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판멸망한 세계의 게이머-65화 (65/176)

# 65

이주 (2)

“저는 찬성입니다. 세부적인 작전은 세워 봐야 하겠지만, 사령관님의 뜻이 저와 같습니다.”

“참 부끄럽습니다. 저는 당장 제주도에 가면 좀 편해지겠거니 했는데, 고작 제 그릇이 그 정도였나 봅니다. 정말 할 말이 없습니다. 저 또한 사령관님의 뜻에 찬성합니다. 저 빼시고 작전 가시면 정말 섭섭할 것 같습니다.”

성현은 회의를 편하게 주재하면서 지휘관들에게 모두 발언 기회를 주었다.

어찌 보면 군 회의 같지 않으면서 난상토론이 될 수도 있지만, 그러한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모두 잘 들었다. 모두 내 뜻에 따라준다니 고맙기 그지없다. 하지만 모두가 할 수는 없고, 특수군을 만들 생각이다. 인원은 2백 명으로 잡고. 현재 직속 전투부대는 모두 합류시킬 예정이다. 추가될 인원은 모두 전문 전투 훈련을 마친 부사관 이상으로 채울 생각이다. 먼저 지원을 받고 많거나 모자라면 그때 가서 조정하도록 하자.”

이미 구상을 끝내 놓은 바를 성현은 밝혔다.

“그리고 차출된 인원은 약 1개월간 특별훈련을 시킬 생각이다. 1개월간 신속 기동, 기습 훈련을 중점적으로 해서 전차와 장갑차의 운용 능력 또한 배양한다.”

기계화 병력에게 전투 훈련을 시키기보다는 이미 완성된 전투력을 보유한 병력들로 하여금 기계화 특화 훈련을 하는 게 맞았다.

“그리고 그 한 달이라는 시간 동안 좀비와 구울에 대한 대책을 마련한다. 강화된 좀비와 구울에 대한 대비가 미흡하다면, 작전은 무기한 연기다. 특수군의 무력을 증가시키고 구울의 괴성에 저항이 가능할 때 실행에 옮긴다.”

*  *  *

다음날.

본격적인 이송 준비가 한창인 활주로는 수천에 이르는 거주민들이 질서 정연하게 자신의 차례를 기다렸다.

한 대의 여객기에 거주민들이 모두 타면 여객기는 바로 출발을 했고, 다음 여객기를 성현이 준비시켰다.

“해미야, 성벽 쪽에 문제가 있다. 내가 다녀올 테니 넌 여기서 여객기가 출발하면 여객기를 꺼내 줘.”

첫 번째 여객기가 출발한 직후 미니맵에 성벽이 공격당하는 중임을 알려왔다.

지역 방어 중인 헬기를 불러 확인해도 되지만, 성벽의 내구도가 급격하게 내려가는 것이 심상치 않았다.

“조심하세요. 혹시 문제 있으면 바로 알려 주시구요.”

해미는 자신의 귀 뒤쪽에 부착된 트랜스듀서를 가리키며 말했다.

“사령관님, 지원은?”

“괜찮아, 필요하면 무전할 테니 다른 지역 감시에 소홀하지 않도록 신경 써라.”

“알겠습니다, 조심히 다녀오십시오.”

성현은 공격 헬기를 꺼냄과 동시에 빠르게 탑승해 동체를 이륙시켰다.

“도대체 무슨 일이야?”

성현은 미니맵을 다시 확인했다.

활주로와 반대편 청계산 넘어 과천시청 방면이었고, 거리는 6㎞ 남짓.

성벽의 내구도가 급격하게 떨어지고 있었다.

급히 성벽을 보수하는 창을 열고 보수를 했지만, 금세 내구도가 바닥을 드러냈다.

시험 삼아 성벽에 헬파이어 미사일을 발사해서 내구도 테스트를 해본 적이 있는데, 성벽은 다섯 발의 미사일을 맞고 내구도가 0이 되어 부서졌었다.

그런 성벽이 내구도를 100% 회복하고 20초를 못 버티고 있었다.

“저, 저게 뭐야!”

성현의 헬기가 청계산을 넘어 능선을 지나자 성벽이 훤히 보이고 있었다.

성벽까지의 거리는 약 2㎞, 성벽 넘어 거대한 움직임이 관측되고 있었다.

민 대머리로 보이는 머리가 엿보이고 있고, 최소 20m 이상 되는 거대한 무언가가 서성이고 있었다.

그리고.

[ 구울Lv5 ]

구울 레벨 5라는 표식이 그놈의 머리 위에 떠 있었다.

쿠쿵. 쾅!

레벨 5의 초거대 구울이 거대한 주먹을 들어 성벽을 후려쳤다. 무지막지한 물리력에 성벽이 물결치듯 출렁일 정도였다.

“미친, 시발 무슨 거인 구울이냐고!”

성현은 욕설을 내뱉는 와중에도 성벽을 수리하기 바빴다.

“혹시 모르니 영지 바깥쪽에서 공격하는 게 좋겠다.”

만일 미사일이 놈에게 통하지 않는다면, 최악이었다.

