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판멸망한 세계의 게이머-69화 (69/176)

# 69

신인류 (1)

성현은 2㎞ 상공에서 지상을 관측 중이었다.

“운이 좋네.”

이곳 대피소도 병참이 지하 깊이 있던 덕을 보는 듯했다.

대피소 입구 공터는 전차와 장갑차를 활용해 제대로 된 대응을 하면서 차츰 좀비들을 몰아내고 있었다.

거기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능력자로 생각되는 이가 군인들을 보호해 도착하고 있었고, 그 인원은 절반 가까이 줄어들어 있었다.

퇴각 도중 뒤쳐진 인원들은 끝까지 살아서 도착하질 못했다.

그리고 이들을 이끌었던 이능력자가 다시금 능선을 타고 빠르게 밑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구울Lv3]

“흐음.”

성현이 시선을 조금 옮기자, 능선 아래 청계산에서 최초 조우한 구울과 비슷한 체고의 구울 한 놈이 눈에 들어왔다.

“……뭐지?”

구울을 향해 푸른빛이 선명한 구체가 엄청난 속도로 날아가더니 순식간에 구울을 강타했고, 강력한 불꽃을 발하며 놈을 집어삼켰다.

열기가 어찌나 강맹한지 주변 수십 미터 내에 있던 초목들이 가루가 되어 휘날렸고, 인근 좀비들은 활활 타오르고 있어 가까이 있지 않음에도 그 위력을 능히 짐작할 수 있었다.

“다른 이능력자군.”

한 명이 아니었다.

인간 병기로 보이는 육체 강화자 한 명과 불을 다루는 것으로 보이는 이능력자 하나가 더 있었다.

육체 강화자보다 불을 다루는 이능력자가 성현이 보기에도 더욱 위험해 보였다.

더군다나 저들이 대피소에 있는 모든 능력자라 단정하기도 힘들고, 단순히 저 둘만해도 무시 못 할 전력이 아닐 수 없었다.

“3레벨 구울이 한방에…….”

지상의 구울을 나타내던 표식이 사라졌다.

구울이 죽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최소한 단일 화력으로 헬파이어 미사일 이상의 공격력을 가진 불꽃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이런 자들이 다른 대피소도 없으라는 법이 없다는 게 더 문제인데.”

이곳 대피소만 특별한 탓에 이능력자가 둘이나 있다는 건 말이 안 되었다.

“접촉할 게 아니라면, 더 이상 지켜볼 필요도 없다. 돌아가서 대책을 세우고, 영지 주민들에 대한 조사를 서둘러야겠다.”

이미 내정위원회에 극초신성 사태 이후 자각 현상이 있는 이능력, 또는 초능력을 가진 이들을 찾도록 지시를 내려둔 상태였다.

주민들에게 자발적으로 신고하라고 했지만, 아직까지 단 한 명도 없는 실정이었다.

물론 없을 수도 있지만, 성현은 본인 스스로 안 밝히고 있다는 쪽에 무게를 두고 있었다.

“숨겠다면, 끄집어내 줘야겠지.”

차라리 당당히 밝히면서 떠벌리는 이들은 그나마 괜찮았다.

숨기고 있던지 그도 아니면 자신의 능력 자체를 부정하고 있는 이들은 잠재적 위험인자라 생각했다.

“조만간 다시 보자고.”

성현은 지상의 대피소를 일별하고, 가까운 시일 안에 다시 만나게 됨을 예고했다.

몰랐으면 상관없지만, 알게 된 이상 계획된 대피소 탈환이 시작되면 가장 최우선으로 이곳을 찾을 생각이었다.

그리고 자연스러운 동지가 될지, 적이 될지는 성현도 짐작하기는 힘들었다.

*  *  *

제주도 이주 3일째.

제주 종합지휘 본부.

과거 도청이던 이곳은 현재 군사위원회와 내정위원회가 들어와 있었다.

3층 사령관 집무실.

이전 도지사 집무실로 이용되던 장소는 성현의 개인 집무실이 화해있었고, 나주영지에서 복귀한 직후부터 이틀간 밀린 업무를 보느라 여념이 없었다.

