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0
신인류 (2)
“우리 신인류를 알고 온 건가? 마술 같은 가짜 초능력 따위와 우리를 비교한다는 게 웃기는군. 머지않아 너희 군인 놈들 모두 우리 발밑에 있게 될 거다. 헙! 이 남자 미친 건 아닌데, 이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K열 30번이에요.”
성현은 말이 새어나갈까 마이크를 껐고, 이지애는 속삭이듯 작은 말로 성현에게 말했다.
이지애 스스로 능력이 한층 강화 되었다고 했지만, 이 정도로 구체적이면서도 명확한 전달이 가능할 줄은 성현도 몰랐다.
“후우-, 일단 알겠습니다. 다른 사람은 어떻습니까?”
“네, 잠시 만요. 음… 우리 미미랑 대화 하는 게 설마 초능력은 아니겠지? 에이 내가 무슨 초능력이 있겠어. 이런 생각을 하고 있어요. 그리고 미미는 제주도에 와서 우연히 키우게 된 작은 새 이름이에요. 헐, 대박. 동물들하고 교감을 넘어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분이네요. L열 27번 자리에 있는 여성분이에요.”
성현은 이지애의 말을 듣고, 한 명은 자신의 능력을 부정하면서 혼란스러워 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앞서 다른 한 명은 초능력을 가짜 마술정도로 치부했고, 자신을 신인류라 여기며 스스로를 고귀한 존재로 생각하고 있었다.
단적으로 후자는 이지애가 언급한 내용만 봐도 위험분자라 할만 했다.
“전 대원 K열 30번을 주시한다.”
성현의 무전이 전달되자 강단 2층에 은폐물 뒤에 대기 중인 다섯 명의 저격수들이 확인 무전을 보내왔다.
외관은 그저 시커먼 천만 보이는 탓에 주민 그 누구도 저격수가 있음은 눈치 채지 못했다.
성현은 어떤 상황이 와도 혼자라면 감당 못할 일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당장은 자신보다 주민들이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고 봤다.
“거기 L열 27번 여성분 모셔서 나가도록 하세요.”
성현이 마이크를 다시 켜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여군 하사관 한 명이 다가가 친절하게 말했고, 조금 당황하긴 했지만, 별다른 거부감 없이 따라갔다.
“K열 30번 인적사항만 파악해놔.”
지금 당장은 주민 한가운데 있었고, 놈이 어떻게 나올지 몰랐다.
위험한 생각을 하는 놈에게는 그에 걸맞은 대처가 필요했다.
“모두 돌아가셔도 됩니다.”
성현은 놈의 의심을 사지 않고, 일단은 돌려보내는 길을 택했다.
-K열 30번 신원파악 마쳤습니다.
“알겠다. 원거리서 동태만 파악해.”
-넵, 알겠습니다.
강당에 가득했던 주민들이 빠져나가고 새로운 주민들로 가득 찼다.
새로운 주민들은 강당에 들어서자 자신이 받은 쪽지에 적힌 영문과 숫자를 확인했고, 바닥을 보며 각자의 위치로 가서 자리했다.
그리고 성현은 앞서와 같은 질문을 던졌고, 이지애가 확인을 해줬다.
* * *
첫날 주민과의 만남을 마친 성현은 예상보다 많은 이능력자들로 인해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전체 주민들을 아직 확인하지 못했지만, 첫날 1만 7천 명의 주민 중 이능력자로 판단되는 이들은 모두 11명이나 되었다.
그중 두 명은 자진해서 앞으로 나와 자신이 초능력이라 생각되는 이능력이 있음을 밝혔고, 두 명은 스스로의 능력에 대해 반신반의하는 이들이었다.
문제는 나머지 7명.
이들은 자칭 신인류라는 이능력자 모임을 결성해 모여 있었다.
신인류 모임의 창시자는 김도훈이란 40대 남자로, 이능력자를 알아보는 능력과 스스로 매혹이라 칭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매혹은 말 그대로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고 홀리는 능력이었다.
대상과 접촉을 많이 할수록 장시간 대화하면 할수록 매혹의 능력은 더욱 커지고 깊어졌다.
무력, 즉 외부로 투사하는 실질적인 능력으로 보자면 가장 보잘 것 없는 이였지만, 현실에서 김도훈의 파괴력은 상상 그 이상이었다.
그의 모임은 모두가 그를 추종하는 광신도나 다름이 없었다.
제아무리 대단한 능력이 있다 한들, 김도훈에게 복속하게 된다면 그게 과연 누구의 능력이라 할 수 있을까 싶었다.
