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1
뉴클리어 (2)
성현은 왼쪽 스틱의 조작버튼을 눌러 호버링 모드로 전환해 전장을 살피고 있었다.
F-35B 전투기의 호버링은 전투 헬기 때와는 달리 레버와 페달을 계속해서 조작할 필요가 없었다.
버튼 한번으로 내장된 컴퓨터가 기체를 제어해 수평을 유지하며 정지 비행을 도왔다.
“치열하기는 한데, 오래 버티긴 힘든 상황이야. 지원을 기다리는 건가?”
중공군의 주특기인 인해전술을 카피한 좀비들의 전술이 상당히 먹혀들고 있었다.
앞을 가로막는 건 동족이고 뭐고 할 것 없이 짓밟고, 뛰어넘어 맹목적으로 전진에 전진을 거듭했다.
시가지의 너른 대로는 이미 좀비들의 사체로 산을 이루고 있고, 그 산을 넘어 좀비들은 끊임없이 달려들고 있었다.
“뭐야?”
상당히 떨어진 위치에서 지상의 전투를 지켜보던 성현은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시가지의 대로를 막는 바리케이드를 경계로 치열하던 전투는 일순간 정지했고, 중국군이 빠르게 전장을 이탈하기 시작했다.
“순차 퇴각도 아니고 적을 지척에 두고 전원 퇴각이라니…….”
저 상태라면 피해가 속출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해 보였다.
“누가 당나라 군대 아니랄까봐. 쯧쯧.”
당연히 좀비들의 달리는 속도는 인간보다 빨랐고, 후미의 부대는 거의 괴멸할 것이었다.
선두가 차례로 번갈아가며 후미를 엄호해 퇴각을 도와야 했지만, 기갑차량을 비롯해 보병들조차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앞만 보고 달려 나갔다.
“그나저나 저 정도의 군세를 갖추고 있다면 목표했던 곳에는 더 많은 군인들이 있을 거 같은데.”
생존율이 높다고 생각했지만, 이정도의 전력을 유지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성현은 방금 중국군이 전부가 아닐 것이라 단정했다.
현장 지휘관은 미치지 않고서는 저런 멍청한 명령을 절대 내릴 리 없었다. 전투 교본을 보지 않더라도 기본은 해야 장교가 될 수 있음이다.
틀림없이 상위 계급에 있는 자가 현장 상황을 제대로 알지 못한 상태로 내린 지시로 봐야 했다.
“차라리 더 북상해서 2포병 본진을 털까?”
중국의 제2의 만리장성(지하 만리장성)이라 알려진 곳에 제2포병의 본진이 있었다.
허베이 지역(베이징을 기준으로 둘러싼 지역)산악지대에 총 연장 5,000㎞에 달하는 지하에 네트워크(터널)가 실제로 존재했다.
이는 핵 선제공격에 대한 대비와 더불어 군사 자원의 생존율을 높이기 위해서 만들어진 곳이었다.
산 밑 수백 미터 지하에 위치해 있고, 성현은 그중 2곳의 출입로를 알고 있었다.
이 정보 또한 대한민국 정부가 V-1 대피소를 건설할 당시 저장해둔 정보를 성현이 얻게 되면서 알게 된 사실이었다.
“헌데, 거기도 생존한 이들이 있을 거 같단 말이지.”
초대형 터널을 그냥 놀리고 있을 리가 없었다.
극초신성 사태가 발발함과 동시에 그곳은 유력한 생존지가 되어 있을 것이었다.
성현이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중국군은 이미 수 킬로미터를 벗어나 있었다.
그리고 그 뒤를 쫓는 좀비들이 마치 한 부대처럼 느껴질 정도로 거리가 가까웠다.
“으응?”
성현의 시야에 상공에서 떨어져 내리는 희고 뾰족한 물체가 나타났다.
가히 엄청난 속도였다.
“……설마? 탄도탄!”
탄도미사일일 거라고 추측되는 미사일 1기가 성현과 불과 500m 떨어진 곳에 내리꽂히고 있었다.
성현은 초인적인 동체 시력으로 미사일의 표면의 글귀를 간신히 읽을 수 있었다.
“미친! 둥펑 15호? 핵?”
번쩍-!
또 하나의 태양이 지상에 강림했다.
섬광과 함께 상상을 초월하는 압력이 성현이 탄 전투기를 덮쳐왔다.
폭심지에 350만 파스칼(초대형 태풍의 35배)의 초고기압이 생성되면서 음속을 넘는 속도로 모든 것을 찰나의 순간 빨아들였다.
