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판멸망한 세계의 게이머-85화 (85/176)

# 85

브이.아이.피 (2)

“제, 제발 살려주세요.”

“살고 싶지? 그럼 이 어르신 말만 잘 들으면 살려줄 수 있다. 배부르게 먹을 수도 있고.”

“저, 저는. 머, 먹고 싶지는 않아요. 흑흑.”

“클클, 네가 아직 맛을 못 봐서 그런 거야. 우선 내 말부터 잘 들어 봐.”

도광수의 음흉한 눈빛과 달뜬 목소리가 무엇을 원하는지 모를 정도로 아이렌은 어리지 않았다.

아이렌, 본명은 이주희. 25살로 데뷔 7년 차 아이돌이었다.

세상이 이리 변하기 전엔 한류의 정점에 있는 그룹의 멤버였고, 동시에 드라마에도 출연한 나름 연기력도 갖춘 다재다능한 여성이었다.

하지만 모두가 선망하고 우러러보던 그녀는 온데간데없고, 현실은 일주일 동안 물만 먹으며 피골이 상접한 처량한 신세였다.

“흑, 흐윽.”

아이렌은 도광수의 손길이 자신의 뺨을 스치자 이를 악물었다.

처참하게 짓밟혀 비참하게 살 바에는, 차라리 다른 길을 떠올렸다.

콰쾅!

아이렌이 모진 마음을 먹고 결행에 옮기려던 순간, 큰 폭발음과 함께 건물이 지진이라도 난 듯 흔들렸다.

“……이런 썅!”

예기치 않은 상황에 도광수의 얼굴이 악귀처럼 구겨졌다.

이와 비슷한 상황이 나흘 전에도 있었다. 휴대용 부탄가스로 만든 조잡한 폭탄을 던지며 쳐들어온 이들이 있었다.

도광수는 그날과 비슷한 상황이 발생했다 여겼다.

“육시랄!”

꿈에도 그리던 아이렌을 데려왔다. 물론 그 과정에서 부하 네 명이 죽기는 했지만, 아쉬울 것 없었다.

과거 현실에서는 그저 바라만 보고, 자신과는 전혀 다른 삶 속에 있던 그녀였다.

그리고 그 아이렌을 향해 미몽에 그쳐야만 했던 일을 하려던 차였다.

무시하고 일을 치러도 부하들이 모두 모여 있던 터라 괜찮을 거 같았지만, 한껏 달아오른 몸뚱이가 식으면서 대신 불같은 분노가 솟아올랐다.

“우리 아이렌 많이 놀랐지. 걱정 말고 기다려 내가 조용히 시키고 다시 올게.”

도광수는 벗어 내리던 바지를 추슬러 입고, 못내 아쉬운 눈길로 아이렌을 한 번 더 바라보고 방을 나섰다.

“감히 내가 있는 본진을 쳐들어와. 산 채로 먹어주마. 클클.”

흥분한 도광수는 빠르게 계단을 타고 아래로 향했다.

*  *  *

콰콰쾅!

“고기 배달 왔다 이 악마새끼들아!”

성현은 3구역 입구에서 대략 200m 남짓 떨어져 있는 건물의 외벽을 부수며 소리쳤다.

그리고 여기까지 안내한 식인종 놈의 팔다리가 없는 몸통을 던져냈다.

“스, 습격이다! 어서 공격해.”

갑작스럽게 난입한 성현을 향해 겨우 정신을 수습한 몇 놈이 총구를 들어 성현을 조준했다.

타타타탕. 타탕.

사방에서 불꽃들이 튀어나와 성현을 향해 총알 세례를 퍼부었다. 허나 중화기로도 상처하나 내지 못하는데 고작 소총 따위가 위협이 될 리 없었다.

“지옥이 뭔지 알게 해주마.”

성현의 몸이 그 자리에서 꺼지듯 사라졌다.

일반인의 동체 시력으로는 쫓을 수 없는 속도로 움직인 탓에 모두가 성현을 놓치고 말았다.

스걱!

“끄아아악!”

서걱- 서거걱!

“끄아악! 도, 도와줘! 내, 내 다리! 으아악-.”

“뭐, 뭐야! 도대체 어디야!”

무언가 썰려 나가는 소리와 동시에 고통에 찬 비명이 난무했고, 1층에 있던 식인종 무리는 혼란에 빠졌다.

“시팔! 다 엎드려!”

투타타타타타.

두려움에 사로잡힌 식인종 한 놈이 사방으로 총을 난사했다. 자신 근처에는 오지 말라는 저항의 몸부림이었지만.

스카칵! 서걱!

처절한 몸부림은 성현의 좀 더 빠른 타깃이 될 뿐이었다.

성현은 총과 손을 한꺼번에 잘라내고, 발목을 함께 잘라냈다.

단 한 놈도 이곳을 빠져나가지 못하게 양다리를 잘라냈다.

