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3
대륙에서 (2)
-주인. 명령을 내려달라.
“…….”
성현은 흠칫하며 주위를 돌아봤다.
-주인. 명령을…….
“지, 지금 네가 나한테 말을 건 거야?”
성현은 뜨악한 표정으로 상공에 부유중인 스컬 드래곤을 바라봤다. 무인병기 정도로 취급했던 병기들이 자신에게 말을 걸어왔다.
-주인. 저급한 언어로 말을 하지 않아도 된다. 생각만 해도 우리에게 전달 가능하다.
‘이, 이렇게? 들려?’
-그렇다. 우리는 오감을 사용하지 않고 생각과 감정을 공유할 수 있다.
‘내가 처음 능력을 각성하고 나서 아마 지금이 가장 놀라지 않았나 싶다. 정말 대단해!’
성현은 무생물에 불과한 여타의 병기들과 달리 스컬 드래곤을 하나의 생명체로 받아들였다.
스스로의 생각하고 의지를 표현하였다.
대화가 수동적이지 않고 대단히 능동적으로, 자신의 존재를 명확히 표현한 것이다.
하나의 인격체로 여기는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게이머의 시스템에 힘입었다고는 하지만, 자신의 손으로 생명체를 창조했다는데 경악해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정도의 감탄은 받을만하다고 생각한다. 내 자아의 존재감이 그렇다고 이야기한다.
‘너희들은 어디서 온 거냐? 혹시 다른 세계에 있다가 나타난 거나… 그런 거 아냐?’
지금까지 게이머의 시스템에 대해 품고 있던 의문이 어쩌면 이들로 인해 풀리지 않을까 하는 심정으로 물어봤다.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군, 주인이 우리를 창조하지 않았는가?
‘그, 그래? 내가 만들긴 했지만, 혹시나 해서… 아하하.’
혹, 지구와 다른 차원에서 존재하는 이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지만, 그건 아닌 듯했다.
-주인. 적의를 품은 인간들이 다가오고 있다.
성현과 스컬 드래곤의 대화가 계속되는 도중에도 전차부대와 거신병들의 진군은 계속되고 있었다.
그때였다.
슈아아-. 콰콰쾅!
스컬 드래곤의 등짝에 미사일 수기가 직격하며 터져나갔고, 이내 창공을 가로지르는 전투기들이 눈에 들어왔다.
캄캄한 밤하늘이지만, 성현은 대낮처럼 바라볼 수 있었다.
‘괜찮나?’
-주인. 저런 조잡한 공격 따위는 우리의 본체는 물론 마력장에 흠집 하나 내지 못한다.
스컬 드래곤 말처럼 투명하지만, 푸른빛의 외력이 보호막처럼 발생해 있음을 성현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성현은 선회 중인 전투기를 바라봤다.
‘니들, 저거 잡을 수 있겠어?’
-주인. 성가실 정도로 빠르긴 하나 크게 문제 될 건 없을 거 같다.
‘좋아. 가라!’
거대한 스컬 드래곤이 성현에게 숙이고 있던 고개를 창공을 향해 높게 치켜들었다.
-주인. 다녀오겠다.
두 마리의 스컬 드래곤이 뼈만 앙상히 남은 거대한 날개를 활짝 펼치고 서서히 날갯짓을 시작했다.
날갯짓과 이동속도의 상관관계가 없는 양 느린 날갯짓에도 불구하고 스컬 드래곤은 가공할 속도로 상공으로 치솟고 있었다.
선회비행으로 다시 공격 방향을 잡던 젠-20 전투기 5대가 고속으로 접근 중인 스컬 드래곤을 발견하고, 다급히 미사일을 발사했다.
그리고 밤하늘에 레이저 쇼가 펼쳐졌다.
공격 사거리가 마력 포탑의 4배, 2㎞에 이르는 스컬 드래곤의 광선 공격이 시작되었다.
스컬 드래곤의 입 주위에 광입자들이 차츰 모여들더니 굵직한 빛줄기를 뿜어냈다.
상공에 빛의 길이 열림과 동시에 날아오던 미사일들을 모조리 요격되었고, 사정거리에 들어온 젠-20 전투기들을 타격해 공중 폭발을 일으켰다.
크롸롸롸!
밤하늘을 수놓은 짧은 불꽃의 향연이 끝나고, 창공을 오롯이 지배한 스컬 드래곤의 포효가 터져 나왔다.
“와 역시나 골드 값은 해주네.”
만약 일정 거리를 두고 치고 빠지는 차륜전의 전술을 구사했다면 좀 더 시간이 걸릴 상황이었다.
다만 첫 전투였고, 전투기들은 스컬 드래곤의 공격 사거리를 알지 못해 근접한 상태 그대로 광선 공격을 모두 허용하고 말았다.
