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2
신문명 (1)
성현은 최칠규에게 천외천이 있음을 몸소 알려주고, 의외로 고분고분해진 터라 기절시키지 않고 범섬에 데려갔다.
그리고 의도하려고 한 건 아니었지만,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저 새끼 죽여!”
맨정신으로 도착한 최칠규를 보자 김도훈이 ‘옳다구나’하며 딴생각을 하기에 이르렀고, 최칠규에게 성현을 공격하게 했다.
제정신이 아닌 최칠규는 성현에게 덤벼들었고, 결과적으로 복날에 개 맞듯 맞다가 정신을 잃었다.
당연히 김도훈에게는 다시금 참교육의 시간과 함께 양손 손가락은 네 개가 사라진 후천적 장애를 가지게 되었다.
양손 합쳐 육손이가 되었음이다.
“밥 떠먹을 손가락은 남겨라. 짐승처럼 머리 처박고 먹고 싶지 않으면.”
일말의 자비도 없는 성현의 손속에 김도훈은 더는 반항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우여곡절 끝에 기존에 걸어 논 매혹을 걷어낸 최칠규는 정신을 차렸고, 잠시 멀뚱멀뚱 있다가 급히 고개를 숙였다.
자신이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며, 성현에게 거듭 사죄했다.
성현은 그 사과를 너그럽게 받아주고 잠시 이야기를 나누는데, 아무래도 새롭게 새겨진 세뇌가 조금 다르게 작용하고 있음을 알았다.
최칠규는 충성이라기보다 친형제를 보듯 성현을 살갑게 대했다.
“우리 사령관 형님은 내가 여태껏 본 이들 중에 최고수요. 울 아부지가 맨손으로 날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우리나라에서 손가락에 꼽힐 거라 했는데, 오늘 내가 임자를 만나도 제대로 만난 거지 않겠소.”
보기보다 상당히 수다스러운 녀석이라고 성현은 생각했다.
최칠규는 가문으로만 이어진 비인부전(非人不傳)의 무예인 수박(手搏)을 익혔다고 했다.
“거 지구가 멸망한다고 한날 이후에 내공이 생겨 이제 그 누구도 이길 수 있다고 자부했는데. 사령관 형님께는 내 진심으로 심복했소.”
“너, 말투 좀 어떻게 안 되겠냐?
나이는 성현보다 열 살가량 어린 것이 분명한데, 말하는 투는 성현보다 훨씬 윗줄로 느껴졌다.
듣는 내내 어디 조선 시대에 있다 온 건 아닌지 의구심이 들 정도로 말투며 억양이 남다른 최칠규였다.
또 어떨 때는 아이같이 칭얼대기도 하니, 도무지 뭐가 본모습인지 헷갈릴 지경이었다.
성현은 최칠규를 돌려보내고, 이후부터는 방법에 변화를 주었다.
한 명씩 데려갔다가는 오늘 중에 일을 끝내지 못할 거 같았다.
미적거리는 건 성현의 성격에도 맞지 않았다.
결정을 내리고 몇 분 간격으로 한 명씩 데려오게 했다.
그렇게 도착한 이능력자들은 차례차례 성현의 손에 기절했고, 모두 들것에 실려 한 대의 헬기에 옮겨졌다.
간혹 손이 많이 가는 육체계열 이능력자들도 있었지만, 크게 문제 될 건 없었다.
어느덧 세뇌된 이능력자들을 모두 모은 성현은 곧바로 범섬으로 이동했다.
“왜? 아직 손가락이 많이 남았다 싶어?”
한 번에 많은 이들을 데려오자 김도훈이 놀라기는 했지만, 육손이 되고 겁을 먹은 것인지 딴마음을 먹지는 않았다.
시간이 조금 더 걸리긴 했지만, 어렵지 않게 모두를 원상으로 회복시켰다.
이제 남은 오늘 할 일은 하나.
김도훈에게 매혹되지 않았던, 이능력자 아홉 명을 데려가 인류애를 가지도록 했고, 성현에 대한 충성심을 배양했다.
이들은 깊은 매혹에 걸리지는 않았지만, 일부로 더욱 심화시켜 세뇌하지는 않기로 결정했다.
이들 아홉 명의 능력은 위험한 능력을 가진 이들이 없기도 했고, 왠지 모르게 자신도 악당이 되어가는 기분이 가히 좋지만은 않아서였다.
그리고 일반인들의 세뇌는 시간이 늦어 바로 할 수 없었던 탓에 다음날부터 시작할 생각이었다.
공군 조종사 한 명 차출해 대형 수송 헬기인 치누크를 이용해 단체로 데려가면, 크게 많은 시간이 걸릴 일도 없었다.
다만, 김도훈이 이름조차 기억 못하는 이들은 단시간에 찾을 수 없었고, 이는 시간을 두고 찾아 나가는 수밖에는 도리가 없었다.
