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7
배부른 돼지의 하소연 (1)
성현이 제주도에 돌아온 시각은 오후 5시를 조금 지나 있었다.
나주평야에 도착 전 군산 미군 기지를 들린 탓에 예정 시간보다 조금 늦은 시간이었다.
“왜 이리 어수선 해?”
절로 얼굴이 찌푸려졌다.
성현이 활주로에 기체를 착륙시키고 공항 청사로 들어오자 여기저기서 높은 언성이 오가고, 심한 욕설까지 하는 이들이 있었다.
“단결! 저 그게… 거주지를 배분하는 과정에서 주민들의 반발이 좀 있었습니다. 집을 바꿔 달라는 요청이 대다수고, 그중엔 자신이 살 집은 스스로 고르게 해달라는 요청이 가장 많습니다.”
“뭐?”
성현은 통제를 최소한으로 해서 주민들이 불편을 덜어줄 생각이었지만, 당장에는 이 모두를 한 번에 해나갈 수는 없었다.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시기였고, 당면한 문제는 태산과 같았다.
그래서 초창기 이주에는 주민들을 지정된 곳에서 살도록 할 수밖에 없었고, 영지 선포가 되는 지역 안에서 거주지를 배분토록 했다.
이를 내정위원회에 일임한 상태였다.
하지만, 본격적인 시작도 하기 전에 문제가 터졌다.
“어이가 없네.”
성현은 편하게 생각했었다.
지상에서의 생활만으로 앞서 대피소 지하 생활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윤택한 것임이 분명한데, 초기부터 잡음이 생길 것이라 생각하지는 않았다.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면 성현도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했지만, 이건 빨라도 너무 빨랐다.
“모두 강제 해산 시키고, 내정위원회 소집해.”
성현의 얼굴은 잔뜩 굳어 있었다.
달리 말하면 화가 났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기껏 모두가 안전하고 편히 살 수 있도록 해주었지만, 똥인지 된장인지 구분 못 하는 인간들이 말썽이었다.
배려가 지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더니, 검은 머리 짐승들은 과거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었다.
공항 청사에 마련된 귀빈 전용 휴게실.
이곳에서 임시 회의가 시작되었다.
“죄송합니다. 사령관님께서 거주지 관련 배분에 대해 기준을 내려주셔서 그대로 따랐는데 미흡한 부분이 있었나 봅니다.”
제주 공항을 포함해 북쪽 해안 전부와 서쪽으로 4㎞, 남으로 6㎞, 동으로 5㎞ 정도 즉, 옆으로 누운 비스듬한 마름모 형태를 영지로 삼아 최대한 밀집된 형태의 거주 지역을 만들길 원했다.
그래야만 성벽을 둘러 유사시에 안전을 도모하기가 쉬워지고 관리 또한 용이했다.
성현이 내린 기준은 간단하고 명료했다.
가족 단위 또는 함께 사는 인원에 맞추어 거주지의 크기를 나누도록 지시했었다.
“먼저 사령관님이 지시하신 대로 시가지를 중심으로 인근에 거주지를 확보했습니다.”
“그건 보고서를 보고 알고 있는 내용이긴 한데 계속하세요.”
이미 이주에 앞서 성현이 받은 보고서에 있던 내용이었다.
“네, 사령관님. 아파트 389개 동 총 14,762세대를 확보했습니다. 5인 이상 8인 미만 그룹은 30평 이상 4,255세대이고, 다음으로 3인 이상 5인 미만 그룹은 20평대 이상으로 3,787세대가 됩니다. 그리고 개인이나 2명 이하의 주민들에게 개별 거주지를 배분키 힘들어 동성끼리 임의로 한 세대에 살도록 했습니다. 물론 방은 모두 개인별로 쓸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런 세대가 모두 6,141세대에 이릅니다. 그렇게 하고 남는 세대가 579세대입니다.”
“정확히 문제가 뭡니까? 주민들 불만 사항에 대해 설명해 보세요.”
“우선 평수는 비슷하지만, 고급 아파트에 비해 비교적 저렴한 아파트를 배분받은 이들이 바꿔 달라는 요구를 하고 있고, 그중에는 일반 주택에 살겠다는 이들도 있습니다. 또 다른 사람과 함께 사는 건 싫다고 하는 이들도 나온 상황입니다.”
성현은 절로 한숨이 나왔다.
마음 같아서는 모두 내쫓아 버리고 싶었다.
“골치 아프게 하는군요. 그 모두가 임시 거주지이고, 본인 들 것이 아니라고 알렸습니까?”
“네, 물론입니다. 임대 형식이고, 일정 기간이 지나면 추가 연장을 할 것인지 아니면 자립을 원하는 사람은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방법을 모색 중임을 알렸습니다.”
“전 그런 부분을 모두 알려주라고 한 적이 없습니다만. 임시 거주지인 것만 밝히라고 한 거 같은데요.”
“아, 그, 그게 주민들이 워낙 성화여서… 죄송합니다.”
