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판멸망한 세계의 게이머-82화 (82/176)

# 82

무등산 대피소 (2)

성현은 무등산 대피소에서 잠시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고 있었다.

최병만 대표는 당연히 할 일이 많은 사람이라 성현과 이야기를 끝내고 바삐 움직이고 있었고, 기준과 경호 형제도 바쁘기는 매한가지였다.

“성벽하고 수성 병기는 이만하면 됐고, 대피소에서 활주로까지 이어지는 이동로는 ‘평평한 흙길’만으로 충분하겠네.”

성현은 밖에 나가지 않고서도 미니맵을 통한 영지 관리를 할 수 있었다.

영지 외곽 전체에 성벽을 두르고, ‘마법 화염 탑’과 ‘마법 벼락 탑’ 수성 병기로 도배를 했다.

백작이 되면서 수성 병기들에 대한 강화를 할 수 있는 방법이 생겼지만, 가성비가 너무 좋지 못했다.

각 수성 병기들은 3회까지 강화가 가능한데, 강화 비용은 설치 비용의 2배수로 늘어났다.

예를 들어 ‘마법 벼락 탑’ 설치 비용은 20만 골드이고, 1차 강화는 40만 골드, 2차 강화는 80만 골드 이런 식으로 추가로 들어갔다.

헌데 강화된 공격력은 1.2배 오르는 데 그쳤고, 지출 대비 효율은 극악했다.

어차피 무등산 영지는 주민 수송이 마무리되면 없어질 영지인바, 필요 이상의 지출은 지향해야 함이 맞았다.

“그나마 공성 병기들의 쓸 만해 보이네.”

다만 공성 병기들은 자작일 때 3급이던 병기들이 백작이 됨으로써 2급까지 생성이 가능했다. 새로운 병기들이 추가되지 않아 아쉽기는 했지만, 이것만 해도 감지덕지했다.

공격력이 크게 오르고 사거리도 비약적으로 늘어나 비싸긴 하지만, 제 몫은 하고도 남을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아직은 잠겨있지만, 공작이 되면 국왕까지 사용 가능한 병기들이 있었다.

미리 외형만은 확인이 가능했는데 무척이나 기대되는 병기들이었다.

“그나저나 골드가 마르기 시작했네.”

[ 1,084,775골드 14실버 ]

일전 부산에서 벌어들였던 골드는 광양 영지와 무등산 영지를 구축하면서 대부분 소진되었고, 남은 골드는 고작 1백만 골드를 조금 넘기고 있었다.

“이번 일 마치고 나면 좀 넉넉하게 벌어 놓든지 해야지 안 되겠다.”

무등산 영지에 대한 방어를 완비해 둔 성현은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시간이 훌쩍 흘러갔다.

최병만 대표가 마침 성현이 요청했던 일을 끝내고 돌아왔다.

“저희 무등산 주민들 인적 사항과 동거를 희망하는 이들에 대한 조사를 마쳤습니다.”

작은 USB를 건네받은 성현은 내일을 기약하는 짧은 인사를 나누고 제주도 복귀를 준비했다.

*  *  *

무등산에서 긴급 귀환으로 제주도에 복귀한 성현은 서둘러 전체 회의를 소집했다.

전날 사전에 지시를 내려두었지만, 얼마만큼 진척이 있는지 확인해야 했고, 전반적인 모든 사항들을 직접 점검하고자 했다.

“시간이 촉박한 만큼 모두 서둘러 주시기 바랍니다. 무등산 주민들이 살 곳은 충분하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되고 있습니까?”

“네. 사령관님. 말씀드리겠습니다. 현재 주거지로 사용할 수 있는 영지 내 가구 수는 모두 26,480가구입니다. 그중 14,183가구는 이미 주민들이 살고 있고, 남은 것은 12,297가구입니다. 넘겨주신 무등산 대피소 주민들의 인적 사항과 동반 거주를 희망하는 이들에 대한 분류가 한창입니다. 가구 배정은 명일 오전 중에 마무리될 듯합니다.”

“알겠습니다. 명일 정오를 기점으로 수송이 시작될 겁니다. 그전까지 마무리할 수 있도록 계속 고생해주세요.”