그리고 그날 저녁.
이능력자 31명을 전부 불러 모아 향후 이들의 처우에 대해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여러분이 특별한 건 맞지만, 다른 사람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나 또한 특별한 능력을 가진 건 맞지만, 같은 인간이고 다른 사람과 다를 게 없습니다. 이점 항상 잊지 말고 깊이 새겨두시기 바랍니다.”
성현에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거리며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어찌 보면 좀 부담스럽기도 한 눈빛들이었다.
“군 위원회에 소속되길 원하는 일곱 명은 내일부터 훈련에 임할 수 있도록 조치해 주겠습니다. 그럼 나머지 24명은 모두 내정 위원회에 소속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육체강화 계열 네 명과 중력을 대략 20배까지 조종할 수 있는 공간 능력자 한 명, 그리고 염동력자 두 명과 물을 조종할 수 있는 한 명이 현재 군에 소속되길 원했다.
나머지 이능력자들은 그 쓰임에 따라 내정 위원회에서 필요한 각 부서에 채용해 일하기로 했고, 대우는 각부서의 부서장 바로 아래에 두기로 했다.
특수한 능력이 있고 그 능력이 현실에서 크게 쓰임이 있어 활용이 된다면, 그에 걸맞은 대우를 하는 게 맞는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후에도 이능력자들이 숨지 않고, 이들을 롤 모델 삼아 스스로 드러내도록 만들어 주고자 했다.
“형님. 그 일곱 명은 특수부대에 편입하실 생각이십니까?”
이능력자들과의 대화를 모두 끝낸 성현은 최동원을 불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난 그러는 게 좋다고 본다. 전력 상승도 상승이지만, 그들이 힘을 사용하는 게 익숙지 못하니 내가 옆에서 통제 해주는 게 맞아.”
“아- 네, 알겠습니다. 특수부대에 맞게끔 정신무장도 단단히 해두겠습니다.”
“어련히 알아서 하겠냐만, 한 가지 추가해야 할게 있다. 육체계열 이능력자들에게 김하늘, 그 친구의 능력인 중력을 부가해서 훈련시켜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전혀 훈련 같지 않은 상황이 될 테니.”
100m를 5초에 주파하고, 300㎏의 벤치프레스를 한손에 드는 초인들에게 일반 군사 훈련은 고사하고 특수부대 훈련조차도 장난으로 여겨질 게 뻔했다.
힘들고 고되지 않으면 훈련이랄 수 없었고, 최대한 구르게 만들어 줄 생각이었다.
“그건 그렇고, 동원이 너는 아직 이냐?”
“아, 지금 권위는 2가 되어 있습니다. 목제 채취 튜토리얼만 끝나면 3으로 올라 최하급 귀족으로 올라설 수 있습니다.”
“이틀 안에 영지 선포 가능해지겠네. 내 생각엔 영지 선포가 가능해지면, 한라산 남쪽에 만드는 게 어떨까 하는데.”
“영지 선포 후에는 제가 뭘 하는 게 좋을까요?”
“내가 나주에서 쌀을 생산 중이니까. 너는 대규모 축사를 만들어서 가축을 키웠으면 한다만, 우리에게 있는 이 시스템이랄 수 있는 이 능력이라면 전염병으로 인한 폐사 위험도 없고, 오염이나 위생에도 문제가 없지 않을까 싶다.”
“네, 형님. 알겠습니다. 전 아직 1레벨이라. 가축이 무럭무럭 크면 레벨도 빨리 오르겠네요.”
“……그게 무슨 말이냐? 가축 키우면 레벨이 올라?”
성현은 깜짝 놀라 되묻지 않을 수 없었다.
희소식도 이런 희소식이 없었다.
“아, 제가 말씀 안 드렸나요? 이거 게임에서 전쟁을 해서 승리하면 경험치가 오르고, 식량 생산이나 가축을 키워도 경험치가 오릅니다. 물론 자원을 캐는 것도 마찬가지고요. 다만, 병기나 시설 같은 경우는 아무리 비싸고 큰 걸 지어도 경험치를 안주더라고요.”
성현은 그러고 보니 모든 게임에 레벨 적용이 안 된 게임을 못 봤다.
최동원이 설명한 것처럼 그리만 된다면, 레벨 상승에 획기적인 전기가 마련될 수도 있었다.
* * *
제주도 이주 7일 차.
3일간 성현은 바쁜 시간을 보냈다.
먼저 김도훈에게 세뇌된 일반인들을 데려다 매혹을 풀었고, 김도훈은 범섬에 남겨두었다. 한 번에 보름 정도는 거뜬히 살 수 있는 식량과 함께.
처리할까도 생각했지만, 놈이 기억 못하는 일반인들의 매혹을 풀어야 했고, 어찌 보면 놈의 능력은 사용하기에 따라 아주 유용할 수 있었다.