“안 되겠다, 두식이 밖에 있나?”

성현은 이틀이 지나도 끝이 보이지 않은 결재 서류를 보며 두 손 두 발 다 들고 말았다.

성현의 부름에 밖에 대기하고 있던 두식이 문을 열고 들어섰다.

“30분 안에 전체 회의 할 수 있도록 모두 호출해라.”

“넵, 사령관님. 군사위원회 내정위원회 전원 소집하겠습니다.”

회의 소집에 가장 큰 이유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자신의 승인을 기다리고 있다는 데 있었다.

업무 효율이 너무 떨어졌고, 할 일이 많은 자신의 발목을 잡는 일이기도 했다.

이전 청계산 대피소 지하 생활과는 환경 자체가 달라졌고, 업무의 영역도 차이가 난 탓에 새로운 지침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당장이야 어떻게든 한다지만, 그것도 하루 이틀이지, 이 대로면 모든 시간을 결재 서류와 씨름하며 보낼 수밖에 없었다.

어느 정도의 사안이냐에 따라 틀리겠지만, 각 위원회와 부서에서 일정 부문 자체 처결토록 하는 게 맞는다고 생각했다.

30분은 그리 긴 시간이 아니었다.

회의장에 먼저 와서 기다리던 성현은 지시가 내려지고, 20여 분이 조금 안 지나 모두가 도착하자 회의를 시작했다.

“네, 사령관님. 알겠습니다. 후속 사안에 대해서는 선 처리 후 보고 하도록 하겠습니다.”

성현의 결재 처리 기준을 크게 완화할 것을 지시하자 안영식 내정위원회 의장이 모두를 대표해서 답했다.

“그리고 현재 결제 대기 중인 사안에 대해서는 지금 구두로 답해줄 테니 그대로 따르시기 바랍니다.”

성현은 이미 결제된 서류들을 들여다보며, 이왕지사 다들 자리한 이때를 빌려 전달했다.

“발전소가 본격적으로 가동되면 일자리가 없는 개개인이 별도의 사업이나 영리 활동을 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은 시기상조로 봅니다. 이 건은 반려합니다.”

내정위원회 소속 담당관, 이제는 공무원이라 할 수 있는 이들이 의욕이 넘쳐 많은 의견을 제시하고 있지만, 시기적으로 이른 의견들이 지배적이었다.

성현은 승인된 내용보다 보류 또는 반려된 의견부터 모두에게 전달했다.

“다만, 전체 주민들에게 작은 일이라도 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 주기 바랍니다. 강제로 시킬 수는 없지만, 하겠다는 사람에게는 어떤 일이라도 시켜주라는 말이니 이점 유념하기 바랍니다.”

“네, 사령관님. 잘 알겠습니다.”

“그리고 임금에 대한 물품 지급 예정량이 너무 많다고 보여 집니다. 물량은 줄이고 일한 대가에 대한 임시 화폐라도 만들어 지급하기 바랍니다. 그도 아니면 위조가 안 되는 어떤 거라도 상관없으니 즉시 보완해야 합니다. 현재 냉장고도 사용 못하는 주민들에게 지급하겠다는 식재료는 많이 과하다고 봅니다. 이건 즉시 시정하기 바랍니다.”

당장은 모든 주민들에게 단체 급식을 실시하고 있지만, 전기가 보급되면 각 거주지 별로 취사를 허용할 방침이었다.

헌데 올라온 결재 서류에 기입된 임금 지불 방식인 물품과 식재료 지급 물량이 터무니없이 많았다.

“사령관님, 그렇다면 모자란 이들도 나올 수가 있는데. 그럼 어떻게…….”

“본격적인 신규 화폐가 유통되지 않아도 임시 화폐가 지급 된다면, 그 즉시 대형 마트를 열어 부족한 이들에게는 구매할 수 있도록 하세요. 그리고 상설 시장을 열어 개인 간 거래도 이루어 질 수 있도록 장려하기 바랍니다. 또한…….”

