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판멸망한 세계의 게이머-75화 (75/176)

# 75

자동 사냥 (2)

퍼퍼펑!

부산역을 지나칠 즈음 중앙대로 양옆에서 대량의 좀비들이 덮쳐왔지만, 성현의 근처도 오기 전에 마력 포탑에 의해 한줌 먼지가 되어 산화되어 버렸다.

또 전방에서 길을 여는 거신병들의 모습은 거침이 없었고, 불나방처럼 달려드는 좀비들을 그야말로 학살하고 있었다.

드디어.

[30레벨에 도달해 1차 전직이 가능해집니다]

이미 게임 상의 전직은 유효한 상태였고, 바꿀 수 있다고 해도 바꿀 의사가 없는 성현이었다.

[1차 전직 특전으로 보너스 스텟 초기화가 1회에 한해 가능합니다. (수락, 거부)]

“그렇지, 됐다!”

고대하던 메시지가 떴다.

허나, 당장 보너스 스텟 초기화를 진행하지 않았다.

먼저 영지를 만들어 계급 승급 조건을 충족해두고 진행하는 게 맞았다.

“경험치 못 받아도 골드는 들어오네.”

스텟 초기화를 할지 안 할지 선택지를 고르기 전까지 경험치를 얻지 못하는 페널티가 있지만, 하루 정도는 괜찮을 듯했다.

“이제 광양에 영지만 만들면 승급 조건은 충족된다.”

백작이 되면 영지는 5개로 늘어나고, 그리고 무엇보다 전 스텟 +25라는 특전을 받을 수 있었다.

이미 날이 저물기 시작한 초저녁이지만, 미룰 생각은 없었다.

“돌아가긴 해야 하는데, 이 녀석들은 어쩐다…….”

궁극의 자동 사냥이나 마찬가지인 상황.

이대로 둬도 되지만, 단순히 대도시를 기준으로 북으로 진군만 시켜도 무지막지한 골드를 벌어다 줄 것이다.

하지만, 성현이 없는 상황에서 생존자들과 조우라도 하게 되면, 오인 사살의 위험이 있었다.

아니, 오인사살이 아닌 그냥 살육이 자행될 터였다.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던, 공성 병기에 단 한 명의 생존자라도 죽게 되면 꿈자리가 뒤숭숭할 일이었다.

“아쉽기는 하지만, 내가 쓰레기는 아니잖아.”

몰랐으면 모르되, 충분히 짐작하고도 일을 벌일 수는 없었다.

어떤 절체절명의 순간에 도달해 자신과 모두의 안위가 위협받는다면 모르지만, 아직은 아니었다.

“이만 돌아가자.”

성현은 마법포탑과 거신병을 창고에 수납하고, 그길로 전투 헬기를 타고 날아올랐다.

*  *  *

부산역에서 이륙한 헬기가 정서 방향으로 헤딩을 잡고 빠르게 이동했다.

노을이 짙던 하늘은 짙은 남색으로 색이 바랬고, 지상엔 어느덧 땅거미가 내려앉아 있었다.

부산에서 110㎞ 떨어진 광양 상공에 도달한 성현은 헬기를 포스코 광양제철소를 기준으로 크게 선회 비행을 했다.

그리고 대략적인 영지의 구도를 머리에 생각하고, 그 중심이 되는 위치에 헬기를 착륙시켰다.

헬기의 로터 소음이 크게 번져 혹 좀비나 구울이 나타나지 않을까 했지만, 극초신성 사태 당시 근처에 사람들이 없었던지 주변은 정적만이 감돌고 있었다.

“제철소를 중심으로 LNG 터미널도 넣고, 포스코 기술 연구원과 발전소까지도 충분히 다 들어가네.”

아직 레벨업 후 보너스 스텟을 투자하지 않았고, 스텟 초기화 전이라 영지 선포의 면적은 전과 다름없는 65㎢(1,966만 평), 초기화 이후 권위의 상승과 더불어 확장성도 고려해야 했다.

“이거 영지 모양은 좀 그렇지만.”

그리고 잠시 후, 불필요한 지형들을 버리고 해안을 따라 제철소 서쪽 율촌에 위치한 복합발전소까지 모두 포함하는 구불구불한 영지 경계를 완성했다.

“오케이, 영지 선포!”

[영지 귀속까지 8시간 23분 59초]

레벨이 오르면서 얻은 보너스 스텟을 권위에 투자해서 귀속 시간을 줄일까도 생각했지만, 어차피 명일 오전은 되어야 이곳을 찾을 생각인바, 빠르게 하나 늦으나 별반 차이가 없었다.

“영지민 신청 마감 24시간 전에만 와서 성벽하고 수성 병기 설치하면 되고, 내일 하루도 바쁘겠네. 아차차. 이거 다들 걱정이 많겠다. 서두르자.”

