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8
작별 (1)
쏟아지던 장대비가 가늘어지더니 어느새 비는 그치고, 구름 사이로 햇살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소위님! 여기 시신 한 구 더 있습니다.”
“속히 수습하고 주변 정리해!”
활주로에 천 단위가 넘는 군인들이 아군 시신을 수습하는 한편, 좀비 사체를 치우고 주변 정리가 한창이었다.
겨우 완공된 활주로는 전투의 여파로 제구실을 못 할 지경이었고, 당장에 이를 보수할 여건이 되지 못하고 있었다.
꽈과광!
외각에는 대피소의 모든 기갑부대가 투입되어 경계 중이었고, 산발적인 포성이 끊이질 않고 있었다.
“아군 사망 394명 중상 27 경상 59명입니다.”
“…….”
성현은 멍하니 보고를 듣고 있었다.
어디서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어쩌다 일이 이 지경까지 오게 된 것인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일관하고 있었다.
성현은 보고가 끝나자 임시로 마련된 지휘 막사를 나와 걸었다.
뒤에는 의식을 차린 최 중령과 군 지휘관들 모두가 성현을 따랐다.
“크흐흑, 용칠아.”
두식이 목 없는 용칠의 시신을 부둥켜안고 대성통곡하고 있었다.
시신이라도 온전했으면 그나마 위안이라도 되련만, 생전의 모습조차 볼 수 없으니 더욱 처절하게 슬피 울고 있었다.
“대령님, 우리 용칠이… 용칠이 좀 살려 주세요. 크흐흐흑, 용칠이 이리 가면 안 되는 놈입니다. 우리 용칠이…. 제발.”
두식이 어느새 곁에 다가온 성현의 다리를 붙잡고 애원했다.
7살에 부모가 이혼하고 버려진 두식에게 보육원에서 만난 용칠은 가족이자 친구고, 형제였다.
동변상련의 아픔을 가진 둘은 어려서부터 서로를 챙겨가며, 20여 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함께 해왔었다.
피를 나눈 형제는 아니었지만, 가족 이상의 정을 나눈 유일한 한 사람.
“살려내! 살려내라고!”
성현도 짧다면 짧은 시간이지만, 그새 많은 정이 들어있던 용칠이었다.
큰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헤헤’거리며, 순진한 구석이 많던 녀석이었다.
잔정이 많아 대피소의 보육원에 수시로 들락거리며, 아이들과 놀아주기를 주저치 않았었다.
이리 보내긴 너무도 아까웠다.
“두식아…….”
“우리 용칠이 예쁜 아가씨하고 데이트도 한번 못해보고…. 장가도 보내주고, 조카도 봐야 하는데…. 내가 적금도 넣고 있었는데. 세상이 어쩜 이럽니까! 크흐으윽!”
성현은 가만히 두식의 어깨를 감싸 않고, 조용히 눈을 내리감았다. 크게 들썩이는 두식의 등을 토닥였다.
어느새 성현의 눈에도 눈물이 번져 볼을 타고 흘러내리고 있었다.
“……미안하다. 힘들겠지만, 용칠이 이만 보내주자. 이러면 용칠이가 편히 눈감겠냐! 우리 용칠이 이만 쉬도록 해주자.”
성현의 눈에 굵은 눈물방울이 쉼 없이 흘러내렸다.
둘의 모습은 너무도 처연했고, 보는 이들 모두가 애달프고 애달팠다.
* * *
다음날.
대피소 집하장에 합동 분양소가 차려졌다.
거의 대부분의 거주민들이 한 번 이상은 이곳을 들러 희생된 장병들의 넋을 기리고, 함께 슬픔을 나누었다.
그리고 대피소의 모든 업무가 잠정적으로 중단되고, 이주 계획 또한 미루어질 수밖에 없었다.
“……두식이는?”
“응급실에서 조치 중입니다.”
“후우… 당분간 두식이는 모든 업무에서 열외 시키고 쉬도록 해야겠다.”
“알겠습니다.”
두식이 끝내 탈진해 실신했다.
그런 상황에서 성현의 보좌관으로 업무에 복귀한다는 건 힘든 상황이었고, 시간을 두고 스스로를 다독일 필요가 있었다.
“정 소장님, 계속하시죠.”
용칠을 그리 잃고 성현도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지만, 남은 이들을 위해서라도 억지로 힘을 내고 있었다.
