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6
이주 (3)
“앗싸!”
“해미야, 이번엔 정말 함부로 아무거나 만지면 안 된다. 헬기보다 전투기는 더욱 조심히 다뤄야 돼. 절대 아무거나 만지면 안 돼.”
“걱정 마시라니까요.”
“……그래 알겠다.”
성현은 몇 번이나 당부의 말을 하고도 쉽사리 보내기가 어려웠다.
이미 전투 헬기에서도 방금과 같은 말은 열두 번도 더 들었는데 오죽하겠나.
“그럼 저 다녀올게요.”
해미가 밝게 웃으며, 전투기의 뒷자리에 탑승 중이다.
그걸 보는 성현의 내심은 불안했지만, 그래도 웃는 낯으로 억지웃음을 짓고 해미를 배웅했다.
쿠콰콰콰!
F15 이글의 엔진이 점화되었다.
그나마 성현이 가지고 있는 복좌형 전투기 중 가장 안정성이 높은 기종이 F15 이글이었다.
전투기가 빠른 속도로 활주로를 벗어났지만, 성현은 완전히 보이지 않을 때까지 눈을 떼지 못했다.
“잘하는 짓인지 모르겠다.”
이미 조종사에게도 문제가 생기면, 뭉그적거리지 말고 과감하게 비상 탈출 할 것을 말해 두었고, 해미에게 여분의 헬기를 가지고 가게 했다.
혹여 문제가 생기면 전투기를 버리고 헬기를 타고 대피소로 복귀하면 될 일이었다.
그리고 그것조차 여의치 않을 수도 있어 비행은 지정된 항로로만 이동하게 했고, 제시간에 복귀를 하지 않으면, 성현이 찾아 나설 참이었다.
“사령관님, 후속 여객기 꺼내 주시면 됩니다.”
“그래 알겠다.”
방금 출발한 여객기가 21번째 여객기였다.
도합 25대의 여객기를 운영 중이었고, 대피소에 있던 주민 중 민간 항공기 조종사 출신 17명과 공군 소속 조종사 33명이 동원되어 있다.
이미 금일 이송될 주민의 30% 이상이 출발한 상태였다.
“이제 첫 복귀를 시작할 시간이 되지 않았어?”
“넵, 사령관님. 예정 시간은 20여 분 정도 남았습니다.”
여객기 한 대를 더 내려놓은 성현이 얼추 시간을 가늠하며 묻자, 최동원 중령이 다시 한 번 정확한 시간을 확인하고 답했다.
제주도에 도착한 순서대로 10대를 기준으로 조종사들을 한 대의 여객기를 타고 복귀하도록 지시를 내려놓았다.
첫 복귀 시점이 가까워져 있었다.
“그럼 이번 여객기까지 출발시키고, 활주로 비워 놓도록 하자.”
“네, 알겠습니다.”
한 번에 두 대의 여객기가 준비하면서 출발 시간을 당길 수 있었고, 시간당 9대가 이륙을 할 수 있었다.
지금 22번째 여객기가 준비를 끝내고 이륙하기 직전이다.
* * *
첫 여객기가 무사히 도착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해미가 탄 전투기도 돌아왔다.
해미는 주민 수송에 사용된 여객기를 창고에 다시 넣어 왔고, 이를 성현에게 전달해줬다.
그리고 해미의 표정은 밝게 웃고 있는 반면, 조종사로 딸려 보낸 미군의 얼굴은 창백하게 죽을상을 하고 있었다.
“고생이 많다. 혹시 조금이라도 어렵다 싶으면 전투기 따윈 포기해도 되니 절대 부담 갖지 말고.”
말을 하면서도 성현은 미안한 마음이었다.
해미가 집하장에서 물자를 챙겨서 다시 활주로에 도착하자 성현이 다가가 재차 주의를 줬다.
이번엔 제대로 작정하고 말하는 통에 해미도 찔끔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이라도 자신이 직접 할까도 생각했지만, 자신이 대피소를 떠나있는 상황이 더욱 심각하다 여겨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이후 복귀 때는 해미가 큰 실수를 하지 않았는지 조종사의 얼굴이 괜찮았고, 다섯 번을 왕복한 이후에는 다른 조종사와 교대하도록 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첫날 이주는 오전 9시를 시작으로 오후 6시 마지막 여객기가 이륙하면서 그 끝을 맺을 수 있었다.
