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판멸망한 세계의 게이머-89화 (89/176)

# 89

외유(外遊) (3)

성현은 제주에서 출발해 광양 영지와 광양만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는 여수 국가산업단지에 와있었다.

“불필요한 땅이 많긴 하지만…….”

여수 국가산업단지를 포함한 새로운 영지의 모양은 반쪽짜리 다이아몬드 형태를 띄우고 있었다.

반드시 필요한 지역은 북쪽과 북동쪽 해안가에 위치해 있고, 아래의 여수 신항까지 연결하다 보니 이러한 형태가 나온 것이다.

영지의 형태는 차제에는 배편을 이용한 운행을 염두에 둔 포석이라 할 수 있었다.

해안선을 따라 석유 운반선의 개별 도크(dock) 가 있는 만큼 정제유는 선박을 통해 직접 운반할 계획을 세워두었다.

“불편하더라도 내게 의지하는 방법은 차츰 배제하는 게 맞아.”

자신의 일을 줄이는 방편으로도 그편이 좋았다.

물류의 이동은 조금 더딜지라도 자신이 없다는 가정하에 그 기반을 세워둬야 했다.

“그나마 가져오는 일은 안 해도 되니, 어차피 일의 반은 내가 해주는 것과 마찬가지네.”

원유는 별도의 운반이 필요치 않았고, 성현의 능력으로 저장시설을 ‘자원 채취’ 저장창고로 지정하면 되었다.

이후 여수 영지를 만드는 것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한두 번 영지를 만들어 본 것이 아닌지라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 순식간에 성벽이며, 방어에 필요한 수성 병기 설치를 끝마쳤다.

이로써 성현의 4번째 정식 영지가 탄생하게 되었다.

“이제 진해만 들렀다 가면 되겠다.”

여수에서 100㎞ 떨어진 진해에 들러 필요한 물건만 챙기면, 황해를 넘어 중국으로 갈 준비는 모두 마칠 수 있었다.

*  *  *

성현은 진해 해군기지 상공에 도착해 있었다.

“저게 새로 진수된 상륙함인가?”

상공에서 내려다보는 진해 해군기지의 도크는 크고 작은 함정들로 빼곡하게 채워져 있었다.

그중 다른 배들을 압도하는 커다란 선체를 가진 함정이 성현의 눈에 들어왔다.

대한민국이 F-35B를 도입하면서 진수한 것으로, 와스프급 ‘단군천왕’함이었다.

정식 항모라 할 수는 없지만, 전장이 250m에 이르고, 비행갑판의 폭이 42m나 되었다.

특히 함교 구조물의 크기가 작아지면서 비행갑판이 더욱 넓어져 F-35B 전투기가 갑판에서 이동하고 활주하는 데 불편함이 없었다.

4만 2천 톤(t)급의 상륙함을 진수했지만, 극초신성 사태와 맞물려 제대로 운용한 번 해보지 못하고 지금 진해항에 정박해있었다.

“저기에 있다는 말이지.”

성현은 VIP-1 대피소에서 여태껏 알지 못했던 고급 정보들을 획득했다.

더군다나 우리나라뿐만이 아니라, 타국의 극비에 해당하는 기밀 사항들에 대한 정보들도 상당수 있었다.

이로 미루어보아 우리나라의 정보력이 영 맹탕만은 아님을 알 수 있었다.

“흐음. 착륙할 곳이 마땅찮은데.”

해군기지 인근에 전투기를 착륙할만한 곳이 보이지 않았다.

더군다나 단거리 이착륙(STOL)방식이 채택되지 않은 3세대 전투기인 KF-16 인지라 상륙함의 휑한 갑판이 있다 한들 착륙할 여지가 없었다.

KF-16은 최소 1㎞ 이상의 활주로가 있어야만 착륙이 가능했다.

“뭐, 어쩔 수 없지.”

성현이 지체 없이 비상 탈출레버를 당겼다.

이제는 고철 취급을 받는다지만, 엄연히 현역 기체인 KF-16을 일회용으로 사용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퍼펑!

캐노피에 장착된 로켓 부스타가 작동해 기체에서 분리되어 날아갔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좌석이 사출되었고, 이후 성현과 좌석이 따로 분리되면서 낙하산이 활짝 펼쳐졌다.

“휘유~ 어차피 다 쓰지도 못할 만큼 많긴 하지만, 아깝기는 하네.”

주인 잃은 전투기가 바다로 향해 곤두박질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다소 바람이 강하게 불어 낙하산이 크게 흔들렸지만, 바다 위에서 추락한다 해도 그다지 두렵거나 공포가 느껴지지는 않았다.

