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판멸망한 세계의 게이머-74화 (74/176)

# 74

자동 사냥 (1)

“진짜 지린다.”

5m 정도 거리를 두고 멈춰선 3급 거신병에게 다가간 성현은 자신의 키만 한 강철 다리를 한번 두드려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겉면만 철판을 두른 것이 아닌, 통짜 쇠로 만들어진 그야말로 강철 다리였다.

종아리의 굵기가 성현이 양팔을 둘러야 겨우 손끝이 만날 정도였고, 허벅지는 종아리의 두세 배는 넘는 듯했다.

이 정도라면 미사일 몇 방 정도는 우습게 견디는 건 물론, 흠집이라도 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와, 이게 정말 어떻게 움직여?”

그러다 문뜩 정우현 박사가 마력 포탑과 거신병을 본다면, 어떤 메커니즘으로 움직이는지 쓸데없는 열정을 불태우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성현은 고개를 들어 거신병을 바라봤다.

“새끼, 잘생겼네.”

외형은 전형적인 기사의 모습.

거기다 행동도 영화나 소설에서 표현되던 중세기사와 판박이나 다름이 없었다.

거신병이 허리를 숙이고 한쪽 무릎을 굽혀 바닥에 붙였다.

“진짜 이런 것들로 부대 만들면 정말 최강인데.”

골드만 있으면 얼마든지 만들 수 있고, 수리도 원격으로 가능한 인공지능 무인병기.

수백 수천을 하나로 묶어 부대 단위의 전투를 상상해보지만, 당장은 수십 개를 생성하는 것도 버거운 상태였다.

성현은 상체를 숙인 거신병에게 다가가 투구 부분을 두어 번 두드리며 말했다.

“골드가 이리 쪼들릴 줄이야. 당장은 힘들지만, 나중에는 반드시…….”

거신병을 충분히 감상한 성현은 바로 옆의 마력 포탑에 다시 다가갔다.

마력 포탑의 포신 구경은 200mm는 될법했다.

거기다 전후 사방 360도 회전 포탑은 수직으로 90도 고각 사격이 가능해 사각이 존재하지 않았다.

“충분히 타고 다녀도 될 것 같은데.”

성현은 혼잣말하고, 훌쩍 뛰어올라 포탑의 가장자리에 올라섰다.

“널찍하고 좋네.”

양반다리를 하고 그 자리에 앉은 성현은 새로이 나타나 있는 미니맵을 들여다봤다.

미니맵에는 현재 성현이 생성한 병기들의 위치가 표기되어 있었고, 전체 공격, 후퇴, 정지 이 세 가지와 개별 공격, 후퇴, 정지까지 모두 여섯 가지의 명령을 지시할 수 있는 기능이 있었다.

거기다 미니맵에 나타난 좀비나 구울과 같은 개체를 지정해 단일 또는 일제 공격이 가능했고, 지역을 지정해 범위 공격을 할 수도 있었다.

“남자는 어택땅!”

마력 포탑의 포신이 돌아가고, 성현이 지정한 위치로 이동을 시작했다.

거신병이 서서히 시선을 돌리며, 등 뒤의 거검을 뽑아 들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푸쾅!

마력 포탑의 포신에서 굉음을 내며, 짙푸른 색의 광선을 발사했다.

사거리 안에 있는 좀비들은 그야말로 일격 필살, 관통력도 엄청나 일직 선상의 좀비들 서너 마리는 지우개로 지우듯 삭제해버렸다.

다만 사거리가 짧다면 짧은 500m에 불과한 탓에 광학 병기인 레이저와 같은 초장거리 공격은 불가능했다.

그리고 현실의 포탄처럼 2차 폭발이나 유탄 공격이 없어 광역 공격에 대한 아쉬움을 남겼다.

그럼에도.

“상성이 너무 좋아.”

마력 포탑이 원거리 저격 중이라면, 거신병은 무지막지한 중량을 무기로 좀비들을 학살 중이었다.

거대한 대검이 한번 지나가면, 살상 거리에 들어온 좀비들을 그대로 두 동강 냈고, 발길질 한 번에 몸통이 폭죽 터지듯 폭발해 피비를 뿌렸다.

“전진!”

마력 포탑과 거신병이 해변을 나서 왕복 6차선 도로에 진입을 시작했다.

쿠워어어어!

[ 정신 공격에 저항하였습니다 ]

“구울이다!”

[ 구울 Lv3 ]

[ 구울 Lv2 ]

맞은편 아파트 단지에서 레벨 3의 구울 한 마리와 레벨 2의 구울 한 마리가 동시에 나타나 포효를 내질렀다.

3레벨 구울은 체고가 5미터에 육박했고, 외관상 거대화로 진화를 거듭했음을 알 수 있었다.

2레벨의 구울은 2미터를 간신히 넘을 정도로 다소 왜소했으나,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거신병의 머리가 구울을 향해 돌아갔다.

지상에 자신을 에워싸는 귀찮은 좀비들을 발길질로 떨쳐내고, 거대한 검을 들어 구울을 가리켰다.

