 이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김성근은 입이 달토록 감사하다 말하면서 눈물을 떨어뜨렸다.

다른 면담장도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어떤 대원은 같이 울었고 복장이 터지는 지 소리까지 질러댔다.

성현이 멀리서 지켜보다 문제가 생겼나 싶어 와봤는데, 그만 꼭지가 돌고 말았다.

“이 시발!! 개새끼들이 진짜 사람 새끼들이냐. 모두 철저히 조사해 단 한 놈도 놓치지 마. 절대 그냥 두지 않는다.”

성현은 화가 가시지 않는지 연신 콧김을 뿜어내다.

당장 지금 조사된 놈들을 찾아내 쳐 죽이고 싶었지만 참았다.

그 일을 할 사람들은 따로 있었고, 성현의 몫이 아니었다.

그렇게 많은 우여곡절 끝에 첫날 거주민 수송을 끝마쳤다.

계획보다 많은 도합 6,322명의 거주민들을 청계산 대피소로 이동시켰다.

수송에 사용된 치누크 헬기는 도합 11대였고 한 대당 한번에 33명을 태워 17번 이상을 왕복해 거주민들을 실어 날랐다.

*  *  *

거주민 수송이 시작되고 닷새째 되는 날.

성현은 따로 할 일이 많았다. 하루에 많게는 10번 적게는 5번 이상을 왕복 중이었다.

점령중인 대피소의 물자 중 버릴 것은 버린다고 하지만, 대부분이 실생활에 필요한 물자들이었다.

식량에서부터 의약품, 유류 등 셀 수도 없이 많은 물자들을 옮기고 또 옮겼다.

‘그러고 보니 이거 또 제주도 이주할 때 다시 옮겨야 하지 않나?’

문뜩 든 생각이었다.

누구 따로 시킬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고 성현이 모두 해야 할 일들이었다.

다만 제주도 이주 때는 해미에게 도움을 받을 생각이었다.

혼자서는 엄두를 내기 힘든 일이었다.

오후 3시경이 되자 거주민 수송이 거의 막바지에 다다랐다.

오전 7시부터 면담과 동시에 수송이 시작되었고, 어느덧 그 끝이 가까워 졌다.

“대령님, 마지막 헬기 이륙했습니다.”

“알겠다.”

닷새에 걸친 거주민 수송이 드디어 끝났다.

이제 I-3 대피소에서 할 일은 단 하나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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