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판멸망한 세계의 게이머-64화 (64/176)

# 64

이주 (1)

조만호 대위가 탑승을 마치자 거대한 동체의 여객기가 활주로를 미끄러지듯 나아가기 시작했다.

잠시 지켜보던 성현은 남은 지휘관들을 돌아봤다.

“나는 오늘 수차례 왕복 할 예정이다. 최우선 군 관련 물자부터 집하장에 모두 준비 시켜놔, 그리고 명일부터 주민 이송에 차질 없도록 미리 점검해라.”

성현은 제주도 물자 수송을 지금부터 시작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공군으로 하여금 지속적으로 성벽 주변을 원거리에서 감시토록 해라. 성벽을 넘는 놈은 단 한 마리도 놓치면 안 된다. 탄약 아낀다고 찔끔 거리지 말고 가루로 만들어 놔.”

대형 발리스타의 공격을 맞고도 성벽을 넘을 수 있는 건 구울 뿐이었고, 구울은 단 한 마리도 놓쳐서는 안 되었다.

육체적인 능력도 두려운 구울이지만, 그것의 포효는 보통의 인간에게 치명적이었다.

구울은 성현이 없더라도 공격 헬기로 어렵지 않게 처리할 수 있음을 오전에 확인했다.

스킬로 강화 되지 않은 미사일로도 충분히 잡아낼 수 있었다.

“넵, 사령관님. 알겠습니다.”

최 중령에게 당부의 말을 마친 성현은 조나단 대위를 바라봤다.

이번 부대 수송 여객기 호위와 더불어 비행 테스트 임무를 부여받은 조나단 대위였다.

“조나단, 출발하도록 하지.”

“넵, 사령관님.”

이글 편대라 명명된 전투기 편대의 편대장인 조나단 대위에게 출발을 알렸다.

조나단 대위가 성현의 지시를 받고 대기 중이던 전투기 조종사 여섯 명의 탑승을 독려했다.

“나도 전투기 타고 싶은데…….”

“으음, 해미야. 저건 1인승이라 어쩔 수 없다. 그리고 줄리에게는 위험해서 안 돼.”

해미가 줄리를 데리고 같이 간다고 보챘지만, 들어줄 일이 아니었다.

F15와 같은 복좌기라면 해미와 탑승도 가능하겠지만, 이미 한차례 헬기에서 해미와 동반 탑승의 위험성을 느낀 성현은 최대한 피하고 싶었다.

더군다나 줄리를 함께 태우는 건 말도 되지 않았다.

“네에······.”

해미의 힘없는 대답에 머리를 한번 쓰다듬고는 줄리를 안아 들었다.

“줄리야, 파파 다녀올게. 마마랑 잘 놀고 있어.”

“웅~ 파파, 그리고 빨리 바다 보여줘야 해.”

“그럼, 파파가 세 밤만 지나면 꼭 바다 볼 수 있게 해줄 게. 자 약속.”

줄리와 새끼손가락을 걸고 약속한 성현은 이주 마지막 날 해미와 줄리를 보낼 생각을 했다.

최대한 자신의 동선에 맞출 요량이었다.

내일 오전부터 일일 3만 명가량을 이송할 계획이고, 더할 수는 있겠지만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만든 계획이었다.

쿠콰콰콰.

35,000파운드의 추력을 내는 쌍발 터보팬에서 강력한 화염을 토해내며 기체를 밀어냈다.

성현이 엔진 출력을 올림과 동시에 기체가 활주로를 박차고 튀어 나갔다.

그 뒤로 7대의 랩터가 연이어 이륙하며, 성현을 따랐다.

“편대는 기동 훈련을 병행하며, 수송 여객기를 호위하도록 한다. 나는 단독 작전에 들어간다. 이상.”

-이글 원. 카피 뎃.

이륙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부대원들을 태운 여객기를 성현의 랩터가 앞지르며 나아갔다.

성현은 공중회전을 하며, 인사를 하고 한발 앞서 제주도를 향해 속력을 올렸다.

마하 1.7의 속도로 순항 중인 랩터는 15분여가 지나자 한반도를 벗어나 남해에 들어섰다.

이전에 제주에서 북상할 때와는 달리 별다른 재주를 부리지 않은 신속 비행이었다.

“사령관이다. 곧 제주 공항에 착륙 예정이다. 활주로 이상 유무 체크 바란다.”

성현이 제주도 상공에 들어서고 공항까지 10㎞ 이내에 들어서자 곧바로 무전을 날렸다.

-단결, 중위 김영기. 활주로 이상 무! 착륙하셔도 괜찮습니다.

“알겠다. 내려가서 보도록 하자.”

마침 점심을 먹고 휴식을 취하고 있던 직속 전투부대 소속 김영기 중위가 성현의 무전을 받아 답했다.