가장 중요한 주거지 배분 문제는 지금도 고민거리였다.

앞서 한차례 진통을 겪기도 해서 성현도 신경이 쓰이는 일이었다. 당장이야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성현이 불만을 잠재워 놓은 상태지만, 언젠가는 다시 조정이 필요한 부분이었다.

여러 대책이 내정위원회에서 올라오고 있지만, 현시점에서 취할 수 있는 방안이라 볼 수는 없었다.

대외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지만, 성현은 오래도록 현 상태를 유지하며 사유화하지 않을 작정이었다.

사유화하면서 생길 문제들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골치가 아파왔다. 이대로 임대 형식을 취하는 게 여러모로 좋다고 여겼다.

큰집을 원하는 사람, 단독주택을 원하는 사람, 혼자 살기를 원하는 사람. 등등 모두의 사정을 고려한 형평성에 맞는 대안이 나오지 않는 이상 현상을 유지하는 게 최선이었다.

사유 재산은 허용하되 사유지만큼은 오랜 시간을 두고 차차 풀어나갈 생각이었다.

“그리고 내정위원회 인력 확충에 대한 안건은 승인합니다. 일정 자격을 갖춘 이들을 선별해서 뽑도록 하세요. 인사 문제는 위원회 의장께 위임하겠습니다. 문제없도록 해주시기 바랍니다.”

“네. 사령관님. 감사합니다. 공고를 내고 인원 확충을 서두르겠습니다. 채용 가능한 이들은 이른 시간 안에 각 부서별로 배정해서 업무 공백이 생기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현재 5백 남짓한 내정위원회 소속 공무원들이 주야로 일을 하고 있지만, 업무의 과중으로 모두 피골이 상접해 있었다.

거기다 이번 무등산 대피소 주민까지 추가된다면 제주 영지의 주민들은 10만을 훌쩍 넘어서게 되고, 공무원 비율을 높이지 않는다면 모두가 과로사하지 않을지 걱정이었다.

“명일부터 새 주민 이주에 문제가 없도록 각 부서별로 한 번 더 점검하고 혼란이 생기지 않도록 만반의 준비를 해주시기 바랍니다. 이상 회의는 마치겠습니다.”

성현이 회의를 파하고 잠시 휴식을 취한 뒤 군 위원회만 별도로 소집해 회의를 속개했다.

“해밀턴. 이주에 특별히 문제 되는 건 없나?”

“네. 사령관님. 파일럿들은 명령이 떨어지면 당장이라도 출발할 수 있습니다.”

“항공유는 충분하고?”

“네, 아직은 여유가 있습니다. 이번 대규모 수송에는 문제 될 게 전혀 없습니다. 현재…….”

짐작은 하고 있지만, 수시로 확인이 필요한 부분임이 분명했다.

해밀턴은 메모 된 부분을 들추며 계속해서 말했다.

“345만 갤런으로, 약 1천3백만 리터 정도 됩니다. 처음 보고드릴 당시에 비해 240만 갤런 정도가 소진되었다고 보시면 됩니다.”

성현의 생각보다 많은 양이 소비되어 있었다.

“흐음… 이번 수송에 소요될 양은 얼마 정도로 보고 있어?”

“비교적 가까운 거리이긴 하나, 약 60만 갤런 정도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중장기적인 측면에서 보았을 때 더 늦기 전에 추가 비축 분을 마련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알겠다. 그 부분은 나도 생각한 바가 있으니 어떻게든 해결해 주도록 하겠다.”

이미 이에 대한 대책은 생각해둔 바가 있었다.

그 시일을 조금 앞당겨서 해야 할 필요성이 생겼을 뿐이었다.

“소음 제어기를 보급은 끝났고?”

“네. 사령관님. 연구소에서 개량 방탄헬멧 500개를 우선적으로 받았습니다. 특수군은 물론이고, 이번 수송에 투입될 병력과 공군에 돌아갈 수량은 충분합니다.”

성현이 최동원을 돌아보며 묻자 기다렸다는 듯이 답했다.