미쳐 날뛰는 놈이 헬기를 쫓아오기라도 하면 영지 안이 쑥대밭이 되는 것은 둘째 치고, 혹시라도 대피소 활주로에 진입하게 되면 대참사가 일어날 일이었다.

“동원아!”

-넵, 사령관님.

“20미터가 넘는 구울이 나타났다. 이건 만약 이다만, 혹시라도 놈이 그쪽으로 갈 수도 있다.”

-지, 지금 당장 대피할까요?

“아니, 우선 내가 잡아 볼 테니 여의치 않을 경우에 그리하면 된다. 그리고 헬기 부대에도 알려놔 내가 놓칠 경우, 최대한 시간을 벌며 대피소 밖으로 유인해야 한다.”

-넵, 사령관님. 알겠습니다! 조심하십시오. 이쪽도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만반의 준비를 하겠습니다.

성현은 미리 대피시킬까도 생각했지만, 구울 놈이 단번에 성벽을 부수지 못한다는 점을 감안해 그리하지는 않았다.

만일 당장 못 잡는다 해도 성벽이 버텨 주고 있었고, 수리가 실시간으로 가능했기에 최악의 상황이 와도 대피소의 모든 인원이 충분히 대피할 시간을 벌 수 있었다.

투타타타타.

성현은 구울이 있는 성벽을 크게 우회해 놈의 측면을 돌아 후방 1㎞에 헬기를 위치시켰다.

“일단 체인건 맛 좀 봐라!”

투콰콰콰!

30mm 체인건이 거대 구울을 표적으로 잡고 발사되었다. 이중목적 고폭탄이 1㎞를 날아 거대 구울의 등짝에 직격했다.

콰콰콰쾅.

초당 10발, 이중목적 고폭탄이 수 초간 발사되었고, 구울의 상체에서 거친 화염과 연기를 뿜어내며 폭발했다.

공격을 받은 구울이 고통스러운지 고개를 한껏 젖혔다.

쿠워워워-!

[ 정신 공격에 저항하였습니다 ]

“헉, 저 새끼 포효가 설마 활주로까지 닿지는 않겠지?”

성현은 헬기와 1㎞나 떨어져 있는 구울의 포효가 워낙 컸던 탓에 걱정부터 앞섰다.

“최 중령, 혹시 거기서도 구울 놈의 포효가 들리나?”

-설마, 방금 그게 그거였습니까?

“혹시 문제 생겼어?”

-다행히 다친 이들은 없지만, 순간적으로 귀가 먹먹할 정도는 됩니다. 이거 조금 더 가깝다면 심각한 문제가 생길 듯합니다.

“내가 대피소와 반대쪽으로 유인 중이니 일단은 안심해도 된다. 다른 문제 생기면 무전하도록 하마.”

성현이 무전을 마치고 나자 구울의 상체를 뒤덮고 있던 연기가 가시고 구울이 뒤를 돌아보고 있었다.

하지만 거리가 멀고 구울의 시선에서 상당히 위쪽인 탓에, 놈은 성현의 헬기를 발견 못했는지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좀 더 다가가야겠다.”

고도를 100m 부근까지 낮춘 성현은 구울의 500m 가까이 접근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구울의 발밑에도 새까맣게 좀비들이 몰려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동족 학살이냐?”

구울의 거대한 발에 짓눌린 좀비들이 하나둘이 아니었다.

투콰, 투콰콰콰.

체인건을 끊어서 발사하며, 헬기를 발견하기 쉽도록 구울에게 존재감을 드러냈다.

그제야 헬기의 존재를 알아챘는지 놈이 거대한 다리를 움직여 헬기가 있는 방향으로 뛰어오기 시작했다.

쿠쿵, 쿵.

거대 구울의 육중한 체구가 움직일 때마다 지면을 타고 큰 울림이 사방으로 퍼졌다.

쿠오오오오!

굼떠 보이는 구울의 뜀박질이지만, 보폭이 수십 미터에 이르니 순식간에 헬기와의 거리를 좁히고 있었다.

“이번엔 좀 아플 꺼다.”

[특수]무기 기술자

-공격력, 속도, 범위, 명중 50% 증가 (적용 시간 10분, 재사용 대기시간 1시간)

[일반]강타

-공격력 30% 증가 (재사용 대기시간 3분)

[일반]이연격

-유효한 공격 성공시 동일한 추가타 적용 (재사용 대기시간 3분)

[일반]용맹정진

-공격력, 방어력 각 30% 증가 (적용 시간 3분 재사용 대기시간 1시간)

버프 스킬과 액티브 스킬 모두를 활성화한 성현은 헬파이어 미사일 4기를 락온하고, 발사 준비를 했다.

“지금!”

푸확, 푸화화확!

양 날개에 두발씩 도합 4발의 헬파이어가 순식간에 발사되어 날아갔다.

거리는 3백여 미터, 음속을 넘는 속도로 날아간 미사일은 눈 깜빡할 순간에 구울의 몸통에 직격했다.

꽈광! 꽈과과광!