이미 주거지 인근 두 곳과 공항 인근 한곳의 대형마트에는 물류가 가득 쌓여 있었다. 개장만 기다리는 형편이라 당장 주민들에게 이용케 해도 큰 문제가 없었다.

다만, 모두 한정된 수량들이라 1인당 구매에 대한 제약은 둘 수밖에 없었고, 추가로 물품들을 구해 채워놓는 수고가 따라와야 했다.

“임시 축사는 옮기는 건 좋은데, 최대한 거주지와 떨어진 곳에서 할 수 있도록 해서 위생 문제와 오염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도록 하세요.”

대피소에서 수송되어온 가축들은 단 하나도 도축되지 않았고, 예전 한라수목원에 넓게 펜스를 설치하고 방목하고 있었다.

이 가축들을 토대로 계속해서 규모를 늘려야만 했다. 당장 배불리 먹고 싶다 해서 도축하는 건 미련하다 못해 정신 나간 짓임이 분명했다.

차후에 한라산 인근으로 옮길 예정이지만, 아직은 제대로 된 축사가 만들어지지 않아 시간이 좀 더 필요한 실정이었다.

“이상 회의를 마칩니다.”

2시간에 걸친 회의는 정오가 넘어서야 끝이 났고, 성현은 점심을 해결하고 군사위원회 소속 군 지휘관들만 다시 모아 회의를 속개했다.

“최동원 대령은 준장에 임명하고, 해밀턴 중령과 조만호 대위 등 13명은 대령으로 승진 발령한다.”

성현은 미뤄 두었던 군 인사 발령을 지시했다.

“최동원 준장은 전군 부사령관으로 지휘권은 유지토록 하고, 1대대장을 겸임토록 한다. 그리고 대대장은 예하 한 개 중대를 직속으로 두고, 지휘하도록 한다. 해밀턴 대령은 공군에 대한 지휘를 유임한다.”

모두가 예상하고 있던 바였고, 조금 늦은 감이 있는 인사 발령이었다.

“이하 인사 발령은 각 소속 부대에 하달토록 하고, 각 부대별 주둔지로 이동할 수 있도록 한다. 그리고 가장 먼저 부대 간 유선통신망을 설치해서 상시 연락 체계를 확보하도록 해라.”

새로이 개편된 군은 3대대 12중대.

성현은 이에 따른 군 인사이동을 모두 끝냈다.

그리고 무선통신망은 아직도 10㎞라는 한계가 있던 탓에 유선통신으로 보완해 부대 간 연계가 가능하도록 체계를 갖추도록 했다.

“마지막으로 전투 부대를 그대로 본관의 직속에 둔다. 전투 부대는 이후 특수 부대로 개명하고, 빠른 시간 안에 인원 차출해서 완편 할 수 있도록 한다.”

원래 계획보다 축소된 특수부대는 100명으로 한정시켰고, 공군 20명 지상군 80명으로 운용할 생각이었다.

““넵, 알겠습니다.””

긴 회의를 끝으로 성현은 지휘본부를 나왔다.

“사령관님, 지금 이동하시겠습니까?”

“그래 가자.”

본부 입구에는 두식과 새로운 운전병이 성현을 기다리고 있었다.

성현은 금일 예정된 주민들과의 만남의 장소로 이동했다.

주민들의 거주지는 크게 3개 구역으로 나누어져 있었고, 성현은 그중 한 개의 구역과 맞닿아있는 한 초등학교로 향했다.

“이지애 씨, 오랜만입니다.”

“네, 그러네요.”

이지애는 성현이 내민 손을 맞잡고 해맑은 얼굴로 답했다. 차갑고 냉담해 보이던 표정은 화사해져 있었고, 한층 미모가 빛을 발하고 있었다.

“얼굴이 많이 좋아지신 것 같습니다. 보기 좋네요.”

“어머, 그래요? 역시 사령관님은 듣던 대로 세심한 분 같네요. 곰탱이 같은 누구와는 전혀 다르시네요.”

“……”

성현은 이지애가 말을 흘리며 바라보는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두식이 얼굴을 시뻘겋게 물들이고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이것 봐라?’

