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4
브이.아이.피 (1)
그오오오.
적막만이 감돌던 터널 내부가 요동치고 있었다. 어둠에 동화되어 숨죽이고 있던 좀비들이 본격적인 활동을 개시했다.
“후위 차단!”
특수군 A팀 팀장 이하늘이 중력장을 전개해 전방의 좀비와 후방의 좀비들을 갈라놓았다.
한꺼번에 몰린 좀비들이 통로를 가득 메우며 달려오다 자석에 끌어당겨 지듯, 그대로 바닥에 꼬꾸라졌다.
꿈틀거리던 좀비들이 가공할 중력에 당겨져, 프레스에 깔린 것처럼 납작하게 압착되고 있었다.
푸지지직, 드드득!
좀비의 안구가 점차 확대되더니 이내 돌출되어 밖으로 튀어 나왔고, 장기와 뼈가 바스러지는 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쿠콰콰-! 퍼퍼펑!
그리고 이어진 염동력자 김민우의 물리 폭탄 세례가 달려오는 좀비들을 향해 폭포수처럼 떨어졌다.
쏟아지는 물리 폭탄에 직격된 좀비는 처참하게 찢겨져 사방으로 육체를 비산하며, 흩어졌다.
그리고.
“돌격!”
육체 강화자인 최칠규의 돌격 신호에 맞춰 네 명의 이능력자들이 달려 나갔다.
가장 선두에 달리던 최칠규가 기합과 동시에 정권을 내질렀고, 좀비의 머리가 수박 터지듯 ‘펑’하는 소리와 함께 붉고 희멀건 체액을 뿌리며, 터져나갔다.
“다 썰어주마!”
은은한 청광을 전신에 두른 이동환은 양팔이 날카롭게 벼려진 날붙이로 만들어 좀비를 두 쪽 내며 신명 나게 칼춤을 추고 있었다.
신체 변형 능력으로 육체를 금속화해 어지간한 피해도 무시할 수 있고, 필요한 무기는 신체 일부를 변형해 직접 사용할 수 있었다.
또 육체가 거대화된, 4m에 이르는 이능력자 한 명과 일반 육체 강화자도 좀비 정도는 별 무리 없이 처리하며 뒤를 따랐다.
이 정도는 식후 운동 거리도 안 된다는 듯, 특수군 A팀은 무난하게 터널을 개척하며 계속해서 진입하고 있었다.
“C플랜!”
최칠규를 비롯한 4인의 육체강화자들이 이하늘의 지시에 신속히 후방으로 빠지자, 다시금 광역 중력장이 좀비들을 짓눌러 피떡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강철 인간 이동환이 전방을 향해 양팔을 뻗어 냈다.
슈슈슈, 푹! 푸우욱!
길이가 50여 미터에 이르는 굵은 송곳을 전방으로 방출했고, 그 상태에서 어른 손가락만 한 강철 가시 수백 개가 찰나의 순간 튀어 나와 좀비들을 관통했다.
“도올격!”
이동환이 크게 힘을 소모한 듯, 호흡을 가다듬는 사이 최칠규와 나머지 육체 강화자 두 명이 괴성을 지르며 좀비들을 향해 달려 나갔다.
* * *
성현의 생각 이상으로 A팀의 전력은 강력했다.
좀비를 상대함에 A팀은 필요 이상의 무력을 가지고 있었다.
다만 구울은 특성에 따라 변수가 있을 수 있겠지만, 3레벨 이하는 충분히 감당할 만하다는 게 성현의 분석이었다.
‘3레벨 이상은 내가 미리 처리해두면 될 일.’
굳이 보모를 자처해 이들과 보조를 맞출 필요가 없어졌다. 터널 돌입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성현은 단독 작전에 돌입했다.
일반인 생존자의 구조 요청에 응하기로 한 이상, 더는 머뭇거릴 시간이 없었다.
성현은 자신이 낼 수 있는 최대의 속도로 달려 나갔다.
그야말로 혈로를 만들며, 성현은 내달렸다.
일직선으로 달리며 좀비들이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일 검에 갈라버렸고, 잠시도 멈추지 않고 목표로 향했다
가히 전광석화와 같은 움직임에 좀비들은 성현의 존재를 인식하기도 전에 모두 경험치와 골드로 화해버렸다.
