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판멸망한 세계의 게이머-53화 (53/176)

# 53

사필귀정 (2)

최 중령은 성현의 이야기를 듣고, 기함했다.

세상에 없던 능력을 가진 것도 모자라 다른 사람에게 능력을 줄 수 있다니!

제한적이긴 하나 해석에 따라서 신이라 불리어도 손색없는 능력이었다.

계속되는 대화로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은 최 중령은 성현의 이야기 대부분을 이해했고, 왜 게임에 대해 물었는지 비로소 알게 되었다.

“쉽게 말씀드려서 제가 했던 게임은 영지를 만들고 키워서, 다른 플레이어의 영지와 싸우는 그런 게임이었습니다. 성을 짓고, 자원을 캐서 그 자원을 바탕으로 발전하는 형식이죠. 그러다…….”

최 중령이 한 게임은 일종의 디펜스게임이었다.

영지 크기에 따라 산재한 자원을 캐고, 그 자원을 바탕으로 영지를 키우는 심시티 계열로 볼 수 있었다.

또 영지 인근을 개간해서 영토를 넓히는 식으로 확장을 할 수도 있고, 더욱 많은 자원을 확보해 안정적인 발전이 가능했다.

그리고 초급 플레이어를 벗어나면, 공성 병기도 제작이 가능해져, 다른 영지와 영지전을 벌이는 콘텐츠를 즐길 수 있었다.

전쟁에서 승리한 플레이어는 상대 영지에 두 가지 중 하나의 선택지를 행할 수 있는데 약탈과 식민지였다.

약탈은 명성과, 권위를 떨어트리지만, 짧은 시간에 엄청난 자원을 획득하게 되고, 식민지에는 별도의 세금을 부과해 장기적인 측면으로 본다면 보다 유리하게 작용했다.

그리고 일정 이상의 식민지와 영토를 가진 플레이어는 작위가 상승해 종국에는 왕의 타이틀을 가질 수 있었다.

“아-, 그게 만일 현대를 기준으로 하는 게임이었다면 대박인데. 너무 아쉽네.”

중세를 바탕으로 하는 게임에서 무기라고 해봐야 대형 발리스타나 발석차 같은 게 주를 이루고 있었다.

만일 현대를 배경으로 하는 게임이었다면, 어쩌면 성현 자신보다 더욱 강력한 능력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정말 게임의 능력을 현실에 반영한다면, 저는 형님이 능력을 안 주시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왜? 게임 능력이 별 볼 일 없을까 봐?”

“예. 아무리 봐도 현실에서 제가 했던 게임 능력이 무슨 소용인가 싶어서요.”

“동원아, 달리 생각하면 무궁무진하지 않겠어? 자원 캐는 게 어디 보통 일이야? 너 게임에서 클릭한 번으로 시간만 지나면 자동으로 자원이 들어온다고 했지? 그것 하나만 봐도 엄청나다고 본다.”

“그, 그런가요?”

“그런 가요는 무슨, 광산 같은 걸 너 혼자 만들고 자원까지 쓸어 담는 거야. 이게 보통 일 같아?”

“그런 거 같기도 하고… 근데 자원만 캐는 능력을 가지고 형님이 능력을 주기에는 제가 가진 능력이 부족하지는 않을까요?”

“얌마, 생각의 틀을 좀 깰 필요가 있는 거 같다. 난 듣기만 해도 지금 막 무궁무진한 상상이 떠오르거든? 네가 만드는 성벽은 다른 노동력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그것도 아마 너 혼자 클릭 한 번으로 가능할 거 같은데, 진지 구축하는데 그보다 좋은 능력이 어디 있겠냐. 이건 외부에 문제가 생겨 복귀를 못 해도 거점을 만들 수 있는 거다. 어디 그뿐이겠냐.”

“아-! 형님 말씀 듣고 보니 또 그러네요. 근데 저보다 훨씬 좋은 잠재력을 가진 사람들도 있을 텐데, 너무 성급하게 생각하시는 게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건 또 그렇지가 않다. 너도 한번 생각해봐. 만일 내가 잠재력만 보고 능력을 준다고 가정하면 정말 말도 안 되는 능력을 가지는 사람이 나올 수는 있겠지. 근데 그 사람이 딴마음을 먹게 된다면 어떻게 될 거 같아?”

최 중령은 말을 아꼈다.

단정하기는 힘들지만, 반드시라고 할 만큼 문제가 생길 거라 생각했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했다.

성현의 의견에 반발하고, 막무가내인 능력자가 나오지 말라는 법이 없었다. 성현과 해미의 능력보다 더욱 강력한 능력을 가진 자가 통제 불능이라면 답도 없다.

