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7
청백리는 없다 (1)
“최동원 부사령관의 말에 문제가 있습니다. 범죄라니요! 이는 분명 관행적으로 이루어진 일도 있을 것이고. 주민들이 자의로 보인 성의 모두를 범죄행위로 간주하는 건 어폐가 있습니다.”
‘얼씨구.’
최동원의 말에 거품을 물고 반론을 제기하는 건설교통부 장관이었다.
“맞습니다. 담당자들이 한사코 안 된다고 하지만, 주민들이 기어코 주고 가는 부분은 분명 살펴봐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거기다 10만 원 주화 같은 경우는 빼돌린 게 아니라, 관리 소홀로 해당 부서로 미 반출된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는 정정해 주시기 바랍니다.”
조달청장이 급히 변명을 늘어놓고, 성현의 신색을 살폈다.
‘이것들 봐라. 이거 가지만 쳐서 될 일이 아니네.’
신규 화폐를 도입하라고 성현이 지시한 지 이틀 만에 기념주화를 만들던 공장을 비상 발전기로 가동해 10만 원권 주화를 찍어냈다.
또 인쇄소에서 임시 화폐를 천원, 오천 원, 만원, 오만 원 권을 찍어내고 있었다.
일일 주민들의 임금은 일괄 10만 원으로 책정해서 지급했고, 전기가 보급되기 전에는 5만 원과 나머지 식자재와 물품들로 지급했다.
현재는 마트를 개방해 필요한 물품과 식자재를 자유로이 구매하고 있었다.
화폐란 상품을 지배할 힘인바, 통화량에 제한을 두고 가치 유지에 힘써야 한다.
성현은 이를 무한 제공 가능한 쌀과 곡물을 판매함으로써 화폐 가치의 변동성을 줄일 수 있다 생각했다.
그래서 화폐를 찍어내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어차피 먹고살자면 돈을 쓸 수밖에 없었고, 반드시 회수되어 인플레이션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다.
“저희도 없는 인력으로 지금 고생이 이만저만한 게 아닙니다. 이 정도로 꾸려 나가는 게 대단한 일일 겁니다. 문제가 된 10만원 주화 제작소는 다시 한 번 점검하도록 하겠습니다.”
화폐 인쇄소에는 경비와 감시가 군위원회에서 직접하고 있어 문제가 없었지만, 10만 원 주화는 조달청과 치안청에서 연계해 생산과 경비를 담당하고 있었는데 여기서 문제가 생긴 듯했다.
치안청은 치안부였을 당시에는 군사위원회 산하기관이었지만, 현재 조만호 대령이 복귀하면서 내정 위원회에 이관된 상태였다.
현재 위원회는 최고 지휘권자인 성현아래 군사위원회와 내정 위원회가 있었다.
군사위원회 아래에 2원 3부 1처가 있었고.
감사원, 금융감독원, 법무부, 과학기술부, 군사령부, 보훈처가 존재했다.
내정 위원회 아래에는 6부 3청이 있었으며.
기획재정부, 교육부, 상공부, 보건복지부, 식품관리부, 건설교통부 6부와 치안청, 조달청, 국세청 3청이 있었다.
군사위원회가 내정 위원회보다 상위기관이나 다름없는 포지션을 취하고 있었지만, 내정 위원회 또한 성현이 포괄적 권한을 위임해주어 상당한 권한을 가진 기관으로 거듭나 있었다.
* * *
“관행이라고 했나?”
“저 그게… 청계산 때부터 관행처럼….”
건설교통부 장관이 성현의 말을 받아 핑계를 대지만, 성현은 단호하게 그 말을 잘랐다.
“됐고, 어이 거기. 일별 생산한 주화는 조달청에서 금융 감독원으로 모두 보내야 하지 않나?”
“크흠, 업무가 많다 보니 착오가 있어 미반출한…….”
“아아, 거기까지. 한쪽은 관행이고, 누구는 바빠서 그랬다는데 어쩔 수 있나.”
불호령이 떨어질 걸로 생각했던 조달청장과 건설교통부 장관이 식은땀을 닦아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바쁘다는 핑계로 업무에 태만함은 물론 관리부실의 책임을 지고 조달청장은 직위 해제한다. 그리고 관행 운운하며, 범죄 사실을 은폐하려 한 건설교통부 장관 또한 현 시간부로 직위 해제한다. 그리고 치안청은 다시 군위원회 산하기관으로 이관한다. 감사원에서는 법무부와 연계해 대대적인 감사에 착수해서 단 하나의 오점도 남겨두지 않도록 해라.”
“아, 아니 이 무슨! 제가 무슨 죄가 있습니까!”
“여, 여러분! 이건 명백한 월권이고 독재 아닙니까?”
“월권? 독재? 월권은 모르겠고, 독재는 맞아. 넌 해고고 조사 결과에 따라 그에 합당한 벌을 내릴 거다. 저 둘 내보내.”
성현은 반발하는 두 부서장들에게 코웃음을 치고, 회의장에서 쫓아냈다.