3구역을 공포로 몰아넣은 가장 강한 그룹이자 식인종들의 모임, 구원회의 아지트는 순식간에 성현에 의해 와해되고 있었다.

조금은 성현에게도 운이 따랐음인지 마침 구원회의 멤버들 대부분이 배식 시간에 맞춰 모여 있었다.

성현이 발품 팔며 놈들을 일일이 찾아다니지 않아도 되는 수고로움을 덜었다.

“끄아아악!”

성현은 다리가 잘려 꿈틀대며 신음하는 한 놈의 어깨에 검을 찔러 넣고 비틀어댔다.

상처가 벌어지고 검의 날이 뼈를 갈아대기 시작했다.

“나머지 놈들 어디 있어?”

“아, 아, 아파. 끄억. 끄아아악. 위, 위층.”

“악마 새끼들 피도 붉네. 걱정 마, 네 친구들도 같은 꼴로 만들어 줄 테니까.”

쉬이이익, 쾅!

순간 공기를 가르는 날카로운 소리가 들리더니 성현의 헬멧을 강타하는 거대한 해머가 나타났다.

산사의 범종을 타종한 듯 쩌렁하는 큰 울림이 터져 나왔다.

“개새끼들이 감히 내가 있는 곳을 기습해. 넌 생으로 씹어 먹어주마. 어?”

도광수는 자신의 전력을 기울인 공격에 작은 의심조차 하지 않았다.

헌데 지금 눈앞의 모습은 문제가 있었다.

거대한 해머로 내려쳤는데 예상했던 상황이 일어나지 않았다.

“그, 그럴 리가?”

머리가 사라지고도 남을 파괴력인데 내려친 자는 처음 모습 그대로 서 있었다.

통짜 쇠로 만들어진 거대 해머가 되레 역으로 휘어 찌그러져 있었다.

성현이 천천히 몸을 돌려 도광수를 바라봤다.

“네가 식인종 대장이냐?”

성현의 고저가 없는 말에 도광수는 피부가 쩌릿할 만큼 소름이 돋았다. 실제로 성현의 가공할 살기에 살갗이 따끔거리고 있었다.

“시, 식인종이라니! 우, 우리는 신성한 구원을 한 거다.”

도광수는 범상치 않은 침입자에게 이능력을 각성하고 처음으로 두려움을 느꼈다.

그래서 어떻게든 지금의 상황만 모면하고자 되지도 않은 말을 지껄이고 있었다.

“보아하니 나와 같은 부류 같은데 우리 둘이 힘을 합···, 케액!”

도광수의 말이 채 끝나기 전 성현의 주먹이 놈의 안면에 틀어박혔다.

퍼어억, 퍼걱!

“다행이다. 쉽게 죽으면 어떡하나 했는데. 이능력자라니, 정말 다행이야.”

도광수는 성현의 말대로 육체계열 강화자였다.

원래 도광수는 3구역에 있을 위인이 아니었다.

2구역 시설 담당자였을 뿐이다.

3구역에 지원 작업을 온 상태로 극초신성 사태로 말미암아 오도 가도 못 하는 신세가 되어 남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 그가 이능력을 각성하고, 현재는 3구역에서 가장 강한 세력을 형성해 인육을 먹는 구원회를 조직해 회장이 되어 있었다.

“크으윽. 자, 잠깐! 우리끼리 이, 이러지 말고 히, 힘을 합친다면 지상을 도모하는 것도 어렵지 않을…….”

“뭐래, 이 미친 식인종 새끼가.”

“그, 그래 블루벨벳 아이렌도 주마. 혀 협조한다면, 리와이스 유하나까지 모두 주지. 어떤가?”

짐짓 큰 선심을 쓴다고 던진 말에 잠시 성현이 말이 없자 옳다구나 했다.

“······어디 있지?”

도광수는 성현이 관심을 보이는 듯하자, 잘만하면 이 위기를 벗어나는 건 물론이고, 이용하는 것도 가능하겠다 싶었다.

“우리 그럼 오해를 푸는 거···, 케엑!”

“그냥 말해 이 식인종 새끼야.”

성현은 도광수의 멱살을 잡은 손을 그대로 바닥으로 내리꽂았다.

살아만 있다면 어떻게든 찾지 못할 바도 아니었고, 이런 놈은 의외로 입이 가볍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쾅! 후드드득.

도광수의 몸이 지면을 뚫고 반쯤 파묻혔다.

그리고 성현의 검이 놈의 발끝부터 아주 얇게 포를 뜨기 시작했다.

“케에에엑! 사, 사람 살려! 사, 살려주세요.”

“뭐? 사람? 이 식인종 새끼가 돌았나? 움직이면 더 크게 썰린다. 내가 다리만 만 번 정도 썰 수 있을 거 같거든? 기대해.”

이후 성현은 한쪽 다리로 도광수를 밟고 한 손으로 다리를 잡아 자신의 의지를 관철했다.