“불필요한 언행은 주민들을 동요시킵니다. 모두 각별히 주의 하기 바랍니다. 차후에 내부 정보를 유출하는 사람은 그만한 책임을 지게 될 겁니다. 이번은 그냥 넘어가지만, 두 번은 없습니다.”
해이 해진 기강도 문제지만, 이쯤이야 하는 사고방식 자체가 지금 가장 큰 문제였다.
하물며 공직이랄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이들이 이 모양이니 주민들이라고 덜 할 일이 없었다.
모두에게 경각심을 심어줄 필요가 있었다.
“지금 나가서 주민들 전부 공항 주차장에 집결시켜. 가급적이면 강압적으로 하고 싶지는 않지만, 당장은 여유가 없기도 하고 이대로는 반발이 더 커질 거다. 그전에 잠재워야겠다.”
“넵, 사령관님.”
성현의 옆을 돌아보며 두식에게 말했다.
잠시 후.
“아아!”
성현이 임시로 설치된 단상 위에 섰다.
군용 확성기가 설치되고 주차장 전역에 성현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다들 편하십니까?”
의외로 잔잔한 목소리로 성현이 말했다.
성현이 말하는 중에도 자기들끼리 떠들고 딴청을 부리는 자가 태반이었다.
“왜, 이제 살만한가 보죠? 다들 떠나온 대피소의 지하 생활이 그립습니까?”
잔잔한 목소리가 점차 커지고, 날이 서기 시작했다. 떠들던 주민들도 분위기가 이상함을 느끼고 점차 입을 다물기 시작했다.
“어려울 것 없습니다. 지금 손만 들면 바로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성현의 말에 더는 입을 여는 자가 없었다.
일순 주차장에 정적이 감돌았다.
그리고 성현의 얼굴이 일그러지기 시작하더니 거친 말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지금 세상에 이 정도의 생활을 구가하는 게 얼마나 윤택한 것인지 모두 알기나 한가! 지금 저 바다 건너 한반도에는 당장 오늘 죽을지 내일 죽을지 모르는 이들이 지천이다. 호강에 겨워 똥 싸는 소리 하려거든 말해! 당장 데려다줄 테니. 또 한 번 되지도 않은 불평불만을 입에 담는 자는 내 약속컨대 제주도에서 반드시 내보낼 테니 그리 알도록 해! 할 말 있는 놈은 지금 말해!”
주차장에 서리가 내린 듯 기온이 급 하강했다.
등골이 오싹하고 쩌릿할 지경이었다.
성현은 마이크를 잡기 전에 생각했다.
온건하게 주민들을 설득할 것이냐. 아니면 강하게 휘어잡을 것이냐다.
선택은 정해진 것과 같았다.
지금은 당근을 주기보다 채찍을 가해서 정신이 번쩍 들도록 하는 게 맞았다.
보약을 주어 증세를 잡기보다, 극약처방으로 죽이는 길을 택했다.
성현에 대한 주민들의 평판이 깎이고 민심이 술렁일 테지만, 개의치 않았다.
아니 처음부터 염두에 두지도 않았다.
그딴 것에 연연해본들 돌아오는 것은 배부른 돼지의 하소연뿐임을 이제는 알고 있었다.
* * *
제주 이주를 완료한 1일 차.
성현은 제주 공항에서 북동쪽 9㎞에 위치한 화력발전소에 와있었다.
해안가에 위치해 있어 풍광이 좋은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스크롤 사용도 아껴야 해.”
이곳 발전소 정상화와 더불어 플라즈마 융합 발전소로 변경하기 위해 성현은 내구도 회복 스크롤을 무려 100여 장을 넘게 써야만 했다.
그동안 사용된 스크롤은 모두 2천 장에 달했고, 현재 해미와 자신이 가진 내구도 회복 스크롤은 7천 장을 조금 웃돌고 있었다.
남은 스크롤수가 많다 볼 수 있지만, 극초신성 사태 이후 1달이 조금 넘는 시간동안 쓴 수량임을 감안한다면 이 추세대로라면 1년 안에 모두 소진될 수 있는 적은 양이었다.
“사람의 손으로 고칠 수 있는 건 고쳐 쓰도록 내부 방침도 바꿔야겠다.”
긴급하던지 도저히 수리가 불가능한 장비에 한해서만 내구도 회복 스크롤을 사용해야 했다.
그래도 언젠가는 모두 없어질 한정된 스크롤이라 생각하니, 벌써부터 가슴이 답답해지는 성현이다.
“아직 시간은 있으니, 너무 앞서가지는 말자.”
닥치지 않은 미래에 대한 대비는 좋지만, 너무 초조해할 필요는 없었다.
당면한 과제에 충실하면서 하나하나 해결하다 보면, 어떻게든 돌파구는 생길 거라 생각했다.
“영지 선포는 이곳까지 포함하고, 성벽을 두르는 게 아무래도 좋겠지.”
두 개의 영지 선포가 남은 성현이지만, 아직 제주에는 영지를 만들지 않고 있었다.