달려드는 군인들에게 발버둥을 쳐보지만, 배 나온 중년들이 이를 버텨낼 재간은 없었다.
장내가 어수선해졌지만, 누구 하나 저 둘을 옹호하는 이들은 없었다. 그러다 자신의 처지도 저들과 같아질 수 있음을 모르지 않았다.
이곳 제주도는 오롯이 박성현 사령관이 만든 보금자리였고, 그 누구도 그에게 반해 좋은 결과를 보긴 힘들었다.
더군다나 성현이 행한 일련의 조치가 과하다고는 하지만, 분명 문제가 있는 이들이었고 내정 위원회안에서도 말들이 많았기도 했다.
“죄송합니다. 사령관님. 모두 제 불찰입니다.”
“흐음, 의장님. 윗물이 맑다 해서 아랫물 또한 깨끗하리란 보장은 없습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내정 위원회 스스로 자정 노력을 다해주시기 바랍니다. 추후에 이 같은 일로 얼굴 붉히는 일 없도록 해주시면 됩니다.”
“네. 사령관님. 앞으로 이러한 문제로 심려 끼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내부 단속에 더욱 철저히 신경 쓰도록 하겠습니다.”
안영식 의장이 고개 숙여 사과했고, 성현은 그의 인품을 아는지라 기회를 좀 더 줘 보기로 했다.
“저는 청백리를 원하는 게 아닙니다. 하지만 그 정도라는 게 있는 법이고, 한도를 넘어서는 일에 대해서는 결코 간과하지 않겠습니다. 저는 방금같이 벌이 아닌 상을 여러분들에게 주고 싶습니다. 그 상을 받아 가시기 바랍니다. 모두 명심하시고, 업무에 충실해 주세요.”
성현은 모두가 청렴하고 이상적인 관료가 되길 원하는 건 욕심임을 잘 알고 있었다.
거기다 누구든 실수는 할 수 있음이다. 이런 이들에게는 만회할 기회를 주는 게 맞았다.
다만, 실수가 아닌 수시로 습관화된 관행이란 명목으로 불법을 저지르고, 갑질을 일삼는 부류는 일반적인 회사도 아닌 공직에 두고 쓸 수는 없었다.
썩은 부위는 빠르게 도려내어야만 새살이 돋고 후유증이 크지 않는 법이다.
“회의가 끝나면 군의 신형 병기들에 대한 위력 시험이 있을 예정이니 모두 참관하시기 바랍니다.”
2시간 후.
중앙지휘본부 동남쪽 1.5㎞ 지점.
해발 100m 남짓한 야트막한 ‘민오름’이라는 동산이 하나 있었다.
이곳에 성현을 비롯한 군과 내정 위원회 소속 인사들, 그리고 특별히 정우현 박사와 팀장급 연구원들을 초청해 군 병기 위력 시범이 한창이었다.
“사, 사령관님 저건 도대체!”
모두가 놀라워했지만, 정우현 박사와 과학자들이 받은 놀라움의 크기는 더욱 컸다.
공중에 떠 있는 3급 마법 포탑과 메커니즘을 짐작조차 할 수 없는 3급 거신병은 과학으로 풀 수 없는 미지의 산물이었다.
성현은 많이도 필요 없이 각 한 개씩 창고에서 꺼내어 위력 시범을 보였다.
푸쾅! 푸쾅!
거리 300m에 위치한 과녁이라고 하기도 모호한 수림에 마력 포탑이 연신 포사격을 가했고, 초고열의 광선을 뿜어냈다.
직격된 침엽수림은 찰나의 순간 재가 되어 흩날리고, 복사열로 인해 주변은 불바다가 되어 버렸다.
그리고 상공에 대기하고 있던 소방 헬기가 진화를 위해 불이 붙은 지점 상공에 나타났고, 삽시간에 진화를 마쳤다.
거신병은 거대한 대검을 들고 실험체인 좀비를 향해 검을 내리쳤고, 결박되어 있던 바위와 함께 좀비를 그대로 두 쪽으로 쪼개어 버렸다.
1톤 트럭 크기의 바위를 순수한 물리력으로 쪼개어 버리는 가공할 파괴력을 선보인 거신병을, 모두가 넋을 놓고 바라봤다.
그리고 공격 헬기로 거신병에게 향해 미사일을 발사했고, 내구성 또한 상상을 불허함을 보여주면서 피날레를 장식했다.
“무시무시하군요. 사태 이전에 저런 무기가 있었다면, 한반도 통일을 무리해서라도 했을 겁니다.”
“저런 무기라면 한반도 이남을 수복하는 것을 떠나 이북을 넘어 대륙 진출도 가능한 거 아닙니까?”
“허허, 땅이 넓다 하나 사람이 없지 않습니까. 욕심입니다.”
“아니 후대에 전해줄 땅이 넓으면 좋은 점만 있지 나쁜 점이 없지 않소.”
“것도 그렇긴 하구려.”
넋 놓고 있던 이들이 정신을 차리자마자 쏟아내는 말들이었다.