“이거 연구소 직원들이 고생이 많았겠다. 연구소에서 필요하다는 지원은 최우선으로 들어주도록 해. 그리고 가급적 모든 편의도 봐주도록 하고.”

“네. 사령관님.”

성현은 소음 제어기만 추가될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어느새 연구소에서는 개량형 방탄헬멧까지 만들어 냈다.

언제나 자신의 바람보다 높은 성과를 보여줌에 고마움과 함께 노고를 치하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광양에 주둔할 부대는 결정했나?”

“네. 사령관님. 상주 병력은 1개 중대 240명 규모로, 전차 12대와 장갑차 10대, K9 6대입니다. 이와 별도로 공군에서 이관된 지원 항공대 전투 헬기 다섯 대도 함께 상주 예정입니다. 명일 주민수송 작전과 별개로 1차 주둔 부대가 광양에 투입됩니다. 숙영지는 포스코 기술연구원과 인접한 백운 메디컬 센터입니다.”

“알겠다. 함께 이동할 민간인 경호에 만전을 기하도록 하고, 필요한 기갑차량과 탄약의 운반은 부대 투입과 동시에 될 수 있도록 하마.”

“넵, 사령관님.”

광양 영지의 활성화를 위해 발전소 재가동에 필요한 연구진과 기술진이 함께 파견될 예정이었다.

플라즈마 발전기는 연구소에서 새로이 만드는 중이라 본격적인 가동은 아직 시간이 더 필요했지만, 사전 준비와 화력발전으로 임시 가동은 가능했다.

광양 발전소와 제철소 가동에도 많은 수의 내구도 회복 스크롤이 투입되어야 했고, 상당한 물자이동은 필요 불가분이었다.

즉, 성현이나 해미가 직접적으로 움직여야만 했다.

“다른 특이사항 없으면 이것으로 마치도록 하자.”

“저··· 따로 드릴 말씀이 좀 있습니다.”

성현은 최동원의 말에 알겠다고 말하고, 다른 지휘관들은 모두 일선 부대로 복귀하도록 지시했다.

“무슨 일인데 그래? 둘만 있으니 편하게 이야기하자.”

“네, 형님 다름이 아니라······.”

최동원의 이야기는 성현도 잠시 잊고 있던 이야기였다. 아니, 애써 무시하고 있던 부분이라 할 수 있었다.

“잊힌 듯 지나치고, 버려두려 했건만…….”

“현재는 작전 나갔다 직접 들은 일선 부대원들뿐만 아니라, 일반 주민들에게도 소식이 전해진 걸로 압니다.”

“근데 그게 누구라고?”

“모르십니까? 리와이스 하나 양하고 블루벨벳 아이렌 양입니다.”

“VIP놈들만 살아있을지 알았는데, 난데없이 아이돌 걸 그룹이 함께 있다니… 참내.”

제주 V-1 대피소에서는 24시간 비상용주파수를 통해 전 방위로 구조 통신을 시도하고 있었다.

무전을 보내는 이는 아이돌 걸 그룹 멤버인 여성들이었고, 둘 모두 인기 절정의 인물들이었다.

성현도 직접 본 적은 없지만, 방송 매체를 통해 수도 없이 본 이들임이 분명했다.

이름을 듣는 순간 특유의 율동이 떠오르고 멜로디가 귀에 듣기는 것만 같았다.

“어쩐다…….”

“저… 형님, 제 생각에는 일단 구하고, 문제가 될 인물들은 별도의 구역에서 지내게 하는 게 어떨까 합니다.”

“너도 팬이지?”

“…….”

성현이 보기에 최동원은 극성팬은 못되겠지만, 삼촌 팬 정도는 될 것 같았다.

“알겠다. 일이 이리된 이상, 그냥 두기도 힘들겠지. 구조 하는 걸로 하자. 대신, 그 시기는 무등산 주민들 수송을 완료한 이후다.”

“넵! 형님. 감사합니다.”

“왜 네가 감사해?”

“그게 아, 하하.”

*  *  *

성현은 최동원과 독대를 끝내고 생각에 잠겨 있었다.

VIP 대피소에 살아남은 이들에 대한 처우 때문이었다.