성현은 뺀질거리기는 하지만, 맡은 바 소임에 충실한 김 중위가 자신 있게 답하지 피식하고 웃었다.

끼익, 끼이익!

성현은 랜딩기어를 내리고, 제주도 활주로의 중간 부근에 기체를 내려 착륙했다.

제주도 활주로의 길이가 3㎞에 이른 탓에 단거리 이착륙(STOL)이 가능한 랩터는 굳이 모든 활주로를 사용할 필요가 없었다.

““단결!””

외부 작전 중인 대원들과 경계 근무자를 제외한 모든 부대원들이 성현을 마중 나왔다.

“모두 수고 많았다. 해밀턴, 특별한 일은 없었나?”

“넵, 사령관님. 보고 사항은 총 두 가지입니다. 사령관님이 명령하신 좀비 소탕은 첫날 잔존 좀비 50여 마리 소거 후, 현재까지 추가 좀비는 발견되지 않고 있습니다.”

“최근 좀비들에게 급격한 변화가 있어 내심 걱정했는데, 그나마 다행이다. 그럼 남은 한 가지는?”

“생존자를 발견했습니다.”

“생존자? 몇 명이나?”

성현도 혹시나 했지만, 기대하지 않았던 소식이었다.

이미 자신도 제주도를 수차례 휘젓고 다니면서 좀비 몰이를 하며 확인했다.

제주 V-1 대피소 외에는 생존자는 없을 것이라 판단했던 터였다.

“148명입니다. 모두 같은 그룹은 아니었고, 여섯 개의 생존자 그룹이 있었습니다. 우선 사령관님의 별다른 지시가 없었던 상황에서 임의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공항 인근 호텔 하나에 모두 데려다 놨습니다. 부대원 20여 명을 유사시에 대비해 경계토록 해두었습니다.”

“차 상위 지휘권을 준 것은 그만한 재량도 있다는 말과 같다. 나쁘지 않은 조치다, 헌데 그렇게나 많아?”

성현은 생존자를 발견했다고는 하지만, 이렇게나 많은 이들이 있을 줄은 몰랐다.

솔직히 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네, 사령관님 오늘도 오전 일찍 1개 그룹 15명이 추가된 상태입니다. 아직 남은 생존자들이 제주도에 더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알겠다. 생존자들을 발견하면 지금과 같이 한 장소에 모아두도록 하고, 내일부터 본격적인 이주가 시작되면 관리과 직원을 보내서 신분 확인과 함께 추가 조치하도록 하겠다.”

“넵, 알겠습니다.”

성현은 의외로 많은 생존자가 있다는 사실에 제주도뿐만이 아니라, 한반도 전역에 아직 살아남은 생존자가 많을 것으로 판단했다.

다만 좀비들이 자외선 면역이 완료된 지금, 대낮에도 활보하게 되면서 생존 환경이 더욱 열악해진 상태다.

과연 살아남은 사람들이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는 가늠하기 힘들었다.

“모두 수고 많았다. 곧 2개 대대병력이 1차로 수송되어 올 거다. 조만호 대위가 지상군을 지휘할 테니 그리 알고, 기존 대원들은 임무 인수인계 할 수 있도록 준비해라.”

“넵, 사령관님.”

“아참, 해밀턴. 유류 물자 확인은 했나?”

“넵, 제주 공항 유류 저장 탱크의 저장량은 항공류 585만 갤런. 약 2천2백만 리터 정도 됩니다.”

“많은 것 같지만, 숫자만 들어서는 얼마나 많은 양인지 잘 모르겠다. 우리가 전투기나 항공기를 운행한다는 가정하에 말해주겠나.”

성현은 많은 양이라 생각하지만, 비행 시 소모되는 양이 얼마인지 알지 못했고, 그 정도를 짐작하기 어려웠다.

“흠, 쉽게 설명해 드리자면 747 점보 여객기의 빈 연료탱크를 115번 정도 급유할 수 있습니다. 또 F15 전투기를 기준으로 한다면 1대가 약 8천 시간 비행이 가능한 양으로 보시면 됩니다.”

“그렇게 들으니 쉽게 이해가 되네, 알겠다. 당장은 문제가 없겠지만, 미리미리 대책은 세워 놔야겠다.”

성현은 해밀턴의 보고가 끝나자 창고에 넣어온 군 물자들을 계류장 한편에 모두 내려놓고, 다시금 랩터를 타고 대피소로 향했다.

*  *  *

성현은 금일 예정된 제주도 물자 수송을 모두 끝마치고, 전체 회의를 소집해 논의 중이었다.

“농지로 적합한 장소에 대한 확인은 마쳤습니까?”

“네, 사령관님. 우선 남부 해안가를 중점적으로 조사하라는 말씀에 맞춰 두 곳을 선정했습니다. 해안과 최대한 가깝고, 넓은 면적을 가진 논경지로 적합한 곳은 모두 두 곳입니다.”