다섯 대의 전투기를 처리하는 데 도합 3분이 채 걸리지 않은 믿지 못할 전투였다.
그리고 이제부터 본격적인 전투를 알리는 포성이 지상에도 울려 펴졌다.
꽈과과광!
포진지에서 견인포와 자주포 공격이 마력 포탑과 거신병이 있는 자리에 떨어졌다. 정확도가 많이 떨어진다지만, TOT 일제사로 인한 광역공격은 그 효과가 확실히 있었다.
성현의 지근에서도 포탄이 터져나갔지만, 그 피해는 미미했다.
하지만 성현과 달리 마력 포탑과 거신병의 내구도는 뭉텅이로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아무리 사기적인 능력이라도 현대전에 있어서만큼은 불리함을 여실히 드러냈다.
“흐음. 이건 그다지 원한 바가 아닌데… 수리비 더 들어가기 전에 일단 회수하는 게 좋겠다.”
예상보다 적들의 무기 사정이 괜찮다 못해 상상 이상으로 좋았다.
전투기와 포병 운용이 가능한 야포까지 사용이 가능할 줄은 성현도 예상치 못한 바였다.
당장 크게 훼손된 마력 포탑과 거신병들을 성현은 창고에 수납하기 시작했다.
적을 위압할 목적으로 꺼내 두었지만, 3급 병기들은 초장거리 타격이 가능한 현대무기들에 맞추기 쉬운 표적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수리에 드는 골드가 아까운 건 당연했고, 목적한 바를 이룰 수 없는데 무리할 필요는 없었다.
-주인. 도움이 필요한가?
‘우선 지금 이곳을 공격하는 곳을 찾아 모조리 부셔 놔.’
-주인. 다녀오도록 하겠다.
하늘 높은 곳으로 날아오른 스컬 드래곤 두 마리가 각기 다른 방향으로 흩어져 나가는 것을 지켜본 성현은 자신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뭐, 전멸? 그럴 리가!”
한웨이거 상장은 5대의 스텔스 전투기 젠-20을 모두 잃었다는 소식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전투기와 전폭기 등 수백 대에 이르는 전력이 존재했지만, 지하 격납고에 있던 젠-20을 제외한 거의 모든 기체들의 전자기기가 먹통이 되면서 사용이 불가능했다.
사실상 운용이 가능한 전투기의 태반이 날아간 것이다.
“하늘을 나는 초대형 요괴입니다. 공대공 미사일에는 흠집조차 나지 않는다 합니다.”
“지대공 미사일로 요격은?”
“그게… 포진지 두 곳이 동시 공격받는 바람에 미사일 발사 차량 전부가 파괴되었다고 합니다.”
“이게 도대체가…….”
어렵사리 구축해둔 제남의 장벽을 소리소문없이 돌파한 정체불명의 전차와 로봇 부대는 야포 공격에 전멸한 것으로 추정되었지만, 갑작스레 등장한 대요괴 두 마리로 인해 이들은 극심한 혼란이 빠져들고 있었다.
그때였다.
두-둥!
“……이건 또 뭐야?”
웬만해서는 한웨이궈 상장 앞에서 요란을 떨지 않던 지휘관들이 모두 놀라 웅성거리고 있었다.
거대한 울림이 귀가 아닌 머리에서 울려 퍼졌다.
“응? ‘살고 싶으면 영지민 신청 수락을 눌러라 영지’의 영지민 신청을 하시겠습니까? 이건 도대체 무슨? 당장 도인들을 만나야겠다. 그들의 도움이 필요해!”
이들의 눈앞에 나타난 반투명한 창은 성현이 영지선포와 동시에 영지가 귀속됨으로써 나타난 창이었다.
성현은 짓궂게도 영지의 이름을 ‘살고 싶으면 영지민 신청 수락을 눌러라’로 정했고, 이를 그대로 읽어낸 한웨이궈는 사술이라 치부하여 이능력자들 도움이 필요함을 느꼈다.
* * *
“영지 이름이 다들 마음에 안 들었나 보네 효과가 미미해.”
성현은 시야 구석에 밀어 놓은 영지민 수락창을 보며 혼잣말을 했다.
“내가 직접 한자로 작성할 필요도 없고, 대단하긴 대단하다.”
영지민 신청을 묻는 창은 기본적으로 보는 이들의 언어에 맞춰 나타났다.
이미 청계산 때 처음 영지를 선포하고 해밀턴 덕분에 이를 알고 있었지만, 신기한 건 신기할 뿐이었다.
지금 성현이 있는 장소는 리샤구의 최북단에 위치한 한 호텔의 옥상이었다.
