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3
무등산 대피소 (3)
신종석이 범섬에서 김도훈의 마지막 모습을 성현에게 알려 주었다. 놈은 절벽에 무사히 내려왔고, 거침없이 바다로 뛰어들었다.
이를 전해 들은 성현은 즉시 지휘본부로 돌아와 긴급 무전을 하달했다.
내용은 위험한 이능력자가 탈주했고, 발견 즉시 경고 없이 제압 사격을 하도록 했다.
그리고 10m 이내로 절대 접근하지 말 것도 추가로 덧붙였다.
김도훈의 능력은 5m 이내에 접근하지만 않으면 매혹을 사용할 수 없다는 점에서 기인한 명령이었다.
“죽었을 수도 있지만, 살았다면 제주를 떠났을 확률이 높아.”
김도훈이 범섬을 벗어난 게 이미 하루하고 반나절이 흘렀다. 죽었으면 차라리 다행이라 생각하지만, 살아있을 경우 상당히 골치 아픈 일이 발생할 수도 있음이다.
“그냥 죽일 걸 그랬나.”
아직 매혹된 일반 주민을 모두 찾지 못해 살려두고 있었던 게 결론적으로는 실책이라 할 만했다.
“일단 기다려 보자.”
신종석은 특수군 소속 1개 팀과 함께 제주 남부 해안에 있는 선착장, 해안가를 중심으로 조사에 임하고 있었다.
놈이 살아서 제주에 발을 디뎠다면 흔적이 남았을 터였다.
잠시 후.
-사령관님, 놈의 흔적을 발견했습니다.
“내가 그리로 가겠다. 위치는?”
-서귀포 시청 남쪽 중동 선착장입니다.
“알겠다.”
중동 선착장에 도착한 성현은 신종석이 전해주는 이야기를 듣고 기도 안 찼다.
해안에 도착한 김도훈은 체력이 방전된 탓인지 그대로 뻗어 버렸고, 삼십여 분간 쉬더니 인근 점포 등을 뒤져 대충이나마 배를 채웠다고 한다.
그리고 놈은 자신의 행방을 들킬 것을 생각했는지 커다란 스케치북에다가 온갖 욕이란 욕을 다 쓰고, 저주를 퍼부었다.
성현에게 반드시 복수하겠다고 마지막에 적어 놓는 것 또한 잊지 않았다.
“이 새끼… 철자나 똑바로 쓰지. 넌 잡히면 곱게 죽지는 못하겠다.”
스케치북을 보는 성현은 놈이 입을 열고 욕지거리를 하는 모습이 상상되었다.
“결국엔 살아서 제주도를 빠져나갔다? 정말 징글징글하네.”
김도훈은 중동 선착장 인근의 레저스포츠 용품점에서 카약(Kayak)을 구해 바다로 빠져나갔다.
화장실 갔다 뒤를 안 닦은 것처럼 찝찝한 기분이 더럽기 그지없었다.
놈이 육지에 닿는다 한들 산다는 보장이 없지만, 이대로 넋 놓고 놓아 줄 수는 없었다.
그길로 성현은 헬기를 타고 김도훈을 쫓아 바다로 향했다.
이후 공군의 추가 지원을 바탕으로 10대의 헬기가 동원되어 대대적인 수색을 벌였지만, 김도훈의 행방은 묘연했다.
제주도와 가까운 추자도부터 시작해서 보길도, 노화도, 소안도, 등등 인근 섬을 모두 뒤졌지만, 소수의 좀비들만 있을 뿐 놈의 모습이나 카약은 찾을 수는 없었다.
노을이 짙어지고 해가 질 무렵, 성현은 놈에 대한 수색을 중단했다.
“손가락이 아니라 다리를 잘랐어야 했나?”
잔인한 말일 수 있지만, 대상에 따라서 성현은 말로만 그치는 성격이 아니었다.
다른 이능력자가 도주해 생사를 알 수 없는 지금과 같은 상황이라면 죽었으려니 하고 잊을만하지만, 놈의 능력은 궤를 달리하는바. 가능하다면 확인 사살이 필요한 놈이었다.
“살았다면 심산유곡 같은데 처박혀 절대 들키지 마라. 내 눈에 띄면 남은 죗값 곱하기 만 배는 치르게 될 테니.”
* * *
다음날.
전날 김도훈의 일로 밤잠을 설친 성현은 어찌 되었든 계획된 일정에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이미 벌어진 일을 계속 붙잡고 있어 본들 득이 될 게 없었다.
“사령관님. 주민들 출발 준비 완료되었습니다.”
주민 대표인 최병만이 성현에게 다가와 말했다.
“저기 선두 차량 따라서 모두 이동하라 전해 주세요. 그리고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좀비나 구울에 대한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절대적으로 안전합니다.”
성현은 무등산 대피소에 도착해, 주민 수송 준비를 진두지휘하고 있었다.
성현과 함께 온 2개 중대 부대원들은 주민들의 이동을 독려하고, 이곳의 군인들을 대신해 무장경호를 담당했다.