“어찌 보면 이런 사실을 알아내 주는 이지애 씨의 능력이 정말 대단한 걸지도…….”
이지애가 없었다면, 정말 소름 돋는 사태가 벌어졌을 수도 있었다.
성현과 가까운, 만일 최동원과 같은 이가 김도훈의 매혹에 걸렸다면, 두식이 그리되었다면?
“이놈은 살려둘 수는 없겠다.”
성현은 작게 읊조리며, 마음을 굳혔다.
이튿날.
전날과 다름없이 주민들을 강당에 모은 성현은 이지애의 도움으로 이능력자를 찾았고, 모두 8명의 능력자를 가려내었다.
이 중 김도훈에게 매혹된 이들은 무려 6명.
시간이 지날수록 김도훈에게 매혹되는 이들이 늘어날 것을 우려한 성현은 이능력자를 찾는 일에 박차를 가했다.
“모두 31명 중에 22명, 이미 반수 이상이 놈에게 매혹된 상태군요.”
사흘째 되는 날, 모든 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이능력자 찾기는 막을 내렸고, 신인류라는 사이비 종교와 같은 모임에 빠진 이들을 구분해 냈다.
너무 늦은 감이 있었다.
이지애가 밝혀낸 사실을 듣고, 좀 더 일찍 서둘렀었어야 했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 성현이었다.
놈이 매혹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게 된 것은 보름 남짓, 본격적으로 움직인 것 또한 그때부터였다.
“김도훈이 죽는다면 매혹된 이들이 정상으로 돌아올 수는 없는 겁니까?”
“이미 의식 깊은 곳, 소위 말하는 무의식에 완전히 침잠된 탓에 본인의 생각이나 행동에 당위성을 부여하고 확신을 가지고 있어요. 김도훈이 있든 없든 현재와 다를 건 크게 없을 거예요.”
영화나 소설처럼 매개가 되는 김도훈을 죽여서 매혹된 이들이 정상이 된다면 좋겠지만, 이지애의 말은 단호했다.
“다만 김도훈과 장시간 떨어져 있다면, 점차 세뇌는 옅어 질 수는 있을 거 같아요. 긴 시간이 필요할 거예요. 거기다 정신과 치료를 병행한다면 좀 더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는 있을 듯해요.”
즉각적인 효과는 없지만,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모르는 불확실한 희망이 있긴 했다.
“알겠습니다. 이만 돌아가 쉬도록 하십시오. 두식아 이 박사님 모셔다드려라.”
성현은 늦은 시간, 이지애 박사의 귀가는 두식에게 맡겼다. 아직 연인 사이로 발전한 것 같지는 않았지만, 썸타는 사이 정도는 되는 듯했다.
“놈은?”
“네, 현재 집으로 들어갔다는 무전 이후로 잠잠합니다. 근데 여성 여섯 명이 함께 살고 있어서 좀 염려스럽습니다.”
“모두 놈의 매혹에 당했다고 봐야겠지. 누가 봐도 비정상적이지 않나?”
이능력자 만이 아니라 일반 주민에게도 놈은 매혹을 사용한듯했다. 가족도 아닌 젊은 여성 6명이 놈의 거처에 함께 살고 있었다.
주민들에게 거주지가 배분되는 과정에서 본인들이 원하는 이들과 함께 있도록 해준 게 놈에게 합법적으로 하렘을 만들어 준 것이다.
“당장 놈을 죽이는 건 쉽지만, 알아볼 게 있으니 당분간은 살려놔야겠다.”
“그럼 이대로 두실 생각이십니까?”
“미쳤냐, 얼마나 더 많은 사람들을 그 꼴을 만들 줄 알고?”
“아, 네. 그러시면 어떻게?”
“죽이지 않는다는 거지, 그냥 둘 수는 없어. 어디 좀 먼 데로 던져놓고 살펴볼 생각이다.”
“알겠습니다.”
* * *
“이거 뭐야? 이럴 리가 없는데… 저, 도훈이 형님 정말 죄송한데. 오늘 배정된 일자리는 발전소 쪽이네요. 저기 4호 차량 타셔야 할 거 같습니다.”
“에앵? 이 과장. 나 저기 해변 쪽 아녔어?
김도훈은 전날과 마찬가지로 시원한 해변에서 같은 작업이 주어질 줄 알았는데, 작업이 갑작스레 변경되어 있었다.
말이 작업이지, 김도훈은 해변에서 피크닉을 즐겼다. 담당 직원이며, 어지간한 직급에 있는 이들에게 모두 매혹을 걸어둬서 누구 하나 제재하는 이가 없었다.
