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판멸망한 세계의 게이머-63화 (63/176)

# 63

영결식 (1)

밤새 완전히 부서지지는 않았지만, 일부 성벽이 부서졌고 발리스타도 내구도가 크게 깎여 수리하는 일이 잦았다.

성벽과 달리 발리스타는 공격 횟수에 따른 내구도 감소가 있다.

내구도가 높고 강력한 공격력을 가진 수성 병기들로 도배할까도 생각했지만, 결코 적지 않는 비용이고, 어차피 수일 안에 포기할 영지에 추가 투자는 자제해야 했다.

밤이 깊어 새벽 동틀 녘이 되어서야 성현은 간신히 눈을 붙였다.

“아저씨, 이제 대피소에 있으면서 외박까지 하는 거예요?”

“으으응?”

성현이 기척을 느끼고 눈을 뜨자 눈앞에 해미가 서 있었다. 양손을 허리에 올리고 있는 모습이 제대로 뿔이 난 거 같았다.

“커험, 일이 바쁘다 보니 나도 모르게 여기서 잠이 들었네. 아하하.”

면피용 웃음을 크게 내보는 성현이었다.

그런 넉살에 넘어간 건지 해미의 표정도 어느 정도 풀리고 있었다.

“줄리는 유치원 갔고?”

“헐, 지금 시간이 몇 시 인줄 아세요?”

“……이런.”

시간은 막 9시를 지나고 있었다.

“이러다 늦겠다. 대피소 밖에 볼일이 있었는데, 해미 너도 같이 갈래?”

“그럼 저 빼고 가시려고 했어요? 이제 혼자 안 보낸다 했잖아요.”

성현은 오늘 정오가 되기 전에 해야 할 일들이 많았다.

용칠과 전날 희생된 대원들의 합동 영결식이 정오 무렵에 예정되어 있었다.

그전에 깨끗이 마무리할 일들이 남아있었다.

*  *  *

“어어, 해미야. 그건 건들면 안 된다니까.”

성현은 식은땀이 흘렀다.

기체가 일순 크게 요동치며, 곤두박질쳤다.

해미가 공격 헬기의 부조종석에 앉아 신기한지 이것저것 건드리던 끝에 조종 권한까지 가져가 성현을 크게 당황시켰다.

“아, 네. 죄송해요. 와 근데 여기 신기한 게 너무 많아요.”

성현은 해미의 새로운 모습에 얼떨떨했다.

밀리터리 이야기만 꺼내도 기함하던 애가 이런 모습을 보이니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저기 한 마리 더 있다.”

“아저씨, 이번에는 제가 해보면 안 돼요? 나도 해보고 싶은데…….”

“……그럼 기다려봐. 내가 신호 주면 앞에 있는 조종간에 빨간 커버 열고, 단추만 눌러 알았지? 다른 건 건들면 안 된다.”

“네~ 에.”

성현은 영지 안에 들어와 있는 영지민이 아닌 놈들을 추적 중이었다.

미니맵에 확인된 영지에 들어온 놈들은 모두 다섯 마리. 그중 좀비는 하나도 없었다.

모두 구울이었다.

적다면 적지만, 구울 한 마리가 좀비 수백 마리 이상의 역량을 가진 터라 절대 우습게 여길 숫자가 아니었다.

잠들기 전에 세 마리였던 것이 그사이 두 마리나 더 늘어나 있었고, 대형 발리스타도 12개나 파손되어 있었다.

대형 발리스타로는 구울은 막지 못했다.

그중 공중형 구울 두 마리와 지상에 있던 세 마리 모두 헬파이어 미사일과 체인건으로 녹여 버렸고, 이제 마지막 한 마리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약 1㎞ 떨어진 위치에서 있는 구울이 사격 통제 레이더에 포착되었다.

무기 통제 패널에서 헬파이어 미사일을 지정했고, 순식간에 락온(Rock on)을 완료한 성현이 해미를 돌아봤다.

“해미야, 지금 누르면 된다.”

“네~ 발사!”

푸화화확!

최대 사거리 8㎞에 달하는 헬파이어 미사일이 흰 궤적을 남기며, 날아갔다.

마하 1.3(1,591㎞/H)의 속도로 날아간 헬파이어 미사일은 4초가 지나지 않아 목표인 구울을 정확하게 타격했다.

꽈광!

상공에서 수직으로 내리꽂히는 미사일에 구울은 변변한 대응조차 하지 못했다.

성현은 헬기의 속도를 높여 탄착지 부근으로 빠르게 이동했다.

