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판멸망한 세계의 게이머-76화 (76/176)

# 76

겜알못 (1)

해미와 테스트한 ‘비상 귀환’은 아주 성공적인 결과를 얻게 되었다.

주변 상황이 비상 귀환에 부적합하다면, 가장 가까운 공간으로 변경된 귀환이 이루어졌다.

24시간에 1회만 가능한 탓에 한번뿐인 귀환으로 안정성을 운운하는 건 무리가 따르는 일이지만, 당장 성현이 걱정했던 벽 속에 끼인다든지 합성 같은 끔찍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성현은 며칠간 굳이 필요하지 않아도 계속해서 비상 귀환을 해보기로 하고, 느지막이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제주도 이주 9일 차.

오전 일찍 군사위원회 소속 지휘관들이 속속들이 모여들었고 회의가 시작되었다.

“사령관님 말씀은 그러니까, 무인병기로 지역 초토화해서 특수부대와 일반부대를 차출해 섬멸 작전 하신다는 말씀이시죠?”

“간략히 말하자면 그렇지.”

“저… 근데 저희 장비 중에 무인 병기라고 할 만한 게 리퍼 몇 대뿐인데, 사령관님 말씀처럼 도시 단위를 초토화하려면 무인병기의 숫자도 숫자지만, 운용 인력은 어떻게 해결하실 생각이신지.”

성현이 해밀턴과 미 공군을 흡수하면서 함께 얻은 MQ-9 리퍼 12대와 그 운용이 가능한 인력을 확보하고 있었다.

리퍼는 1.6톤(t)의 무장을 장착할 수 있고, 기본 네 발의 헬파이어 미사일과 상황에 따라 다양한 무장 변경이 가능한 전천후 무인 공격기이다.

하지만 무인 항공기도 전파 수신 거리 제한에 따른 장거리 운용이 불가능한 탓에 실질적인 투입은 되지 않고 있었다.

“다들 오해하고 있는데, 그 무인병기는 내 능력으로 만들어지는 물건들이다. 우선 공중부양 전차부대와 4미터에 조금 못 미치는 로봇부대라 보면 된다. 따로 운용병이 필요하진 않다.”

“…….”

“…….”

장내에 자리한 이들 중 미리 귀띔 해줘서 알고 있는 최동원 준장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눈만 끔뻑거리며 멍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성현의 능력이 계속해서 발전하고 있음을 알고 있었지만, 일취월장, 일신우일신 하는 능력의 끝은 도무지 가늠할 방법이 없었다.

“특수부대의 훈련이 끝나는 이달 말, 훈련 평가를 시행해서 결과를 보고 투입 여부를 판단할 테니 그리 알고, 대대별 연합 훈련도 적절한 시기에 할 수 있도록 해.”

전 지휘관들이 얼이 빠져있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성현은 자신의 할 말만 툭, 하고 던져 놓았다.

성현은 본인의 능력인 탓에 좀 더 쉽게 현실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지만, 듣는 입장에서는 무척이나 당황스럽고 황당한 일이었다.

초인이라 할 만한 육체 능력에 마법사들이나 할법한 공간을 열고 물건을 꺼내는 사령관이었다.

하다 하다 이제는 중세에나 있을법한 영주가 되었다.

사실 그 영주도 그냥 영주가 아닌 게 더 충격이었지만.

이제는 SF영화에서나 나올법한 공중부양 전차와 거대 로봇을 언급했다.

모두가 정신 줄을 놓기에 딱 좋은 말들이었다.

“사령관님, 기회가 되시면 위력 시범을 한번 보여주시는 게 어떨까 합니다. 말만 들어서는 저를 포함해 모두가 상상조차 힘든 말씀입니다. 백 마디 말보다 한번 직접 보여주시는 게 좋을 듯합니다.”

“흐음, 그래? 그럼 오늘 오후에 위원회 전체 회의도 있고 하니, 회의 끝나면 하도록 하자. 장소는… 최 준장이 알아서 섭외해놔.”

“네, 사령관님.”

최동원 준장이 모두를 대변해서 한 말에 성현도 딴에는 그럴 수 있겠다 싶었다.

금일 예정인 전체 회의를 마치고, 내정 위원회도 참관시켜 보여주는 것도 괜찮아 보였다.