이곳을 기준으로 지름 13.5㎞² 원형의 영지를 생성하고 적당한 시점을 기다리고 있었다.
“슬슬 가볼까.”
쾅-!
성현은 옥상의 난간을 거칠게 박차고 허공으로 몸을 띄웠다.
성현이 박차고 날아간 옥상은 폭격이라도 맞은 듯 크게 파손되어 성인 몸통보다 큰 잔해들이 사방으로 비산해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큰 포물선을 그리며 떨어져 내리던 성현은 다시금 고층 옥상의 바닥을 박차고 방향을 크게 틀며 날아올랐다.
‘확실히 그곳이 맞아?’
성현이 갑작스레 방향을 튼 까닭은 스컬 드래곤이 알려준 내용 때문이었다.
이곳 제남의 군 지휘부가 있는 곳을 찾았다는 것이었다.
-주인. 이곳의 지도자, 사령원이라는 자가 여기 있다고 한다.
‘근데 그 사실을 알려준 이가 누구라고?’
-그의 이름은 장진이라고 했다. 주인을 꼭 만나보고 싶다고 한다.
‘장진? 일단 알겠다. 위치 알 수 있도록 하늘로 광선 좀 쏴.’
미니맵상에서 두 스컬 드래곤의 위치는 나타나 있지만, 둘 중 누가 지금 사령부 위치에 있는지 성현은 알 수가 없었다.
성현은 밤하늘을 바라보고 신호가 오길 기다렸다.
“위치 확인. 지금 간다.”
현재 있는 위치에서 서남쪽이었다.
상공으로 쏘아지는 광선은 순간이지만 주변을 환하게 밝혀주고 있음이었다.
* * *
과거 제남시 스중구의 구청으로 사용되던 건물은 현재 동부전구 사령부로 쓰이고 있었다.
지금 이곳 사령부 상공에 거대한 외형을 가진 생명체라 부르기에 적합하지 않은 어떤 존재가 나타나 공포로 몰아넣고 있었다.
크롸롸롸!
거대한 포효에 유리창이 부서지고, 일반인들은 내부를 진탕 시키는 충격에 바닥에 주저앉아 고통에 겨워했다.
구울의 포효와는 다른 근원이 다른 공포를 선사하고 있었다.
-이곳 영지의 주인이 오고 있다. 모두 경배하라!
뇌리에 직접 전달되는 목소리에 모두가 놀란 눈을 부릅뜨고 스컬 드래곤을 바라봤다.
“요, 요괴가 마, 말을 한다!”
“저런 것을 부리는 그 주인이란 자는 도대체!”
대요괴라 생각되던 존재가 인간의 언어를 사용하고 있었다.
더군다나 그 주인이라는 존재는 또 누구인지 혼란한 와중에도 궁금증을 증폭시켰다.
슈아아앙! 콰콰쾅!
지상의 군인들이 QW-2 맨패즈(MANPADS) 휴대용 지대공 미사일을 발사했다.
견착식 대공 유도탄 4발이 스컬 드래곤의 머리와 가슴에 명중하며 굉음과 함께 화마가 치솟았다.
지상의 군인들은 명중된 미사일을 확인하고 쾌재를 부르며 2타를 준비하려 했지만, 모두가 행동을 멈춰야만 했다.
-죽음을 재촉하는구나!
시커먼 흑연이 가시고 드러난 스컬 드래곤의 모습은 아무런 피해도 받지 않은 듯 건재했다.
그리고 흉측한 입을 벌리자 빛의 입자들이 순식간에 모여들고 있었다.
푸화확!
한줄기의 광선이 지상을 긁듯이 지나갔다.
광선이 스쳐 간 자리에 있던 군인들은 한순간에 재가 되어 흩날리고 있었고, 뜨거운 열 폭풍이 주변으로 퍼져나갔다.
-이곳의 주인이 오고 있다. 미천한 것들아 머리를 조아려라!
크롸롸롸!
거대한 스컬 드래곤 한 마리가 더 나타나 사령부 건물을 살짝 지르밟고, 또 한 번 포효를 내질렀다.
-모든 인간들은 나와서 주인을 맞이하라!
스컬 드래곤이 달빛을 받아 은은하게 반짝이는 거대한 날개를 활짝 펼치며, 뛰듯이 발 구름을 하자 건물은 지진이라도 난 듯 흔들거렸다.
건물이 무너질까 안에 있던 이들이 다급히 빠져나오며 삽시간에 지상에는 수백을 헤아리는 인간들이 두려움에 떨며 자리하고 있었다.
-이곳을 벗어나지 말라. 곧 주인이 당도한다.
저 멀리 성현이 건물들을 징검다리 삼아 날듯이 뛰어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