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판멸망한 세계의 게이머-52화 (52/176)

# 52

사필귀정 (1)

A380 내부를 둘러보고 계류장으로 내려온 성현은 기체를 창고에 보관하고, 이제 대피소로 돌아갈 생각을 했다.

그리고 자신이 없는 사이 공군과 지상군이 이용할 장비와 탄약들을 적재한 대형 컨테이너 10개를 꺼내어뒀다.

그러다 창고의 한편에 들어있는 물건이 유독 눈에 뛰었다.

“……해 봐?”

성현은 3㎞에 달하는 활주로를 가로질러 그 끝에 다다랐다.

그리고.

쿠쿵.

전장 18.9m, 전폭이 13.5m, 전고 5m.

형상 자체가 다이아몬드 형태로, 일반 전투기에 비해 세련되면서도 날카로운 인상을 강하게 풍긴다.

현존하는 전투기의 제왕.

F-22 랩터 한 대를 활주로에 꺼내 놓았다.

“대피소 활주로에 착륙이 무리라면, 김포나 인천 공항에 들러 헬기로 갈아타는 수밖에. 뭐, 정 안 된다면 아깝지만 어쩔 수 없고.”

성현은 전투기를 타고 복귀할 심산이었다.

이동시간도 줄겠지만 무엇보다 타보고 싶었다.

그리고 착륙이 힘든 상황이 온다면, 비상 탈출까지 고려했다. 아깝기는 하겠지만 스스로의 보신이 최우선이었다.

무리한 도박은 사양이다.

전투기의 유려한 동체를 손으로 쓰다듬던 성현은 훌쩍 뛰어올라 콕핏(Cockpit) 바로 앞에 올라섰다.

캐노피와 맞닿은 한 부분은 터치해 누르자 에어실린더가 작동해 캐노피를 오픈했다.

그리고 숙련된 자세로 콕핏에 엉덩이를 붙이고 자리를 잡았다.

“전투기도 두말할 필요 없는 무기지.”

[특수]무기 전문화

-모든 무기 사용 가능 및 공격력 50% 증가(활성화)

스킬은 예상대로 활성화가 되어 있었다.

조종 레버를 잡자 자연스럽게 랩터의 조작법과 조종법이 떠올랐다.

조종실 실내는 구형 계기가 거의 없었다.

조종석 정면에는 레이저 홀로 그래픽을 응용한 광학 HUD가 있었다.

계기판의 중앙에는 20cm 크기의 컬러 액정 디스플레이가 적용된 PFD(주요 항목표시, 다기능 표시기)가 있고, 양측에는 15cm 크기의 SMFD(보조 다기능 표시기)가 있었다.

터치만으로 조종사가 쉽게 조작할 수 있었고, 판독 또한 용이하도록 설계되어있었다.

“멋진데.”

보기만 해도 황홀한 느낌이다.

성현은 캐노피를 닫고, 시스템의 전원을 켰다.

디스플레이가 켜지고, 각 장치들이 로딩을 마치자 메인 화면에서는 기체의 이상 유무를 자체적으로 점검하기 시작했다.

『 Perfect 』

점검이 끝난 화면에 나타난 문구였다.

성현은 기다렸다는 듯이 아이템인 헬멧을 창고에 넣고, 콕핏에 내장된 헬멧 시현장치(JHMCS)를 머리에 썼다.

헬멧은 각종 사격통제 장치나 사격제원과 비행정보를 담아 조종사가 다른 계기에 의존하지 않고, 직접 보고 판단해 결정할 수 있도록 보조해 줬다.

출발 준비를 마친 성현은 거침없이 조작을 시작했다.

그리고 마지막 터치.

우우우웅, 쿠콰——과.

엔진을 점화했다.

묵직한 동체가 엔진 점화와 동시에 사나운 야수와 같은 포효를 내뱉었다.

“가즈아-!”

성현이 엔진 출력을 올림과 동시에 기체가 활주로를 박차고 튀어 나갔다.

무려 35,000파운드 추력을 내는 쌍발 터보팬(F-119-PW-100)에서 주황빛의 강력한 화염을 토해내며 기체를 밀어냈다.

순간 온몸의 피가 뒤로 쏠리면서 아찔한 감각을 전달해 준다.