자랑할 만한 일이고, 아군의 군사력이 어느 정도인지 알게 해주는 것도 모두의 사기를 진작시키는 차원에서 추진할만한 일이었다.

“아, 그리고 지금 성문 개폐를 담당하는 인원을 좀 늘릴 생각이다. 대대장들이 직접 매일 하는 것도 문제가 있다 싶다. 이참에 각 대대별로 두 명을 추가해야겠다. 중대장 중에 할 사람 추천하던지, 아니면 할 사람 있으면 말해봐.”

성현은 현재 두 개의 영지가 활성화되어 있어 가신을 20명까지 둘 수 있었다.

거기다 금일 광양 영지가 귀속이 완료되면 30명으로 늘어나게 된다.

기본적으로 영지당 10명의 가신을 둘 수 있었고, 어느 영지에서든 그 권한을 발휘할 수 있었다.

기존에 급한 대로 최동원을 제외한 대대장 두 명을 가신으로 거두어, 이들로 하여금 성문을 개폐할 수 있는 권한을 주었지만, 업무에 바쁜 대대장들이 매번 그 일을 계속하게 하는 것도 모양 빠지는 일이었다.

“……다들 하고 싶다고?”

중대장 12명 중에 손을 들지 않은 이들이 없었다.

주변을 살피며 조심스레 손을 들고 있는 간부들 사이로, 팔이 빠져라 높이 치켜든 중대장도 있었다.

그리고 두식도 빠지지 않고, 배시시 웃으며 손을 들고 있었다.

“왜들이래?”

성현은 어찌 보면 문지기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인데 모두가 적극적으로 응하는 게 수상쩍었다.

최동원 준장에게 눈짓하며 물었다.

“저도 회의 직전 전해 들었습니다. 이틀 전 사령관님이 가신으로 만들어준 2대대장과 3대대장이 가신이 된 이후에 육체 능력이 크게 증가 했다고 합니다. 그게 가신이 되면서 나타난 효과인지 정확히 몰랐는데, 우연찮게 전날 두 사람 다 체력 측정을 하면서 확신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거 생각지도 못한 일인데.”

최동원 준장이 성현의 물음에 답했다.

성현은 가신에 그러한 효과가 있는지 몰랐던 탓에 가신으로 거둔 두 대대장을 바라보며, 재차 확인을 했다.

“네, 최 준장님 말씀이 맞습니다. 저도 보고를 드리려고 했는데. 조금 늦었습니다. 단적으로 제가 100m 달리기가 14초대였는데, 지금은 과거 우사인 볼트보다 빨라졌습니다. 근력도 기존에 몇 배를 넘어섰다고 보입니다.”

“사령관님, 저도 2대대장과 비슷합니다. 힘 조절이 힘들어 유리잔을 깨트리기 일쑤입니다.”

성현은 다시금 내정에 가신 설정을 한 번 더 살펴봤지만, 이런 특이 설명은 빠져 있었다.

‘어쩐다…….’

놀랍기도 했지만, 고민되는 일이었다.

‘차라리 특수부대원들에게 줘서 생존 능력을 극대화 해주는 게 맞지 않을까?’

가신이 되어 그러한 능력이 주어진다면, 이야기가 달라졌다. 성문 개폐만을 위해 가신으로 두는 건 이치에 맞지 않았다.

그만한 활용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애들 기죽이기는 또 싫은데.’

개인적인 욕심으로 치부하고 거부해도 되지만, 사기(士氣)문제도 생각해야 했다.

자신의 심복이랄 수 있는 군 위원회 간부들이 저리 원하니 안 들어 주기도 미안스럽다는 거다.

‘잠깐만. 이거 백작이 되고 후작이 되면 가신 수가 크게 늘어나잖아. 어쩌면 고민할 필요가 없네. 거기다 동원이도 앞으로 성장할 테고,’

자신을 믿고 따라와 주는 부하들에게 특별한 선물을 이번 참에 해주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좋아, 모두 들어주마.”

시원한 성현의 말에 자리한 이들의 얼굴도 활짝 펴졌다.

혹시 자신은 안 되지 않을까? 되는 이와 되지 못하는 사람들이 나오게 되어도 문제라 생각했는데 성현이 모두에게 기회를 준 거다.

“1대대 2중대장부터 나와 봐.”