제주도를 떠날 당시 두식에게 급히 다녀올 거라 전했지만, 해가 지고 저녁까지 소식이 없어 다들 걱정하고 있을 터였다.

성현은 급히 헬기에 탑승해 서둘러 제주로 향했다.

*  *  *

제주도 상공에 도착하고 통신 가능 거리에 들어서자 성현은 빠르게 지휘본부에 무전을 넣었다.

무전 직후 빗발치는 재 무전에 성현은 곤혹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휴우, 원거리 무전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어떻게든 찾아야지, 이래서야 매번 기다리는 사람이나 밖으로 나간 사람이나 불안해서 원.”

해미는 저녁을 준비하고, 기다렸지만 소식이 없는 성현을 찾아 이리저리 연락을 취했고, 제주 밖으로 성현이 나선 것을 알고 크게 불안에 떨었다.

해미만 그런 것이 아니라 군 위원회 소속 지휘관들 모두 일과를 마쳤지만, 자리를 뜨지 못한 채 지휘본부에 모여 이제나저제나 성현의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마침내, 성현이 제주 상공에 도착해 지휘부에 복귀를 알리는 한편, 명일 아침회의를 소집했다.

그제야 모두 안심하고 편한 신색이 되어 각자의 관사로 돌아가 휴식을 취했다.

성현은 곧바로 현재 자신이 관사로 사용 중이고 일부 군 지휘관들이 묶고 있는 제주공항 인근의 라마다 프라자 호텔로 향했다.

호텔 길 건너 공원은 성현의 전용 이착륙장으로 이용되고 현재 사용 중인상태였다.

이곳에 헬기가 착륙하자마자 해미와 줄리가 저만치에서 뛰어왔다. 이미 해미에게도 소식이 전달되어 성현을 기다리고 있던 참이었다.

“파파~."

줄리가 먼저 뛰어와 성현의 품에 안겼고, 해미는 멀찌감치 떨어져 우수(憂愁) 깊은 눈으로 성현을 바라보고 있었다.

성현은 지은 죄가 있던 탓에 빠른 걸음으로 해미에게 다가갔다.

“식사는요?”

“커험, 아직 안 먹었지. 그러고 보니 배가 등가죽에 들러붙은 거 같다. 하하.”

“아저씨… 아저씨가 바쁘고 해야 할 일이 많은 건 알아요. 아는데, 너무 걱정이 돼요. 우리 생각도 조금만 더 해주세요.”

“그, 그래.”

성현은 차라리 하이톤의 잔소리를 듣는 게 낫지 해미가 저리 말하니 마음이 더 쓰였다.

“들어가세요. 저녁 준비 다 해놨어요. 국만 다시 데우면 돼요.”

어느새 곁에선 해미가 성현의 팔짱을 끼고, 나란히 걸었다.

힐끔힐끔 성현이 해미를 살피며 눈치를 봤지만, 해미는 더는 성현을 채근하지도 여타 잔소리를 더 늘어놓지는 않았다.

‘애가 철이 들었나?’

평소 같았으면, 폭풍 잔소리가 뒤따라야 정상인데, 의외의 모습에 얼떨떨한 성현이었다.

“아참 아저씨, 골드 없으세요?”

“으응?”

성현은 뜬금없이 묻는 해미의 말에 무슨 영문인지 몰라 고개를 갸웃했다.

“에이 없으면 말을 하지 그랬어요. 저는 어차피 쓸데도 없는데, 도련님… 아니 아저씨 부하 동원이 삼촌한테 제가 드렸어요.”

“…….”

성현은 뒤통수를 제대로 한 대 맞은 느낌이었다. 골드를 주다니? 이렇다 할 사전 예고 없이 들어오는 해미의 말에 성현은 온통 혼란스러웠다.

“골드를? 어떻게, 아니 도대체 무슨 말이니?”

“네에? 설마 아저씨 교환하는 법도 모르는 거예요?”

성현은 기시감이 들었다.

그리고 이와 비슷한 상황들이 오버랩 된다.

처음 해미와 만나 게임을 배우던 기억이.

그리고 내구도 회복 스크롤의 사용법을 깨우친 그 날의 상황이. 안정적인 장소를 찾을 때는 섬이라는 선택지를 알려줬던 그때가 떠올랐다.

“아저씨 손 줘 봐요.”

성현은 자연스럽게 오른손을 내밀자 해미가 그 손을 맞잡았다.

“교환.”

그리고 덤덤히 교환이라고 말했다.

[게이머 이해미가 교환을 요청했습니다. (수락, 거부)]

“……컥!”

“이거 일반인들한테는 안 되는데, 게이머만 가능한 거 같아요. 될 거 같아서 해봤는데 되더라고요. 아저씨도 골드 좀 드려요?”