그리고 인지할 틈도 없이 거대한 폭발로 화했다.
‘크으윽. 이런 개 같은.’
성현의 몸은 지상 수 킬로미터 상공으로 치솟는 중이었다.
손 쓸 틈도 없이 핵폭발에 휩쓸리면서 현재 거대한 버섯 구름 중심부에서 계속해서 상공으로 날아오르는 중이었다.
[HP 20% 미만, 10초간 ‘절대 무적’이 시전됩니다.]
[HP가 100% 회복됩니다.]
[10, 9, 8, 7, 6, 5······.]
초월 스킬 중 마력을 한계 돌파하며, 얻은 스킬이 시전 되어졌다.
전신을 찢어발기고 불태우던 고통이 일순간에 사라지면 정신 또한 명료해 졌다.
‘이 미친 새끼들 지들 아군도 수천이나 있는 상황에서 핵이라니!’
인류 역사상 전무후무한 일을 겪고 있는 중이었지만, 속에서는 두렵기 그지없었다.
분명 같은 중국에서 발사된 미사일인 게 분명했다. 같은 민족 동포가 영향권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저런 선택을 했다면, 아군이 아닌 이들에게는 어떠한 짓을 벌일지 알 수 없었다.
이런 자들과 적대적으로 만나게 된다면, 성현은 생각만으로도 오금이 저릴 지경이었다.
제주에 저런 핵미사일이 날아든다는 상상만으로도 아찔해졌다.
“내 반드시 돌아오마!”
성현은 무적 카운트가 1이 남은 시점에서 즉시 귀환을 선택했다.
* * *
성현은 관사로 긴급 귀환을 하고, 빠르게 주변을 살폈다.
다행히 줄리는 없었다.
“휴우-.”
그리고 무전으로 해미를 급히 찾았다.
자신에게 방사능은 ‘상태이상저항’ 능력에 따라 무해했지만, 다른 이들은 달랐다.
그리고 혹 방사능의 2차 오염이 된다 하더라도 해미만 있다면 걱정할 필요가 없기도 했다.
그래서 마음 놓고 긴급 귀환을 했지만, 혹시나 집에 줄리가 있어 방사능에 작은 고통이라도 받지 않을까 내심 염려했던 것이다.
무전을 보내고 10여 분이 되지 않아 해미가 관사로 돌아왔고, 광역 정화를 펼쳐 관사와 성현을 한 번에 정화했다.
성현의 복귀 소식이 알려지자 군위원회 간부들이 신속하게 모여들었다.
그리고 성현이 전한 소식을 듣고 모두 소스라치게 놀랐다.
중국의 군사력이 현존하고 있다는 사실에 조금 놀랐지만, 그럴만하다고 생각했다.
그 세력이 작지 않다는 것을 듣고는 역시나 하는 그 정도에 불과했다.
하지만, 끝으로 놈들이 자국에 핵폭탄의 사용했다는 사실에서는 모두 입을 다물지 못했다.
“너무 위험한 놈들입니다. 그런 성향을 가진 놈들이라면 언제가 되었든 반드시라고 할 만큼 저희와 마찰이 있을 게 뻔합니다. 대책을 세워야 할 것 같습니다.”
“핵폭탄을 자국의 영토에서 터트리는 것은 어쩌면 불가피했다고 치부할 수 있지만, 아군을 희생시키면서까지 행동함은 분명 문제가 있습니다. 할 수만 있다면 저는 선제공격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최동원은 원론적인 이야기로 대책을 강구 하겠다 했지만, 의외로 온화한 성품의 조만호가 강경한 발언을 했다.
그만큼 핵이라는 단어가 주는 공포는 모두가 두렵기 그지없었다.
“저도 핵 사용에 제약이 있던 과거라면 걱정이 크게 없겠지만, 작금의 상황은 그렇지 못하다는데 크게 우려스럽습니다. 핵 탈취가 어렵다면 사용을 못하게 만들어 놓아야 어느 정도 안심이 될 거 같습니다.”
수하들이 저마다 의견을 개진하는데 성현은 잠자코 듣고만 있었다.
핵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며, 핵폭발 직전의 상황을 다시금 되새겨 보고 있었다.
수백만 개의 카메라 플래시가 눈앞에서 터진 듯 온 세상을 빛으로 가득 채웠다.
찰나의 순간 탄화해 버릴 만큼 강력한 초고열과 상상을 초월하는 압력.
자신이 아닌 그 누구도, 하물며 해미라 해도 결단코 무사하지 못할 것이었다.
