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1
사투(死鬪) (2)
쉬이이익.
바람을 가르는 날카로운 소음이 예민한 감각에 잡혔다.
‘이크’
은신 능력을 사용한 박쥐 구울이 성현의 측면으로 활강하며 덮쳐왔다.
급히 바닥을 박차고 거리를 벌리자, 투명한 무언가가 한 뼘 거리를 두고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서걱!
공격을 피하면서 반사적으로 휘두른 칼날에 놈의 날개 피막 한 귀퉁이를 잘라냈다.
성현 또한 정상적이지 않은 상태로 급격한 반전을 한 탓에 근육이 끊어질 듯 비명을 질러댔다.
‘찾았다.’
피막의 잘린 부근의 은신이 풀리자, 그곳을 기준으로 놈의 몸통을 가늠했다.
탕탕!
더블 탭 속사로 방아쇠를 당겼다. 총성과 동시에 허공에서 검푸른 피가 길게 뿌려졌다.
하지만.
‘제기랄!’
어지간히도 질긴 가죽과 밀도 높은 근육으로 인해, 패시브 스킬로 강화된 탄환조차도 구울의 몸통을 쉬이 관통하지 못했다.
거기다 재생 능력이 탁월한 것인지, 몇 방울의 피를 떨어뜨렸을 뿐 출혈 또한 금세 멎어있었다.
재차 권총을 발사하려는 차, 양동 작전인지 쥐 형상의 구울이 쏜살같이 달려왔다.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놈이 날카로운 손톱을 들어 성현을 공격했다.
카캉! 캉!
놈의 손톱과 성현의 검이 부딪히며 시뻘건 불꽃이 튀었다.
한 손에 네 개의 손톱은 여간 성가신 게 아니었다.
스카캉!
순간 놈의 손톱이 늘어나며, 성현의 오른팔을 찰나에 스치고 지나갔다.
그 길이가 최대치인지는 모르지만, 놈의 손톱은 거의 2미터의 육박하는 길이로 늘어나 다시 줄어 들어있었다.
손톱이 할퀴고 간 라이트 아머의 내구가 크게 줄어들어 그 부위만 연한 주황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이 새끼도 숨긴 한 수가 있었네.’
라이트 아머에 손상은 생겼지만, 물리력은 그다지 크지 않아 육체적인 피해는 전무했다.
타탕! 카카캉!
더 이상 숨겨 놓은 재주만 없다면, 같은 공격에 두 번 당할 성현이 아니었다. 검과 권총의 조합으로 견제와 함께 쥐 형상의 구울을 몰아붙였다.
순식간에 수십 번의 검격을 쏟아내며, 구울을 공격했다.
‘빈틈!’
검과 손톱이 맞부딪치는 찰나, 성현은 손톱을 타고 그대로 놈의 손목을 크게 베어냈다.
서거걱! 푸확!
크게 높아진 근력과 민첩의 힘은 구울의 질긴 가죽을 찢고, 근육을 파고들어 종래에 뼈까지 단숨에 갈라버렸다.
권총의 화력보다 성현이 가진 본신의 힘이 그보다 월등함을 알 수 있는 공격이었다.
성현은 한쪽 손을 끊어내고 끝장을 보려 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고 훌쩍 물러서야 했다.
치지지지직.
구울의 피가 라이트 아머를 흠뻑 적시자 역한 냄새와 함께 허연 연기가 피어올랐다.
강력한 산성을 머금은 피였다.
키에에에엑!
[ 정신 공격에 저항하였습니다 ]
꽤나 다급했던지 구울이 사방으로 고개를 돌리며 포효를 질러댔었다.
이전 활주로에서 조우한 구울의 포효와 그 소리는 달랐지만, 효과는 같은 종류임을 알 수 있었다.
보기에 따라서는 ‘도와 달라’는 구조 요청으로 보이기도 했다.
그어어어.
멀리서부터 좀비들이 괴성을 지르며 달려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확실히 구울들이 좀비를 조종하고 있군. 이대로는 나도 힘들다.’
당장의 구울도 문제지만, 대량의 좀비들도 지금의 상태로는 버겁기는 매한가지.
‘전력으로 간다!’
[특수]무기 기술자
-공격력, 속도, 범위, 명중 50% 증가 (적용 시간 10분, 재사용 대기시간 1시간)
[일반]용맹정진
-공격력, 방어력 각 30% 증가 (적용 시간 3분 재사용 대기시간 1시간)
성현은 최적의 순간을 기다리려 했지만, 아끼면 똥 된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었고, 최고보다 최선을 택했다.
버프 스킬을 활성화하고, 공격에 박차를 가했다.
카카캉! 서걱!
‘뭐야? 포효 직후에 제약이 있는 건가?’