성현은 압력복(G-Suit)이 없음에도 6G 이상의 중력을 아무런 무리 없이 받아내며, 이 순간을 즐겼다.

“죽이네!!”

활주로를 벗어난 랩터가 창공으로 솟구치며, 흰 궤적을 수놓고 있었다.

성현은 이에 그치지 않고 계속해서 출력을 높였다.

그러다 갑자기 기체를 수직으로 상승시키기는 초기동을 선보였다. 추력편향 노즐을 채용한 스러스트 벡터링 컨트롤를 사용한 거다.

면도날처럼 날카로운 기동력을 선보이는 랩터는 조종사의 말을 순한 양처럼 받아들이고, 90도 각도로 미사일처럼 하늘 위로 쏘아져 올라갔다.

쿠콰콰-.

애프터버너(후부연소기, 재연소장치)를 켜고 가열 차게 가속했다.

추가 추력이 붙자 상승 속도는 더욱 빨라졌고, 순식간에 지상에서 멀어져갔다.

엔진이 풀가동되며 초음속을 돌파해 인간 한계라 일컬어지는 9G에 도달했고, 이윽고 13G를 넘어서는 미지의 영역에 발을 디뎠다.

“후우-, 이 정도는 나도 힘드네.”

자기 체중의 13배에 가까운 중력을 압력복 없이 맨몸으로 견뎌 내면서 가벼운 숨만 내뱉었다.

삐비삐비.

—Danger—

[63,425 (FT)]

실용 상승한도(6만5천 피트)에 거의 도달함을 알리는 경보음과 함께 전방 표시장치가 붉게 물들었다.

순식간에 상공 20㎞에 도달해 있었다.

“오케이! 알았다, 알았어.”

더 이상은 기체에 무리가 옴을 스스로가 잘 알고 있었다.

“이번에는 반대로…….”

찰나의 순간 기체가 급격한 방향 선회하면서 지상으로 내리꽂히고 있었다.

마치 유성이 지상으로 일직선으로 내리꽂히는 듯했다.

성현은 지상과 불과 500여 미터를 앞두고 기체를 완만하게 선회시키며, 수평 비행으로 전환했다.

새로운 장난감을 받은 아이처럼 성현의 얼굴은 재미있어 죽겠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과거 한화로 무려 1,700억 원짜리 장난감이다.

“우하하하.”

이렇게 크게 웃어보는 게 언제인지 기억조차 가물거린다.

무한에 가까운 자유로움.

온몸에 전율이 흘러넘친다.

전신의 솜털이 일어서고, 발끝에서부터 머리끝까지 치솟는 극에 이른 쾌감에 성현은 정신이 아찔했다.

그 후로도 360도 2회전 한 뒤, 수직과 수평 각각 1회 기동하는 ‘후버 피치’ 비행.

그리고 속도를 천천히 줄이면서 순간 정지 후 상승 자세 그대로 미끄러지듯 내려오는 ‘태일 슬라이드’ 비행 등 초고난도 비행을 즐기며, 성현은 소리쳤다.

“내가 바로 탑건이다! 다 뎀벼!”

놀이가 한참인 성현은 그럼에도 꾸준히 북상해 대피소가 있는 청계산으로 향했다.

F15와 같은 4세대 전투기들은 연료 소모가 극심한 애프터버너를 사용해야지만 초음속 비행이 가능하지만, 랩터는 슈퍼 크루징이 가능해 후방연소기 사용이 없이도 마하 1.7의 속도로 비행할 수 있었다.

대피소까지 약 400㎞ 마하 1.7의 속력으로 15분 남짓이면 도착하고도 남는다.

이미 성현은 바다를 넘어 육지 위를 비행 중이었다.

*  *  *

청계산 대피소는 태풍과 장마의 영향으로 도로정비 공사가 일부 차질을 빚고 있었다.

그나마 총력을 기울인 탓에 1.8㎞에 해당하는 고속도로 상하행선을 모두 정비하고 대부분을 아스콘으로 강성포장까지 완료했다.

“휴우-, 무슨 날씨가 이리 더운지 원.”

“아따. 민우 씨 많이 덥지예. 이거 좀 드이소.”