그 자리에서 성현은 한 명씩 지명해 불러내어 즉석에서 가신으로 받아주고, 기분 좋게 회의를 마무리했다.

그리고 두식도 따로 불러 원하는 바를 들어 주었다.

“헤헤, 역시 저만한 심복이 없죠!”

회의석상에서 따로 가신으로 받아주지 않아 딴에는 풀이 죽어 있던 두식은 언제 그랬냐는 듯 의기양양해져 성현을 따랐다.

*  *  *

성현은 군위원회 회의를 끝으로 홀로 헬기를 타고 북상해 광양 영지에 들렀다.

빠르게 성벽을 구축한 후에 수성 병기들로 도배를 했다.

“영지 하나 제대로 구축하는데 지금이야 3천만 정도고, 유지보수는 좀비잡고 그러면서 버는 걸로 충당이 된다지만, 백작이 되면 상위 장금이 풀리면 감당이 안 될 거 같은데.”

남작, 자작이 하급라면 백작과 후작은 중급 그리고 공작, 국왕은 상급의 시설과 병기를 사용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황제는 최종형태의 시설과 병기를 모두 사용할 수 있었다.

단계별로 성능이 오르는 건 물론 가격도 기하급수적으로 올라 지금 상태로는 계급이 올라도, 현재 충당되는 골드로는 엄두도 내기 힘들었다.

“줘도 못쓴다는 건 말도 안 돼. 방법을 찾아보자.”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공성병기를 활용한 자동 사냥. 이를 토대로 한 안정적인 골드 수급 방법을 찾아야 했다.

“일단 돌아가자, 비상 귀환!”

성현이 돌아갈 때는 예고한 대로 비상 귀환을 이용해 복귀를 시도했다.

귀환의 안전성 확인도 확인이지만, 오후에 예정된 전체 회의가 코앞이었다.

*  *  *

비상 귀환을 한 성현은 그 안정성을 다시 한 번 재확인하고, 뿌듯한 표정을 했다.

이제 단독 작전을 하게 되어도 절체절명의 순간이 온대도 무리 없이 퇴출할 방법이 생겼으니, 생존만큼은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할 수 있게 되었다.

“벌써 시간이…….”

예정된 전체 회의가 5분 남짓 남아있었다.

아직은 이주 초기 단계인 까닭에 주 2회 전체 회의가 있고, 각 위원회 별 일일 회의가 있었다.

성현은 매번 참석하지는 않았지만, 필요에 따라 가부를 결정해왔었다.

오늘은 감사보고가 있는 날.

성현은 관사를 나서 빠르게 이동을 시작했다.

중앙지휘본부 대회의실.

회의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회의 주제만큼이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이 모두가 사실이야?”

“아직 감사 초기라 완전하지는 않지만, 모두 사실입니다.”

웬만해서 전체 회의에서는 하대를 하지 않는 성현이었지만, 지금 그런 것을 지킬 만큼 평상심을 유지하기 힘들었다.

이제 정식 명칭으로 공무원이라 칭하게 된 현직 관리직에 있는 이들의 횡령과 비리가 도를 넘어 있었다.

나태하고 직무유기를 한 이들에 대해서도 상당히 단호하게 처벌한 경험이 있는 성현이었다.

제주도 이주 전 성벽을 완공하고 초도 순찰을 했을 당시, 구울의 습격을 받아 생사를 넘나들었을 때의 일로 대피소 입구에 제때 전력공급을 하지 않은 담당자들에게 일벌백계했었다.

어쩌면 개인감정이 듬뿍 들어간 처벌이기도 했다. 자신의 안위와 직결된 사안이었던바 결코 봐줄 용의가 없었다.

“이들이 중간에서 교모하게 빼돌린 10만 원 주화는 만여 개에 달하고, 일별 주민들에게 지급할 임금의 일부를 착복해 현재까지 25억 원이 넘는 금액을 편취하였습니다. 수법이 악의적이고, 직위를 이용한 갑질임이 명백합니다. 감사 결과를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추가적인 범행도 나올 것으로 생각됩니다.”

성현은 테이블에 깍지 낀 손에 턱을 붙였다.

평소의 소신대로 처리하면 되겠지만, 너무 자주 이런 모습을 보여서도 큰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기도 했다.

그리고 어느 선까지라는 물음표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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