외려 스릴감이 있어 기분 좋은 상쾌함을 가질 수 있었다.

“방향 좋고.”

낙하 데미지는 고려 대상이 아닌 터라 성현은 빠르게 원하는 방향만을 조정했다.

낙하산은 45도 각도로 빠르게 지상을 향해 떨어졌다.

상공 1㎞ 부근에서 비상 탈출한 탓에 낙하산을 펼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목표했던 지점에 거의 다다르고 있었다.

쿵.

강습상륙함 갑판에 묵직한 소리가 낮게 울렸다.

착지 후 간단하게 낙하산을 벗어낸 성현은 이리저리 둘러보다 갑판의 현측에 있는 비상용 도어를 열고, 아래로 내려갔다.

철제 계단을 밝고 내려가길 잠시, 어두컴컴한 상륙함 내부가 성현을 반겼다.

성현은 안력을 돋우어 주위를 살폈다.

빠르게 어둠에 적응된 시야에 차츰 주변의 상황이 일목요연하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역시!”

강습 상륙함 선내 기체 수납 창에 F-35B 12대가 날개를 접은 체 고이 모셔져 있었다.

2018년 최초 2대를 도입해 이후 매년 10대 정도를 추가로 들어온 F-35는 그중 12대가 해군에 인도되어 지금 이곳에 있었다.

개별 컨베어 선반 위에 있는 기체에 다가간 성현은 거침없이 손을 뻗어 기체들을 자신의 창고로 이동시켰다.

“이제 전투기 버릴 일은 없겠네.”

굳이 F-35B를 구하러 온 까닭은 중국에서 자주 이착륙을 해야 하는 상황에 대비키 위해서였다.

그에 걸 맞는 기체가 필요했다.

수직 이륙은 사실상 성현이 활주로를 만들 수 있기에 필요가 없지만, 수직 착륙이 가능한 전투기가 필요했다.

즉, 해리어(Harrier)나 F-35B와 같은 STOVL(단거리 이륙 및 수직 착륙)이 가능한 기종이 필요했던 거다.

매번 착륙이 어려워지면 전투기를 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거기다 착륙장을 찾는 번거로움을 덜 수도 있어 일석이조라 할 수 있었다.

“근데 이것도 챙겨가?”

성현은 F-35B를 모두 수납하고, 다시금 갑판에 올라 ‘단군천왕’함을 보며 중얼거렸다.

당장 사용처가 없다지만, 언젠가 필요에 의해 찾을 일이 있을 수도 있었다.

“어라 안 들어가네.”

성현이 손을 단군왕검함에 대고 수납하려 했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창고에 들어가지 않았다.

처음 있는 일에 살짝 당황한 성현은 소리 내어 수납, 입고, 등등을 외쳐보지만, 역시나 캐릭터 창고에 넣을 수는 없었다.

“너무 큰가? 근데 여객기는 들어가 졌잖아? 일정 크기 이상이면 안 된다는 건가?”

에어버스 A380 같은 대형기체도 창고에 들어갔지만, 강습 상륙함과 크기만 수십 배는 되는 터라 단순 비교 대상이 될 수는 없었다.

만능 창고가 거부하는 일이 발생하니 왠지 모르게 상처받은 느낌이 들었다.

“이거 배신당한 기분인데.”

믿고 있었건만, 그런 자신의 창고가 자신을 배신한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성현은 상륙함에서 하선해 주변에 정박 중인 다른 함정들을 살펴봤다.

“이것도 안 들어갈려나?”

호위함(FF)급 마산함이었다.

선체의 길이가 102m, 1,500톤(t)으로 호위함 중에서는 중소형 급의 함정이다.

“어 들어가네.”

급히 창고를 열고 수납된 마산함을 확인한 성현은 걸음을 재촉해 다른 함정들로 향했다.

구축함(DDH-I) 을지문덕함, 구축함(DDH-II) 대조영함과 최영함까지 창고에 넣은 성현은, 마지막으로 이지스구축함(DDG)인 서애류성룡함까지 넣고서야 더는 창고에 함정들을 채워 넣지 않았다.

“준 항모 정도부터는 안 되고, 일단 7천 톤급까지는 다 들어가네.”

성현은 창고의 수납에 제한이 되는 부분이 두 가지 중 하나로 파악했다.

무게 또는 크기에 제약이 있음이었다.

하지만, 정확히 무게 기준인지 크기를 기준으로 하는 것인지 더는 비교할 물건이 없어 그칠 수밖에 없었다.