‘핵 앞에 아이템인 방어구도 무용지물이다. 핵 앞에는 모두가 평등해.’
성현 자신만 빼고는 그랬다.
만약, 성현도 후작이 되어 초월 스킬을 얻지 못했다면, 그야말로 개죽음을 당했을 것이었다.
자신이 중국으로 건너간 타이밍이 최악이었다면, 후작계급을 얻은 것은 천우신조(天佑神助)라 할 만했다.
“모두 잘 들었다. 지금 당장 결론을 내리기는 어렵다고 본다. 나도 오늘은 다시 제주를 벗어날 생각이 없으니 내일 다시 이야기하도록 하자.”
성현은 모두를 돌려보내고, 홀로 남아있었다.
사실 부하들에게 말하지 않았지만, 성현은 이미 결론을 내려둔 상태였다. 하지만, 바로 자신의 결정을 전하지는 못했다.
할 일은 정해졌지만 어느 정도 선에서 마무리를 해야 할지 아직 내적 갈등이 있었음이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핵무기 억제력이 없다면, 스스로가 억제력을 가질 수밖에는 없다는 것이었다.
“그냥 내주면 좋겠지만, 그럴 리 없겠지. 협상한다고 될 일도 아니고···. 많은 이들이 죽고 다칠 테지만, 할 수밖에 없다.”
누군들 자신의 물건을 함부로 내줄리 없었고, 그것을 더군다나 핵무기를 빼앗으려 한다면 이는 죽기 살기로 덤벼들 것이었다.
공포에 질린 사람은 과격해지고, 자기방어가 무척이나 심해진다.
성현은 두려웠다.
자신 주변의 누군가를 다시 잃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 자체에 진절머리가 쳐졌다.
너무 앞서간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일순 들기는 했지만, 잠깐에 불과했다.
지금이라도 당장 저 상공에서 핵탄두가 떨어질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 몸서리를 쳤다.
핵폭발의 현장을 몸소 경험한 성현의 뇌리에 강력한 이미지로 남아, 쉽사리 떨쳐지지가 않았다.
당장이라도 중국 대륙으로 건너가 핵무기를 거둬들이고 싶었지만, 지금은 참아야만 했다.
혹여나 다시금 자신의 부근에서 핵이 터진다면, 지금으로서는 본인의 안전조차도 보장할 수 없었다.
“하루다. 하루만 참자.”
성현은 관사로 돌아가 뜬눈으로 밤을 지새워야 했다.
* * *
다음날. 성현은 일요일을 맞아 오전에 줄리와 놀아주며 시간을 보냈다.
줄리와 시간을 보내는 동안 성현의 결의는 좀 더 확고해 졌고, 그 결과는 다른 이들에게는 참혹하게 나타날 것이었다.
그리고 해미에게 대부분의 골드를 넘겨받은 성현은 무적 스킬의 재사용 대기시간이 돌아옴과 동시에 관사를 나섰다.
그리고 군위원회 간부들에게 짧은 말을 남기고, 제주도를 떠났다.
“중국에서는 두 번 다시 핵을 쓸 일이 없을 거다.”
성현이 자기중심적인 성격에 가깝지만, 타인에게 이유 없이 해를 끼치는 경우는 없다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다시 중국으로 향하는 성현은 이전과는 달랐다.
“내가 악마가 되어야겠다.”
핵미사일과 탄도탄 모두를 수거하던지, 그도 아니면 두 번 다시 사용을 못하게 반드시 파괴할 작정이었다.
이는 피를 볼 수밖에는 없었다.
단 하나의 핵을 남겨두는 순간 단잠을 이룰 수는 없었다.
성현의 전투기가 황해를 건너 다시 칭다오시에 다다른 건 오후 5시가 갓 지난 시간이었다.
여기서 핵미사일이 떨어진 쯔보시시까지 약 200㎞ 거리.
“최대한 정보를 캐내고 속전속결로 끝낸다.”
성현은 핵이 투하된 쯔보시를 관통해 곧장 제남 방향으로 향했다.
앞서 쯔보시에서 퇴각하던 중국군이 향한 방향을 토대로 목적지를 정했다.
1차 목적지는 쯔보시에서 퇴각한 군대의 본대를 찾는 것이었고, 이후 중국 전역을 돌며 핵을 모두 회수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정보가 부족했다.
대한민국의 정보부가 생각 이상으로 제법 유능하다고는 하지만, 가지고 있는 정보들은 한계가 있었다.
중국의 고위직 인사에게서 정보를 얻어내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