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5
임시복귀 (1)
둥평 미사일은 제2 포병부대가 보유한 탄도 미사일로 이동식과 고정식 두 가지 타입이 존재했다.
둥평-11, 둥평-15 탄도미사일은 하얀색 바탕에 빨간 글귀로 DF-11, DF-15A 각각 새겨져 있었고, 모두 이동식 발사차량 9대에 고이 장착되어있었다.
둥평-21은 준중거리 탄도탄으로 핵심 비대칭 전력 중 하나였다. 극초신성 사태 이전에도 미 해군이 가장 경계하고 있는 물건이기도 했다.
국방색으로 칠해진 미사일은 10.7m길이에 직경이 1.4m에 달했고, 대형 이동식 발사차량 3대에 장착되어 어디서든 발사가 가능했다.
이 모두가 핵탄두를 탑재한 핵미사일이었다.
성현은 두말없이 이 미사일 모두를 자신의 창고에 수납했다.
이를 지켜보던 이들은 아직 진실한 정체를 알 수 없는 성현을 두려운 듯 바라봤다.
뼈만 남은 거대한 괴수를 타고 날아온 정체불명의 사람. 그 사람이 방금 전에는 미사일이 장착된 이동식 발사차량을 사라지게 만들었다.
저 손길에 닿으면 자신들도 저리 사라지는 건 아닌지 두렵기 그지없었다.
모두가 작은 숨소리조차 내지 않으려 애를 썼다.
다만, 장진만은 예외였다.
“이곳에 있는 핵미사일이 동부전구가 운용 가능한 전부라고 합니다.”
장진이 성현에게 다가와 능숙한 한국어로 말을 걸어왔다.
성현은 가던 길을 멈추고 장진을 돌아봤다.
찰나에 불과했지만, 장진은 저도 모르게 두어 걸음 뒤로 물러서야만 했다.
성현의 전신에서 압도적인 살의가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사실 성현은 장진이 말을 거는 순간 이자를 죽여야 하나 말아야 하나 잠시 고민해봤다.
다른 이들은 멀찌감치 떨어져 있어 장진의 말을 듣지는 못했지만, 장진은 성현을 한국인으로 단정하고 말하고 있었다.
성현은 일룡이와 이룡과의 대화도 모두 심상을 통해 해왔고, 자신의 입으로 한국어로 말한 적이 없었다.
장진은 앞서 자신을 찾아 백두산을 넘어 한반도에도 다녀왔다고 했으니, 짐작은 했겠지만 한국말로 말을 걸 줄은 성현도 생각지 못했다.
아니 한국어를 안다는 자체도 예상 밖이었다.
그리고 이런 시국에 홀로 백두산을 넘어 한반도까지 다녀왔다는 자체가 그 본신의 능력이 보통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일단은 좀 더 지켜보기로 했다.
“죄, 죄송합니다. 대인의 심기를 어지럽혔습니다.”
“우리 따로 조용히 이야기 좀 해야 할 것 같은데……. 그리고 비밀은 아는 자가 적은 게 좋겠죠?”
“물론입니다. 대인의 신상에 관해서는 절대 함구토록 하겠습니다.”
“일단 제남으로 돌아갑시다.”
* * *
성현은 동부전구의 남은 섹터를 더 돌아보지 않고 9호 섹터를 나와 제남으로 돌아갔다.
목적했던 핵무기를 전량 회수했는데, 일부로 발품을 팔아 시간을 허비할 이유가 없었다.
시간은 이미 자정을 넘어 새벽 1시를 넘은 시각이었다.
제남에 도착한 성현은 이곳의 일을 모두 장진에게 맡기고 그 책임을 벗어나려 했다.
내 나라 내 조국 사람들도 아직 다 구하지 못했는데, 남의 나라 군식구까지 부담할 생각은 없었다.
그런 성현의 생각을 일부나마 눈치챈 장진이 성현 앞에 무릎을 꿇고 간청했다.
“대인. 부디 저희를 긍휼히 여겨 주십시오. 100만의 생목숨이 달린 일입니다. 제발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단둘이 있으니 편하게 이야기하죠. 솔직하게 말해 난 이곳이 어찌 되든 말든 상관없는 이방인일 뿐입니다. 내 목적은 오롯이 오늘 죽은 그 미치광이 사령관이 핵을 다시는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데 있을 뿐입니다. 내가 어찌해주길 원하는 겁니까?”
“국가가 틀리고 같은 민족이 아니라 하나 모두 같은 사람입니다. 대인께서 넓은 아량으로 저희를 받아 주셨으면 합니다. 큰 걸 바라지도 않겠습니다. 부디 대인의 그늘 아래에서 낮은 자세로 부림을 받는 정도로 족합니다. 다시 한 번 간청 드립니다.”