일단 최소 7천 톤, 그리고 길이가 150m 되는 물건은 들어감을 알았다.

“지금은 이 정도 확인한 걸로 만족하자.”

시험 삼아 넣어 본 것에 불과하지만, 이왕지사 챙긴 것은 제주에 가져다 놓을 작정이었다.

제주 군항에는 전함들이 없어 좀 아쉬운 것도 있던 차에 이번에 가져다 놓으면 좋을 듯했다.

“이제 여기서 마침표 찍고, 황해 건너가면 되겠다.”

성현은 시선 상단 우측에 있는 영지 관리창을 열고 ‘영지 선포’를 클릭했다.

[영지 귀속 완료]

[영지의 이름을 부여해 주시기 바랍니다]

영지 귀속 카운트가 권위 스텟에 힘입어 없어지고, 즉시 영지화가 이루어졌다.

성현은 역시나 무성의한 이름을 영지에 부여했다.

[영지 이름을 ‘깡통’으로 지정하시겠습니까? (수락, 거부)]

이 영지는 어차피 후작이 되기 위한 의미 없는 영지일 뿐.

이름 따위는 어떻든 상관이 없었다.

[영지 ‘깡통’이 귀속되었습니다]

[기존 거주민들이 영지민 신청 자격을 얻습니다. 신청을 수락하지 않은 거주민은 24시간 후 영지에서 퇴거 됩니다. 또한 영주나 권한을 위임받은 가신이 직접 영지민을 거두고, 퇴거할 수 있습니다.]

이전과 다르지 않은 메시지 창이 뜨고, 예전처럼 영지민 수락을 요청하는 창은 떠오르지 않았다.

그리고.

[권위 50달성 및 영지 3개 소유, 승급 조건 충족]

[‘후작’으로 승급하였습니다]

[전 스텟 +50의 특전을 얻었습니다]

드디어 현재 가질 수 있는 최상의 조건을 모두 가춘 성현이었다.

[박성현]

레 벨 : 31   (EXP 48.28%)

직 업 : 무기 전문가 [1차 전직]

계 급 : 백작

근력 12 (+10,+93) → 115 ▲

민첩  9 (+10,+93) → 112 ▲

내성  9 (+10,+93) → 112 ▲

마력  5 (+10,+93) → 108 ▲

체력 14 (+10,+93) → 117 ▲

권위 60 (+10,+93) → 165 ▲

보너스 스텟 : 0

추가된 특전으로 모든 스텟이 50가 올랐다.

스텟치만 보면 과거 게임상의 최정상의 랭커들도 감히 명함도 못 내밀 만큼의 어마어마한 수치였다.

번쩍!!

“허어업!”

성현의 전신에서 눈이 아릴 정도의 광휘가 번뜩이며 퍼져 나왔다.

[근력 100 돌파에 따른, ‘무기 전문가’ 특수스킬을 각성합니다. 스킬창을 확인해주세요.]

[민첩 100 돌파에 따른, ‘무기 전문가’ 특수스킬을 각성합니다. 스킬창을 확인해주세요.]

[내성 100 돌파에 따른, ‘무기 전문가’ 특수스킬을 각성합니다. 스킬창을 확인해주세요.]

.

.

눈앞을 뒤덮는 메세지창을 살필 겨를도 없는 성현은 전신에서 폭주하는 미증유의 힘에 이끌려 서서히 공중으로 부양하고 있었다.

꽈과과광!

뇌리에서 터지는 최초의 빅뱅과 같은 대폭발이 성현의 머리를 헤집고 다녔다.

그 폭발은 머리에서 시작되어 삽시간에 전신으로 퍼져나갔고, 세포 한 올 한 올까지 세세히 훑으며 지나갔다.

무한히 샘솟던 추측 불가의 힘이 차츰 안정되기 시작했다.

그에 따라 눈부신 광휘도 옅어지기 시작하더니 성현의 육체를 서서히 지상으로 다시 내려놓고 있었다.

“으아아아아-!”

고도로 압축된 근원을 알 수 없는 힘이 성현을 기준으로 해서 거대한 동심원을 그리며 퍼져 나갔다.

쿠콰콰콰-!

성현의 발아래 지면이 폭삭 내려앉으며, 거대한 크레이터를 생성해냈다.

주변의 땅과 건물 외벽에 금이 ‘쩌적’하며 곧 주저 않을 것처럼 휘청거렸고, 멀리 떨어져 있던 파도가 크게 밀려 나가며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수 초간 힘을 발산한 성현은 한쪽 무릎을 꿇고, 바닥에 손을 짚었다.

“하아, 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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