1구역 군 주둔 구역을 삽시간에 돌파해 나선형의 터널을 내달렸고, 2구역도 마찬가지로 그대로 통과해 드디어 3구역으로 통하는 폐쇄 통로에 접어들었다.
그어어어!
“귀찮게 하네. 애들 서넛 정도만 풀어 놓자.”
무시하고 지나친 좀비들이 뒤늦게 성현을 쫓아 오고 있었다. 직접 상대할 시간도 그럴 가치도 없는지라 창고를 열고 거신병 4기를 꺼내었다.
그리고 3구역으로 들어오는 초입까지 공격 루트를 설정했다.
쿠쿵. 쿵
거신병들이 자신들의 키만 한 대검을 들고, 달려가는 소리가 폐쇄 통로에 울려 퍼졌다.
진정한 학살의 시작이었다.
대검이 한번 휘둘러지면 공격 권역에 있는 좀비들은 종잇장처럼 찢겨져 상하좌우로 분리되어 쓰러졌고, 짓밟힌 놈들은 붉은 젤리마냥 바닥에 흩뿌려 졌다.
“이걸 어떻게 뚫지?”
좋은 구경이지만, 지금 성현의 관심사는 거신병들의 전투가 아니었다.
3구역으로 통하는 거대한 철문을 어떻게 열 것인가가 중요했다.
문의 높이는 3층 건물보다 높은 10여 미터에 달했고, 폭도 얼추 그 정도는 되고도 남았다.
가까이 다가가 있는 힘껏 쳐보았지만, 육중함을 넘어 태산처럼 버티고 있는 철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지금 내 힘으로도 이건 무리다.”
상당히 둔중한 반발력으로 미루어 보아, 두께가 m 단위는 될 듯했다.
육체의 힘은 이미 인간의 범주를 넘어선 지 오래지만, 두께가 1미터가 넘어가는 철문은 성현으로서도 답이 있을 리 없었다.
거기다 지반 붕괴의 위험도 있어 폭약을 쓰기도 마땅찮은 상황이었다.
“이거 잘하면 될 거 같은데, 되겠지?”
폭발성이 아닌 관통성 열에너지를 발출하는 마력 포탑이라면, 지금의 상황을 타개하기 가장 이상적인 무기였다.
성현은 창고를 열고 일전에 생성해둔 3급 마력 포탑 아홉 대를 꺼내었다.
터널의 폭이 10m에 이른 덕분에, 폭 2.5m인 마력 포탑을 넉넉하게 3열 횡대로 위치시킬 수 있었다.
철문까지 거리는 대략 40미터 남짓.
조금은 섬세한 조작이 필요했다.
기이이잉.
미니맵을 열고 이곳저곳 표적을 찍자 9개의 포신이 이리저리 돌아가며, 목표 지점을 조준했다.
몇 번의 시행착오가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원하는 곳에 포신들을 정렬시켰다.
뜸 들일 이유가 없었다.
“발사!”
푸슈슈슈! 콰콰쾅!
단 한 번의 광선 공격에 성현이 있는 위치까지 후끈한 열기가 몰아쳤다.
일반인이라면 숨조차 쉬지 못할 열기에 폐가 녹아버릴 수준이지만, 게이머의 내성은 이조차도 훈풍으로 바꿔주고 있었다.
아직 철문이 녹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시뻘겋게 달아올라 효과가 있음이었다.
그리고 이어진 2차 포격.
철문에서 용암이 흘러내리듯 뜨거운 쇳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했고, 쇠 끓는 비릿한 냄새가 후각을 자극했다.
“한 방 더!”
푸슈슈-! 퍼퍼펑!
철문의 상단이 드디어 관통되어 내부의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 크진 않지만, 사람이 드나들 만큼의 크기는 만들어졌다.
“일단 챙겨 넣고.”
성현은 마력 포탑을 다시 창고에 빠르게 수납하고, 아직 벌겋게 달아올라 있는 철문을 향해 달려가 그대로 도약했다.
* * *
“쩝쩝. 아까 그 소리, 혹시 놈들이 문을 연 건 아니겠지?”