성현도 이 정도면 마냥 안 된다고 뿌리치기도 힘들었다.
나이가 일흔은 넘은 장진이 자신의 앞에 저리 부복하며, 애걸하는데 그걸 그냥 지켜보는 것도 곤욕이었다.
“하아, 어서 일어나세요.”
성현은 장진의 일으켜 세우며 말했다.
“당장 제가 해줄 수 있는 건 몇 가지 없습니다. 때가 오기 전에는 나를 다시 보는 것도 힘들 텐데 괜찮겠습니까?”
“대인이 저희를 버리시지만 않는다면, 제가 목숨을 걸고 대인이 오시기 전까지 이곳을 지켜 내겠습니다.”
성현은 장진이 너무 맹목적이라 이제는 이 사람의 진심을 의심하는 것도 미안스러웠다.
“우선 제남의 허름한 장벽을 보수, 아니 새로이 만들어 주고 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장진 씨에게 이룡이를 맡기고 가도록 하죠.”
“서, 설마 수호이룡 중 하나를 말씀이십니까?”
“수호이룡이요?”
“네. 맞습니다. 제가 천기를 살피고 알게 된 사실도 수호룡과 신인께서 만인을 구원하게 된다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수호이룡을 보자마자 신인께서 당도한 것을 알게 되었지요.”
“뭐, 이름이야 어떻든 장진 씨에게 맡기고 갈 녀석의 이름은 이룡입니다. 평상시에는 주변의 좀비들을 사냥하도록 해둘 테니 필요할 때 불러 도움을 받기 바랍니다.”
“아! 감사합니다. 진정 감사드립니다. 헌데 요괴들을 대인께서는 좀비라 칭하시는군요. 그럼 대요괴는 대좀비라 부르십니까?”
“아닙니다. 아마도 대요괴라 하는 놈들은 구울일 겁니다.”
“알겠습니다. 저희는 놈들의 정확한 내력을 몰라 요괴라 했는데, 진실한 이름을 알았으니 모두에게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일이 있습니다.”
성현은 그 후로 영지 전반에 관한 내용을 알려주고 장진을 가신으로 거두어들였다.
그리고 장진이 곁에 두고 믿을 만한 이를 네 명 추천하라 해서 그들까지 모두해서 다섯 명을 가신으로 만들어 주었다.
그들에게 현재 주민 전체에 대한 영주민으로 받아들이는 일을 진행 시켰다.
그리고 100만 명에 이르는 이들 중 이미 영주민 신청을 한 이들의 받아들이는 작업을 하는 성현의 손과 눈은 바쁘기 그지없었다.
새벽을 지나 으스름한 동이 터오기 직전이 되어서야 성현은 작업을 모두 마칠 수 있었다.
그저 한자 이름이 한글로 변환되어 나타난 이들의 이름을 보고 연신 수락을 눌러댄 거다.
도대체 몇 명을 영지민으로 받아들였는지 세는 것도 잊은 반복 작업이었다.
“이제 떠나시렵니까?”
“한동안 보기 힘들 겁니다. 빠르면 한 달, 늦으면 저도 장담하기는 힘들 것 같군요. 다만 정말 위급한 상황에 한해 이룡에게 말하면, 내게 전달이 될 겁니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기다리겠습니다. 저희를 잊지만 말아 주십시오.”
장진의 간곡한 당부의 말을 뒤로 하고 성현은 일룡의 경추에 올라탔다.
어느덧 지평선에 태양이 완연한 모습을 선보이고 있었다.
‘이룡아. 당분간 이곳에서 지금 하는 일을 계속하면서 저 장진이란 이가 도움을 청하면 들어주도록 해라. 금방 다시 돌아오마.’
-주, 주인. 설마 나를 버리는 것인가?
‘네가 얼마짜린데, 아니 내가 널 왜버리겠어. 지금은 상황이 여의치 않으니 그런 거고 네가 착실하게 좀비 잡아서 골드가 많이 모이면 삼룡이나 사룡이 만들어서 교체해줄 수도 있다. 그러니 부지런히 좀비하고 구울 잡도록 해.’
-아, 알겠다. 주인.
‘이제 돌아가자.’
성현은 일룡에게 제주로 돌아갈 뜻을 전했다.
-주인.
‘응? 왜 그러냐?’
-어디로 돌아간다는 말인가?
‘제주도, 너 제주도 몰라?’
-주인. 나를 과대평가해주는 건 좋지만, 나는 이 세상에 나온 지 불과 하루도 되지 않았다는 점을 알아주었으면 한다.
‘…….’
* * *
성현은 황해를 건너 한반도 서쪽 인천국제공항 상공에 도착하고 있었다.
일룡의 경추에 매달려왔지만, 공기의 저항 외에는 딱히 큰 불편함이 없는 비행이라 할만 했다.
