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판멸망한 세계의 게이머-73화 (73/176)

# 73

신문명 (2)

“박사님, 이거 이틀 연달아 좋은 소식이라니 부담스럽네요. 오늘도 파티 준비해둘까요?”

성현은 아침 일찍 정우현 박사의 연락을 받고, 플라즈마 발전소 안에 임시로 만들어진 연구소를 찾았다.

현재 온난화 대응 연구소였던 건물을 개보수 중이었고, 공사가 끝나면 모든 연구는 그곳에서 이루어질 예정에 있었다.

“허허. 사령관님도 농도 잘하십니다. 전 어제 그러고 나서 어디서 욕을 먹는 건 아닌지 되레 겁부터 납니다.”

“그런 사람 있으면 제 앞에 와서 하라고 해주십시오. 두 번 다시 그런 소리 못하게 제가 만들어 드리죠. 지금 고작 그 정도밖에 못 해 드려 미안할 뿐입니다.”

성현이 공치사로 하는 소리는 아니었다.

신상필벌(信賞必罰)에 관해서 만큼은 절대 원칙을 가지고 그 기준에 맞게끔 대우를 하고 있음이다.

간혹 개인적인 친분으로 아주 조금의 열외를 두기도 했지만, 그것 또한 자신의 기준에 따른 것이었다.

이는 조직 기강이나 동기부여를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었다.

“제가 괜한 쉰 소리 했나 봅니다. 좋은 소식 들으셔야죠.”

정우현 박사가 미리 준비해둔 케이스를 열고, 작은 금속을 꺼내어 성현에게 보여주었다.

“……박사님 이게 뭡니까?”

“아차차, 죄송합니다. 제가 마음만 급해서, 허허.”

정우현 박사가 건넨 것은 5백 원 동전의 2배 정도의 크기를 가진 납작한 형태의 물건이었다.

“진동 흡수 기능과 노이즈 캔슬링 기술이 접목된 능동 소음제어기입니다. 이 작은 금속을 사령관님이 평소에 쓰시던 헬멧과 같은 형태의 겉면에 부착하면 외부에서 들려오는 모든 소리를 차단할 수 있습니다.”

“네? 언제 이런걸!”

성현은 일전에 지나가는 말로 구울의 표효 때문에 본토 진입과 군 작전에 지장이 있다고 했는데, 어느새 그걸 막아내는 물건을 만들어 준 거다.

사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정우현 박사에게 부담을 주는 게 선뜻 내키지 않아 말을 얼버무렸었다.

“여러 가지 기술이 접목되기는 했지만, 대부분의 기술들은 대중적으로 알려진 것들입니다. 개발 된지도 좀 됩니다. 예전이라면 특허권 때문에 못한다지만, 제반 기술 모두가 공개된 이상 베껴서 만드는 정도는 어렵지 않습니다. 배터리 성능은 좀 더 개량 해야겠지만, 한번 충전으로 30시간 이상은 연속 사용이 가능합니다.”

극초신성 사태에 대비하는 정부의 자세는 유연하다 못해 필사적이었다. 자국의 모든 기술과 연구 자료는 물론, 다른 나라와 연계해 최신 기술들을 끌어 모아 대피소에 저장해 미래에 대비케 했다.

다른 건 몰라도 그것 하나만은 잘한 일이라 성현도 칭찬했을 정도였다.

“박사님!”

드디어 대피소 탈환 계획에 가장 큰 걸림돌로 생각되던 부분을 해소할 수 있었다.

직접 테스트를 해봐야 하겠지만, 정우현 박사의 말은 충분히 신뢰할 만했다.

구울의 포효만 아니라면 일반 대원들도 일익을 담당할 수 있을 터였다.

“그리고 사령관님께서 마정석이라 명명하신 물질에 대해 좀 말씀 드릴까 합니다. 먼저 꾸준하게 공급이 가능한 건지 알아야 합니다.”

