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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판멸망한 세계의 게이머-68화 (68/176)

# 68

농사는 원터치 (1)

광주광역시 동남쪽 무등산 국립공원.

Ⅲ-3 대피소.

“경호야. 이대로는 무리다. 여기도 후퇴해야 해!”

“기준이 형, 군인들 데리고 대피소로 먼저 가! 저 괴물만은 꼭 잡아야겠어!”

비교적 잘 숨겨진 비트(은신처)라지만, 이곳 또한 위험한 건 매한가지였다.

“야 이 새끼야, 너까지 왜 이래!”

“가-! 나 안 죽어, 아니, 못 죽어. 저 괴물 새끼들 모두 쳐 죽일 때까지 안 죽을 거니까 걱정 마. 어서 가!”

입술을 피가 나도록 깨무는 기준이었다.

뒤쪽에도 좀비들이 한가득이다.

기준의 능력은 강철 같은 육체와 상상을 불허하는 괴력. 자신이 길을 트지 않으면, 남은 군인들도 몰살할 수밖에 없었다.

“시발놈. 여기서 꼼짝 말고 있어. 형이 오기 전에 뒈져있으면, 죽을 때까지 처맞을 줄 알아라.”

되지도 않은 말을 빠르게 내뱉은 기준은 남은 군인들을 인솔해 퇴로를 열기 시작했다.

기준의 주먹질 한방에 좀비의 머리와 몸통이 터져나가고, 가공할 속도로 좀비들을 학살했다.

“형한테 존나 맞게 생겼네. 그전에 저놈만큼은 반드시 죽인다.”

모두가 떠나고 홀로 남은 경호는 하나만 생각했다.

눈이 활화산처럼 타오르고 있었다.

거기다 주먹 쥔 손에 서서히 푸른 염화가 일렁이며, 의지만큼이나 강력한 불꽃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나흘 전, 저놈에게 사랑하는 연인을 잃었고, 오늘 수백이 넘는 군인들이 죽었다.

“한 방이면 돼. 한 방!”

극초신성 사태가 발발하고, 처음 발현되기 시작한 경호의 능력은 물리법칙을 벗어난 초능력임이 분명했다.

그리고 극한의 이른 분노 때문인지, 최근 들어 더욱 강력해져있었다.

스스로 지옥불이라 명명한 불을 다루는 능력은 전신으로 표출할 수도 있고, 어지간한 쇠붙이도 찰나의 순간에 녹이는 엄청난 고열을 자랑했다.

경호는 눈은 비트의 위장막 사이로 보이는 체고가 4미터에 육박하는 괴물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놈은 느릿한 속도로 주변을 살피며 다가오고 있었다. 최근 며칠 동안 놈도 상당한 피해를 본 적이 있던 탓에 경계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속으로 ‘조금만 더, 조금만 더’를 외치며 가까이 다가오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뒈져 이 개새끼야!”

경호가 크게 소리치며, 위장막을 뚫고 솟구쳤다.

시퍼렇게 타오르는 거대한 불의 구체가 경호의 손을 떠나 전방을 향해 무시무시한 속도로 쏘아졌다.

푸화확-!

스치는 좀비들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불타올랐고, 가로막는 수풀은 먼지가 되어 흩날렸다.

이 순간을 위해 경호는 자신이 가진 모든 역량을 총동원했다.

이제 걸음도 제대로 못 옮길 정도로 기진맥진했지만, 마음만은 홀가분했다.

콰쾅!

쿠오오오오!

2층 건물 크기의 거대한 괴물의 몸통에 불꽃이 작렬했고, 순식간에 전신으로 옮겨붙었다.

고통에 찬 울부짖음이 인근 전역을 뒤흔들었다.

피부가 짓무르고, 빠르게 녹아내렸다.

붉은 속살이 노릇하게 익더니 그 또한 찰나에 새까맣게 타들어 갔다.

“크큭, 연지야. 내, 내가 해냈다. 시발 내가 해냈다고.”

경호는 할 일을 다 했다는 듯 기력이 다해 모로 쓰러지고, 이미 돌아갔을 거라 생각했던 기준이 저 멀리 달려오고 있었다.

*  *  *

나주평야, 이제 성현의 영지가 된 나주영지는 거대한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성벽의 높이와 두께는 일전 청계산 성벽과 동일한 규모로 만들어졌다.

이곳은 앞으로 제주의 젖줄로써의 그 역할을 훌륭히 해낼 것이다.

“성벽은 끝났고, 병기는 어쩔까나?”

원래는 설치 가능한 병기 중 가장 비싸고 강력한 것으로 무장시킬 작정이었지만, 지금은 고민이 되는 부분이었다.

강력한 수성 병기로 도배하면 구울의 침입도 막을 수 있지만, 문제가 있었다.