두둥둥둥.

30mm 체인건에서 묵직한 발사음과 함께, 이중목적 고폭탄이 발사되었다.

미사일에 직격된 구울은 질기게도 살아남아 있었고, 그 마무리를 성현이 직접 실행했다.

“와아, 아직 살아있었네요.”

“구울은 기존의 좀비처럼 생각했다가는 큰일 난다.”

“아저씨 그런 거 보고 저도 알거든요.”

“커험, 그건 내가 험, 어제는 내가 무리해서 그렇지 저딴 놈들 세트로 덤벼도 문제없다.”

“아닌 거 같은데… 앞으로 다치지나 마세요. 아저씨 저보다 약하잖아요.”

“아니 내가… 에휴, 아니다. 앞으로 조심하마.”

해미는 아직 모르고 있었다.

성현의 스텟치는 3차 전직의 특전을 받아 ‘전 스텟 +30’를 획득한 해미의 총합보다 높음을 몰랐다.

새로운 능력을 각성하고 계급이 자작에 오른 성현은 전 스텟 +28로 해미보다 스텟의 오름폭은 2가 적었지만, 기본 스텟이 힐러에 비해 높았던지라 마력을 제외한 모든 스텟이 성현이 앞섰다.

성현은 그 부분을 집어 주며 말하려다 그만두었다. 왠지 해미가 그 사실을 알면 서글퍼할 것만 같았다.

여자에게 져주는 게 곧 이기는 것임을 삶을 통해 몸소 체득한 지 오래다.

그리고 해미에게 그다지 이기고픈 마음도 들지 않았다.

*  *  *

정오부터 진행된 영결식은 대피소 공터에서 행해졌다.

성현은 미니맵을 통해 실시간으로 영지 전체에 대한 정보를 확인할 수 있었고, 안정적인 영결식을 거행할 수 있었다.

수만이 넘는 이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음에도 떠들거나 소란스럽지 않았다.

엄숙하고 숙연한 분위기 속에서 영결식은 거행되었다.

“당신들은 마지막 한 명까지 뒤를 보이지 않고, 우리를 지켜줬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영영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떠났구려. 당신들의 희생으로 우리는 오늘을 살고, 내일을 기약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애통하고 애통하다. 지금의 이 비통함을 가슴에 묻고 더는 당신들과 같은 희생이 반복되지 않도록 대비하겠습니다. 그 희생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부디 더는 고통 받지 말고 그곳에서 평안하소서. 부디 그곳에서 영면에 드소서.”

성현은 고별사를 통해 장병들의 넋을 위로했다. 그리고 스스로 북받치는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끝내 눈물을 보였다.

곳곳에서 탄식과 흐느낌이 터져 나오더니 이내 영결식장은 울음바다가 되어 버렸다.

성현이 향을 헌화하고 돌아설 때, 두식이 다가왔다.

두식은 얼마나 큰 심적 고통을 겪었는지 이틀 사이 머리가 허옇게 세어있었다.

“우리 용칠이, 저기 하늘에서 잘 있겠죠?”

의외로 두식의 목소리는 덤덤했지만, 얼굴은 세상 다 잃은 듯 슬픔에 젖어있었다.

“우리도 언젠가는 가서 만나겠지, 용칠이가 어디 가서 밥 굶고 그럴 녀석은 아니지 않겠냐. 잘 있을 거다 그러니 이제 그만 놓아주자.”

성현은 두식을 가볍게 안아주고 등을 쓸어 주었다. 자신도 이리 가슴이 메어오는데 두식이는 오죽할까 싶었다.

그 슬픔의 깊이는 말로 표현할 수도 없을 터였다.

영결식이 모두 끝나고, 성현은 고속도로 활주로 부근에 와 있었다.

해미와 최 중령 등 군 지휘관들 전부가 그 뒤를 따랐고, 모두가 말을 아끼고 있었다.

성현은 잠시 눈을 감고, 묵념했다.

“편히 쉬길…….”

전투의 흔적이 역력한 활주로를 바라보며, 성현이 나지막이 말했다.

그리고 이내 눈을 떠 당장 시급한 현안을 처리하고자 했다.

바로 활주로 복구였다.

인력 투입이 이제는 어렵지 않았지만, 그다지 여유롭게 할 일이 아니었다.

지금은 영지에 침입한 구울을 처리하고 성벽으로 좀비들을 막고 있다지만, 언제까지 이곳에 남아있을 수는 없었다.