그들 중 일반인들은 기존 주민들과 같이 대우함이 맞지만, 위정자들이나 대기업 총수 같은 이들이 문제였다.

사실 이들은 주민으로 받아봐야 하등 쓸모가 없었다.

전문적인 기술이 있는 것도 아니고, 대부분이 중년을 넘어 노년에 접어든 이들인 탓에 육체적인 노동력을 제공해 본들 큰 도움을 기대하기 어려웠다.

‘잘은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수천만이 죽고, 저들은 살아남았다는 거지.’

가장 큰 이유는 전 국민들을 버리고 소수만의 생존만을 고려한 계획을 만들고 실천한 주범들이라는 거였다.

과연 이런 자들을 다시 삶의 기회를 주는 게 옳은 일인지 깊이 고심하고 있었다.

어쩌면 그 선택이 당시는 최선이었을 수도 있었지 않나? 라는 생각도 들었다.

모든 정보를 노출했다면, 지금의 대피소들조차 만들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

또 달리 보면 핑계에 지나지 않기도 하고.

“……판단은 직접 만나본 후에 결정하자.”

잠시 그들에 대한 처우는 유보했다.

어떤 결정은 할지 성현조차 지금 자신할 수는 없었다.

*  *  *

“어라, 이 새끼 어디 갔어?”

성현은 제주 상공을 돌며 각 부대의 주둔지를 살피고 인근을 순시하다 남쪽 해안에 다다랐다.

온 김에 범섬 상공에 왔는데, 어찌 된 일인지 놈이 보이지 않았다.

급히 기체를 착륙시키고 살펴봤지만, 그 어디에도 김도훈. 그놈이 보이지 않았다.

“자살한 거야? 그리 쉽게 죽을 놈이 아닌데. 설마…….”

놈이 견디다 못해 자살을 택했다면, 지옥에 가서 못다 한 죗값을 치루기를 빌어주겠지만, 만약 놈이 살아서 이곳을 빠져나갔다면 생각지도 않은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었다.

사전에 영지민 자격을 박탈해서 영지에 들어올 수는 없었다. 아니, 접근했다가는 전기 통구이가 되었을 터였다.

하지만 만에 하나 외부 작업 중인 부대원들과 조우해 매혹을 남발할 수도 있고, 최악의 경우는 놈이 제주를 빠져나가 살아남았을 때였다.

“희박하겠지만······.”

극초신성 사태를 겪고서 느낀 점은 나쁜 놈들이 더욱 지독하게 오래 살아남는다는 것이다.

헬기를 이륙시킨 성현은 빠르게 영지로 향했다.

그리고 이능력자 한 명을 태우고 다시금 범섬으로 돌아왔다.

확인이 필요했다.

“허업!”

“왜 무슨 일이야?”

“소, 손가락을…….”

“크흠, 너무 멀리까지 봤다. 최근에 있었던 일만 살펴봐.”

손가락을 긋는 시늉을 하는 게 일전에 성현이 김도훈의 손가락을 육손으로 만드는 광경을 본 것 같았다.

성현이 데려온 이능력자는 신종석이란 20대 중반의 남자로 일종의 사이코메트리(Psychometry)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사물이나 특정한 물품에 손을 대고 그에 얽힌 과거의 정보를 시각화해서 볼 수 있는 이능력자였다.

“저쪽으로 갔습니다.”

성현은 신종석이 뒤를 따라 천천히 걸어갔다.

“이곳에서 절벽을 타고 내려갔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도착한 곳은 절벽이었다.

“아무래도 너도 좀 같이 내려가야겠다.”

“제, 제가요?”

“내가 탱크도 끌 수 있는 사람이니까, 걱정 말고.”

신종석은 육체적인 능력이 일반인과 다를 게 없어 두려웠지만, 성현의 지시를 따르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성현은 창고에서 제법 굵은 로프를 꺼내어 신종석의 몸에 여러 번 묶고 매듭을 만들어 절벽 아래로 내리기 시작했다.

“우웨웨웩!”

“어허, 발버둥 치다 떨어진다. 가만히 있으면 안 죽어 인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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