“네, 우선 사령관님이 이름 붙이신 구울은 좀비와 다른 새로운 종은 아니라는 게 저희 연구진의 일관된 의견입니다. 플라스미드(Plasmid) 즉, 학명 불명의 독자적 DNA에서 비롯된 좀비의 2차 형질변환(形質變換)을 거쳐 구울이 된 것으로 확인되고 있습니다.”
“그럼 모든 좀비가 구울처럼 변하게 됩니까?”
“그건 그렇지가 않습니다. 현재 수거된 좀비들은 뚜렷한 형질 안정화에 들었습니다. 확답 드릴 수 있는 건 모든 좀비가 구울화 되지는 않는다는 점입니다.”
듣던 중 반가운 소식이었다.
모든 좀비가 구울화 된다는 것은 성현이라 한들 두렵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놈들이 수백 단위로 몰려온다는 생각만으로도 아찔해졌다.
“다행이군요. 그렇다면 구울화 되는 좀비는 얼마 정도 될 거 같습니까?”
“어느 정도의 확률로 구울화 하는지는 좀 더 많은 견본과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똑같은 형태의 구울로 형질변환은 하지 않는다는 점을 염두에 두셔야 됩니다.”
“똑같이 변하지 않는다는 것은 구울도 여러 종류가 있을 수도 있다는 말로 해석해도 됩니까?”
“그렇습니다. 이번에 사령관님이 산 채로 가져오신 구울은 조직 세포가 극단적으로 증식된 대형이라면, 다른 구울은 축소될 수도 있고, 어쩌면 이보다 더 큰 초대형으로 변화할 수도 있습니다. 현재로서는 저희도 그 변화를 모두 예측할 수가 없습니다.”
어제 성현은 구울을 죽이려다 앞날을 위해 정우현 소장에게 놈을 인계했다.
완전한 전투 불능의 구울과 일부 좀비를 산 채로 잡아 왜 이런 변화가 발생했는지 면밀하게 조사하도록 조치한 거다.
“스크린을 보면서 좀 더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어제 인계된 좀비와 구울의 체내 기관입니다. 인간과 달리 폐로 보이는 기관이 전체 기관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대장, 소장 등 소화 기관은 대부분이 축소, 또는 퇴화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는 것은 놈들이 먹지 않고도 살 수 있다는 말입니까?”
소화기관이 거의 없다는 것은 안 먹는다는 말과 일맥상통함에 성현이 물었다.
“예, 그렇다고 보시면 됩니다. 다만 완전히 먹지 않는 것은 아닐 것으로 판단됩니다. 극소량의 물과 극미량의 영양분을 구강을 통해 섭취를 할 것으로 파악됩니다.”
“이해할 수는 없군요. 어떻게 먹지도 않고 그런 활동량과 힘을 낼 수 있다는 건지.”
“흠…. 그 부분에 대해 저희도 아직 연구 중이지만 추측한 바는 있습니다.”
“그것이 뭡니까?”
“공기입니다. 현재 지구에는 극초신성 사태 이전에는 없던, 주기율표상에 없는 원소가 공기 중에 분포하고 있습니다. 원자량 단위(Atomic weight unit)가 산소보다 작은 1.108 수준으로 15분의 1 정도 크기의 미확인 원소입니다.”
성현을 비롯한 군 지휘부는 처음 듣는 소리였다. 사실 연구진들도 이를 확인만 했을 뿐 입증하기는 힘든 탓에 아직 알리지 않았었다.
“저희 연구진은 이를 마나(Mana) 즉, 비인격적인 힘의 관념으로 통칭하고 있습니다. 좀비와 구울은 이 마나를 거대 호흡 기관을 통해 흡수하고, 에너지원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보여 집니다.”
“하아-.”
사실 성현은 좀비들이 언젠가는 자멸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상식적으로 생명체는 에너지원 없이는 움직일 수 없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오산이었다.
“추후에 좀 더 연구가 진척되면 다시 보고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 * *
성현은 정우현 소장의 보고를 듣고 바쁜 그를 돌려보냈다.
그리고 남은 군 지휘관들과 대책 회의를 계속해서 진행했다.
급한 대로 활주로의 아군 시신 수습과 좀비들의 사체를 치웠지만, 본격적인 정리와 보수는 시작도 못하고 있었다.
“놈이 내지르는 포효가 미치는 거리를 정확히 알 수가 없습니다. 높은 상공에서 공격 헬기들로 사전에 방비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근접할 때까지 놔둔다면 어제처럼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보여 집니다.”
