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6
진화 (2)
성현은 각성 부여가 시작되고 의식을 잃은 최동원 중령을 소파에 누이고, 생각에 잠겼다.
‘해미 때와는 달라. 동원이에게 부여된 각성 능력과 같은 능력을 내가 얻게 된다고? 도대체 왜?’
이미 사라지고 없는 텍스트지만 분명히 보았다.
최동원 중령이 각성한 게이머의 능력을 획득했다는 메시지였다.
해미에게 게이머를 부여했을 당시에는 이러한 메시지를 본 적이 없었다.
당시에는 유체이탈과 같은 상태에서 의식을 잃은 탓에 못 봤을 수도 있지만, 해미의 능력 그 어떤 것도 자신이 얻은 부분이 없었다.
‘다른 게임이라 그런 건가?’
자신이 가진 힘이지만, 어느 정도 파악했다 싶은 능력은 다시 혼란을 안겨주고 있었다.
머리를 세차게 흔드는 성현이었다.
미지의 능력, 내 것이라 생각하지만 주체적이지 못함은 물론, 계속해서 끌려가는 느낌이 결코 좋지만은 않았다.
‘그래도 뺏어가는 것도 아니고 거저 준다는데…….’
그렇다 한들 업그레이드되는 능력이 본인에게 해가 되는 것은 아님에 어찌 되었든 순응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가진 능력도 좋지만, ‘다다익선’임이 분명했다. 어떤 능력일지 모르지만 보태어 준다는데 고맙기는 하다.
그때.
웨애애애애앵!
대피소 전역에서 울리는 사이렌 소리에 성현은 상념에서 벗어났다.
띠릭.
“사령관이다. 무슨 일이야?”
성현은 귀 뒤쪽에 손을 대고 지휘본부에 무전을 보냈다.
-사령관님! 활주로에 레드 상황 발생입니다!
성현은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서 두 눈을 치켜떴다.
정우현 소장이 경고한 시기보다 빨랐다.
좀비 개체마다 완전한 면역을 갖추는 시기는 다르겠지만, 최소 20일에서 최장 30일 정도라고 했는데 그보다 빠른 시기였다.
‘벌써? 하필이면!’
어쩌면 그 시기를 추정한다는 자체가 무리였다. 실험에 동원된 좀비들은 소수였고, 이를 바탕으로 한 연구 데이터는 턱없이 적었다.
그런 상황에서 나온 추정은 말 그대로 추측일 뿐.
사나흘이면 계획대로 거주민 전부를 제주도에 이주시킬 수 있었는데, 여러 악제들이 겹쳐 늦춰진 상황이 끝내 더 큰 사태를 불러왔다.
“전 부대 출동 준비해라! 집결된 부대부터 즉시 투입한다!”
성현은 무전을 마치고 아직 의식을 차리지 못하는 최 중령을 쳐다봤다.
‘당장 동원이 능력이 필요한일은 없겠지.’
성현은 최 중령의 집무실을 나서 바람같이 달려 나갔다.
* * *
“2대대 3중대 통신두절!”
“이런 개 같은!”
활주로 임시 본부로부터 상행 방향 550m 거리에 위치한 1차 방어 라인이 뚫렸음을 통신병이 알려왔다.
지원 요청을 애절하게 소리치던 이들의 목소리는 이젠 더 이상 들을 수 없게 되었다.
“2차 방어 라인 앞으로 장갑차 험비 모두 집결시켜. 본대에서 곧 지원이 온다. 그때까지 어떻게든 시간을 벌어야 해.”
두식은 갑작스럽게 터진 대낮 좀비들의 습격에 최상급자의 직분으로 현장 지휘관이 되어 전투에 임하고 있었다.
다 내팽개치고 대피소로 가고자 하면 못 갈 일은 아니었지만, 전투가 발발한 상황에서 도망칠 만큼 겁쟁이는 아니었다.
더군다나 용칠도 한 손이라도 거들겠다고, 밖에서 이리 뛰고 저리 뛰며 탄약을 보급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콰콰콰쾅!
바라쿠다 장갑차 상판에 거치된 자동유탄발사기에서 발사된 고폭탄이 전방의 좀비들을 타격했다.
직격된 좀비는 갈기갈기 찢겼지만, 주변의 좀비들은 의외로 경미한 피해만 입었는지 쓰러질지언정 끝내 다시 일어났다.
그리고 미친 듯이 달려오고 있었다.
“조장님! 화력이 부족합니다!”
-씨발! 나도 알아! 버텨. 우리까지 뚫리면 2차 방어 라인 안에 있는 대원들 다 죽는다. 최대한 저지해!”
두 대의 바라쿠다가 유탄을 난사하며 탄막을 형성했지만, 죽어 나가는 좀비보다 추가되는 좀비가 더 많은 실정이었다.