도광수가 고통을 참지 못하고 의식을 잃자.

종아리를 파헤쳐 힘줄을 뽑고, 놈의 인두겁을 한 꺼풀씩 벗겨냈다.

극한의 고통에 다시 의식을 차린 도광수가 거의 쇼크사에 다다를 즈음 성현은 다른 놈들을 찾아 같은 행위를 반복했다.

사람처럼 말을 하지만, 짐승보다 못한 것들에게 그야말로 지옥 같은 고통을 선사했다.

“크어억, 제, 제발 너무 아, 아파. 뭐든 시, 시키는 대로…….”

“응? 그럼 계속 고통스러워하면 된다.”

시간의 흐름조차 잊고,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방법을 총동원해 식인종 무리를 고문했다.

딱히 정보를 얻기보다 고통을 가중시키기 위한 행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연스레 정보는 쌓였다.

상당히 긴 시간을 공들인 탓에 대부분이 죽지 않고, 아직 살아있었다.

출혈이 있으면 출혈을 막아주었고, 어떻게든 숨만 붙어있게 해놓았다.

오래도록 고통을 주기 위해 애를 쓴 거다.

-사령관님. 2구역까지 진입했습니다. 근데 3구역 입구에 무기 시연 때 보았던 거대 병기들이 서 있습니다.

적당한 타이밍의 무전에 평상심을 찾은 성현은 무전에 답을 했다.

“알겠다. 너희들은 지상군과 합류해서 잔여 좀비 소탕에 만전을 기해라.”

-넵. 사령관님.

이제 뒷정리를 시작할 시점이었다.

거기다.

“챙길 게 많지.”

V-1 대피소에는 다른 전국의 대피소를 모두 합친 것보다 많은 일반 물자와 군사 장비들이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개발 완료와 함께 생산은 했지만, 군에 인도되지 못한 신형 무기들도 다수 있는 상황이었다.

군 전력 향상에 크게 기여하게 될 장비들을 그냥 두고 갈 이유가 없었다.

“동원아, 듣고 있나?”

-넵. 사령관님.

“투입 시작해도 좋다. 헌데 그전에 해미를 좀 데려와야 할 것 같다.”

-아! 이미 여기 와계십니다.

“그래? 알겠다. 특수군 A팀은 지상군 합류해서 해미와 함께 3구역까지 진입하도록 한다. 이상!”

-넵! 사령관님.

터널 입구를 폭파하고 진입한 지 어느덧 2시간 가까이 지나있었다.

짧다면 짧은 시간이지만, 성현이 이 시간 동안 받은 심리적 스트레스는 극심하다 할 수 있었다.

인간의 탐욕과 이기심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인성을 상실한 식인행위는 충격 그 자체였다.

같은 인간이, 그것도 살아있는 이들을 한낮 한 끼 식사 거리로 보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지 이해되지 않았다.

이야기로 듣는 것과 직접 대면해서 보게 되는 느낌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어떻게 한두 명도 아니고…….”

성현은 식인종 무리를 1층의 한 공간에 모았다.

모두 35명, 처음 두 명과 조우해 한 놈을 수십 등분해버렸고, 그놈을 포함한다면 36명이나 되었다.

이중 몇몇은 옮기는 도중에 숨이 끊어진 놈도 있었지만, 개의치 않고 모두 한곳에 모았다.

“원래 인간이 이리 변할 수도 있는 건지, 아니면 사태 이후에 변화가 있었던 건가.”

차라리 극초신성 사태로 인해 인간에게 변화가 생겼다는 가정을 하고 싶었다.

인간이 가진 내면에 원래부터 악마가 존재한다고는 믿고 싶지는 않았다.

-사령관님. 3구역 입구에 도착했습니다.

-아저씨~ 나 데리러 와요. 여기 검나 어두워요.

“알겠다. 금방 가마.”

성현이 해미를 청한 이유는 이 식인 무리를 살리려 함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살려가면서 계속해서 고통을 주는 방법도 고려하기도 했지만, 그건 해미에게도 못 할 짓이었다.

차라리 묻어 두기로 했다.

이 같은 사실이 공공연하게 퍼져 제주 영지의 주민들까지 알게 되면, 혼란만 가중될 뿐이었다.

“제발 지옥이 있어서, 네놈들을 반기길 빈다.”

툭툭툭툭, 푸화화확!

성현은 K-M14 소이수류탄 5개를 꺼내 한 방에 모아놓은 식인종 무리들에게 던지고 문을 닫았다.

소이수류탄은 최대 2200도의 고열을 내뿜어 0.5인치(2.54cm)의 금속판을 삽시간에 녹여버릴 수 있었다.

그 지속 시간 또한 상당히 긴 35초로 사람은 뼈조차 남기지 않고 증발시켜버리는 무시무시한 수류탄이었다.

어찌 보면 괴랄 한 죽음이 되겠지만, 누구도 성현을 욕할 수는 없을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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