“또다시 기상이 나빠지기 전에 빠르게 활주로 보수를 시작해야 됩니다.”
“근데 당장 거주민 모두가 겁에 질려 이 또한 쉽지 않습니다.”
지휘관들이 저마다의 의견을 개진하고 있었다.
성현은 가만히 이를 듣고만 있었다.
그러다 담담히 입을 열었다.
“오늘 하루는 전우들을 기리는 의미로 아무것도 하지 않을 생각이다. 많은 수의 전우가 희생되었다. 일반 대원들도 충격이 클 거라 본다. 모두 돌아가 부대별로 대원들 위무토록 해.”
성현은 일선 부대장들을 모두 돌려보내고, 최 중령과 단둘이 남아있었다.
성현은 아무런 말없이 소주를 꺼냈다.
“이 술은 먼저 간 부대원들에게 바치는 술이다.”
그렇게 안주도 일절 없는 술잔이 한 잔이 되고 두 잔이 되어 술병은 쌓여 갔다.
“니미럴, 이 정도 마셨으면 체하기라도 해야 하는데…….”
“다 좋은데 능력을 얻고 안 좋은 점이 있군요.”
최 중령도 성현이 부여해준 ‘게이머’의 특성으로 인해 술을 마셔도 취기를 느끼지 않았다.
“일이 터지고 각성한 네 능력이 어떤지 물어보지도 못했구나. 그래… 어떤 거 같아?”
“저도 정신이 없어 말씀을 못 드렸습니다. 우선 쓰기에 따라서는 무척이나 유용할 듯합니다. 다만, 선행해서 해결해야 될 문제가 좀 있습니다. 그러니까…….”
최 중령이 자신이 각성한 능력에 대해 성현에게 설명했다.
“가장 먼저 영지를 가져야 모든 능력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영지는 제가 지배하고 있는 영토가 필요합니다. 지배라는 게 거창하게 들리실지 모르지만, 그냥 제가 영지 선포를 하고 시간만 지나면 되는 일입니다.”
“그래? 시간이 얼마나 필요한데?”
“12시간입니다. 최초 영역을 선포하면 저를 기준으로 사방 5㎞가 제 영역으로 간주됩니다.”
“그럼 지금 당장 영역 선포라는 걸해라. 그래야 뭐라도 시작하지 않겠냐.”
“저. 근데 그전에 ‘최하급 귀족’이 먼저 되어야 합니다. 자원을 채취하고 게임의 튜토리얼 같은 것을 또 끝내야. 그제야 영지선포가 가능해집니다.”
“바로는 힘들다라…. 나도 너한테 말 못 해준 게 있다. 아무래도 내가 네 능력 공유 받은 거 같아. 해미 때와는 상황이 달라 나도 좀 놀랬다. 지금 동기화가 마침 다 끝나가니 잠시 기다려보자.”
[ 동기화 완료까지 6분 37초 ]
성현은 자신의 시야 우측 상단에 있는 동기화 카운트를 보며 최 중령에게 말했다.
“네에? 형님이 저와 같은 능력을 얻으셨다고요? 그럼 앞으로도 능력을 주실 때마다 얻게 되는 겁니까?”
“나도 확신은 못하지만, 그럴 거라 생각한다. 이리되면 능력을 부여하는데 큰 걸림이 없을 거 같단 생각도 든다.”
그랬다. 가장 큰 걱정 중 하나가 능력을 각성한 이에 대한 통제가 어렵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성현이 부여한 각성자와 동일한 능력을 얻게 된다면 그런 부분에서 좀 더 유연한 대처가 가능하니 부담을 덜 수 있었다.
“그래도 능력을 부여하는 건 앞으로도 최대한 가려서 할 생각이다.”
“저도 사후약방문보다는 그편이 좋을 듯합니다.”
“이제 시간 됐다.”
[ 동기화 완료 ]
[ ★게이머 박성현의 환경 재설정이 완료되었습니다. ]
성현의 시야에 반투명한 창이 나타났다.
화아악!
성현의 전신에서 은은한 빛이 수 초간 발산하더니 이내 사라졌다.
생소하지만 스스로에게 어떤 변화가 있음을 내적 충만감과 전신에서 느껴지는 힘으로 느낄 수 있었다.
‘이건 레벨 업과는 달라.’
말로 표현할 수는 없지만, 근원적인 거대한 변화가 찾아왔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한없이 넓어지는 무한한 공간감에 스스로의 잊었다.
성현은 본인이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 영혼의 격이 한 차원 높아졌음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