* * *
이주 둘째 날.
전날 보다 이른 시간에 시작한 주민 이송은 작은 사고하나 없이 순조로웠고, 첫날보다 1만 명 정도의 주민들을 더 이송할 수 있었다.
다만 레벨 3의 구울 한 마리와 레벨 2의 구울 두 마리가 동시다발적으로 영지에 침입했지만, 성현과 헬기 편대가 나서 이를 어렵지 않게 처리했다.
이주 마지막 날 오전.
4천이 조금 넘는 주민 수송이 일찌감치 마무리되고, 이제는 살아있는 가축들의 대이동이 예정되어 있었다.
C-17 글로브마스터Ⅲ 12대, 그리고 C-5 갤럭시, C-130 허큘리스 등 모두 31대가 동원되어 가축들을 연이어 실어 나르고 있었다.
살아있는 생물은 성현의 창고에도 넣을 수가 없어 어쩔 수 없이 많은 시간과 공을 들여 수송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오후 3시가 넘어 모든 수송이 마무리되고, 9백 명의 군인들과 죄수 번호가 붙은, 이름 없는 31명만이 남아 이송 대기 중이었다.
죄수들은 지난 재판에서 유죄를 선고받아 배심원들에게 참회를 받고, 살아남은 이들로 우도에 보내져 강제 노역으로 남은 생을 살게 될 예정이었다.
“죄수들은 모두 제주에 도착 즉시 우도로 보내. 아마 영기가 지금쯤이면 수감 시설을 골라놨을 거다.”
성현은 주민을 태운 마지막 여객기가 출발하자, 최동원 중령에게 말했다.
“넵, 사령관님. 알겠습니다. 그럼 먼저 출발하겠습니다.”
성현은 최 중령과 마지막 남은 부대원들을 태운 여객기가 이륙하자 자신도 아파치 공격 헬기 한 대를 꺼내어 출발 준비를 했다.
“이곳 영지는 바로 해체하는 게 맞겠지.”
이곳 청계산 영지를 포기하고, 투자된 골드를 회수할 생각이었다.
‘자작’계급이 되어 세 개의 영지를 만들 수 있지만, 그중 하나를 쓸데없이 낭비할 생각은 없었다.
거기다 앞으로 청계산을 거점으로 할 일도 없기에 남겨둘 필요성이 전무했다.
투타타타타.
헬기를 이륙시켜 1㎞ 상공까지 올라선 성현은 기체를 정지 비행하며 지상을 내려다봤다.
그리고 ‘영지 지배권 포기’ 항목을 찾아 서슴없이 터치했다.
[청계산 영지에 대한 지배권을 포기하시겠습니까? (수락, 거부)]
미련이 남는 장소도 아니 탓에 특별히 감성에 젖을 일은 없었다.
‘수락’을 누름과 동시에 지상에 설치했던 성벽이 소리 없이 분해되고, 활주로의 도로 또한 그와 다르지 않았다.
건설될 당시 장관을 이루던 모습과는 는 상반된 형태였다.
사전 조짐도 없고, 작은 소리조차 발생하지 않은 너무나도 조용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청계산 영지 ‘시설’에 소요된 자원과 자금 50%를 회수합니다]
[1,467,648골드를 획득하였습니다]
깔끔한 정산이었다.
“이거 처음 영지 만들 때 보다 늘어났네. 그사이 많이 잡긴 했나 보다.”
[골드(G) 37,942,051골드 21실버]
처음 영지 선포를 할 당시 3천 3백만 정도였던 골드가 줄기는커녕 4백만 골드가 더 늘어났다.
현재 좀비 한 마리당 1천 골드 가량을 주고 있고, 구울은 차이는 있지만 1~2레벨이 10만 골드, 2~4레벨은 20만 골드, 그리고 5레벨이던 거인 구울은 30만 골드를 줬었다.
“마무리도 다 했고, 이제 출발하자.”
성현은 기수를 남으로 향했다.
중간에 들릴 곳이 있던 탓에 전투기는 사용할 수 없었다.