구체적인 영지의 형태를 잡지 못해 이를 미룰 수밖에 없었다.
이제 발전소를 포함한 전체적인 영지의 모습이 모두 그려졌고, 실행만이 남아있었다.
“다행히 불안해하지는 않네.”
정우현 연구소 소장과 연구원, 그리고 발전소 가동에 필요한 기술진 도합 124명의 인원이 성현과 함께 이곳에 와있었다.
처음 지상에서 자기들끼리 아무렇게나 돌아다닌다는 게 어색하고, 많이들 두려워했다.
하물며, 어두컴컴한 건물에 랜턴 하나만 달랑 들고 들어가는 게 결코 쉽지만은 않았다.
아무리 말로는 안전하다 이곳은 좀비 클린 지역이다 말해본들, 눈으로 보이는 병력에 좀 더 신뢰가 가는 게 인지상정이었다.
성현은 이들의 마음을 십분 이해했고, 별도로 2개 중대 280명의 부대원들로 이들을 근접 경호케 했다.
필요 이상의 병력일 수도 있지만, 연구원이나 기술진에게 안전에 대한 신뢰를 높이고, 경비 상태를 역설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방법이었다.
발전소 정상화에 좀 더 집중할 수 있도록 한 성현의 작은 배려였다.
“소장님, 언제쯤 가동 가능할 것 같습니까?”
“금일부터 플라즈마 발전기는 조립에 들어가고, 기존 설비들과 연동해서 할 작업이 많습니다. 열병합 설비의 구조를 일부 변경하는데 시간이 상당히 걸릴 것 같습니다. 기술진의 이야기로는 최소 열흘 이상은 걸릴 거라고 합니다.”
“알겠습니다. 무엇보다 안전이 최우선입니다. 무리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령관님.”
발전소가 제대로 가동이 되어야만, 이후의 일을 논할 수 있었다.
당장 산업 설비들을 가동하기 위해서도 필요했지만, 무엇보다 현대인의 일상생활에서 전기가 차지하는 비중은 컸다.
당연히 제일 먼저 신경 쓰는 일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럼 계속 일 보십시오. 혹시나 용무가 있으시면, 여기 경비대 지휘관이나 병사 아무나 붙잡고 말씀하시면 제게 바로 연락이 가능할 겁니다.”
“네, 사령관님. 그리하겠습니다.”
성현은 정우현 박사와의 대화를 마치고, 영지 선포를 하기위해 잠시 혼자만의 시간을 가졌다.
기본 영지는 원형 또는 정사각형으로 만들 수 있지만, 이번에는 이전과 달리 디테일한 설정이 필요했다.
공항의 북쪽 해안가와 서남쪽의 거주 구역, 전체 시가지가 대부분 들어오게 하면서 발전소와 직선으로 연결해 발전소 또한 영지에 포함되는 작업을 해야 했다.
“흐음, 이거 좀 모자란 데… 남쪽을 좀 더 당겨야겠다.”
처음 구상과는 달리 포함시킬 구역을 일부 축소해야만 했다.
서남쪽 모서리 부근을 당겨 제주한라대학교 인근까지 축소하고, 동남쪽 모서리는 제주대학교 병원까지 연결했다.
“오케이 끝.”
[영지 선포]
성현은 영지 설정을 끝내고 ‘영지 선포’ 창을 터치했다.
두-둥!
이제 몇 번 경험해 봐서인지 본인 스스로 놀라는 일은 없었다.
물론 당하는 사람은 다를 테지만.
성현을 기준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울림이 영지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영지 귀속까지 8시간 23분 59초]
“미리 이야기 해뒀으니 알아서들 신청할 거고, 늦기 전에 다녀오자.”
성현은 사전에 영지 선포와 관련해 주민들에게 알리도록 지휘부에 지시를 해뒀었다.
앞서 청계산에서 한번 경험해본 터라 굳이 추가 설명은 필요하지 않았다.
그리고 먼저 영지 선포를 해둔 이름 하여 ‘나주영지’에 지금 다녀올 생각이었다. 영지 선포 시간과 별개로 작용하는 영지민 신청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나주영지의 영지민 신청 마감이 2시간 후였고, 그전에 성벽을 설치해둘 요량이었다.
“두식아, 지금 좀 다녀오마.”
“넵, 사령관님. 조심히 다녀오십시오.”
성현은 두식이 아직까지는 용칠을 잃은 슬픔을 완전히 극복하지 못했지만, 일부러라도 두식을 데리고 다니며 일상으로 하루빨리 복귀 할 수 있도록 신경 썼다.
혼자 두면 괜한 생각만 많아질 테고, 무슨 일이든 시키고 바쁘게 만들어 줬다.
그래서 인지 그제보다 어제가 괜찮아 보였고, 어제보다 오늘이 좀 더 낫다 싶었다.
발전소 한편에서 이륙한 헬기는 완만한 대각선을 그리며, 상공으로 날아올라 바다 건너 나주영지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