성현은 멍하니 고개를 가로저으며, 고개를 푹하고 숙였다. 아직도 해미에게 배워야 할 게 많은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이것 또한 게임할 때 캐릭터 간 교환을 할 때 취하던 모션 중 하나였다.

“저… 해미야 이것 말고 혹시 내가 모를만한 거 더 없을까?”

인정이 빠른 성현이었다.

모르면 배우고 모자라면 보태면 되는 일이다.

조금 의기소침해 있긴 하지만, 자주 있는 일이다 보니 크게 상심하지는 않았다.

“헐, 아저씨 설마…….”

해미가 설마 한 일은 설마가 아님을 알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  *  *

성현은 저녁을 먹고, 줄리가 잠이 들자 해미와 대화를 이어갔다.

그리고 해미에 비해 게이머 능력에 대한 이해도와 활용이 크게 차이 남을 이때서야 알 수 있었다.

“우선 양손을 잡고 구원이라고 외치면 1일에 한번 최대 HP의 절반을 즉시 회복할 수 있어요. 설마 아저씨 이것도 안 쓰고 저번에 그렇게 다친 거예요?”

“아, 아니. 이건 알고 있었지….”

성현은 거짓말을 하는 중이다.

목소리는 점점 작아졌고, 이내 자세히 듣지 않으면 모를 정도로 기어들어 갔다.

“에휴~ 다 내 잘못이네요. 진작 확인했어야 했는데… 전 당연히 알 걸로 생각해서.”

“아, 알고 있었다니까…….”

“아, 정말 아저씨. 자꾸 이러면 트롤밖에 안 돼요. 전 게이머 능력 하나뿐이지만, 아저씨는 계속 늘어날 수도 있다면서요. 제발 제대로 좀 해요.”

“크흐흠, 근데 그 트롤은 뭐니? 게임에 있던 몬스터 그 트롤 말하는 거라면, 그건 걱정 마라. 내가 아무리 그래도 몬스터야 되기는 하겠니. 하하하.”

“에휴… 제 탓이 맞네요.”

해미가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며, 오죽 답답하면 자기 가슴을 두드려댔다.

이후 해미는 성현을 완벽한 게임 초보로 인식하고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가르치고 이해했는지 확인에 확인을 거듭했다.

성현은 늦은 밤까지 계속된 해미의 교육열에 신세계를 경험하고 있었다.

30레벨에 올라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해미의 말에 경건한 자세로 새겨들었다.

“30레벨이 되면 비상 귀환이 가능해지는 거 아시죠?”

“어엉? 그, 그래?”

잊고 있었다. 아니 까먹고 있었다는 말이 더욱 정확할 터였다.

“제가 아저씨 오시기 전에 시험해봤거든요. 원래는 마을이나 도시에 있는 귀환석에서 해야 하는데. 그냥 바닥에 왼손을 대고 ‘귀환 포인트 지정’이라고 말씀하시면 돼요. 저도 해보고 깜짝 놀랐어요. 이건 정말 아저씨한테 꼭 필요한 건데, 너무 잘 됐죠?”

이번에는 성현도 적잖이 놀랐다.

그러고 보니 들었던 것도 같았다. 헌데, 현실에서도 이런 능력까지 구현될 줄을 상상도 못했다.

“이거 혹시 나중에 귀환 지정된 자리에 다른 게 있던가 하면 혹시 겹쳐지면서 큰일 나는 건 아니겠지?”

“어머, 그러고 보니 그런 부분은 생각 못해봤네요. 이야, 아저씨. 그럼 아저씨가 귀환 지정하고, 저기 떨어진 데서 비상 귀환 한 번 해보세요. 너무 큰 건 그렇고, 저기 작은 화분들 가져다 놓고 시험해보면 되겠다.”

성현은 ‘왜 내가 해야 해’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넘어왔지만, 꿀꺽하고 삼켰다. 이러나저러나 어차피 자신이 해야 한다는 걸 잘 안다.

해미는 순진해 보이지만, 숨겨진 영악함을 이미 파악하고 있는 성현이었다.

지금도 아주 자연스럽게 자신이 하게끔 만든 것만 봐도 답은 나왔다.

“너무 겁내지 말구요. 혹 이상하게 변해도 30렙에 배운 ‘상태이상 해제’ 주문이랑 ‘정화’ 주문이면 충분할 거예요. 안 되려나?”

‘돼! 된다고!’

괜찮다고 용기를 줘도 시원찮은데 괜한 겁만 주는 해미였다.

“귀환 포인트 지정!”

성현은 거실 한편에 좀 널찍한 공간에서 귀환 포인트를 설정하고 조금 떨어진 부엌으로 갔다.

해미는 성현의 귀환 포인트에 이것저것 가져다 놓고, 성현을 바라봤다.

“다 됐다. 아저씨~ 지금 해보세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