중공군의 인해전술은 어린애 장난 수준으로 여겨질 정도의 진격 속도였다.
이미 1차 방어 병력이 산화 한 지 5분,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누적된 피해는 사실상 후퇴해야 하는 전멸 직전의 상황이었다.
피해가 커진 원인은 일반 소총탄이 더 이상 좀비들에게 큰 피해를 입히지 못함에서 비롯되었다.
보병 전력이 지리멸렬하는 사이 밀리고 밀린 4개 중대 480명에 이르던 병력은 절반 이상이 줄어 들어있었다.
좀비들은 그야말로 파죽지세.
“곧 있으면 재보급을 마친 험비들이 돌아온다! 무조건 막아!”
두 대의 장갑차는 연신 고폭탄을 발사하고 있지만, 차츰 좀비들에게 거리를 내어주고 있었다.
“이 새끼들 탄약을 공장에 가서 만들어서 올 거냐!”
드르르르륵!
때마침 재보급을 위해 떠난 험비들이 보급을 마치고 복귀했다. 근접한 좀비들에게 미니건의 화력이 집중되었다.
간신히 전선을 유지하던 대원들의 숨통을 튀어 주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 * *
- 측, 측면에 대형 좀비 발견!
“뭐? 무슨 소리야! 대형 좀비라니!”
두식은 임시본부에 들려온 무전에 제대로 된 상황을 전달하라 재촉했다.
-대형 좀빕니다! 신장이 3미터가 넘습니다! 이놈들 고속도로 옆 저희가 바리케이드로 쌓아둔 차량들을 무너뜨리고 왔습니다. 제기랄! 사방이 좀빕니다. 임의 퇴각합니다!
두식은 무전을 듣고 급히 임시본부 막사를 박차고 나갔다.
쏟아지는 빗속에서 두식은 2차 방어 라인 방향을 살폈다.
아니 거기까지 살필 것도 없었다.
보병들이 헐레벌떡 뛰어오고 있었고, 험비들은 보병들을 호위하며 미니건을 쉴 새 없이 발사하고 있었다.
바라쿠다는 최전방에서 최대한 시간을 끌며 보병들이 후퇴할 시간을 벌고 있었다. 주변은 좀비들로 가득 차 있어 자칫 고립될 수도 있는 위급한 상황이었다.
쿵! 콰과광!
둔중한 충격음이 들려오더니 바라쿠다 한 대가 상하가 반전되어 뒤집어져, 활주로 옆으로 튕겨 날아갔다.
무전에서 말했던 대형 좀비가 바라쿠다의 측면을 몸통으로 들이박은 것이었다. 3m 정도라 했지만, 실상은 4m는 족히 되어 2층 건물만 했다.
중량이 무려 11 톤(T)에 달하는 장갑차가 수십 미터는 뒤집어져 굴러갔다.
이런 비현실적인 모습에 두식은 순간 멍해질 수밖에 없었다.
“사령관님…….”
두식은 주문처럼 중얼거렸다.
최초 좀비와 조우하고 전투가 시작 된 지 채 10여 분에 불과했지만, 체감 시간은 몇 시간은 지난 듯 느껴졌다.
쿠오오오오!
귀청을 찢어발기는 괴성.
두식은 순간 비틀댔다.
정신은 혼미했고, 메스꺼움에 욕지기가 밀려왔다.
* * *
성현은 기동력을 갖춘 전차와 장갑차만으로 이루어진 부대를 앞세우고 집하장에서 출발했다.
대피소 경내에 ‘레드 상황’을 알리는 경보가 울리고 약 10분 정도가 경과한 시점이었다.
대피소 터널을 나서 공터에 올라섰을 때 이미 공터는 좀비들의 시체가 지천으로 깔려있었다.
그리고 드문드문 아직 숨이 붙어 있는 좀비들도 간혹 보였다.
터널 입구에 막강한 화력을 구축해 둔 탓에 활주로 경비대에 비해 이곳은 피해가 전무하다시피 했다.
한 방향 그것도 좁은 지역을 방어하는 터널 경비대는 눈에 보이는 족족 중화기로 일점사해 좀비들을 제거했다.
“전 부대 전속 전진!”
최선두의 흑표에 올라탄 성현은 기갑부대 전체에 명령을 하달했다.
콰드드득.
전차의 무한궤도에 좀비 시체가 짓이겨지고 으스러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전속으로 달려!”
흑표의 상판 해치를 열고 전차 밖으로 모습을 드러낸 성현이 소리쳤다.
“사령관님, 현재 최대 속돕니다!”
완만한 내리막을 쏜살같이 달리고 있지만, 성현에게는 한없이 느리게만 느껴지는 건 조바심이 극에 이른 탓이었다.
“활주로 임시 본부 상황보고! 천두식 상황!”
성현은 출발 직전 통신을 하고 2차 방어 라인을 구축했다는 보고를 받았다.