그리고 상공에는 1개 편대 10대의 공격 헬기가 주변을 경계 중이었다.
대피소 서쪽 방향으로 만들어 놓은 평평한 길을 따라 약 2㎞를 내려가면, 광주 외곽 순환도로와 맞닿아 있었다.
그곳에 성현이 만들어 놓은 활주로가 있었고, 이미 대기 중인 여객기들이 주민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모두 지정된 비행기에 탑승해주시면 됩니다.”
이틀에 걸쳐 진행될 주민 이송의 시작이었다.
무등산 대피소의 주민들은 모두 38,285명으로 첫날 절반이 넘는 2만 명을 수송 예정이었다.
본격적으로 수송 여객기들이 출발한 시각은 오전 11시를 지나 정오가 다된 시간이었고, 첫 여객기가 출발하고 5분여 만에 후속 여객기가 출발했다.
한 번에 대기 중인 여객기는 모두 열 대에 달했고, 신속한 탑승과 함께 빠른 이륙이 가능했다.
한 시간에 무려 3천여 명 이상의 주민 수송이 이루어진다고 보면 되었다.
성현은 자리가 비워지면 새로운 여객기를 꺼내어 놓았고, 누구보다 바쁘게 움직였다.
그리고 대피소에서 컨테이너를 창고에 넣어 제주도로 향했다.
“이건 누굴 시킬 수도 없고, 창고나 인벤토리 있는 게이머 하나 각성 시켜야 하나.”
귀찮고 번거로운 일이지만, 누구 하나 도와줄 사람도 대신해줄 능력을 가진 이도 없었다.
최동원은 아쉽게도 게임의 특성상 인벤토리 같은 게 지원되지 않았다. 있다면 해미뿐이지만, 해미는 요즘 성현만큼이나 꽉 찬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줄리를 돌보는 시간 외에는 각 위원회에서 부탁하는 일들을 돕느라 눈코 뜰 새가 없었다.
“빨리 끝내자 오늘 할 일이 많다.”
제주도에서는 도착한 성현은 무등산 대피소에서 가지고 온 컨테이너를 화물 청사에 내려놓고, 계류장에 있는 여객기를 창고에 넣었다.
그리고 쉴 틈 없이 북상해서 동일한 일을 반복하기 시작했다.
무등산 이주 둘째 날.
전날과 다름없이 순조로운 수송은 이어졌다.
대형 여객기들이 성현이 닦아 놓은 활주로를 아낌없이 사용하며 이륙 중이었고, 주민 수송은 공백 없이 쳇바퀴 굴러가듯 끊임없이 이어졌다.
어느새 주민 이송은 막바지에 다다르고 있었다.
“편대장. 이만 복귀해도 좋다.”
-라져 뎃.
오후 6시 30분에 이륙한 여객기를 마지막으로 모든 주민 이송은 끝을 맺었다.
성현은 영지 인근을 순회하며 경계 중인 헬기 편대를 제주도로 복귀 시키는 한편, 지상의 부대는 한 대의 여객기를 타고 제주도로 이동할 것을 지시했다.
그리고.
[무등산 영지에 대한 지배권을 포기하시겠습니까? (수락, 거부)]
수락을 가볍게 눌러줬다.
[무등산 영지 ‘시설’에 소요된 자원과 자금 50%를 회수합니다]
[11,528,226골드를 획득하였습니다]
에누리 없이 심플한 정산.
“가서도 할 일이 많네. 깔끔하게 오늘 다 끝내고 한 며칠 푹 쉬자.”
긴급 귀환은 이미 쓴 상태여서 성현은 다시금 헬기에 올라 이동을 해야 했다.
* * *
제주도 공항은 당일 이주가 완료된 신규 주민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계속해서 배정된 거주지로 수십 대의 차량들로 주민들을 실어 나르지만, 여전이 많은 수의 주민들이 공항청사에 남아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단결! 사령관님. 고생…….”
“됐다. 인사는 생략하자. 그보다 좀 급하다고 들었다.”
성현은 두식이 다가와 경례를 하자 곧바로 제지하고 용건부터 말했다.
“네. 그쪽 상황이 좀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나 봅니다. 식량이 모두 떨어진 게 이미 일주일 가까이 되다 보니 문제가 상당한 것으로 보여 집니다.”
“언제 마지막 무전이 왔다고?”
“네. 2시간 전이 마지막 무전이라 전달받았습니다.”
“특수군 중 이능력자 팀만 지금 바로 소집해라. 이번 참에 실전 훈련을 겸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다. 지원 부대도 있어야 할 거 같은데… 그곳과 가장 가까운 부대가 어디야?”
“1대대 1중대가 가장 가깝습니다.”
“응? 동원이가 왜 거기 있어?”
“그게 사실······.”
최동원은 V-1 대피소의 급박한 상황을 전달받자 그 즉시 자신 휘하의 부대를 그곳으로 이동시켜두고 있었다.