[1.도로]

1)평평한 흙길

내구도 : 120

규격 : 폭 5m, 길이 5m, 두께 1m

필요자원: 목재 4t, 점토 10t

대체 자원 : 3 골드

-설치

( 0 ▲) =

2)단단한 포장도로

내구도 : 450

규격 : 폭 5m, 길이 5m, 두께 1m

필요자원: 점토 5t, 석재 10t

대체 자원 : 15 골드

-설치

( 0 ▲) =

도로의 종류는 두 가지였다.

“흙길은 어차피 안 될 거 같고, 가능할까?”

항공기 이착륙이 가능할지 여부는 만들기 전에는 확인할 길이 없었다.

그리고.

“괜찮아, 이 정도면 충분해.”

‘단단한 포장도로’ 하나를 생성해서 내구성을 테스트를 해본 결과, 강성 포장된 기존 활주로의 내구성보다 뛰어남을 알게 되었다.

성현은 미니맵을 열고 도로를 만들 라인을 설정했다.

“이거면 편하게 설정할 수 있겠는데.”

도로 설치를 위한 미니맵은 여태 보아왔던 미니맵과는 달리 격자가 들어가 있는 형태였다.

편의를 돕는 보조 기능이 있어 네모반듯한 한 칸에 5*5 도로 하나가 들어갔고, 코너 부근은 매끄러운 곡선으로 보정해주는 기능도 있었다.

성현이 공들여 설정한 활주로는 비행기 날개폭 보다 넓은 폭 100m, 길이는 2.5㎞에 달했다.

2)단단한 포장도로

-설치

( 10,000 ▲) = 150,000 골드

중복으로 겹치지 않은 단단한 포장도로가 정확히 만개가 들어갔다.

[현재 설정하신 단단한 포장도로를 설치하시겠습니까? (수락, 거부)]

성현이 수락을 터치하자 설치를 알리는 메시지가 아닌 전혀 다른 경고가 나타났다.

“뭐야 이거?”

[경고]

[단단한 포장도로 설치 경로상에 있는 이물질로 인해 추가 골드가 필요합니다. 84,604 골드를 소비하여 제거하시겠습니까?]

“이건 뭐, 달라는데 도리 있냐. 가져가.”

듣는 이도 없고 대답도 없을 테지만, 혼잣말로 부당함을 토로했다.

“그걸로 집도 사고 차도 사라.”

[경로상에 있는 이물질은 제거되고, 생명체는 설치 지역 밖으로 이동됩니다]

[설치 150,000 골드, 추가 비용 84.604 골드를 소비하여 단단한 포장도로를 설치합니다]

쿠쿠쿵.

순간 지면이 파도치듯 출렁이고 있음이 시야에 들어왔다.

포장도로 설치 구간 밖으로 나와 있음에도 지면의 움직임이 생생히 느껴졌다.

그리고 활주로 안에 있던 부서진 차량과 남아 있던 좀비 사체 등, 기타 모든 것들이 분해되어 흩어지고 있었다.

“······”

“······”

여태껏 성현이 행한 기적 같은 일들을 많이 봐왔지만, 지금과 같은 스케일의 일은 본 적이 없었다.

지반이 지진이 난 듯 흔들거리더니 고속도로 활주로의 부서진 차량이며, 잔해들이 아주 작은 입자로 분해되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있었다.

구구구궁!

그리고 그 자리에 짙은 회색 톤의 보기에도 단단해 보이는 포장도로가 생겨나고 있었다.

길이 2.5㎞, 너비 100m에 이르는 활주로가 수초의 시간 만에 완성되는 순간이었다.

*  *  *

쿠콰콰콰-.

엔진 시동을 마친 747-400 점보제트기 한 대가 성현이 생성한 포장도로를 타고 서서히 움직이고 있었다.

“다음 탑승 부대 정렬!”

한 대의 여객기가 이륙을 시작하고, 곧바로 두 번째 수송 인원들이 정렬을 시작했다.

“모두 신속하게 탑승!”

먼저 출발한 여객기에는 모두 524명의 병력이 탑승했고, 후발 여객기에는 477명이 탑승할 예정이었다.

치안 본부장으로 있던 조만호 대위가 군으로 복귀해 이번 수송의 총 책임자로 임명되어 있었다.

“단결! 대위 조만호, 수송 준비 완료되었습니다.”

“그래, 곧 따라갈 테니 제주에서 보자.”

“넵, 사령관님. 안전 비행하십시오.”

조만호 대위는 경례하고, 여객기에 제일 마지막으로 올라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