“필요하시면 얼마든지 더 제공할 수 있는 물건이니 아끼지 않으셔도 됩니다. 온 김에 현재 제가 가지고 있는 마정석을 모두 드리고 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말씀드리기가 편하겠습니다. 아직 연구는 궤도에 올랐다고 보기는 힘들지만, 마정석은 한마디로 신의 물질이라 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흥분된 기색이 완연한 정우현 박사의 말에 성현도 덩달아 엉덩이가 들썩였다.

“마정석을 활용할 방법을 찾으셨군요!”

“네, 맞습니다. 아직 시작 단계지만, 정말 획기적인 물질입니다. 마정석 분말과 철 분말을 진공용해 해본 결과, 합금화에 성공했습니다. 기존에 있던 어떠한 합금보다 강도나 경도가 높고, 거기다 성분비를 달리해서 열처리를 해보니 엄청난 연성을 가지는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거기다…….”

정우현 박사의 설명은 끝날 줄을 몰랐다.

마정석의 용융점은 1,100도씨 정도로, 철의 녹는점보다 낮다고 했다.

종합해보자면 실험에 사용된 모든 금속에 첨가해 완전히 녹아들어 새로운 신소재가 만들어진다는 거다.

예를 들어 기존의 티타늄보다 4배나 강하고 녹조차 슬지 않는다고 한다.

또 고분자화합물과도 합성을 시도했고, 케블라 섬유보다 질기고 튼튼하며, 강도가 탄소섬유의 3배에 달할 정도로 우수하다고 했다.

“이 마정석이라면 정체된 플라즈마 연구에 전기가 마련될 뿐만 아니라. 군 전력 향상에도 크게 기여할 수 있습니다. 상상만 했던 물건들을 만들 수도 있을 거 같습니다.”

정우현 박사의 눈은 꿈꾸는 소년의 눈빛을 띄우고 있었다.

*  *  *

성현은 연구소를 나와 돌아가는 길에 정신이 멍했다. 많은 말을 들었지만, 정리가 되지 않고 있었다.

그러다 복잡한 생각은 일소하고, 부탁받은 시급한 일부터 되씹기 시작했다.

“제철소와 석유화학단지라…….”

내정 위원회에서도 언급했던 부분이었지만,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다.

헌데 정우현 박사가 이 둘의 필요성을 어필하면서 성현에게 빚 독촉을 한 거나 마찬가지인 상황이 되었다.

“……우선 제철소부터.”

아무리 생각해봐도 제철소 확보가 먼저였다.

석유화학공업은 원유의 공급까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던 탓에 후순위로 밀려났다.

“아무래도 기본 조사가 끝난 광양으로 가야겠지. 근데…….”

제주에서 지리적으로 가장 가깝고, 남해안에 위치한 광양이 최적소라 판단했다.

내정 위원회에서 올라온 보고서가 이미 한참 전에 있었고, 이를 확인한 바 있었다.

“남은 영지 선포는 하나… 그걸 제철소에 쓰게 되면, 이래서는 다른 대피소 탈환을 시작할 수가 없는데.”

제철소 인근을 영지로 만들고 인력을 상주하는 건 어렵지 않지만, 그리되면 성현이 계획하는 대피소 탈환은 늦춰질 수밖에 없었다.

대피소 탈환에 영지 선포가 반드시 필요했다.

그래야만 작전을 성공적으로 끝냈을 때 주민 수송을 문제없이 시작할 수 있었다.

지금 제철소에 영지 선포를 사용하면, 계급이 오르기 전에는 추가 영지를 만들 수가 없었다.

자작 계급에서 가질 수 있는 영지의 수는 세 개에 불과했다.

최동원 준장을 키워서 남작으로 만들고, 영지 선포를 하려고 해도 지금 성장세로 봐서는 언제가 될지 까마득한 상황.

현재 최동원 준장이 한라산 남쪽에 영지를 만들어 축사를 다수 설치해 가축 사육에 들어갔지만, 그 기본이 되는 자원이 부족했고, 그에게 없는 골드를 성현이 주는 것도 불가능해 대규모 축사 건설은 사실상 힘든 상황이었다.