“그게 어딥니까?”

“전라남도 고흥군과 영산강 하류에 위치한 평야 지대입니다.”

“그 두 곳이면, 우리 대피소 전체가 소모하는 식량을 감당할 수 있습니까?”

“전체 면적이 119㎢ 정도로, 여의도 면적의 40배에 해당합니다. 평수로는 자그마치 3천6백만 평에 가깝습니다. 충분하고도 넘칩니다.”

“흠, 알겠습니다. 수고했습니다. 식품관리부장께서는 정식 보고서를 만들어서 제출하도록 하고, 제주에서도 식용 작물 재배에 차질이 없도록 준비토록 하세요.”

“네, 사령관님. 알겠습니다.”

제주도의 열악한 환경으로 인해 식량 재배는 만족할만한 성과를 내기 힘들었다.

식량 재배에 적합한 장소를 찾도록 지시를 해두었고, 그 보고를 듣고 있었다.

뜻하지 않게 새로이 얻은 능력이라면, 위험을 무릅쓰지 않고도 성현이 원하는 식량을 공급받을 수 있을 터였다.

“박사님, 내일 제주도 이주에 연구진도 함께 보낼 생각입니다. 플라즈마 발전기를 바로 설치를 했으면 하는데, 무리는 없겠습니까?”

“네, 사령관님. 이미 저희 연구원들과 기술진들이 밑그림은 모두 그려 놓은 상태입니다. 제주도에 도착하면 제주 화력발전소에 가장 먼저 타당성 조사를 하고 괜찮다면 그곳에 설치할 예정입니다.”

“알겠습니다. 그 부분은 정우현 소장님께 일임하도록 하겠습니다. 그에 한해 시설관리과에서는 전폭적인 지원을 하도록 하세요.”

“네, 사령관님. 차질 없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군에서도 필요 병력은 잊지 말고 차출해서 문제 안 생기게 하고.”

“넵, 알겠습니다.”

성현은 착착 톱니바퀴처럼 어긋남 없이 진행되는 회의에 만족하며, 계속해서 회의를 진행했다.

전체적인 윤곽이 모두 잡히자, 성현은 디테일한 계획은 각 부서의 담당자들에게 모두 일임해 맡겼다.

이후부터는 안영식 의장을 위시로 행정 관료들의 몫이었다.

성현은 전체 회의장을 빠져나와 그들끼리 회의를 계속하도록 하고, 군 지휘관들만을 따로 모아 회의를 소집했다.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은 확정적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난 그리 했으면 하는데, 모두의 의견을 좀 듣고자 한다.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발언 기회를 줄 테니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해 보자.”

성현은 일전부터 생각했지만, 무리일 거라 단정하고 묻어둔 이야기를 꺼내려 했다.

“먼저, 전국에 산재한 대피소의 전격적인 탈환 작전이다.”

웅성웅성.

군 지휘관들은 사전에 언질을 받지 못한 내용인 탓에 당황한 기색들이 역력했다.

“사령관님, 혹시 다른 대피소도 앞서 양자산과 같은 지경일 것을 염두에 두신 작전인지요? 그렇다면 민간인 구출 작전입니까?”

“아니, 내게 그런 숭고하고 영웅적인 뜻이 있는 건 아니다.”

성현은 자신의 얼굴에 금칠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어찌 보면 민간인 구출 작전이긴 하지만, 순수하게 그것만을 위함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어찌해서…….”

“가장 큰 이유는 사람이 너무 적다. 현재 우리 대피소의 인원은 모두 7만 정도이긴 하지만,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나는 너무 적은 인원으로 생각한다. 생존만 목적으로 한다면 몰라도, 현재의 기술과 인류가 이룩한 문명을 이어가자면 턱없이 모자라다 생각한다.”

성현은 자신이 생각한 바를 숨김없이 모두에게 전했다.

“고작 7만 명으로 인류의 모든 것을 담아내기엔 너무 부족하다. 미래를 생각한다면 다음 세대, 다다음 세대를 위한 준비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보다 많고 보다 유능한 이들이 그 토대를 만들고 세워 줘야 한다.”

당장은 90% 이상이 성인이고 대부분이 고등 교육을 마친 이들이지만, 이후의 세대에게 그런 교육의 기회를 주기에는 지금 상태로는 불가능했다.

“제주도 이주가 마무리되면 우리는 어느 정도 안정을 구가하겠지, 그리고 안주하게 되면 더 이상의 발전은 없다고 본다. 지금 우리가 할 일은 미래를 준비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아직은 있을지 없을지 모르지만, 내 자식과 너희들의 2세들에게 암울한 미래를 주고 싶지는 않다.”

모든 지휘관들이 성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어떤 의지를 담은 눈으로 성현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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