일반 보병 소화기로는 좀비들에게 피해를 줄 수 없다는데 놀랄지 않을 수 없었고, 이미 수백이 넘는 전사자가 나왔다는 보고에 아연실색했다.
“천두식! 강용칠! 용칠아! 대답 좀 해!”
현장 지휘관으로 있는 두식과 용칠은 성현의 보좌관인 탓에 트랜스듀서를 착용하고 있어 개별무전이 가능해야 했지만,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활주로 경비 부대 누구든 상황 보고 좀 해봐! 야 이 새끼들아 대답 좀 해!”
직속 전투부대원들과 달리 전 군에 개별 무전기를 할당할 만큼의 여유가 없었다. 부대 단위로 전술 무전기를 채용해 사용 중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성현의 속이 타들어 갔다.
“이대로 관통해!”
“넵! 사령관님!”
조종수는 포장된 길을 따라가려다 성현의 지시에 그대로 작은 능선을 넘어 가파른 산길로 전차를 몰았다.
“충격에 대비하십시오!”
콰쾅!
차량으로 쌓아 올린 벽을 뚫고 흑표 전차가 활주로로 화한 고속도로에 올라섰다.
무너진 차량들이 나뒹굴고 그중 제일 밑에 있던 승용차는 흑표의 궤도에 깔려 납작하게 압착되고 있었다.
선두의 성현을 전차를 필두로 흑표 7대와 K-21 보병 장갑차 14대가 뒤를 따라왔다.
“제기랄!”
활주로는 이미 좀비들에 의해 점령되어있었다.
좀비들의 시선이 성현의 전차에 와 닿았다.
성현은 이를 으스러지게 갈아댔다.
자신이 생각한 이상으로 상황은 좋지 못했다.
[ 좀비 Lv10 ]
[ 좀비 Lv10 ]
성현의 시야에 들어오는 좀비들은 전부 레벨 10의 좀비들. 당장 눈앞에 보이는 숫자만 적게 잡아 삼백 마리 이상이었다.
“전 부대 공격!”
꽈광!
흑표의 주포(120mm 55구경장)에서 다목적 고폭탄(HEAT-MP)을 발사했다.
포탄이 찰나의 순간 전방의 좀비들을 관통해 수십 미터를 더 나아가 폭발했다.
폭발의 여파로 10여 미터 부근에 있던 좀비들은 형체도 남기지 않고 그대로 폭사했다.
투타타타타.
7.62mm 동축 기관총이 불을 뿜었고, K6 중기관총을 잡은 성현 또한 맹렬한 기세로 좀비들을 공격했다.
순식간에 벌집이 된 좀비들이 사방으로 피륙을 비산하며 흩어졌다.
모든 전차와 장갑차량들이 대구경 포탄을 난사하며 전장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그때.
쿠오오오오!
전장의 포화를 뚫고 거대한 괴성이 들려왔다.
성현을 제외한 대부분의 부대원들이 귀를 틀어막고, 고통을 호소했다.
[ 정신 공격에 저항하였습니다 ]
“무슨!”
방금 들린 포효가 일종의 정신 공격과 같은 효과가 있음을 알림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일순간 모든 전투가 멈추고 사위가 정적에 휩싸였다.
거기다 어찌 된 영문인지 좀비들도 뒷걸음질 치더니 빠르게 전투 공역을 벗어나 도망치기 시작했다.
“괜찮나?”
“무, 문제없습니다.”
성현이 탄 전차의 전차장을 비롯해 조종수 탄약수가 힘겹게 대답했다.
눈은 붉게 충혈 되어 있었고, 코에서 가는 선혈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각 전차 피해보고!”
생각지도 못한 공격이었다.
고통에 겨워하는 대원들의 무전들이 빗발쳤다. 모두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그나마 의식을 잃은 대원들은 없었다.
성현도 처음 당해보는 일이라 당황스럽긴 매한가지였다.
꽈과광.
정신을 차린 전차와 장갑차량들이 하나둘 도주하는 좀비들의 꽁무니에 포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성현은 병사들이 정신을 차리자 다시 상황을 살피기 위해 해치를 열고 밖으로 몸을 빼내었다.
그리고 안력을 돋우어 한곳을 바라봤다.
“……저건!”
정확한 형체는 확인이 안 되지만, 좀비가 아닌 다른 것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여태껏 보지 못한 새로운 표시가 나타났다.
[ 구울 Lv2 ]
일반 좀비에 비해 수십 배는 될법한 중량과 체고는 4미터에 육박하는 괴물이었다.
거리는 대략 200m. 형체는 흐릿하지만, 그 표식만큼은 선명했다.
저놈이 괴성을 지른 원흉임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이전과는 다른 좀비들의 행동 패턴, 대단위의 공격 모두가 저놈에게서 비롯된 일임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