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판멸망한 세계의 게이머-57화 (57/176)

# 57

진화 (3)

쿠오오오오!

놈이 크게 움츠리며, 기지개를 펴듯 양팔을 크게 벌려 재차 포효를 내질렀다.

[ 정신 공격에 저항하였습니다 ]

‘이대로는 안 돼!’

포격이 다시금 멈추고, 활발히 움직이던 전차와 장갑차들이 일제히 멈추어 섰다. 겨우 정신을 수습하고 공격에 나선 대원들이 속수무책으로 무너졌다.

연속되는 충격에 피해가 누적되어 대부분의 대원들이 전투 불능 상태가 돼버린 것이다.

당장 성현이 타고 있던 전차의 대원들도 전차장을 제외한 조종수와 탄약수가 쓰러져 일어날 기미가 없었다.

‘저놈을 먼저 제거해야 해!’

무엇보다 먼저 구울을 처리해야 했다.

일종의 음파 공격으로 볼 수 있는 포효를 막는 게 급선무였다.

성현이 K6 중기관총의 총구를 구울을 향해 겨냥했다.

하지만.

“······시발!”

놈의 발아래 살았는지 죽었는지 알 수 없는 수십 명의 대원들을 뒤늦게 발견했다.

생사를 알 길이 없지만, 살아있을 경우를 생각해야 했다. 섣불리 공격했다가는 대원들이 전투에 휩쓸려 위험했다.

성현은 흑표의 포신을 밟고 도약해 놈을 향해 짓쳐 들어갔다.

150m, 100m, 50m

가공할 속도로 달리는 성현의 손에 날카로운 예기를 품은 장검이 나타났다. 게임에서 애용하던 아이템을 창고에서 꺼내 손에 쥐었다.

그러나 성현은 구울을 바로 공격하지 못하고 20여 미터 거리에 멈출 수밖에 없었다.

‘살아있다!’

구울 근처 바닥에 쓰러진 대원들은 의식은 잃었지만, 분명 배와 가슴이 느리게 오르락내리락하며 숨을 쉬고 있었다.

거대한 구울이 성현의 시야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놈의 눈은 배부른 포식자의 눈빛을 하고 있었다.

구울은 여태껏 봐온 좀비들과는 차원이 다른 존재임이 분명했다. 크기도 크기지만, 전신에서 압도적인 기세가 뿜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추측이지만, 본능뿐인 좀비와는 달리 생각하고 판단하는 이성을 가진 듯 보였다.

성현을 보고 본능적으로 공격하지 않는 것만 봐도 확실히 다르다는 것을 증명했다.

오도독, 오도독.

구울이 껌 씹듯 턱관절을 움직였다. 그러다 순간 침을 뱉듯 ‘퉤’ 하며 바닥으로 무언가를 내뱉었다.

잘게 갈려진 뼈와 살점들이 형광색의 체액과 뒤섞여있었다.

성현이 느끼기에 구울은 비릿하게 웃고 있다고 느껴졌다.

‘내가 반드시 찢어발겨 주마!’

성현은 ‘뿌드득’ 하며 이를 부서지게 갈았다.

주체키 힘든 분노로 인해 전신이 잘게 떨려왔다

당장이라도 놈의 눈을 파내고, 입을 찢고 전신을 난도질하고 싶었지만 참아냈다.

‘유인한다.’

성현이 창고를 열고 날카롭게 벼려진 단검 하나를 손에 쥐었다.

그리고 섬광같이 던져냈다.

‘푸욱’하며 크지 않은 마찰음이 구울의 면상에서 들려왔다.

쿠웨에에엑!

배부른 야수의 느긋함을 보이던 구울이 고통에 찬 괴성을 뿜어냈다. 내리던 비가 ‘뻥’하며 공기 터지는 소리와 함께 사방으로 튀어 나갔다.

구울이 상체를 숙여 바닥에 주저앉았다.

왼쪽 눈에 손잡이도 남기지 않고 파고든 단검을 뽑아내려 안간힘을 써댔다.

허나 성인의 팔뚝보다 굵은 손가락 때문에 단검은 잡히지 않고 더욱 깊이 파고들어 갔다.

크르르르.

놈이 하나 남은 눈을 들어 성현을 노려봤다. 노란 눈동자는 흉포한 분노를 담아 희번덕였다.

그리고 순간 폭탄 터지는 소리와 동시에 놈이 높이 뛰어올라 성현을 덮쳐왔다.

쾅!

박찬 바닥의 아스팔트가 쪼개어져 비산하고, 쏟아지는 빗줄기를 가르는 소리가 매섭게 들여왔다.

‘허업!’

성현이 헛숨을 들이쉬며, 뒤로 크게 물러섰다. 덩치와 어울리지 않는 대단히 민첩한 움직임이었다.