명백한 도발.

“이런 걸 보고 어그로 튀었다고 하는 거야. 한마디로, 니들 좆된 거야.”

성현은 2대 1이지만, 거신병이 질 거라는 생각은 단 1도 하지 않았다.

“저게 얼마짜린데.”

구울을 잡게 되면 1~2레벨이 대략 10만 골드, 3~4레벨의 구울이 20만 골드 정도를 준다.

단순히 10만, 20만 골드자리가 무려 67만 골드짜리하고 붙는데, 가격 대비 힘의 격차 또한 그 정도는 날거라 생각했다.

쿵 쿵 쿵.

거신병이 구울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지축을 뒤흔드는 중량감 넘치는 소리가 사위를 압도했다.

도로의 아스팔트가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내려앉으며 깊은 족적을 남겼다.

쿠워어!

구울도 이에 질세라 거친 괴성을 뿜어내며, 짓쳐들어왔다.

파팡!

“뭐야, 거미줄? 지가 스파이더맨인 줄 아나!”

2레벨 구울의 입에서 허연 구체가 튀어 나오더니 삽시간에 펼쳐지며, 거신병의 한쪽 다리를 바닥과 옭아매었다.

‘찌익’하며 크게 늘어나 찢어질 듯하던 거미줄이 악착같이 버텨내며, 놓아주지 않았다.

쿠쿠쿵!

거신병이 지면과 붙어 버린 한쪽 다리로 인해 관성을 이기지 못하고 굉음을 내며 바닥과 충돌했다.

당차게 달려가던 거신병이 슬랩스틱 코미디처럼 넘어지는 모습이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아오 젠장, 저건 좀 아닌데.”

거미줄은 밧줄 형태로 2.54㎝ 두께만 되어도, 74톤(t)의 무게를 견딜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난 탄성과 강철의 3배에 달하는 강도를 가지고 있다.

구울이 내뱉은 거미줄이 형태만 그럴싸한 것이 아니라 성분까지 동일한 거미줄이라면, 제아무리 거신병이 물리적인 힘으로 구울을 압도한다지만, 저 상태로는 일방적으로 당하는 전투가 될 수밖에 없었다.

상대적으로 덩치가 작은 2레벨의 구울이라 해도 저런 사기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다면, 등급 외로 치부해야만했다.

쾅. 콰쾅. 쾅!

3레벨의 거대 구울이 초라하게 엎어져 있는 거신병을 깔고 앉아 무식하게 내려치기 시작했다.

UFC에서나 볼 수 있는 파운딩 기술에 거신병이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었다.

“아우, 저 망할 떨거지들한테…….”

안타까웠다.

첫 쫄따구가 다구리 당하는 모습에 성현의 얼굴이 절로 구겨졌다.

직접 도와주러 갈까 하다, 생각을 바꾸었다. 그럴 일은 없겠지 라고 생각하지만, 혹여나 만에 하나 거미줄에 자신도 당하면, 결코 좋게 빠져나오지는 못할 것 같았다.

“열 받게 하네. 생성!”

일전에 다짐했듯 위험은 피하고, 최소화하는 게 맞았다.

4) 4급 마력 포탑 (공성전용, 이동식)

-생성

( 30 ▲) = 5,100,000 골드

5) 4급 거신병 (공성전용, 이동식)

-생성

( 10 ▲) = 6,700,000 골드

어차피 대량 생성을 통해 빠르게 경험치를 획득할 생각이었던 성현은 과감한 투자를 결심했다.

합이 무려 10,300,000 골드 어치다.

나주와 제주도 영지에 성벽과 수성 병기를 설치하고, 또다시 대량의 지출이었다.

이제 남은 골드는 고작.

[62,517골드 35실버]

“갑자기 몸의 기운도 없고, 뭔가 엄청 허전한데.”

남자는 주머니 속 지갑이 얇아질수록 어깨가 처진다.

꾸준히 나주 영지에서 침입하는 좀비와 구울을 잡아내면서 증가하고 있지만, 일별 25~30만 골드 사이였다.

주변에 인구 밀집 지역이 없던 장소인 만큼 좀비나 구울의 비율도 낮을 수밖에 없었다.

원래 크게 기대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벌이가 영 시원찮은 상황이 달갑지는 않았다.

신축 빌딩 하나 샀더니 세입자가 없는 것과 다를 게 없었다.

“이 녀석들이 벌어주겠지.”

츠츠츠츠츳!

성현의 주위로 수십 개의 균열이 생성되고, 공간이 일그러지고 있었다.

30대의 마력 포탑이 당당한 위용을 드러내며 균열에서 나타났고, 거신병들이 지상에 현신했다.

쿠쿠쿠쿵.

거신병들이 성현의 앞에 도열해 예(禮)를 올렸다.

“다 쓸어 버려!”

전 재산을 탕진한, 럭셔리 부대에 공격 명령이 떨어졌다.

퍼퍼퍼퍼펑!