“내가 레벨업을 하는 수밖엔 없군.”

[박성현]

레 벨 : 23   (EXP 72.14%)

직 업 : 무기 전문가 [1차 전직]

계 급 : 자작

근력 20 (+10,+18) → 48 ▲

민첩 10 (+10,+18) → 38 ▲

내성 10 (+10,+18) → 38 ▲

마력 10 (+10,+18) → 38 ▲

체력 20 (+10,+18) → 48 ▲

권위  2 (+10,+18) → 30 ▲

보너스 스텟 : 0

7레벨만 올리면, 1차 전직 레벨이 되고, 스텟 초기화가 가능해진다.

보너스 스텟들을 권위에 모두 적용시키면, 후작달성 조건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백작이 되는 권위는 충분히 확보할 수 있었다.

“34만 마리 정도라… 어디 핵폭탄이라도 하나 구해봐?”

성현은 진지하다.

악마가 유혹하고, 동시에 천사가 말리는 것만 같았다.

“……해봐?”

쉬운 길로 가고 싶어지는 게 인지상정(人之常情), 악마의 유혹이 좀 더 강하다.

“근데 어디서 구해야 하나? 군산 미8군에 과거에는 있다고 했지만, 비핵화 선언 이후 철수했고… 주한미군 기지 어디에 숨기고 있는 데가 있을까? 아니면 일본 주둔 미군기지 한번 뒤져봐?”

할지 말지, 쓸지 안 쓸지보다 어디서 구하는 것부터가 문제다.

“해밀턴한테 물어보면 미군 핵 기지나 저장된 장소 알고 있으려나.”

해밀턴이라면 미군의 핵무기 저장 장소를 알고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게 미 본토라 한들 정확한 위치만 안다면 성현은 어렵다 생각지 않았다.

헌데.

“좀비뿐만 아니라 생존자가 휩쓸릴 수도 있겠지…….”

이래저래 걸리는 것투성이다.

다시금 육지에서 몰이사냥을 생각 안 해본 것도 아니지만 불가.

성현조차도 공격당해 격추당한 경험이 있었다.

아군 희생이 발생할 확률이 상당히 높았다.

“어, 잠깐!”

잠시 망각하고 있던 내용이 떠올랐다.

성현은 급히 영지 관리 메뉴를 열고, 하위 카테고리에 있는 시설의 병기창에서 공성 무기를 살펴봤다.

“게임은 뭐니 뭐니 해도 자동 사냥 아니냐. 하하하.”

[4.병기]

<공성전용>

-생성된 병기는 아군과 동맹을 제외한 모든 적들을 공격합니다.

본인은 인정하지 않지만, 성현은 소위 말하는 ‘겜알못’임이 분명했다.

그나마 느리고 더디지만 조금씩 알아가며, 성장해 가고 있었다.

“근데 이건 대피소 탈환에 사용하기는 좀 그러네.”

공성 병기는 그야말로 살육을 위한 무기이지, 제압하고, 압박하는 용도로는 사용할 수 없었다.

저항한다고 해서 남김없이 모두 죽인다면, 그건 살인마에 불과했다. 사연이 있는 자도 있을 테고, 자의가 아닌 타의로 저항하는 이들도 있음이다.

좀비나 구울 같이 완전히 말살해야 하는 존재가 아닌 이상 함부로 투입할 수는 없었다.

“급히 좀 다녀올 테니 나 찾으면 늦지 않게 돌아온다고 해라.”

성현은 보좌관인 두식에게 일이 있음을 전하고, 그길로 헬기를 타고 날아올랐다.

*  *  *

제주도를 떠나 육지로 향하던 성현은 적당한 곳을 찾고 있었다.

인구가 밀집되어 있고, 대도시일수록 괜찮겠다 싶었다.

“부산으로 가자.”

가장 가까운 대도시는 광주지만, 10여 분 차이밖에 안 나는 부산이 좀 더 낫다는 생각이었다.

“제법 있네.”

