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0
이능력자 형제 (2)
기준과 경호를 헬기에 태운 성현은 기수를 제주도로 향했다.
둘이 연신 뭐라고 떠들어 대는 통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먼저 제주도에 데려가기 위해 둘을 영지민으로 만드는 순서를 거쳐야만 했다.
영지의 수성 병기는 영지민이 아닌 이들이 들어오면 침입으로 간주해 공격할 것이고, 이 둘의 안전을 위해서도 반드시 선행해야 하는 일이었다.
영지민 수락을 묻는 반투명한 메시지 창이 눈앞에 나타나자 두 형제는 몹시 놀라며 신기해했다.
거기다 성현이 허공에서 헬기를 꺼내자 두 형제는 하나같이 소리를 빽빽 질러댔다.
서로 ‘봤어, 봤냐, 미친, 돌았네.’ 등등 단문의 문장으로 솔직한 심정을 표현해 냈다.
“사령관이다. 최 준장, 듣고 있나?”
성현이 제주 상공에 도달하자 가장 먼저 무전을 보내 최동원을 찾았다.
-넵, 사령관님. 들립니다.
“지금 어디에 있어?”
-현재 제주항 제2 부두에 있습니다. 금일 어선 수리가 필요해 해미 씨와 함께 나와 있습니다.
“그래? 마침 잘됐네. 여기 치료 좀 해야 할 사람이 있거든”
성현은 공격 헬기의 뒷좌석에 쭈그려 앉아 있는 둘을 돌아보며 말했다.
좁은 좌석에 덩치가 조금 큰 기준이 앉아 동생인 경호를 앉고 있었다.
중상은 아니지만, 그래도 많이 아픈지 둘 다 끙끙 앓는 소리를 종종 내고 있었다.
-네? 다친 사람들이라뇨?
“두 명 데려가고 있는데, 무등산 쪽에 있는 대피소 소속이다. 이 두 사람한테 제주도 구경 좀 시켜줘라. 우리 영지의 전반적인 모습을 보여주면 된다. 자세한 이야기는 만나서 하도록 하자.”
-넵, 사령관님 잠시 후 뵙겠습니다.
성현의 예고 없는 상황을 한두 번 겪어 본 것이 아닌 최 준장은 그러려니 하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잠시 후.
투타타타.
성현의 헬기가 제주항 서부 방파제를 지나 제2 부두 선착장 한편에 착륙하고 있었다.
“단결! 고생하셨습니다. 사령관님.”
두식이 가장 앞서서 다가와 경례를 했다.
그리고 저만치에서 해미가 달려오는 모습이 성현의 눈에 들어왔다.
“아저씨~! 어라, 뒤에 사람들은 누구예요?”
해미가 성현을 반갑게 마중하며, 함께 헬기에서 내리는 이들을 가리켰다.
“차차 설명해 주마. 해미야, 우선 치료부터 좀 해주겠니.”
“저 사람들 다쳤어요?”
“그래 크게 다친 건 아니다만, 부탁 좀 하자.”
“에이, 우리 사이에 부탁은요.”
해미는 성현에게 눈웃음을 보이며, 우리 사이에라는 묘한 뉘앙스를 풍기며 답했다.
그리고 성현의 뒤에 절뚝거리며, 걸어오는 이들을 향해 가볍게 힐을 선사해주었다.
“헐, 형 쩐다, 쩔어! 봤어? 사제야.”
“힐러네 힐러! 와 하나도 안 아파.”
경호는 해미의 손에서 빛나는 광원이 몸에 닿자 포근함이 느껴지면서 몸의 상처가 치유됨을 느끼고는 소리를 질렀다.
기준은 팔을 붕붕 돌리며, 몸 상태를 확인하고는 두 눈을 치켜뜨고 말했다.
“뭐래? 흥.”
해미는 새침한 말을 하고 고개를 홱 하고 돌려 성현에게 다가갔다.
“아저씨, 저 유치원가서 줄리 데리고 올 테니, 해수욕장 가요. 거기 근처에 횟집 생겼어요.”
“뭐, 횟집?”
성현은 해산물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정도로 좋아했고, 그중 회라면 두말하면 입 아플 정도였다.
“외식 사업 활성화한다더니, 빠르게 개업했네. 알겠다. 나도 시간 맞춰 갈 테니 한 시간 후에 해수욕장에서 보자.”
“네에~ 그럼 이따 봐요.”
성현은 영지 산업을 활성화하면서 공공사업을 주축으로 해서 전 분야로 확대할 생각이었지만, 이는 곧바로 철회했다.