가만히 듣고 있는 성현도 고개를 끄덕거리며, 긍정을 표했다. 저들이 하는 말들 중에는 자신이 생각하는 바와 일맥상통하는 바가 없지는 않았다.
“사, 사령관님 저 병기들을 저희 연구진에게 맡겨 주실 수 있습니까?”
“안 그래도 박사님이 그런 말씀을 하실 줄 알았습니다. 헌데, 아마도 힘드실 겁니다. 저 부양 전차와 거신병이라 이름 붙은 병기는 기계공학이나 과학과는 전혀 무관한 물건들이라, 연구를 하신데도 얻을 수 있는 건 없지 싶습니다. 그리고 지금 하시는 연구도 많은데 가능하시겠습니까? 그래도 하시겠다면 말리지는 않겠습니다.”
성현의 말을 들은 정우현 박사는 가만히 턱에 손을 얹고 생각에 잠겼다.
과학자의 본능으로 증명하고, 이론으로 반드시 정립하겠다는 열망에 잠시 잊고 있던 현재 자신의 본분이 떠오른 것이다.
“흐음. 아무래도 제가 마음만 앞섰나 봅니다. 지금 넘겨주신다 해도 연구를 시작하는 건 어렵겠군요. 사령관님, 차후에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당장은 마정석과 재개된 플라즈마 연구에도 손이 모자란 상태인데, 새로운 연구물에 대한 인력 투입이 쉽지만은 않았다.
본인 혼자라고 빠져서 눈앞의 연구물들을 살펴보고 싶지만, 플라즈마 연구의 핵심 연구원이기도 한 자신이 빠질 수는 없었다.
그럼에도 쉽사리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인바, 반드시라고 할 만큼 기회가 되면 낱낱이 파헤쳐 보고 싶은 심정이었다.
“물론입니다. 여기 있는 한 대가 아니라 필요하시다면 수십 댄들 제공 못하겠습니까. 걱정 마십시오.”
성현의 호탕한 말에 그제야 안심이 된 정우현 박사는 아쉬움을 뒤로하고, 후일을 기약할 수 있었다.
* * *
성현은 바쁜 일과를 마치고, 한가해진 오후가 되어서야 아침부터 하려다 뜸을 들인 일을 하려고 했다.
“자 우선 초기화 수락을 해야겠지.”
[1차 전직 특전으로 보너스 스텟 초기화가 1회에 한해 가능합니다. (수락, 거부)]
“오케이!”
[1차 전직 특전으로 보너스 스텟 초기화를 선택하셨습니다. 분배되지 않은 보너스 스텟을 분배해주시기 바랍니다.]
[박성현]
레 벨 : 30 (EXP 0.00%)
직 업 : 무기 전문가 [1차 전직]
계 급 : 자작
근력 12 (+10,+18) → 40 ▲
민첩 9 (+10,+18) → 37 ▲
내성 9 (+10,+18) → 37 ▲
마력 5 (+10,+18) → 33 ▲
체력 14 (+10,+18) → 42 ▲
권위 0 (+10,+18) → 28 ▲
보너스 스텟 : 60
“헐, 뭔데! 보너스 스텟이 두 배라고?”
30이어야 할 보너스 스텟이 그 두 배인 60이 찍혀있었다.
“대박! 새로운 능력도 초기화가 된 거야? 그거야?”
성현은 게이머 두 개의 능력을 현재 융합해 사용 중이었고, 두 개의 게임의 보너스 스텟 또한 초기화와 더불어 중복해서 적용되고 있었다.
“이거, 이거 진짜 잘만 한다면…. 계산이 안 되네, 어디까지 가능한 거야?”
간단한 산수지만 흥분으로 쉽게 답을 찾지 못했다.
“일단 이것만 해도 권위가 88, 거기다 백작이 되니까 더하기 25하면 113, 이런 미친! 후작 달성은 영지만 늘리면 거저 되는 거네.”
보너스 스텟 모두를 권위에 몰아넣고, 계급이 백작에 오르게 되면 전 스텟 +25 특전을 더하게 되고, 후작에 이르러 계급 달성에 따른 전 스텟 +50의 특전까지 추가로 획득하게 되어있었다.
“전 스텟이 100을 훌쩍 넘기겠네. 게임에서 지존이라는 놈들도 전 스텟 100은커녕, 주력 스텟 두 개도 겨우 찍었다고 들었는데. 이걸 애들이 알면… 이건 말 안 하는 게 좋겠다.”
사실 청계산에서 중상을 한번 입은 탓에 모두에게 성현의 인간다움을 어필하는 계기가 되었다.
군 위원회에 속한 부하들 역시나 성현을 신격 시 하는 경향이 강했는데, 그 덕분에 어려워할지언정 조금은 편해졌다 할 수 있었다.
이미 인간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는 능력이지만, 드러내어 ‘난 인간 같지 않다’고 스스로 뽐내는 건 좋지 못했다.
어디까지나 성현은 모두와 함께 인간답게 살고 싶을 따름이지, 멀리서 바라만 봐야 하는 신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