게다가 최 중령 자신도 예외라고 할 수 있느냐는 의문을 던져봤다.

스스로는 아니라고 하지만, 정말 언제까지 지금과 같은 마음을 유지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다 피식하고 웃는다.

의미 없는 생각이었다.

최 중령에게 성현은 가족이자 우상이다. 존경하고 따르는 사람이지 배격하고 적대의 대상이 될 수는 없었다.

“왜? 너한테 그런 능력이 생기면 너도 딴 마음 먹게?”

“형님! 무슨 그런 섭섭한 말을…….”

“하하, 자식이 놀라긴 그냥 한번 해본 말이다.”

성현은 놀려먹은 게 미안했는지 가볍게 최 중령의 어깨에 팔을 둘러 어깨동무를 하고, 같이 걸었다.

최 중령에게서 땀 냄새가 물씬 풍겨오지만, 불쾌하거나 더럽게 여겨지지는 않았다.

고생하고 있는 동생이 고맙고 뿌듯할 뿐이다.

“동원아.”

“네, 형님.”

“내가 신뢰하고 믿을 수 있는 사람은 몇 사람 없다. 그중 네가 첫손에 꼽힐 만큼 너는 내게 그런 사람이다. 난 널 믿는다. 그런 너 말고는 가장 먼저 생각나는 사람도 없다. 그러니 네가 날 좀 도와다오.”

“……알겠습니다, 형님. 제가 할 수 있는 힘껏 한 손 거들겠습니다. 제가 옆에 있겠습니다.”

최 중령은 성현이 짊어진 삶의 무게를 덜어주고 싶었다. 지금까지 성현이 해왔던 것처럼, 이제는 자신이 든든한 가름막이 되고 버팀목이 되어 받쳐주고자 했다.

“일단 대피소에 들어가자. 능력은 본격적인 이주 전에 부여해 주마. 동원이 너는 이전에 했던 게임을 토대로 네가 뭘 할 수 있는지 잘 한번 생각해봐라.”

“네, 형님. 숙고해 보겠습니다.”

성현과 최 중령은 험비를 타고 대피소로 향했다.

*  *  *

대피소 거주지에 도착한 성현은 먼저 해미와 줄리를 만나 복귀했음을 알리고, 잠시지만 즐거운 한때를 보냈다.

줄리의 재롱을 보고 있노라면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성현이었다.

두세 시간의 오붓한 시간을 보낸 성현이 집밖으로 나오니, 마침 제주도에서 복귀한 두식과 용칠이 차량 한 대와 함께 기다리고 있었다.

제주도 선발대에 속했던 민항기 조종사들도 다들 복귀했음이었다.

““단결!””

“오, 그래. 도착했구나. 좀 쉬지 않고.”

“저희는 대령님의 손과 발입니다. 저희가 모시겠습니다.”

“자식들…. 그래, 그럼 종합 지휘본부로 가자.”

용칠이 운전석에 앉고, 두식이 조수석에 탔다. 둘이 있어 성현은 한결 손을 덜 수 있었다.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성현은 의장을 만나 본격적인 이주 시작 시기를 전달했다. 빠르면 이틀, 늦어도 삼일 뒤에는 시작할 것을 알리고 이에 대비케 했다.

의장은 성현이 큰일을 해준데 크게 감사를 표하고, 더 시킬 일은 없는지 묻기도 했다.

당장 시킬 일은 없었다.

다만 비행기에 탑승하는 거주민들이 개인 물품을 일체 가지고 타지 못한다는 점을 확실히 전달했다.

기체의 무게를 최대한 줄여야 여객기가 양력을 쉽게 얻고, 짧은 활주로를 통해 이륙이 가능함을 알려 준 거다.

그리고 개인 소장품은 별도의 컨테이너에 보관 후 차후에 성현이 넘겨주기로 했다.

의장을 대면하고 나온 성현은 군 지휘관 모두를 불러 모아 제주도 이주가 본격적으로 시작됨을 알리고, 그에 따르는 제반 사항을 확인하고 점검했다.

“현재 직속 전투부대 60명을 제외한 총 병력은 1,832명입니다. 이중 부사관 이상이 475명이고, 일반 사병이 1,357명입니다.”

“부대 편성은 끝났어?”

“네, 대령님. 4개 대대 12개의 중대로 재편해 각 대대별로 일반 보병 비율이 60%, 포병이 10%, 공병 10%, 기갑병 10%, 정보 통신과 병기, 의무 비율을 10%로 편성했습니다.”

“잘했다. 우리가 사태 이전 군 편제를 그대로 따를 필요는 없다. 우리 상황에 맞게 만들면 그만이야. 이점 염두에 두고 앞으로도 유연하게 편성을 해.”