상당히 큰 고깃덩이를 입안에 쑤셔 넣은 중년인이 턱관절을 연신 크게 움직이며 말했다.
“서, 설마요. 그럼 어차피 다 죽는 건데.”
“우리한테 죽기 싫어서 연 걸 수도 있잖아.”
“그건 아닐 겁니다. 중앙제어장치를 저희가 확보하고 있지 않습니까. 더군다나 제어기도 손상되어 저희도 전기가 끊어졌는데, 우회해서 전력을 돌리는 건 불가능합니다.”
“그래? 근데 알아보라고 보낸 녀석들은 왜 이리 소식이 없어.”
삼십 여분 전에 상황을 알아보러 보낸 부하들이 많이 늦어지고 있었다.
외부로 통하는 폐쇄 도어에서 비교적 가까운 요충지에 거점을 두고 있던 탓에 충분히 오갔을 만한 시간이었다.
“나가 있는 녀석들 몫은 빼두고 배식 시작해.”
30여 명이 넘는 이들이 큰 그릇을 들고 배식 시작을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었다.
이미 음식은 준비되었지만, 식사는 모두 함께한다는 신조를 지닌 도광수의 눈치를 보느라 배식은 늦어져 있었다.
그럼에도 도광수 본인만은 언제나 먹고 싶을 때 먹고, 원하는 만큼 먹고 있었다.
사리에 맞지 않았지만, 누구도 이를 문제 삼지는 못했다.
배식을 담당하는 이들이 큰 솥에서 날카로운 꼬챙이를 찔러 큼지막한 고깃덩이를 건져내,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기 시작했다.
“저년이······.”
배식 도중 작은 소란이 일자, 도광수는 눈을 희번덕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또 네년이냐?”
“저, 전 이게 첫 끼에요! 제가 오늘만 두 명이나 잡아 왔잖아요. 내, 내 몫은······.”
“내가 말했지, 모두가 같이 먹고 같은 양을 먹는다고, 근데 감히 네년은 내 말을 들어 처먹질 않네.”
“그, 그건.”
“정 배가 고프면, 맛있어 보이는 네년 허벅다리 고기를 요리해 줄 수도 있다. 어때? 지금 한 조각 때서 구워줄까?”
번뜩이는 도광수의 눈빛에 여자는 입안이 마르고 손이 떨려 감히 더는 말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당장이라도 도광수의 손에 들린, 날이 시퍼런 칼이 자신의 살을 저미어 질 것만 같았다.
“죄, 죄송해요. 요, 용서해주세요.”
차마 눈을 마주 보지 못한 여자가 고개를 숙이며 몸을 잘게 떨어댔다.
한참 뜯어먹던 이름 모를 사람의 팔뚝도 슬그머니 내려놓았다.
이들은 인육을 먹고 있었다.
큰솥에 삶아진 것은 사람이었고, 저마다 손에 잡고 뜯고 있는 것은 사람의 손과 팔, 다리들이었다.
이곳의 한편에는 인골이 수북하게 쌓여 있었고, 그 양으로 미루어보아 상당히 오래전부터 인육을 먹어왔음을 알 수 있었다.
“너희 셋이 가서 정찰 나간 녀석들 좀 찾아봐. 혹시 문제 있음 바로 와서 알려. 괜히 병신 짓 하다 뒤지지 말고.”
“넵!”
“무기 확실히 챙기고.”
도광수는 식사를 마친, 그나마 젊은 축에 드는 3인방에게 지시했고, 이들은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벌떡 일어서 건물을 나섰다.
“블루벨벳. 그년 몇 호에 잡아넣었지?”
“3층 7호에 가둬 놨습니다.”
* * *
성현은 3구역에 접어들어 상황이 생각보다 좋지 못하다는 것을 느꼈다.
3구역은 식량난은 있을지언정 발전 시설이 정상적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 또한 여의치 않아 보였다.
1, 2구역과 마찬가지로 빛 한 점 없는 어둠 그 자체였다.
“생존자 인가?”
미약하지만 사람들의 소근 대는 소리와 발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배식시간 다 돼서 이게 뭐야.”
“쉿-. 목소리 좀 낮춰. 다른 그룹 놈들이 주변에 있을 수 있어.”