코앞을 스치는 주먹은 성현의 몸통만 했고, 강맹한 풍압이 느껴졌다.

‘속도는 내가 더 빨라!’

물러선 성현이 구울이 역동작을 하기 전에 달려들어 오른 다리의 뒤꿈치를 깊게 베어냈다.

스카칵.

‘얕다!’

전력을 기울인 베기였으나 구울의 두꺼운 뼈를 끊어 놓지 못했다. 검 날에서 느껴지는 뼈의 느낌이 어지간한 강철보다 단단하게 느껴졌다.

크롸롹!

구울이 순간 절뚝거리며, 마구잡이로 팔을 휘둘러댔다.

이미 대비하고 있던 성현은 몰아치는 주먹을 요리조리 피하며, 구울의 사각으로 파고들어 몸통 이곳저곳을 찌르고 베어냈다.

헐벗은 구울의 사타구니 안쪽을 베어내고, 급소 중의 급소라 생각한 낭심을 사정없이 찌르고, 무릎 안쪽을 반복해서 찔러 댔다.

크웨에에엑!

포효와는 다른 비명 같은 괴성을 질러대며 구울이 발버둥 쳤다. 귀찮은 벌레를 밟아 죽이려는 듯 방방 뛰며 발길질했다.

그럼에도 쉽사리 성현을 떨쳐내지 못하자 놈이 상체를 크게 젖히더니 양팔을 바닥으로 내리꽂았다.

쿠쿵!

약이 오를 대로 오른 구울이 양손을 강하게 아스팔트를 내리치자 지면을 때린 충격파가 크게 퍼져나갔다.

성현도 일순 중심이 흐트러졌고, 끝내 구울의 거대한 주먹을 한 대 허용하고 말았다.

쾅!

“크윽!”

머릿속에서 종소리가 들려오고 몸이 허공으로 붕하고 떴다. 단 한방에 HP 20%가 날아가 버렸다.

사실상 물리력은 헬파이어 미사일과 동급의 파괴력을 가지고 있음이었다.

성현은 급히 몸의 균형을 잡고 바닥에 떨어질 때는 자세를 안정적으로 만들어 구울의 연속공격에 대비했다.

헌데 놈은 추가 공격을 하기보다, 입에서 뱉어낸 형광색 체액을 다친 부위에 덕지덕지 바르며 상처를 돌보는 데 집중하고 있었다.

다만 구울의 눈은 성현을 놓치지 않고 노려보고 있었다.

‘저 더러운 새끼.’

갈라진 사타구니를 문지른 손을 혓바닥에 가져다댄 구울은 침을 묻혀 또 다시 엉덩짝을 문질러댔다.

더럽기 짝이 없는 모습이었다.

‘재생까지 한다고?’

처음 베어냈던 발목의 벌어졌던 상처와 찌르고 베어진 겉가죽이 서서히 아물고 있음이 눈에 보일 지경이었다.

자잘한 공격으로 피해를 중첩해서는 놈에게 그다지 효과적인 피해를 주지 못했다.

보다 강력한 공격력이 절실했다.

‘스킬’

[특수]무기 기술자

-공격력, 속도, 범위, 명중 50% 증가 (적용 시간 10분, 재사용 대기시간 1시간)

[일반]강타

-무기 공격력 30% 증가 (재사용 대기시간 3분)

[일반]이연격

-유효한 공격 성공시 동일한 추가타 적용 (재사용 대기시간 3분)

[일반]용맹정진

-공격력, 방어력 각 30% 증가 (적용 시간 3분 재사용 대기시간 1시간)

첫 타에 한해 통상 공격력의 1.5*1.3*1.3 도합 2.5배의 공격이 ‘이연격’에 의해 같은 곳에 두 번 연속 공격을 할 수 있음이다.

파바밧!

스킬에 의해 빨라진 속도를 구울이 미처 대응하지 못했다. 빤히 보고 있음에도 성현을 놓쳐버린 것이다.

‘단번에 잘라낸다!’

성현은 찰나의 순간 20미터의 거리를 좁혔고, 성인 몸통보다 몇 배는 굵은 구울의 허벅지에 빛살 같은 베기를 시전 했다.

전신의 힘을 일점에 담아낸 제대로 된 참격이었다.

서거걱!

손끝에 걸리는 감각과 소리가 깔끔하게 베어졌음을 말해줬다.

크륵? 키에에에엑!

구울이 기우뚱하며 옆으로 넘어간다.

그제야 다리가 베어졌음을 인지했는지 처절한 비명을 내지르기 시작했다.

“내가 갈기갈기 찢어 준다고 했지, 시발!”

성현은 창고를 열고 대용량 탄통을 꺼내 등에 메고 미니건을 꺼내 들었다. 이동 능력을 상실한 구울은 큰 과녁에 불과할 뿐이다.