그리해서는 상공업 발전의 다양성을 해치는 건 물론, 개인 사업을 제한하기 위한 또 다른 제약을 둘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사업장을 빌려주고, 세를 부과하는 방식으로 선회했다. 기존에 멀쩡한 공장이며 식당들이 즐비했고, 필요한 기자재는 모두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온전한 기기들이 있을 리는 없었고, 그런 작은 물품까지 내구도 회복 스크롤을 사용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일반 기술자들의 손을 거쳐야만 해서 시간이 오래 걸릴 것으로 판단했다.
하지만 횟집은 큰 수조에 해수만 있어도 더 준비할 게 없었다.
낚시해서 물고기를 잡든, 그도 아니면 가까운 해안에서 목조선만으로 선상 낚시를 해서 재료만 구해 놓으면 되었다.
여기에 회를 뜰 수 있는 사시미와 요리사만 있으면 개업하는 것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사령관님?”
“어, 그래 동원아. 이 둘 영지 구경 좀 시켜줘라. 무등산에 있는 Ⅲ-3 대피소 소속이다. 사전답사 왔다고 생각하면 편할 거다. 늦어도 내일 중에 다시 돌려보내서 주민들 설득할 예정이다.”
“흐음, 이 두 사람이 과연 주민들을 설득할 수 있을까요?”
“아직 어리지만, 둘 다 이능력자고 대피소에서는 상당한 위치에 있다고 한다. 주민 설득이 쉽지는 않겠지만, 가능하리라 본다.”
성현은 어찌 되었든, 주민 수송까지 무력 충돌 없이 진행된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성현이 방문해서 영지 선포를 하고 영지민 수락 메시지를 띄워주면, 그들은 신세계를 경험하게 될 터였다.
거기다 거대한 성벽이며 활주로까지 만드는 걸 보게 되면 따로 설득할 것도 없게 될 것이다.
“구경시켜주고 한두 시간 있다가 횟집으로 오도록 해라. 이 둘에게도 밥은 먹여야지.”
“네, 사령관님. 알겠습니다.”
성현은 최 준장에게 대강의 상황과 지시를 전달하고 기준, 경호 형제에게로 데리고 다가갔다.
“내가 어른 보면 어떡하라고 했더라?”
“아, 안녕하세요.”
“안녕하십니까.”
성현이 최 준장을 데리고 다가가자 멀뚱히 보고 서 있는 두 형제에게 툭 쏘아 말했다.
“자식들이 몸에 있던 상처가 없어지니 기억도 가물가물해?”
“네? 아니요. 헤헤.”
“아뇨, 아뇨. 다 기억해요. 언제 인사해야 할지 너무 생각하다 늦었어요.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히히.”
기준과 경호가 다급히 말했다.
경호는 뒷머리를 긁적이며 멋쩍어했고, 기준은 최 준장과 두식에게 재차 인사를 건네며 헤헤거렸다.
몸은 다 컸다 하나 성현이 보기에는 아직 어린 티가 역력했다. 잘 타이르고 가르쳐야 할 동량들이었다.
“말썽 피우지 말고 구경 잘하고 와. 이따 만나서 조금이라도 이상한 소리 들리면… 알지?”
“네. 그, 그럼요.”
“아무 걱정 마세요.”
성현이 마지막으로 주의를 주고, 자리를 떠났다.
뭐 어련히 알아서 할까 싶기도 했다.
제주도에 도착하고부터 연신 주위를 살피며, 어느덧 얼굴에는 희열로 가득 차 있는 형제였다.
여기서 살고 싶은 건 두말하면 잔소리였다.
* * *
다음날.
성현은 기준과 경호를 헬기에 태우고, 무등산으로 향했다.
두 형제는 제주도를 탐방하고 하룻밤 지상에서 지내면서 많은 변화가 있었다.
“사령관님 정말 저희 대피소에 있는 사람들 모두 다 데려가 주실 수 있으신 거죠?”
“물론, 가겠다는 사람들은 단 한 사람도 빼놓지 않고 데려가 주마.”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기준과 경호는 정말 마음에서 우러러 나오는 감사의 말을 수십 번도 더 하고 있었다.
조금은 어둡고 긴장되어 보이던 얼굴은 희망과 기쁨으로 물든 지 오래였다.
길지 않은 비행이 끝나고, 성현의 헬기는 대피소에 바로 가지 않고 인근에 착륙했다.
혹시나 갑작스러운 등장에 놀라지 않을까 기준과 경호를 대피소와 멀지 않은 곳에 내려주고 먼저 올려 보냈다.
그리고 기준과 경호에게 미리 이야기 한 데로 영지 선포를 준비했다.
“이거 대충 선포해도 되겠다. 영지 형태를 굳이 잡을 필요도 없어.”