“고맙습니다, 이거 후덥지근하니 구름 낀 날씨가 더 힘듭니다.”

“해가 있으민서 더븐게 차라리 낫껬구만 이카네요.”

“그러게 말입니다.”

“그케도 저기 군인들보다는 저희가 낫지예.”

“아무래도 그렇죠. 한시도 못 쉬고 저리 서 있으니 안 움직이고 있는 게 더 곤욕일 겁니다. 저희야 설비 차량 타고 다니면서 간혹 에어컨도 켜니 미안할 따름이죠.”

우중충한 날씨.

습도는 높고, 무더위에 한증막에 들어온 듯 모두가 비지땀을 흘리며 작업에 한창이었다.

거주민들이 외부 작업에 동참하고 있었고, 마침 쉬는 시간과 맞물려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그때.

쿠콰콰쾅!

상공에서 때 아닌 굉음이 들려오더니 전투기 한 대가 청계산 대피소 상공을 통과했다.

“사령관이다, 들리나?”

굉음의 정체는 성현이 탄 렙터가 청계산 대피소를 인근을 지나면서 생긴 소닉붐 현상 때문이었다.

-단결! 지휘본부 상황실 김지덕 중위입니다. 말씀하십시오, 사령관님.

“김 중위 수고가 많다. 곧 활주로에 전투기 한 대 착륙 예정이다. 하행 방향에서 진입한다. 가능하겠나?”

성현이 활주로 상공을 지나면서 미리 확인했지만, 거리가 있던지라 정확한 상황을 알기는 힘들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즉시 확인하겠습니다. 이상.

상황실의 김 중위가 확인을 하는 사이 성현은 대피소 상공을 한 차례 더 선회하고 있었다.

지상에 사람들이 개미만 하게 보이고, 다수의 공사 차량들이 연신 움직이고 있음이 눈에 들어왔다.

-단결! 사령관님. 최 중령입니다. 현재 활주로 공사는 완전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1.8㎞ 구간은 공사가 완료되었고, 현재 하행 방향에서 부터 사용 가능한 구간은 1.5㎞ 정도입니다.

“동원아 그 정도면 충분하다. 10분 뒤에 착륙할 테니 활주로 상태 점검 부탁한다.”

-넵, 사령관님. 알겠습니다. 지상에서 뵙겠습니다. 이상.

공사가 완료된 활주로는 1.8㎞ 정도였으나, 실질적으로 사용 가능한 거리는 1.5㎞ 남짓 정도 되었다.

아직 평탄 작업이나 완전히 마무리가 안 된 구간이 있던 탓이다.

성현은 대피소 인근을 비행하며, 최동원 중령이 활주로를 정비할 시간을 줬다.

혹시 모를 작업자가 있어도 안 되었고, 활주로에 이물질이 존재해도 안 되었다.

잠시 후.

시간이 지나 성현은 대피소를 크게 선회해 고속도로와 일직 선상에 기체를 띄었다.

랜딩기어(landing gear)를 내리고, 서서히 고도를 낮췄다.

끼익. 끼-이익.

지면과 타이어가 마찰하며, 흰 연기와 특유의 소음을 발산했다. 완벽한 착륙, 스페셜한 착륙이라 할 만했다.

STOL(단거리 이착륙)이 가능한 랩터는 고작 1,500m의 활주로에 내려서 완전히 멈추어 섰다.

“단결! 사령관님, 고생하셨습니다.”

마중 나온 최동원 중령이 성현에게 다가왔다.

“이 날씨에 너희도 수고가 많다.”

“별말씀을요. 그나저나 사령관님, 사람 놀래 키는 방법도 여러 가지십니다. 랩터라뇨.”

“하하, 어쩌다 보니 그리됐다.”

“다른 건 몰라도 이건 정말 부럽습니다. 저도 전투기 한번 몰아봤으면 소원이 없겠습니다.”

성현은 뿌듯하면서도 최 중령의 마음을 알기에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주고, 위로 아닌 위로를 했다.

“그래, 그 마음 내가 안다. 그건 그렇고 별일은 없지?”