거기다 속력 또한 거의 음속에 가까워 어지간한 전투기 못지않은 항속을 유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 대단히 만족스러웠다.
일룡이 창고에 수납이 되었다면 간단히 전투기를 타고 왔을 테지만, 일룡은 창고에 입고되지 않았다.
이로써 한 번 더 일룡은 무생물이 아닌 생물의 범주에 들어감을 성현은 알 수 있었다.
‘일룡이 너는 지금부터 여기서 계속해서 사냥하도록 해라 내가 미니맵을 보고, 네가 움직일 동선을 알려줄 테니 그대로 따라주면 된다. 그리고 만약 인간을 찾게 된다면 내게 보고하고 최대한 보호해주도록 해.’
-역시 주인은 나와 이룡을 버리려는 것이군.
‘아니! 이것들이 아니라니까 자꾸 그러네. 지금 니들 도움 없이는 못 하는 일이라서 그런 거니까 오해는 하지 말자.’
성현은 한반도에서 좀비들을 몰아내기 위한 첫 단추를 일룡에게서 찾을 생각이었다.
일룡은 따로 쉴 필요도 없었고, 별다른 보급이 필요하지 않았다. 더군다나 아군과 적을 구분함은 물론 자아를 가지고 사고가 가능한 지적 생명체였다.
‘일룡, 이룡 그리고 무수한 룡룡이들로 부대를 만든다면…….’
성현은 생각만으로도 뿌듯해졌다.
일룡이 성현을 내려주고 영종도를 지나 인천 상공에 들어서면서부터 지상을 향해 광선을 무차별 난사하기 시작했다.
성현도 잠시 일룡이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다 즉시귀환으로 제주로 복귀했다.
“어머나! 놀래라. 아저씨! 깜빡이 좀 키시고 들어오세요.”
“커허험. 아니 내가 뭘……. 크흠. 미, 미안.”
성현은 얼굴에 열이 오르고 자신도 모르게 자꾸만 꿈틀거리는 신체 일부를 제어하느라 부단히 노력했다.
“아저씨 뭐해요? 빨리 돌아서욧!”
해미가 샤워를 하고 미쳐 가운을 걸치지 못한 상태에서 성현과 마주한 상황이었다.
집에 줄리 외에는 아무도 없었고, 누가 이른 아침에 찾아올 일도 없다 생각한 해미는 아무 생각 없이 욕실을 나섰다.
그때 마침 긴급 귀환하는 성현과 정확히 마주 보게 된 것이었다.
“어어. 이런…….”
성현은 급히 뒤로 돌아섰지만, 유리창에 반사된 실루엣을 보고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하고 삼켰다.
“아저씨 변태!”
헌데 해미의 눈도 유리창에 비친 성현을 바라봤고 둘은 서로의 모습을 유리라는 매개를 통해 다시금 눈이 마주쳤다.
‘제, 젠장!’
* * *
평화로운 아침과는 동떨어진 아침.
성현은 관사에서의 충격이 채 가시지 않은 상태로 집무실에 들렀다.
성현이 없었지만, 두식은 집무실을 지키고 있었고, 두식이 건네주는 시원한 얼음물을 한잔 들이키고 뜨거운 가슴을 식혔다.
“오후에는 다시 중국으로 나가봐야 한다. 일단 제주에 넘겨줄 물건들이 있어 들린 거니 일부로 애들 소집할 필요 없다.”
성현의 복귀를 전해 들은 최동원이 집무실을 찾아왔고, 성현은 최동원에게 둥평-11, 둥평-15, 둥평-21 각 1기씩을 발사 차량과 함께 맡겼다.
연구 재료로 써도 좋았고, 이를 활용할 방법도 찾아도 좋았다.
그도 아니라면 모두에게 우리도 핵보유국이 되었음을 알리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일단 중국 쪽에서 핵을 사용한 놈을 처단했고, 거기다 중국의 5대 전구 중 하나를 손에 넣었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어라, 벌써 한 달이 지났어?”
성현은 영지 외곽에 있는 1대대 본부에 미사일을 전해주고 나오는 길이었다.
오전 10시를 기점으로 눈에 보이는 모든 사람들의 머리맡에 떠 있는 표식.
[ 특성 부여 가능 ]
최동원에게 게이머를 부여해주고 벌써 한 달이라는 시간이 지나있었다.
“어쩐다…….”
급히 서두를 일이 아니지만, 마냥 늦춰서도 좋을 것은 없었다. 이번도 그렇지만 다음 부여 대상자도 미리미리 찾아두는 게 좋았다.
“두식아. 조용히 다시 중국으로 가려고 했는데 안 될 거 같다. 군 위원회 소집하고, 야전 지휘관들도 모두 불러들여라.”
“넵. 사령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