“넵! 사령관님.”

성현은 보고를 받고, 그 자리에서 필요한 지시를 내리며 회의를 계속해서 진행했다.

그리고 조금은 우려했던 투항병들도 어렵지 않게 적응하고 있다는 보고를 받았다.

인간적인 대우와 좋아진 보급 사정에 대부분이 현실을 받아들이고, 만족해하고 있었다.

“그리고 최 중령, 활주로 사용 가능한 즉시 제주도 2개 대대 투입할 테니 준비해놔. 본격적인 이주에 앞서 먼저 보낼 생각이다. 무장과 필요한 보급품은 내가 가져다 놓을 테니 병력만 준비해.”

“넵, 사령관님. 차질 없게 준비하겠습니다.”

성현은 병력을 투입함과 동시에 대피소 내에 있는 병참 물자를 최우선으로 제주도에 보낼 참이었다.

병참에 있던 물자들은 구분되어 컨테이너에 이미 보관 중이었고, 성현은 창고에 넣어 실어 나를 일만 남아있었다.

성현은 이제 회의를 끝내려던 참에 잊고 있었던 하나가 문뜩 떠올랐다.

“아-! 그놈들, 선별한 놈들은 어떻게 했어?”

“안 그래도 이 부분은 따로 보고를 드리려 했는데, 지금 말씀드리겠습니다. 인원은 처음보다 좀 많습니다. 죄질이 좋지 않은 나쁨 이상으로 선별된 205명에서 추가로 106명이 늘어 현재 311명이 명일 재판대에 설 예정입니다.”

“재판을 한다고?”

“예, 그렇습니다. 피해자들이 배심원들이고, 만일 피해자가 이미 사망한 상태라면 가족이나 친인들이 대리로 배심원으로 참관합니다. 그리고 증언을 자청한 사람들 모두를 참석토록 했습니다.”

“오호-, 그것도 나쁘지 않겠다.”

“네, 그리고 311명은 가해자로서 심판대에 올라 직접 변호할 기회를 주기로 했습니다. 대령님이 오셨으니 내일 재판 재판장을 맡아 주시면 어떨까 합니다.”

“내가 무슨…. 크흠, 뭐 그렇게까지 원한다면, 알겠다.”

내심 재판장을 하고 싶었지만, 체면상 먼저 하겠다는 말은 못했다. 근데 가려운 구석 긁어 주듯 해달라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근데 심증도 있고 정황 증거와 증언도 있지만 정말 무고한 사람이 없을까, 난 그게 걱정이다. 또 일일이 재판하다 보면, 하루 이틀로는 끝나지 않을 거 같은데 이주 전에 끝내기 힘들지 않겠어?”

성현의 걱정은 다른 게 아니었다.

사람 여럿이 한 명 바보 만드는 거야 일도 아닐 테고, 다른 이유로 원한이 있던 사람을 무고하는 일도 있을 수 있었다.

그리고 본격적인 이주가 코앞인데 그전에 재판이 끝날 것 같지도 않았다.

“저…. 그래서 말씀드릴 게 하나 있습니다.”

“뭐 좋은 방법이라도 있어?”

“그게, 심리학 박사인 이지애 씨라고, 지금 종합병원에서 신경 정신과 과장으로 계신 분이 있습니다.”

“응? 그 사람이 왜? 심리 분석이라도 해준데?”

“그게 좀…. 김원일 원장님에게 저도 전달받은 내용이라 아리송하긴 한데…….”

“말 빙빙 돌리지 말고 요점만, 나 바쁘다. 늦으면 해미하고 줄리한테 혼난다. 빨리 말해봐”

“그 여자 의사분이 사람의 생각을 읽어내는 능력을 가지고 계시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터무니없다고 생각했는데, 사령관님 같은 능력을 가진 분도 계시니 그런 능력도 어쩌면 진짜 있지 않나, 싶어 드리는 말씀입니다.”

성현은 이 또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했다.

사람의 생각을 읽는다?

상당히 껄끄러우면서도 두려운 능력이었다.

거기다 능력을 가진 사람도 내면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사람이라면 이보다 불행한 능력도 없다는 생각이 문뜩 들었다.

“김 원장님이 그런 생뚱맞은 소식을 굳이 전했다는 건 본인부터 일부 인정을 하고 있다고 봐야겠지, 지금 만나볼 테니까 모시고 와 봐라.”

“네, 바로 다녀오겠습니다."

최 중령이 성현의 지시를 받고 성큼성큼 걸어 회의장을 벗어났다.

"이제 이주 준비다 뭐다 해서 다들 바쁠 테니 일들 보러 가봐. 오늘 회의는 이걸로 끝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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