첫 미사일이 놈의 가슴에 명중하고 이어 도달한 미사일들이 거의 동시에 착탄하며, 화려한 폭발을 발했다.

폭발의 화마가 구울을 집어삼키며 넘실댔고, 강력한 충격에 백여 미터를 튕겨 뒤로 나자빠졌다.

“이런 젠장, 이걸로도 안 죽는다고?”

구울이 고통스런 비명을 질러대며, 바닥을 뒹굴어 댔다. 아름드리나무들이 부서지고, 큰 먼지가 피어올라 왔다.

놈의 발광에 주변은 순식간에 황폐화 되고 있었다.

“이것도 처먹어 봐라!”

성현은 남은 헬파이어 4발을 모두 투사하고, 그것도 모자라 70mm 로켓들을 모두 쏟아부었다.

쉑! 쉐에엑-!

로켓의 날카로운 소음이 공간을 가르며 구울의 전신을 난타했다.

꽈과과과과광!

헬파이어 미사일 4발과 도합 38발의 로켓에 직격당한 구울은 폭발의 화염과 자욱한 연기에 가려져 육안으로 확인이 어려워졌다.

“아냐, 아직 이다.”

놈이 죽었다면 골드와 마정석이 창고로 들어와야 했지만, 들어오지 않았다.

“으음, 어떡한다…….”

서서히 걷히는 화염과 연기를 보면서 성현은 고민했다. 당장 공격 헬기에 남은 탄약은 체인건뿐이었다.

미사일로도 잡지 못하는데, 체인건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건 어불성설에 불과했다.

“어라?”

화마가 걷히고 드러난 구울의 상태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거 어쩌면 잡겠는데. 버프 빨이 남아있을 때 잘하면 잡겠다.”

구울의 상체는 속살이 드러나 뼈가 훤히 보일 정도의 치명상을 입고 있었다.

왼쪽 어깨는 그 형체도 알아볼 수 없게 찢겨져 팔은 떨어지기 일보 직전이었고, 복부의 내장 기관이 드러난 구울은 숨은 붙어있으나 죽기 직전으로 보였다.

아직 스킬의 효력이 살아있을 때라면 가능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투콰콰콰!

성현은 사격통제 레이더를 조작해 체인건으로 무장 선택을 했고, 그 즉시 발사했다.

체인건은 초당 10발에 이르는 고폭탄을 쏟아냈고, 총구의 불꽃이 마를 시간이 없었다.

다기능 시현기에 표시된 탄약 재고가 1022, 994, 754 빠른 속도로 소진되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제발 좀 죽어라!”

어느덧 탄약 재고가 100여 발이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때.

“됐다!”

열어놓은 창고의 한편에 새로운 마정석인 중급 마정석 1개가 들어왔고, 무려 30만 골드에 가까운 금액이 증가되었다.

*  *  *

거대 구울의 근처에 헬기를 착륙시킨 성현은 놈의 조직 일부를 채취해 밀폐 용기에 담았다.

새로운 구울이 발견될 때마다 놈들의 조직을 가능하다면 가져와 달라는 정우현 박사의 요청을 잊지 않았다.

상공에서 본 구울과 지상에 내려와 본 것과는 차원이 틀렸다.

거대한 덩치는 7, 8층 높이의 빌딩이 누워 있는 듯했고,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압도되는 느낌마저 들었다.

“젠장, 5레벨짜리도 이런데…….”

그나마 좀비 때에는 귀찮을지언정 두렵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는데, 구울은 두렵다 못해 전율마저 느껴졌다.

“내가 강해져야 한다, 이대로는 안 돼.”

최 중령에게 부여한 각성 능력을 자신 또한 얻어 한층 더 강해졌다고 생각했지만, 자신보다 좀비의 진화는 더욱 크고 강력했다.

이대로라면 자신이 생각한 대피소 탈환 계획은 백지화할 수밖에 없었다.

구울의 사체를 뒤로하고 새로운 공격 헬기 한 대를 꺼낸 성현은 성벽 부근에 있는 남은 좀비들을 학살하고, 기수를 돌렸다.

“내가 제주도를 왕복하는 사이 좀 전과 비슷한 놈이나, 더 강한 놈이 나타난다면…….”

생각도 하기 싫은 상황이었다.

만약 어제 자신이 제주도에 있을 당시에 이 같은 일이 있었다면… 상상만으로도 소름이 돋았다.

제아무리 원거리에서도 성벽 보수가 가능하다지만, 거인 구울이 마음만 먹는다면 성벽을 부수지 않고도 넘을 수 있었을 것이다.

더군다나 자신의 스킬로 2배 이상은 강화된 미사일을 맞고도 완전히 죽지 않았다.

일반 공격 헬기의 화력으로는 저지하기가 결단코 쉽지 않았을 거다.

“내가 마냥 여기서 시간을 축낼 수는 없는 노릇인데. 그렇다고…….”

성현은 이건 아닌데 하면서도 시선을 돌려 재잘대며 줄리와 놀고 있는 해미를 바라봤다.

“후우-, 어쩔 수 없나?”

하는 수 없이 해미를 불러 일을 맡기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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