“난 성인군자가 아냐.”
아무 이유 없이 남을 핍박하고 괴롭히는 성격은 아니지만, 인간 같지 않은 놈들에게까지 인권 같은 하등 쓸모없는 이유를 붙여 대우해줄 생각이 없었다.
필요하다면 이용하고, 용도가 다하면 가차 없이 버릴 생각이었다.
그리고 어려움을 겪고 있는 도심 정비 작업에 한 손 거들기도 했다. 도심에 어지러이 널려있는 차량들을 해미와 함께 수거해서 제주항 연안 부두에 모두 모아두었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모두 해체해서 필요한 부품은 따로 보관해둘 예정이었다.
또 이능력자들에 대한 공식적인 법령을 제정토록 해서 ‘각성자 특별법’을 만들었고, 이를 주민들에게 알렸다.
특혜 시비가 있을 만한 일이고, 위원회 내에서도 불만을 가진 이들이 있었지만, 이를 드러내어 표하는 이들은 없었다.
마지막으로 영지 외곽에 대규모 창고 50개 동을 한 번에 생성해두었다.
나주 영지의 수확까지는 시간이 많이 남아있었지만, 미리 창고를 설치하고 이를 나주 영지의 수확물이 이동되어 저장될 수 있도록 지정해두었다.
그리고 오늘 바라마지않은 일이 앞당겨졌다.
“사령관님께서 직접 가동 스위치를 눌러주시죠.”
정우현 박사가 만면에 희색이 가득한 얼굴로 성현에게 말했다.
“이거 참, 고생하신 분들은 따로 있는데 제가 해도 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말씀 마십시오. 제주도에 있는 모든 주민들을 대표해서 사령관님이 하시는 게 맞습니다. 사령관님이 없었다면, 지금 여기 있는 저희 연구원들은 물론 주민 그 누구도 이 땅을 밟았을 사람이 없습니다. 자격은 충분하고도 넘칩니다. 그러니 너무 겸양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제가 하죠.”
성현이 발전소 메인 컨트롤 룸의 발전기 가동 스위치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
구웅, 구웅, 웅웅웅!
점차 빨라지던 공명음이 이내 없어지더니, 발전소 경내에 불이 들어왔다.
벽면 멀티스크린이 정상적으로 켜졌고, 플라즈마 발전기의 현재 출력을 나타냈다.
그 밖에 SOx(황산화물), NOx(질소산화물), Dust(먼지) 등 배출량 수치가 모두가 'ZERO'로 표기되어 완전 무공해 발전소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해줬다.
짝짝짝짝!
“““와아아아!”””
발전소 정상화에 투입된 모든 연구원과 기술진이 한목소리로 기뻐하며 환호성을 내질렀다.
“성공입니다!”
“모두 고생하셨습니다. 여러분들의 노고에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오늘 크게 축하 파티를 해야겠습니다.”
성현이 큰일을 성공리에 마쳐준 모두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노고를 치하했다.
제주는 이제 한층 더 높은 문명의 혜택을 받게 되므로 도태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일만 남아있었다.
이날 저녁, 제주 공항 인근 호텔에서 열린 발전소 가동 축하파티는 오직 발전소 가동에 주역들만을 위해 성대하게 치러졌다.
연구원과 기술진만을 위한 파티였다.
성현은 이들을 위해 아껴둔 가축을 도축해 요리토록 했고, 필요한 모든 것을 제공해 오늘만은 흥청망청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간혹 내정 위원회 소속 고위직 인사가 기웃거리다 입구에서 쫓겨나는 일도 있었지만, 사소한 일에 화를 내어 분위기를 망치지는 않았다.
성현은 이들이 마음 편히 즐길 수 있도록 자리만 만들어 주고 파티장을 나왔다.
자신이 있어 불편할 수도 있고, 오늘은 오로지 그들만을 위한 자리가 되어야만했다.
“파파, 우리 밤바다 보러 가요.”
파티장에 같이 들렀다 나온 성현과 해미, 줄리가 호텔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해변으로 발걸음 했다.
아직 그다지 늦지 않은 시간이어선지 인적이 드물진 않았다. 주민들에게 따로 통금 시간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조금 멀긴 하지만, 걸어서 이곳까지 나온 이들도 꽤나 많았다.
7월 중순을 넘어 한여름의 무더위를 식혀주는 파도 소리에 마음마저 상쾌하게 만드는 마법이 깃들어 있는 듯했다.
이호 해변은 백사장이 500m에 이를 정도로 길고, 파도가 잔잔해 해수욕을 즐기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이리만 살아도 여한이 없을 거 같다.”
해미와 줄리가 옷 젖는 줄도 모르고 장난을 치며 노는 모습에 성현은 그저 흐뭇하기만했다.
매일 오늘만 같아라, 매일 오늘만 같아라. 하며 속으로 되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