더군다나 이주가 모두 완료된 지금 할 일을 모두 마친 터라 크게 급할 일도 없었다.
* * *
나주평야는 국내에서 호남평야 다음으로 넓은 곡창지대로, 영산강 중류에 위치해있다.
과거 한반도 전체 쌀 생산의 30% 이상을 담당할 만큼 너른 평야에 자로 잰 듯 반듯한 논들이 광활하게 펼쳐져 있었다.
현대에 이르러 과거와 같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규모임은 분명했다.
“이 정도면 차후에 더 넓힐 여지도 충분하고 괜찮네.”
성현은 식품관리과에서 알려준 위치에 도달해 상공에서 지상을 살폈다.
최대한 경작지의 중심이 되는 곳을 찾아 헬기를 이동했고, 그곳에 기체를 착륙시켰다.
“어디 보자, 전보다 넓어졌겠지?”
[ 권 위 ]
-권위가 높을수록 영지 선포에 대한 시간이 줄어듭니다.( 12시간 → 8시간 24분)
-권위가 높을수록 영토에 대한 지배권이 강화됩니다.(영토 내 영주 및 영지민 능력 30% 강화)
-권위가 높을수록 더욱 많고, 넓은 영지를 가질 수 있습니다.(50㎢,1,512만 평)→(65㎢,1,966만 평)
스텟 ‘권위’를 확인하자 청계산 때보다 2시간 정도 빨라졌고, 영지의 넓이 또한 250만 평이나 더 넓어져 있었다.
아직 아군 능력 강화는 실질적으로 크게 체감되지 않았지만, 이 또한 긍정적인 버프라 할 만했고, 유용한 부분임은 분명했다.
“권위 스텟 100이 되면 영지 선포는 즉시 가능하겠네.”
그랬다. 권위 스텟 1당 1%, 권위가 100이 되면 시간은 더 이상 줄어들 것도 없고, 즉시 영지 선포가 가능했다.
아군 능력 강화와 영토의 크기는 계속 증가 될 것이고, 권위 스텟의 활용도는 앞으로 더 커질 전망이었다.
“30레벨 되면 게임처럼 스텟 초기화가 가능할 거고, 권위에 몰빵 한다면, 계급 특전만 받아도 지금보다 더 강해질 수 있다.”
1차 전직 레벨인 레벨 30이 되면, 게임에서 스텟을 초기화 할 수 있게 되어있었다.
스텟 초기화를 가정했을 때 1차 전직 효과 +10은 이미 적용되는 것과 같지만, 보너스 스텟 30개를 권위에 모두 투자하면, 권위는 40이 된다.
거기다 계급 단계별로 중복 적용이 되어.
최하급 귀족 +3, 남작 +5, 자작 +10, 백작+25까지 적용이 가능해진다.
그 합은 무려 전 스텟 +43
기존 게이머의 1차 전직 효과 +10까지 더하면 권위를 제외한 모든 능력치가 53으로 맞춰지고, 권위는 무려 83이 된다.
영지에서 영주를 비롯한 영지민의 능력을 83% 올려주니 금상첨화.
욕심을 내어 레벨이 47에 도달할 수 있다면 후작이 되어, 무려 ‘전 능력 +50’의 특전까지 추가로 노려볼 만했다.
“좀비 경험치가 5배로 올랐으니 34만 마리만 더 잡으면 30렙은 찍겠다. 천만 마리 잡으면 47렙까지 오른다는 건데, 그 정도라면 해볼 만해… 우선 영지 선포하고 돌아가자 시간이 많이 늦었어.”
성현은 영지 선포하러 와서 잠시 삼천포로 빠진 생각을 수습하고, 원래의 목적을 상기했다.
[영지 선포]
성현은 영지 관리 메뉴를 불러내어 ‘영지 선포’ 창을 터치했다.
두-둥!
성현에게서 비롯된 거대한 울림이 영지 선포에 해당하는 지역 전역에 울려 퍼졌다.
[영지 귀속까지 8시간 23분 59초]
이제 새집으로 돌아갈 일만 남았다.
지하가 아닌, 지상 생활의 시작.
성현은 기쁜 마음을 안고 제주도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