[ 권 위 ]
-권위가 높을수록 영지선포에 대한 시간이 줄어듭니다.( 12시간 → 즉시)
-권위가 높을수록 영토에 대한 지배권이 강화됩니다.(영토 내 아군의 능력 113% 강화)
-권위가 높을수록 보다 많고, 넓은 영지를 가질 수 있습니다.(106.5㎢, 3,221만 평)
권위가 113에 이르러 영지의 넓이는 두 배가 넘게 증가한 상태였고, 원형으로 영지를 만들게 되면 그 지름이 무려 11.65km²나 되었다.
무등산에서 가까운 광주 제2 순환도로는 물론 광주 동남부 지역 전체가 영지 권역에 들어올 수 있었다.
“영지 선포.”
두둥!
[영지 귀속 완료]
[영지의 이름을 부여해 주시기 바랍니다]
권위가 100을 넘어서면서 영지 귀속 카운트가 없어지고, 즉시 영지화가 이루어졌다.
“무등산”
[영지 이름을 ‘무등산’으로 지정하시겠습니까? (수락, 거부)]
주민을 모두 제주도로 옮기고 나면 이곳 무등산 영지도 버려질 영지에 불과했다.
이름 따위는 어떻든 상관이 없었다.
[영지 ‘무등산’이 귀속되었습니다]
[기존 거주민들이 영지민 신청 자격을 얻습니다. 신청을 수락하지 않은 거주민은 24시간 후 영지에서 퇴거 됩니다. 또한 영주나 권한을 위임받은 가신이 직접 영지민을 거두고, 퇴거할 수 있습니다.]
[정희락 영지민 신청 (수락, 거부)]
[김은미 영지민 신청 (수락, 거부)]
.
.
순식간에 영지민 신청 창 수백 개가 넘게 올라갔다. 성현은 반투명한 창을 한쪽 옆으로 치워두고, 시간을 봤다.
기준과 경호가 대피소로 간지 20여 분이 다되어 가고 있었다.
대충이나마 충분히 설명했을 테고, 주민들에게도 어쩌면 소식을 전해 영지민 신청이 줄을 이을 터였다.
긴가민가한 이들도 눈앞에 나타난 홀로그램 같은 창을 보고 믿지 않을 수 없을 것이고, 이제 성현은 가만히 무전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사령관님. 방금 영지민 수락 창이 떴다고 합니다. 올라오세요. 저희 대피소에 이야기 모두 전했습니다.
“그래, 지금 출발하마.”
성현은 20분 정도가 지나자 들려온 무전에 선회 중인 기체를 바로잡고 대피소 공터로 향했다.
투타타타타.
대피소 상공에서 기체를 하강시키자, 강한 바람이 공터의 흙먼지를 밀어내며 주변을 휘몰아쳤다.
로터가 정지하자, 성현은 캐노피를 열고 훌쩍 뛰어내렸다.
익숙한 두 형제와 다수의 사람들이 성현을 기다리고 있었다.
“사령관님, 이분은 주민을 대표하시는 최 아저씨, 아니 최병만 대표세요.”
“어, 어서 오십시오. 사령관님.”
“반갑습니다, 박성현입니다.”
“기준 씨와 동생분에게 들었지만, 아직 얼떨떨합니다. 우선 안으로 드시죠.”
긴장이 완연한 중년의 남자가 성현을 반겼다.
초조한 기색으로 말하는 게 상당히 불안해하는 듯했다.
그리고 그게 자신 때문만은 아님을 금방 알 수 있었다.
눈동자는 연신 외곽을 경계 중인 기갑차량들을 살피는 게, 좀비나 구울의 침범이 있지는 않을지 염려하는 눈빛이었다.
“그러시죠. 궁금한 것도 많을 겁니다. 아, 잠시만요.”
성현은 자신이 타고 온 헬기로 다가가 창고에 수납했다.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게 뒤를 돌아보자.
다양한 사람들이 한결같은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뭐 처음에는 어쩔 수 없지.’
황당하고 놀란 표정을 동시에 떠올리고 있는 이들에게 다가간 성현은 그들에게 간단히 능력 중 하나라고 말하고, 쏟아질 질문들을 사전에 막았다.
성현이 대피소 경내로 들어서자 외곽에 경계 중이던 기갑 차량과 병력들이 속속들이 철수해서 대피소 안으로 들어왔다.
이들은 대낮에도 철저하게 외부 출입을 금하고 있음을 알았다.
그리고 이는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고, 성현은 다른 대피소도 이와 유사한 상황임을 상기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시작이 반이라고 했지만, 갈 길이 멀고도 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