“나타나 본들 3구역에 있는 총기는 우리가 죄다 가지고 있는데, 겁날 게 뭐 있다고.”
“아까 낮에 통신실 사건 몰라? 숨겨둔 총 한두 자루는 더 있을 수 있다니까.”
“알았다고, 조심하면 되지. 그건 그렇고 오늘 특식이라고 하지 않았어?”
“나도 들었는데, 오늘은 질긴 늙은 놈들 고기가 아니라 그나마 야들야들한 계집년들 몇 잡는다고 하더라. 식기 전에 빨리 확인하고 돌아가자.”
두 명의 무장한 이들이 어두운 중앙 통로를 경계하며 걸어갔다.
작은 손전등에 의지해 가던 2인조는 목표했던 폐쇄 도어에 다다르고 있었다.
“이, 이게 무슨 냄새야? 그보다 여기 왜 이리 더워?”
비릿한 쇠 냄새가 미묘하게 풍겼고, 급격히 올라간 대기의 온도에 의아해했다.
“뭐해. 얼른 불 좀 비춰 봐.”
3구역을 외부와 차단시킨 거대한 폐쇄 도어를 향해 빛을 비춰봤다.
“헙! 식겁했네. 저, 저 새낀 뭐여? 쏠까?”
“기다려. 다른 그룹 놈이면 데려가서 족쳐봐야지. 어이! 죽고 싶지 않으면 배때기 바닥에 깔고 엎드려.”
성현은 가만히 팔짱을 끼고 저들의 하는 행태를 지켜봤다.
그리고 곱씹어봤다.
이들이 걸어오면서 떠들던 말들을.
“니들… 사람 잡아먹었지?”
“뭐? 크큭. 들었어? 사람 잡아먹느냐고 묻는데? 크헤헤헤.”
“이것도 물건이네. 넌 특별히 내가 맛있게 꼭 먹어 줄게. 낄낄낄.”
성현을 앞에다 두고 두 놈은 손가락질하며 박장대소했다.
뭐가 웃긴 것인지 이 둘은 미친 듯이 웃어 젖혔다. 인성이 마비된 이들은 웃음 코드도 비정상적으로 변질한 듯했다.
“너희 그룹 놈들 잡는 데 잘 협조하면 우리 구원회에서 받아줄 수도 있어. 잘 생각해. 너 배불리 먹어본 게 언제야? 크크큭.”
순간, 성현은 욕지기가 밀려왔다.
잠재된 인간의 추악한 이면은, 섬뜩하리만치 잔인했다.
이들은 스스로 인간 이길 거부하고 있었다.
같은 사람을 한 끼 음식으로 치부하는 놈들과 더는 대화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팔짱을 풀고, 앞으로 한걸음 내디뎠다.
전신에서 무형의 살기가 줄기줄기 뿜어져 나와 넘실댔다.
놈들이 가진 악의의 크기만큼 거대한 분노가 폭발적으로 외부로 발산되었다.
성현의 미칠 듯이 이놈들을 죽이고 싶었다.
아니,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영원토록 겪게 해줄 형벌이 있다면, 그리해주고 싶었다.
“컥, 허업!”
성현의 살기를 접한 둘은 갑작스런 오한에 자신도 모르게 두 다리가 후들후들 떨려왔다. 그리고 이내 전신이 풍 맞은 것처럼 덜덜 떨고 있었다.
스거거거걱. 후두두둑.
검광이 번뜩임과 동시에 성현과 가까이 있던 한 놈의 몸뚱이가 수십 갈래로 잘리어져 바닥에 떨어졌다.
“니들은 악마다.”
“흐으으읍. 사, 살려.”
방금까지도 희희덕 거리고 있던 동료가 찰나의 순간 고깃덩이가 되어 땅에 떨어지자, 전신에 힘이 풀리다 못해 실례를 범했다.
바짓단을 타고 흘러내린 액체가 바닥을 흥건하게 적시고 있었다.
성현이 한 걸음 더 다가오자.
들고 있던 총기는 어느새 바닥에 떨어졌고, 자신이 실례한 자리에 털썩 하며 주저앉았다.
“니들 악마 새끼들 본거지로 안내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