수십여 발의 광선들이 마력 포탑에서 쏘아져 나갔고, 인근을 초토화하고 있었다.

좀비들을 관통한 광선이 인근 아파트 건물 외벽을 녹이며 휑한 구멍을 만들어냈고, 아스팔트가 광선의 초고열에 녹아 흘러내렸다.

매캐한 고무 타는 냄새가 주변에 진동했다.

각 마력 포탑은 약 3~4초간 포사격 딜레이가 존재했지만, 그 수가 무려 31대에 달하니 포성 또한 끊일 줄을 몰랐다.

“어? 그럼 안 되지.”

2레벨의 구울 놈이 또다시 거미줄을 뱉어내며 거신병들을 무력화 시키려 했다.

성현이 단일 지정으로 거미줄을 뱉던 2레벨 구울을 마력 포탑으로 지정 공격시켰다. 거신병들의 발목을 잡는 귀찮은 짓은 사양이다.

버버버, 퍼펑!

일제 사격에 따른 포성이 들리고, 150여 미터 떨어져 있던 2레벨 구울은 한순간에 기체로 화해 경험치와 골드로 치환되었다.

“별것도 아닌 것들이 나대기는.”

그리고 3레벨의 거대 구울은 조금 버티는가 싶더니 어느새 거신병들의 거검에 잘게 다져진 고깃덩이가 되어 썰려 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성현은 거미줄에 걸린 아픈 새끼를 찾아가 창고에 혹시 몰라 가지고 다니던 화염방사기를 꺼내 거미줄을 녹여줬다.

*  *  *

거대 공성 병기를 활용한 사냥은 다대포 해수욕장을 벗어나 약 2㎞를 전진해 빠르게 전장을 확대하고 있었다.

전방에는 거신병이 그리고 좌우와 후위에는 마력 포탑이 위치해 각자의 맡은 바 임무에 충실했다.

“팀 킬 걱정은 없는 거, 이건 정말 맘에 드네.”

간혹 마력 포탑의 포격이 거신병을 타격해도 아군 공성 병기끼리는 아무런 피해도 입히지 않는 탓에 병기의 배치에 제약은 없었다.

때마침.

[레벨 업! 보너스 스텟 2을 획득 하였습니다.]

“…뭐?”

고대하고 기다리던 레벨업이지만, 놀람이 더 컸다.

보너스 스텟 1이 아닌 2가 주어진 것이다.

성현은 급히 캐릭터 창을 열고 재확인했다.

[박성현]

레 벨 : 24   (EXP 0.04%)

직 업 : 무기 전문가 [1차 전직]

계 급 : 자작

근력 20 (+10,+18) → 48 ▲

민첩 10 (+10,+18) → 38 ▲

내성 10 (+10,+18) → 38 ▲

마력 10 (+10,+18) → 38 ▲

체력 20 (+10,+18) → 48 ▲

권위  2 (+10,+18) → 30 ▲

보너스 스텟 : 2

“……어떻게? 혹시!”

성현은 최동원에게 능력을 부여하고 동일한 능력을 공유받은 탓에 그 게임의 레벨업 보너스도 중복해서 얻게 되었다.

“크하하하. 이게 진짜면 정말 황제는 몰라도 국왕까지는 어쩌면 가능하겠다.”

팔찌에 구슬의 수는 처음 33개였지만, 자신과 해미, 그리고 최동원에게 각성을 부여하고, 세 개가 소모되어 현재 30개가 남아있었다.

성현은 추측하건대 이 모든 팔찌의 구슬을 게이머로 각성 부여를 하게 되면, 어쩌면 1레벨당 32개의 보너스 스텟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다만, 30개월간 레벨업을 하지 않는다는 가정하에서만 가능한 일이었다.

레벨이 높아지면 업도 힘들어질 테고, 효과는 본다 한들 적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대로 가즈아!”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는 성현은 덩실덩실 춤이라도 출 기세였다.

이후 지하철 노선을 따라 인구 밀집 지역으로 계속해서 전진해 부산역에 다다랐을 때는, 20여만 마리가 넘는 좀비들과 십여 마리의 구울들을 추가로 처리 할 수 있었다.

성현의 레벨은 어느덧 29에 올라, 경험치는 30레벨을 목전에 두고 있었다.

이뿐만이 아니라.

[ 41,330,296골드 17실버 ]

“인생 뭐 있어 한방이지. 이거 서면이나 부산시청까지 갈 것도 없겠는데.”

1천만 골드가량을 쓰고 4천만 골드를 벌었으니 단순히 수 시간 만에 네 배의 수익을 올렸다.

어림짐작으로 중심 시가지에 이르러야 30레벨이 되지 않을까 했는데, 생각 이상으로 경험치 오르는 속도가 빨랐다.

좀비 레벨이 10으로 고정이 되고 난 후 경험치는 5배, 골드는 기존에 2배를 상회하는 100골드 이상을 줬고, 성현의 성장에 큰 밑거름이 되어 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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