“이 자식 이거 삼촌 팬이 아니고 사생팬 같은데.”
“······”
“남은 1대대 산하 중대 모두 그곳으로 집결하도록 전달해라. 그리고 두식이 너는 공군 지원받아서 바로 내 관사로 가서 해미도 데려오고. 줄리는 제수 씨, 아직 제수씨 아니냐? 잘 좀 하자 인마. 이지애 씨에게 줄리 좀 잠시 봐달라고 해라.”
“네? 넵. 아, 알겠습니다.”
두식도 성현의 보좌관답게 호텔에 묵고 있었다.
거기다 이지애도 층만 다르지 한 공간에서 생활하는 것과 진배없었다.
이지애의 숙소는 원래 그곳이 아니었지만, 어느새 옮겨와 종종 인사하고 지내고 있었다.
이유는 하나밖에 생각이 들지 않는 성현이었다.
헌데 두식은 아직 제대로 진도를 빼고 있는 것 같지 않아 답답함에 한소리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나 먼저 출발하마. 이따 보자.”
성현은 공항 청사를 나서 곧바로 헬기에 올라 V-1 대피소가 있는 곳으로 출발했다.
순식간에 고도를 높인 헬기는 한라산 방면으로 날아올랐다.
해발 1,947m에 달하는 한라산을 넘은 성현의 헬기는 계속해서 남쪽으로 향했다.
“동원아, 듣고 있냐?”
-넵. 사령관님. 들립니다.
“착륙하기 적당한 곳에 불 좀 켜라.”
-대피소 입구 공터에 헬리포트가 있습니다. 유도하겠습니다.
VIP 이동에 이용된 것으로 보이는 헬리포트가 이곳 대피소 입구에 세 개나 있었다. 성현은 그곳 가장자리에 헬기를 착륙하고, 최동원을 만났다.
“단결!”
“일단 상황 브리핑 좀 듣자.”
“금일 15시 20분경 무전으로 몇몇 과격분자들이 무자비한 살상을 자행하고 있음을 밝히며 구조를 요청해 왔습니다. 이후 수차례 더 무전이 있었고 17시 15분경이 마지막 무전이었습니다.”
“다른 건 더 없어?”
“그리고 식량 부족으로 일일 2식에서 1식으로 바뀐 것이 보름 전입니다. 완전히 고갈된 것은 7일이 경과되었다고 합니다. 물만으로 겨우 연명하고 있는 걸로 파악됩니다. 그리고 믿기진 않지만, 마지막 무전에······, 식인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식인? 사람을 잡아먹는다는 말이야!”
성현으로서는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었다.
아무리 배가 고파도 같은 사람을 잡아먹는 일이 가능이나 할까 싶었다.
하지만, 인류 역사를 들여다보면 식인을 행한 경우가 적지 않았다.
가까이 중국의 원대(元代)에 군인들이 인육을 즐겨 먹었고, 어린아이의 고기를 상급으로 쳤다고 한다.
부녀자의 것은 중급이고, 남자의 것은 하급으로 쳤다. 사람의 가죽은 대나무 빗자루로 제거하였다는 상세한 기록까지 현대에 전해오고 있었다.
그리고 일본이 태평양 전쟁 당시 보르네오와 사이판에서 식인을 행한 일도 있었다.
또, 근현대에 들어서도 이를 기호식품처럼 여기는 자들도 적지 않게 있었고, 인육 캡슐이 공공연하게 상품으로 판매한 러시아인이 적발되기도 했다.
“현재 그렇게 추정하고 있습니다.”
“식인이라니··· 좀비도 사람을 먹지는 않는다. 좀비보다 못한 새끼들. 더 늦기 전에 대피소 입구부터 개방하자.”
“사령관님 오시기 전에 이미 폭약 설치는 마쳤습니다. 명령만 내려주시면 됩니다.”
* * *
꽈과과쾅!
천지를 진동하는 폭발음이 한라산 전역을 뒤흔들었다. 폭연과 먼지가 한데 뒤섞여 희뿌연 먼지가 차올랐다.
쿠쿠쿠쿵.
폭발의 충격파가 200여 미터 떨어져 있는 성현과 부대원들에게 밀려들었다.
전차나 장갑차 뒤로 몸을 숨긴 부대원은 충격파가 가시자 크게 숨을 내어 쉬며, 답답한 가슴을 쓸어내렸다.
구름처럼 번져나가던 먼지가 서서히 잦아들자 입구가 모습을 드러냈다.
거대한 문은 절반가량이 완전히 사라져 있었고, 남은 문 또한 온전한 형태를 유지하고 있지 못했다.
“모두 야시경 착용! 진입한다.”
성현을 선두로 특수군 중 이능력자 들로 구성된 1개 팀 여섯 명이 뒤를 따랐다.
모두 양안 야시경을 착용하고 있었고, 신형 군복을 착용해 일반 부대원과는 외견상 확연히 차이가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