“그러게요. 거기 한 보름은 더 작업해야 할 텐데 갑자기 중단되었네요.”
“그럼 이과장이 나 좀 편한 데로 빼줘. 발전소 거긴 지금 많이 바쁘다며, 거기 말고 딴 대로 힘 좀 써봐.”
매혹으로 이미 자신을 친형님처럼 따르는 이 과장에게 김도훈은 당연하다는 듯 요구했다.
“형님, 제가 내일은 어떻게든 빼 드릴 테니 오늘 하루만 죄송하지만 고생 좀 해주세요. 이게 제힘으로는 도저히 빼 드릴 사항이 아닌 것 같습니다. 형님하고 열 명은 긴급으로 처리되어 있어 제가 임의 변경이 불가능합니다. 다음에는 이런 일 절대 없도록 할 테니, 한번만 봐주세요.”
이 과장은 상당히 난처한 기색이 역력한 표정으로 김도훈에게 부탁했다.
“이거 참내.”
힘들게 일할 생각이 없던 김도훈이 몇 차례 더 빼달라고 이야기했지만, 이 과장은 더욱 곤란해하며 주객이 전도되어 머리가 바닥에 닿도록 사정을 했다.
김도훈은 하는 수 없이 4번 버스를 타고 발전소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목표 4호 차 승차 완료. 지정 위치로 이동 중.
“알겠다.”
성현은 발전소 내의 외각에 지어진 창고에 와있었다.
“아저씨, 그 나쁜 사람 지금 와요?”
“그래, 한 10여 분이면 도착할 거 같다.”
“근데… 왜 나쁜 사람 치료해 달라고 하신 거예요?”
“……해미야. 사실 이런 일에 네가 같이한다는 것도 난 별로 내키지는 않는다. 헌데 당장 취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 어쩔 수 없었다. 미안하지만, 해미 네가 오늘은 날 좀 도와줘야 할 것 같다.”
성현은 김도훈이 오면, 지금까지 매혹시킨 이들이 누구인지, 매혹을 걸면서 어떠한 세뇌를 해놓았는지, 그리고 원래대로 되돌릴 방법은 없는지를 알아 내려했다.
매혹에 걸린 모두가 잠재적인 시한폭탄과 같았다.
쉽사리 입을 열지 않을 것을 대비해 어떻게 해서든 놈의 입을 열게 만들 작정이고, 그러다 자칫 놈이 자진하던지 견디지 못해 죽을 염려도 있었다.
“말했다시피 지금 오는 이놈은 정말 나쁜 놈이다. 여태껏 우리가 봐왔던 모든 나쁜 놈들 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다. 마음 단단히 먹고, 난 해미 네가 강하다고 믿는다.”
“네, 아저씨.”
좋은 것만 듣게 해주고, 좋은 것만 보여주고 싶은데 잠시 후에 있을 일은 가능하다면 결코 보여주고 싶지는 않은 일 중 하나였다.
성현은 해미가 스스로 이겨내 줬으면 했다.
잠시 후.
“여기가 맞수?”
“네. 저는 여기라고 들었습니다. 듣기로는 창고 안에서 먼저 온 사람들이 작업 중일 겁니다.”
“젠장맞을. 날도 더럽게 더운데 찜통 안에서 작업이라니, 에이!”
“고생하세요.”
차량이 떠나고, 김도훈은 터덜터덜, 창고로 향했다.
“거기 누구 계슈?”
제주도는 좀비가 없는 땅이라는 말을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들었지만, 컴컴한 창고에 들어서려니 덥석 오한이 들었다.
신세계 모임의 부하들 중 발현계 이능력자 한 명이라도 곁에 있으면 든든할 거란 생각을 했지만, 당장에는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뭐, 뭐? 커컥!”
창고 입구에서 엉거주춤 서 있는데, 난데없이 검은 그림자가 일렁이더니 순식간에 김도훈의 앞에 나타났다.
“하-, 새끼 겁은 많아서… 조용히 따라오자.”
“끄륵, 끄륵!”
성현은 김도훈의 목을 잡고, 준비해둔 블랙호크로 데려갔다.
파각!
철퍼덕.
성현은 최대한 힘 조절을 해서 김도훈의 뒷목을 쳤고, 한순간에 몸이 축 늘어지며 정신을 잃고 말았다.
의식을 잃은 김도훈의 몸뚱이가 블랙호크의 실리고, 이내 헬기는 이륙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