“네, 우천으로 작업이 일부 지연되기는 했지만, 크게 지장을 받지는 않았습니다. 말씀하신 2㎞ 길이의 활주로는 내일 중으로 완공될 듯합니다. 이틀 뒤에는 사용해도 문제없습니다.”

“흐음, 딱 2㎞가 넘어도 상관없다만, 여기서 더 줄어들면 절대 안 된다. 제아무리 무게를 줄여서 이륙 거리를 줄인다곤 하지만, 원래는 3㎞ 정도는 되야 하거든. 이점 염두에 두고 작업하라고 해라.”

“아-. 알겠습니다. 내일 중으로 잘만하면 3, 4백 미터 정도는 더 확보 가능할 겁니다. 좀 더 늘여 보도록 하겠습니다.”

성현은 이륙 거리를 줄이기 위해 여객기에 짐을 하나도 싣고 가지 않을 예정이었다.

불필요한 부분을 빼면 이륙 거리는 비약적으로 줄어들어 2㎞ 안에서도 충분한 양력을 받아 뜰 수 있었다.

“동원이 너는 잠시 따로 이야기 좀 하자. 너희들은 그만 돌아가도록 해라.”

성현은 최 중령과 함께 온 대원들을 먼저 돌려보내고 최 중령과 마주 보고 섰다.

“가만히 있어봐라 좀 확인할 게 있다.”

성현이 최 중령의 머리 위쪽을 툭툭 치듯이 손짓을 했다.

“너 하나만 물어보자. 너 혹시 군에 있을 때 컴퓨터 게임 같은 거 한 거 있어?”

“네, 네? 게임이요?”

뜬금없는 성현의 질문에 최 중령이 반문했다.

“그래, 마우스하고 키보드로 하는 그런 게임 말이다.”

“그게… 군 입대 전에는 모르지만, 입대 후에는 없는 거 같습니다.”

성현이 턱을 쓰다듬으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상한데. 아주 오래전에 했던 게임도 적용이 되는 건가? 왜 게이머가 떠 있는 거야?’

[ 게이머 ]

[ 슈퍼 솔저 ]

성현은 최 중령의 머리 위의 [특성 부여 가능] 텍스트를 터치하자 나타난 선택지를 보고 물었지만, 돌아온 답은 예상했던 것과는 달랐다.

‘슈퍼 솔저는 별로 안 내키는데.’

게이머는 이미 성현과 해미가 얻은 특성이다. 그 효용 능력이 어떠한지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슈퍼 솔저는 이름만으로 어떠할지 짐작은 되지만, 결코 게이머보다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동원아, 이거 중요한 거니까 다시 한 번 잘 좀 생각해봐.”

최 중령이 고개를 갸웃하며, 기억을 더듬었다.

영문을 알 수는 없지만, 성현의 말을 착실하게 따라준 거다.

“저 진짜 없는 것 같습니다. 스마트 폰 게임은 좀 하긴 했는데. 컴퓨터로는…….”

“폰 게임?”

“네, 그게 일과 끝나고 하면 무료하기도 해서 가끔…….”

“무슨 게임인데?”

성현은 이거다 하고 생각했고, 답을 재촉했다.

“근데 왜 그렇게 게임에 대해 물어보십니까?”

최 중령은 게임이 무슨 중요한 일과 연결되는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그래, 설명이 좀 필요한 일이긴 하다.”

“······.”

“처음 너와 구치소에서 만나 내 능력을 보여주고, 하나 빼먹은 이야기가 있다.”

“네에? 형님 그럼 또 다른 뭔가 있습니까?”

“사실 해미의 능력도 나에게서 기인한 능력이라 보면 된다. 쉽게 이야기해서, 내가 줬다.”

“혀, 혀, 형님이 그런 능력을 줄 수 있다고요?”

“그래 맞다. 하지만 단 한 번뿐이었다. 어떻게 된 영문인지 해미 이후에는 다른 사람에게 능력을 줄 수가 없더구나. 그런데 이제 가능하다. 한 달에 한 번이지만, 그 누구에게라도 능력을 줄 수 있다.”

최 중령이 토끼 눈을 뜨고 있다.

지금 성현이 정말 자신이 알던 그 성현이 맞는가 하는 의문도 잠시 잠깐이지만 들었다. 그러나 이내 머리를 가로저으며 털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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