두식과 이지애간에 묘한 시선이 오가는 게, 이 둘의 사정을 모를 만큼 성현이 눈치가 없진 않았다.

짐작 가는 바도 있었다.

용칠이를 그리 보내고 성현은 심리치료가 필요한 두식을 이지애에게 보냈었고, 어쩐 일인지 둘 사이는 어느새 남녀 관계로 발전한 듯했다.

“하하, 그 곰탱이 제가 조만간 교육 좀 단단히 해줘야겠군요. 바쁘실 텐데 들어가시죠.”

“어머나, 사령관님 다정도 하셔라. 미리 감사드려도 되죠? 믿을게요.”

성현과 이지애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학교에 자리한 강당 안으로 들어섰다.

두식은 성현과 이지애의 대화에 어쩔 줄 모르고 있다가 한참 떨어져서 그 뒤를 따랐다.

“단결! 이쪽으로 오시면 됩니다.”

성현이 강당에 들어서자, 한 부대원이 다가와 강당 제일 앞쪽에 마련된 바닥보다 조금 높은 단상으로 안내했다.

이지애는 성현의 옆에 마련된 의자에 앉아 기다렸고, 성현은 단상에 설치된 마이크를 테스트했다.

이미 강당 안은 주민들로 가득한 상태였다.

그리고 학교 건물에도 주민들이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고, 시간대별로 관리과 직원이 계속해서 주민들을 안내해 데려올 예정이었다.

“미리 말씀드렸다 시피 숨기던지, 거짓말하는 이들은 없는지 확인해 주시면 됩니다. 특별히 생각을 읽으실 필요는 없으니 무리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성현은 이전 재판 때처럼 이지애가 타인의 생각을 무분별하게 읽어내다 쓰러지지는 않을까 걱정되는 부분이었다.

“아, 네. 배려해주셔서 감사드려요. 그리고 너무 걱정 안 하셔도 괜찮을 것 같아요. 지난 재판 이후로 제 능력도 한층 강화되었답니다.”

“그래요? 듣던 중 반가운 소식입니다. 혹시 다른 능력은……?”

“그건 아직 이지만, 능력이 전보다 좀 더 디테일해졌다고 보시면 될 거 같아요. 보다 많은 생각을 읽을 수 있고, 정신적인 피로도 훨씬 줄어들었어요.”

“잘됐습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생각을 읽는 건 제가 지목하는 사람만 읽고 알려주세요.”

성현은 이지애의 능력으로 이능력자를 찾으려 했다.

스스로 체감하지 못하는 이능력자는 사실 문젯거리가 없다고 봤다. 인지하지 못할 정도의 작은 능력이라면 위험할 정도는 아닐 터였다.

다만, 숨기고 있는 이와 스스로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은 반드시 찾아내야 했다.

그들을 이용할 생각은 없지만, 몸 안에 악성인지 아닌지도 모를 종기를 키우고 싶지는 않았다.

그리고 이를 계기로 이능력차 찾기가 생각처럼 가능해진다면, 한번으로 그칠 생각은 없었다.

주기적으로 해서 찾을 생각이었다.

“자신에게 초능력이 있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앞으로 나와 주시기 바랍니다. 없는 분들은 그 자리에 계시면 됩니다.”

성현이 약 1천여 명의 주민들을 내려다보며, 마이크를 이용해 말했다.

뜬금없는 성현의 말에 조금 어수선해졌지만, 아무도 앞으로 나서는 사람은 없었다.

“저… 사령관님. 거짓말은 아닌데, 많이 혼란스러워하는 분은 두 분 계세요.”

성현은 자신이 생각한 방법이나 질문 자체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닌가 싶던 차에 이지애가 말했다.

“혼란스러워 한다고요? 어쩌면 긴가민가 하는 사람들일 수도 있겠군요.”

“생각까지 읽어 드릴까요?”

“네,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이지애가 혼란스럽다는 말한 이들의 생각을 읽어내며, 점점 눈을 크게 치켜뜨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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