놈이 자신의 공격을 피할 것이라 생각지는 않았지만, 지금은 거의 무방비에 가깝게 공격을 허용하고 있다.
활주로에 나타났던 구울도 포효를 지르고 그 자리에 가만히 있었던 것이 어쩌면 이 같은 이유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포효를 사용한 직후에 긴 시간은 아니지만, 몇 초 정도는 행동 불능, 또는 제약이 있음이 분명했다.
끼이이이익!
쥐를 닮은 구울의 비명을 듣고, 박쥐 구울이 지원을 하기 위해 피막을 펼치며 성현을 향해 활강했다.
퍼펑! 펑!
활강하며 입에서 압축된 공기를 쏘아냈지만, 버프 스킬까지 사용한 성현은 어렵지 않게 공격을 피해냈다.
타타타타앙!
성현은 왼손에 들린 매그넘을 연속해서 당겼다.
스킬에 의해 강화된 탄환은 앞서보다 수배의 힘을 내포하고 있었다.
공격 속도 상승에 힘입어 이전보다 훨씬 빠르고, 강력한 관통력을 가진 탄환이 박쥐 구울의 몸뚱이에 ‘뻥’하는 소리와 함께, 커다란 관통상을 만들어냈다.
쿠쿠쿵.
박쥐 구울은 믿기지 않는다는 눈으로 활강하다 그대로 지상에 묵직한 소음을 만들어내며 틀어박혔다.
어쩌면 권총 탄의 위력을 몸소 맞아본 구울은 크게 개의치 않았을 수도 있었다.
그만큼 구울의 마지막은 허망하리만치 어이없게 그 끝을 맺었다.
키엑?
혼자 남은 쥐 형상의 구울이 그제야 상황파악이 된 듯, 두려움 가득한 시선으로 성현을 쳐다봤다.
그리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냅다 도망가기 시작했다.
‘한발 남았네.’
[일반]강타
-무기 공격력 30% 증가 (재사용 대기시간 3분)
[일반]이연격
-유효한 공격 성공 시 동일한 추가타 적용 (재사용 대기시간 3분)
일직선으로 도망가는 구울의 뒤통수에 총구를 겨냥하고, 액티브 스킬을 활성화했다.
타앙!
마지막 남은 탄환이 쥐 구울의 머리를 폭죽마냥 터트려 버렸다.
‘잡긴 두 놈 다 잡았는데, 하-아.’
이걸로 끝이면 좋으련만, 사방에서 수백 마리는 족히 될법한 좀비들이 성현을 에워싸고 달려온다.
구울의 포효를 듣고 달려오는 좀비들이 이제 지척에 당도하고 있었다.
당장 몸을 뺄 공간조차 만들기 어려웠다.
“와라!!”
당장 누적된 피해로 인해 지치고 힘들지만, 뒤를 보이고 도망가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았다.
그리고 용칠의 혼백을 조금이라도 달래 주기 위해서라도 지금 성현은 멈출 수가 없었다.
* * *
긴 밤이 지나고 동이 터올 때가 되어서야 성현의 전투는 막을 내리고 있었다.
서걱!
마지막 남은 좀비의 머리가 공중을 빙글빙글 돌아 바닥으로 떨어졌다.
성현이 발을 딛고 있는 주변은 좀비들의 사체로 그야말로 산을 이루고 있고, 몸통과 분리된 팔다리가 사방에 나뒹굴고 있다.
“하아- 하아-.”
거친 숨을 내뱉는 성현도 정상은 아니었다.
장전된 소총이 도대체 몇 자루였는지 수류탄은 또 얼마나 사용했는지, 숫자조차 세기 힘들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는 오로지 검에 의지해 전투를 지속했다.
처음 구울과 전투를 시작할 당시도 HP는 30%를 조금 넘는 정도에 불과했고, 현재는 9%까지 낮아져 일반인이라면 빈사 상태에 빠지고도 남을 중상이라 할 만했다.
그나마 게이머의 육체는 일반적인 사람과는 괘를 달리하고 있고, 겨우 정신을 유지해 몸을 움직일 수 있었다.
“구울을 생각했어야 했어. 크윽, 더는 무리다.”
전투의 흥분과 스스로에 대한 과신으로 지나치게 자신을 학대하듯이 전투를 벌였다.
그러다 생각지도 않았던 구울 두 마리가 더 나타나는 통에 치열하게 싸울 수밖에 없었다.
성현은 힘겹게 발을 떼어 전투 현장에서 조금 벗어난 곳에서 헬기를 꺼내었다.
이 상태에서 또 다른 구울과 조우하게 된다면, 치명적인 전투가 될 것이었다.
“으윽, 서둘러야겠다.”