위위윙, 드르르르륵!!

퍼버버버벅!!

미니건의 모터가 작동하며 6열 총구가 강력한 회전과 동시에 탄환을 뿜어냈다.

초당 수십 발의 총탄이 구울의 오른쪽 팔을 걸레짝이 되도록 갈아댔다.

구울의 살가죽이 질기기는 했지만, 연속되는 총탄을 버티지 못하고 퍽퍽 뚫리기 시작하더니 이내 살점들이 터져 나가기 시작했다.

좀비의 피는 그나마 인간과 유사한 붉은색인 반면 구울은 짙은 녹색의 형광색을 띄고 있었다.

빗물에 희석되어 온 바닥이 번들거리는 녹색으로 변해버리는 건 순식간이었다.

어른 팔뚝만 한 굵직한 손가락이 터져 나가고 손목 팔목을 지나 어깨까지 차근차근 분해해 버렸다.

순식간에 2,000발의 탄통이 비워졌고, 구울의 양팔은 갈가리 찢겨져 사방에 흩어져 있었다.

“아직 멀었어. 이 시발놈아!”

스거거걱. 스캉!

성현은 그럼에도 분이 풀리지 않아 미니건을 창고에 수납하고, 남은 다리 하나마저도 검으로 잘근잘근 썰어 냈다.

키엑! 키에에엑!

몸통만 남은 구울이 꿈틀거리며, 쇠 끓는 비명을 질러대자 성현은 놈의 아가리를 해머로 떡 치듯 내려치기 시작했다.

퍼퍽! 쾅! 퍼걱!

퀘륵, 퀘르륵.

구울의 턱과 입 주위가 골절되어 형체조차 알아보기 힘들 지경이었지만, 사람과 달리 구울은 기절하지는 않았다.

다만, 고통만은 느끼는지 몸통을 부르르 떨며, 바람 새는 소리만을 내뱉었다.

-대령님! 2차 기갑부대 출진 합니다.

“휴우-, 해미, 해미 호출해서 내가 도와달란다고 전해라, 빨리!”

-넵, 대령님. 신속히 전달하겠습니다.

성현은 늦게나마 해미를 불러냈다.

이미 이곳 소식을 듣고 성현이 부르기만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었다.

부상당한 대원들이 속출했고, 빠른 치료를 요하는 중환자들도 있을 터였다.

“넌 뒈지지 말고 기다려.”

성현은 구울을 쉽게 죽일 생각이 없던지라, 잠시 놈을 그대로 두고 처음 구울이 있던 자리로 가서 대원들을 살폈다.

이미 예상은 했고 각오도 했지만, 참담한 심정 금할 수가 없었다. 고작해야 15분에서 20분 사이에 480명의 사상자를 만들어 냈다.

그리고 서둘러 찾아봤다.

“두식아, 용칠아!”

성현은 대원들을 살피며, 시신을 발견할 때마다 몸을 잘게 떨었다.

모든 죽음이 안타깝기 그지없지만, 성현도 사람이고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혹시나 뒤집어진 시신을 바로 할 때마다 두식이나 용칠이 아닐지 겁이 났다. 가까이 지내고 매일 보던 이의 죽음은 그 상실감이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자신이 활주로 점검을 지시해서 나와 있던 터였다.

당시의 상황이 한없이 후회되고 있었다.

“두식아!”

한 손에 소총을 부여잡은 두식이 쓰러져 있었다.

성현이 코에 손을 대어 호흡을 확인하고, 목의 경동맥을 짚어 심박수를 체크했다. 다행히 의식만 잃은 듯했다.

크게 한숨 쉬고, 잠시지만 안도했다.

성현은 창고에 있던 40피트 컨테이너를 꺼내 우선 두식과 살아있는 대원들을 그 안으로 옮겼다.

인근의 살아남은 대원들을 모두 컨테이너로 옮긴 성현은 다시 용칠을 찾아 밖으로 나섰다.

그러다 문뜩 시신들의 모습을 보고 의문이 생기기 시작했다.

‘왜 머리만 없지? 그러고 보니 좀비들도 사람을 공격하는 것만 봤지, 직접 뜯어 먹는 것을 본 적은 없다.’

과거 영화나 드라마를 보고 생긴 선입관으로 그럴 것이라 생각하고, 당연시하고 있었다.

하지만, 여태껏 보아온 시신들, 특히 미군 부대에서 본 사람들의 시신은 치명상을 입고 죽어있었지 어디 뜯어 먹힌 자국이 있지 않았다.

‘사람을 먹지 않는 건가? 아니면, 머리만?’

성현은 생각하면서 살아남은 대원들을 찾기 위해 연신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그리고 한 무더기의 대원들을 발견하고 빠르게 뛰어갔다.

“요, 용칠아……”

그리고 익숙한 성명이 박힌 군복을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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