수성 병기의 한 가지 아쉬운 점은 피아구분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고, 영지민이 아닌 누구라도 영지에 침입하거나 성벽을 공격하는 순간 적으로 판단해 공격한다는 것이다.

“뭐 어쩔 수 없지. 플래카드 정도는 걸어 두자.”

앞으로 제주도의 식량을 전담해서 생산할 곳이 좀비나 구울들이 망치게 둘 수는 없었다.

불필요한 희생은 없어야겠지만, 당장은 나주영지의 보호가 우선이었다.

다만, 최소한 경고문 정도는 성벽이나 주변에 설치해둘 생각이었다.

“빨리하자, 농사도 지어야지.”

[4.병기]

-설치된 병기는 적대행위 또는 침입 시 가동됩니다.

4)마법 화염 탑(수성 전용)

공격력 : 900

사거리 : 150m

내구 : 600

크기 : 높이 4m, 가로 2m, 세로 2m

필요자원: 석재 10t, 철광석 4t, 중급 마정석 1개

대체 자원 : 20,000 골드

-설치

( 246 ▲) = 4,920,000 골드

5) 마법 벼락 탑(수성 전용)

공격력 : 2,000

사거리 : 500m

내구 : 1,000

크기 : 높이 4m, 가로 1m, 세로 1m

필요자원: 철광석 30t, 상급 마정석 1개

대체 자원 : 200,000 골드

-설치

( 73 ▲) = 14,600,000 골드

성현은 곧바로 성벽에 수성 병기를 설치하기 시작했다. 오직 ‘마법 화염 탑’과 ‘마법 벼락 탑’만을 염두에 두고 설치했다.

[현재 설정하신 ‘마법 화염 탑’을 설치하시겠습니까? (수락, 거부)]

[4,920,000 골드를 소비하여 ‘마법 화염 탑’을 설치합니다.]

246개에 달하는 ‘마법 화염 탑’을 설치하고.

[현재 설정하신 ‘마법 벼락 탑’을 설치하시겠습니까? (수락, 거부)]

[14,600,000 골드를 소비하여 ‘마법 벼락 탑’을 설치합니다.]

73개에 달하는 ‘마법 벼락 탑’을 성벽에 설치했다.

마법 벼락 탑 사이에 마법 화염 탑이 3~4개가 자리했고, 모두 교차 사격이 가능한 거리를 두고 있었다.

도합 19,520,000골드, 전체 가진 골드의 절반이 넘어갔다.

이제 남은 골드는.

[골드(G) 18,422,051골드 12실버]

“그만한 값어치는 하겠지.”

대형 발리스타가 중기관총보다 위력에서 윗줄에 있음을 앞서 청계산에서 확인된 바 있다.

그런 발리스타보다 4배 이상의 공격력을 가진 ‘마법 화염 탑’과 10배의 공격력을 가진 ‘마법 벼락 탑’이라면, 5레벨의 구울도 문제없이 잡아낼 거라 생각했다.

직접 위력 시험을 하지 못하는 게 아쉽기는 했지만, 단순한 공격력 수치만으로도 충분히 계산은 나왔다.

“어디 보자, 우선 쌀이 제일 필요하겠지.”

[내정]

[농장물재배]

11. 벼농사

면적 : 1마지기(200평)

필요자원 : 볍씨 100g

대체 자원 : 2 골드

수확 : 파종일로부터 30일, 지정 창고 자동 저장

면적( 50,000 ▲) = 100,000 골드

내정의 카테고리를 열고, 농작물 재배 안에 있는 벼농사를 지정했다.

전체 영지 규모의 절반을 상회하는 지역을 벼농사를 하도록 설정했다.

그 넓이는 무려 천만 평.

벼농사에 적합한 지역을 찾아 영지로 선택했지만, 일부 지역은 빨간색으로 벼농사가 적합하지 않은 곳도 있었다.

1천만 평을 설정하는데 대략 1천 2백만 평 이상이 소요되었다.

“단순히 농작물재배 이 능력만 가지고도, 세계 제일 부자는 내가되지 않았을까?”

수많은 농사꾼의 피와 땀으로 이루어져야 할 농사가 단 몇 번의 터치로 이루어짐에 작은 실소조차 나오지 않았다.

[현재 설정하신 ‘벼농사’를 실행하시겠습니까? (수락, 거부)]

“당연히 수락!”

[경고]

[벼농사 설정 위치상에 있는 이물질로 인해 추가 골드가 필요합니다. 38,233 골드를 소비하여 제거하시겠습니까?]

“참내, 그래도 일관성은 있네.”

활주로를 만들 당시와 같이 추가 비용을 요청하는 메시지에 성현이 혀를 찼다.

[경로상에 있는 이물질은 제거되고, 생명체는 설정 지역 밖으로 이동됩니다]

[실행 100,000 골드, 추가 비용 38.233 골드를 소비하여 벼농사를 실행합니다]

쿠쿵!