부산 다대포 해수욕장 상공에 도착한 성현은 해안 인근을 바라보며 말했다.

드문드문 서성이는 좀비들과 떼로 몰려다니는 좀비들로 가득했다.

두두둥둥둥.

이중목적 고폭탄이 지상에 철비를 뿌려주고, 두어 번 선회하며 백사장 인근을 초토화했다.

명중된 탄환이 재폭발하며 파편을 비산했고, 주변에 있던 좀비들도 결코 무사하지 못했다.

지상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해 시간이 지날수록 좀비들의 사체가 쌓여갔다.

걸쭉한 좀비들의 피가 흩뿌려지고 백사장은 붉은 카펫을 펼쳐놓은 것처럼 시뻘겋게 변해 흉물스러움을 더했다.

어느 정도 정리가 되고 인근에 더 이상 추가되는 좀비들이 없음을 확인한 성현은 기체를 서서히 하강시켰다.

“좋은 것 같기는 한데, 더럽게 비싸네.”

지상에 착륙한 직후 바로 병기창을 연 성현은 뿌루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공성 병기는 수성 병기보다 강력한 것들이 많았다. 게임의 설정 자체가 상당히 공격적으로 만들어져 플레이어 간 활발한 전투가 일어나도록 유도했다.

물론 자작 계급에서 선택 불가능한 그림의 떡과 같은 병기들이 많았지만, 그렇다 한들 자작 계급에서 선택 가능한 공성 무기들은 방어 시설에 비해 강력한 무기임이 분명했다.

공성 병기는 고정식과 이동식 두 가지 타입의 무기들이 있었다.

그중 성현이 원하는 무기는 이동식 병기.

자신의 계급에서 선택 가능한 가장 비싼 병기이기도 했고, 비싸면 비싼 만큼의 값어치가 있음을 알고 있었다.

지를 때는 시원하게 지를 줄 아는 성현이다.

4) 3급 마력 포탑 (공성전용, 이동식)

공격력 : 1,850

사거리 : 550m

내구 : 1,500

크기 : 전장 4m, 전폭 2.5m, 전고 2m

필요자원: 철광석 62t, 중급 마정석 5개

대체자원 : 210,000 골드

-생성

( 1 ▲) = 210,000 골드

5) 3급 거신병 (공성전용, 이동식)

공격력 : 2,500

사거리 : 12m

내구 : 3,000

크기 : 신장 3.7m

필요자원: 철광석 145t, 상급 마정석 3개

대체자원 : 670,000 골드

-생성

( 1 ▲) = 670,000 골드

[현재 지정하신 ‘3급 마력 포탑’을 생성하시겠습니까? (수락, 거부)]

[현재 지정하신 ‘3급 거신병’을 생성하시겠습니까? (수락, 거부)]

상당히 비싼 무기인 탓에 우선은 테스트를 위해  한 개씩 생성해서 사용해 보기로 했다.

성현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수락을 터치했다.

골드가 차감되고, 성현의 전면에서 난데없이 두 개의 거대한 균열이 생겨났다.

균열을 중심으로 공간을 뒤흔드는 파문이 번져나가면서 그 크기를 키웠다.

츠츠츠츳!

균열이 서서히 넓어지더니 현대의 탱크와 사뭇 닮은 거대한 포신을 가진 마력 포탑이 모습을 드러냈다.

또 다른 균열에서는 철갑을 두른 거신병이 거대한 대검을 등에 걸친 채 걸어 나오고 있었다.

쿠쿵, 쿵

철광석이 145톤(t)이나 필요로 하는 거신병인 만큼 그 한걸음, 한걸음에 땅이 울리고, 강한 진동이 느껴졌다.

“……실화냐.”

3급 마력 포탑은 지상에서 2m 정도를 부유하고 있었다.

마력 포탑이 흔들림 없이 공중에 떠서 다가오자 성현은 그 밑으로 가 살펴봤다.

마력 포탑의 하부에는 어떠한 인공적인 부양 장치가 없었고, 과학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방법으로 공중부양(空中浮揚)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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