겨우 캐노피를 열고 헬기에 올라타 고도를 높임과 동시에 대피소 입구로 향했다.
10% 이하로 떨어진 HP는 게임의 설정대로 현실에서도 자연 회복이 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상처는 악화됨이 자명했고, 제아무리 성현이라 해도 버틸 재간이 없었다.
“크윽, 사령관이다. 입구 공터에 해미를 불러줘. 부상이 심한 상태다.”
-넵, 사령관님. 알겠습니다.
헬기로 이동하며 무전을 날린 성현은 어느덧 대피소 상공에 도달했다.
가물거리는 정신과 떨리는 팔로 기체가 위아래로 크게 요동치며 조종이 힘들었지만, 다행히 큰 탈 없이 착륙에 성공했다.
성현은 터널 입구가 열리기를 기다렸다.
“후욱-, 후욱-.”
들숨과 날숨의 간격이 점차 좁아지고, 탁한 숨을 연신 내뿜고 있었다.
착륙을 마치고 1분여가 지났을 즈음, 시야가 흐려지는 게 금방이라도 정신을 잃을 것만 같았다.
그리고.
“제, 제기랄.”
뿌옇게 변한 시야에 좀비들의 표식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인근에 있던 좀비들이 헬기 로터음에 이끌려온 것이었다.
손가락 하나 까닥할 힘도 없는 성현은 움직이지 못하고, 헬기에서 이를 지켜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쿵. 쾅. 콰쾅.
좀비들이 헬기의 동체를 두드리며, 성현을 위협 중이었다.
다행이라면, 공격 헬기의 두꺼운 장갑은 좀비의 공격을 어느 정도는 막아 줄 수 있다는 데 있었다.
그렇다 한들 이것도 시간문제일 뿐이었다.
눈꺼풀이 너무 무거운 성현은 정말 쉬고 싶었다.
이제 HP는 고작 6%
숨을 쉬는 것조차 버거운 상태.
극초신성 사태가 발발하고 있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떠올랐다.
해미, 줄리, 최 중령, 두식이, 그리고 이제는 곁에 없는 용칠이, 모두의 얼굴들이 스쳐 지나갔다.
마침내 성현은 의식을 놓고 말았다.
* * *
해미는 대피소 터널 입구에 도착해서 마구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열리지 않는 문을 보고 발만 동동 구르는 상태였다.
“빨리 열어!”
존댓말조차 생략한 해미의 날카로운 고함이 터널에 내부에 울려 퍼졌다. 성현의 무전이 도착하고 이미 10여 분이 넘어가고 있었다.
해미가 성현이 다쳤다는 무전을 접하고, 터널 입구에 도착한 건 채 5분도 안 되었지만, 거대하고 육중한 문이 이를 막고 있었다.
“이 개새끼들 이따 보자.”
최동원 중령도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어 있었다.
본래 터널 입구는 24시간 전력 공급이 되고 있어야만 했다.
이는 성현이 대피소를 장악하고 나서 새로이 만든 지침이었고, 최 중령은 당연히 지켜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안일한 태도로 업무에 태만한 몇몇으로 인해 지켜지고 있지 않았다.
“죄, 죄송합니다. 전원이 이제 들어왔습니다.”
관리과 과장 하나가 머리를 땅에 닿을 듯이 사죄했지만, 최 중령의 절대 용서해 줄 생각이 없었다.
구구구궁.
거대한 터널 문이 열리면서 좁디좁은 공간을 확보하자 해미가 그사이를 비집고 총알처럼 밖으로 튀어 나갔다.
“아, 아저씨!”
성현이 탔을 것으로 추정되는 헬기가 해미의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헬기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좀비 때를 보고 창고에서 자신의 키만 한 스태프를 꺼내 들고 달려갔다.
“징벌!”
해미는 성현과 같은 23레벨.
20레벨에 열린 단하나 뿐인 공격 스킬을 사용했다.
‘징벌’ 스킬은 인간이 아닌 모든 부정한 존재에 대해 공격이 가능한 빛 속성 광역기였다.
마력 스텟에 영향을 받아 공격력과 범위가 변하는 가변형 스킬로, 50레벨 미만 힐러들의 주력 공격 스킬이었다.
고오오오! 스파팟!
거대한 마법진이 지상에 그려지고, 성스러운 빛이 상공으로 치솟았다.
해미의 마력은 70에 이르러있었고, 마법 공격의 범위가 직경 35m에 달했다.
스킬 한방에 그 안에 있는 모든 부정한 존재를 초고열을 동반한 빛으로 불태웠다.
순식간에 헬기 주변의 좀비들은 한 줌 회색빛 먼지로 화해 흩날렸고, 뒤이어 열린 터널에서 기갑 차량들이 공터로 나서 외곽의 좀비들을 사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