순간 지표면이 크게 들썩이더니 땅이 한차례 뒤집어 졌다.

벼농사 실행 지역 밖으로 나와 있음에도 생동감 넘치는 지면의 움직임이 생생히 느껴졌다.

그리고 벼농사 영역에 해당하는 인근에 있던 집이며 가건물 하우스 등 모든 것들이 아지랑이처럼 흩어져 공기 중에 녹아들 듯 사라져갔다.

그리고 네모반듯한 논들이 셀 수도 없이 나타나 성현의 시야를 가득 채웠다.

“후아-, 진심 사기긴 하네. 근데 설마 나중에 모내기 같은 거 따로 해야 하는 건 아니겠지?”

일반적인 벼농사는 40~45일간 모를 기른 후, 깊이갈이로 정지를 한 본답(本畓)에 모내기를 하고, 이후에 평균 3~4회 비료를 줘야 된다.

그리고 관배수로(灌排水路)와 같은 수리(水利)시설을 통해 물 관리도 해야 하는 것은 기본이고, 병해충을 방지하기 위해 농약 살포도 해야 하는데 성현이 이 모두를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특별히 다른 설명은 없으니, 알아서 되겠지.”

지금까지의 경험상 설명되지 않은 부분은 필요 없기 때문임을 알고 있었고, 자신의 능력에 의해 일어나는 모든 일은 더는 의심치 않았다.

지정 창고 자동 저장이란 문구에 따라 창고를 만들고 지정하고 기다리면, 모든 일은 게이머의 능력이 알아서 해줄 터였다.

“남은 땅은 뭐가 필요한지 알아보고 심으면 되겠고, 이제 슬슬 돌아가자.”

나주영지에서 볼일을 다 본 성현은 공격 헬기를 꺼내고 제주도로 복귀하려 했다.

그때.

쿠오오오.

상당한 거리감이 있는 구울의 괴성이 들려왔다.

정신 공격에 저항했다는 알림이 뜨지 않는 걸로 보아 포효가 아닌 비명이던지, 그도 아니면 지금 성현이 있는 곳까지는 육체나 정신에 피해를 주는 포효의 영향권은 아닌 듯했다.

“그다지 멀지는 않은 거 같은데.”

성현은 북동 방향으로 짐작되는 소리의 진원지를 바라봤다.

그리고 생각을 굳힌 듯, 꺼내 놓은 공격 헬기에 탑승해 이륙 후 급히 기체의 방향을 틀었다.

그리고 잠시 후.

“……쫓기는 건가?”

한 야산 중턱에 수백 수천을 넘는 좀비들이 수십 명의 사람들을 쫓고 있는 상황이었다.

거리는 대략 1,500m, 하지만 즉각적인 도움을 주기는 조금 힘들었다.

좀비와 생존자들의 거리가 너무 가까워 오폭의 위험이 있었다.

“엄청난데, 사람 맞아?”

강화된 시력에 도무지 인간으로 보이지 않은 이가 선두에서 좀비들을 찢어발기는 모습이 보였다.

그 뒤로 무장한 군인들로 보이는 이들이 따르면서 간간히 좀비들을 향해 총을 쏘지만, 효과는 미미해 보였다.

“특성 각성자는 아니지만, 능력자가 확실해 보인다.”

성현과 해미, 이제 최 중령까지 특성을 각성해 각자 머리 위에 표식이 떴지만, 지금 지상에 맨손으로 좀비들을 학살하는 이는 그러한 게 없었다.

하지만, 육체적인 능력은 성현이 보기에도 대단했다. 자신의 수준은 아니지만, 거의 근접했다고 봤다.

아이템의 보조를 받고 있는 성현이 일대일로 붙게 된다면 필승을 자신할 수 있지만, 지금 보이는 이도 그만큼 위력적인 건 사실이었다.

“저기가 대피소인가? 그럼 이야기가 좀 달라지는데.”

지상의 사람들이 향하는 일직 선상에 상당히 넓은 공토와 거대한 터널이 존재했다.

청계산 터널 입구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작은 규모였지만, 저 정도만 해도 대형 트럭 두 세대가 동시에 드나들 만큼 거대했다.

“어떡한다…….”

소규모 생존자 무리가 아닌, 저들은 대피소에 소속된 이들로 봐야했다.

이곳 대피소가 만약 이전 청계산이나 양자산의 지도부와 같은 놈들이 장악한 곳이라면, 문제가 좀 복잡해진다.

성현은 뜻하지 않은 상황에 생각이 많아졌다.

공격 헬기로 도와주고 놈들의 경계심을 높여놓을 생각은 요만큼도 없었다.

“안됐지만, 지켜본다.”

성현은 더욱 고도를 더욱 높이고, 거리를 벌리면서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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