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7
임시 복귀 (3)
“무슨 생각을 그리 골똘히 하십니까?”
“어어. 잠시만… 뭘 좀 계산해 보느라.”
두식에게 게이머를 부여해서 얻게 되는 스텟 상승은 공작이 끝이 아니었다.
스컬 드래곤의 수만 늘이면, 이제 무한한 자동사냥의 길이 열려 있었다. 피아 구분이 명확하지 못하던 3급 병기 때와는 이야기가 다를 수밖에 없었다.
거기다 생존자 수색은 덤이다.
국왕 계급까지도 한달음에 도달할 터였다.
‘이거 줄리가 진짜 공주님이 되겠는데.’
이미 줄리를 제 자식이라 생각하는 성현은 문뜩 그런 생각이 들었다.
현재 권위를 제외한 스텟들이 100을 간신히 넘기는 상황인데, 그 열 배인 1천까지도 이제는 결코 꿈이 아닌 숫자였다.
얼추 1억 1천만 마리의 좀비를 잡으면, 60레벨에 오르게 된다.
2차 전직을 하고 다시 한 번 보너스 스텟 초기화의 기회가 주어진다.
중국대륙에 존재하는 좀비 10분의 1 정도만 잡아도 가능한 수치라는 점에서 현실감이 있는 레벨 대였다.
그리고 직접 사냥을 할 필요도 없었다.
두 스컬 드래곤이 반나절 사이 5만 마리 이상을 사냥했다.
이 상태라면 60레벨까지 6년 가까이 걸릴 레벨업이지만, 스컬 드래곤만 늘려나가도 시일은 크게 단축될 것이었다.
벌어들이는 골드로 스컬 드래곤을 뽑고, 늘어난 스컬 드래곤이 더욱 많은 경험치와 골드를 벌어주니 레벨업은 덩달아 빨라지는 선순환이 이루어지게 된다.
“이 자식이 복덩어리였네. 우리 두식이 뭐 먹고 싶은 거 없냐?”
* * *
[ 특성 부여 완료 ]
[ 게이머 천두식의 능력을 공유받습니다 ]
[ ★게이머 박성현의 환경을 재설정 합니다 ]
결론적으로 성현은 두식에게 능력을 부여했다.
군 위원회 간부들은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격이 되었지만, 누구 하나 두식을 축하해 마지않는 이들이 없었다.
성현이 아직 기회가 32번이나 남아있다는 걸 넌지시 알린 덕분이기도 했다.
“두식아 아무래도 너는 내 보좌관보다 앞으로는 군 작전에 동참을 하는 게 어떨까 싶다. 네 각성 능력이 필요한 일이 앞으로 많을 거다. 괜찮다면 공석인 특수군 대장 자리를 추천한다만.”
두식이 했던 게임에는 마침 인벤토리 기능이 있어, 성현의 창고와 같은 기능을 할 수 있었다.
전체적인 용량이 성현보다 적다지만, 그것만 해도 엄청난 것임이 분명했다.
더군다나 기본적인 능력이 육체 계열 이능력자와 비견될 정도여서 앞으로의 성장이 더욱 기대되는 바였다.
“알겠습니다. 사령관님. 매일 옆에서 보좌해 드리지 못한다는 게 마음에 걸리지만, 저도 제 나름의 쓰임이 있는 곳에서 보다 많은 일을 한다면 그 또한 의미 있는 일이지 싶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헌데 보좌관이 단 한 명도 없으신데 불편하지 않겠습니까?”
“생각해둔 게 있으니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괜찮다. 여하튼 잘 생각했다. 일주일의 휴가를 줄 테니 이참에 좀 쉬도록 하고, 가능하다면 지애 씨랑 시간을 좀 보내도록 해라.”
“네? 아. 넵 알겠습니다. 배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두식을 내보낸 성현은 한쪽으로 치워둔 메시지 창을 다시 올렸다.
[ 동기화 완료까지 239시 45분 26초 ]
처음 최동원의 능력을 공유받고 동기화하는데 1일 24시간이던 것이 무려 10배나 늘어나 있었다.
“그래… 모든 게 너무 쉽다 했다.”
하루면 두식의 게임 능력을 활용해 레벨업에 박차를 가하려던 성현의 계획은 10일 후로 미루어질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보면 고작 열흘일 뿐이잖아. 근데 한 달 뒤에 다음 특성을 부여하면 설마 100일? 한 달에 한번 부여가 가능한데 환경 재설정이 중복되면 어떻게 되는 거지?”
한 달에 1회 특성부여가 가능한 마당에 만약 지금처럼 10배의 시간이 더 늘어나게 되면, 게이머 환경 재설정은 어떻게 되는가가 문제였다.
“설마 계속해서 시간이 늘어나지는 않겠지?”
100일까지는 그럭저럭 어떻게 기다려 볼 만하지만, 그다음 1,000일, 10,000일 이런 식으로 증가하면 답도 없었다.
만약 성현이 100세를 전후까지 산다 해도, 두식이후 2번의 추가 능력을 얻는 게 고작이었다.
게이머의 특성을 각성하고 육체가 초월적인 수준에 이르러 수명이 어찌 될지 정확히 판단할 수 없지만, 실질적으로 추가로 얻을 수 있는 능력은 최소 2번에서 최대 3번 정도가 다일 거라 생각했다.
“그렇다면 좀 더 신중이 고를 필요가 있겠는데.”
항상 변수가 있는 것이 세상일이라지만, 매번 생각지도 않은 일들이 너무도 많았다.
다시금 특성 부여에 대한 부분은 쉽게 생각할 수 없게 되었다.
“감당 못할 능력이라면 일단 다음 부여에서부터는 배제를 해야 하나? 헌데 그 정도의 능력이 있기는 할까?”
혼자만의 상념이 길어지던 찰나 이를 깨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주인, 지금 인간 무리들을 발견했다. 어찌해야 하나?
‘응? 거기가 어딘데.’
-…….
‘아니다. 내가 찾아갈 테니, 상황이 좋지 못하면 도움을 주도록 해. 그러고 나서는 너 잘하는 거 그거 좀 하고 있으면 되겠다.’
갑작스런 일룡의 전언에 성현이 두서없이 이야기했지만, 곧바로 수정했다.
생후 1일하고도 몇 시간 정도에 불과한 일룡에게 너무 많은 것을 원했음이다.
-주인.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 내가 잘하는 게 무엇인가?
‘너 보니까 선전, 선동에는 재주가 있어. 말 잘 듣게 잘 타일러 놓으라는 이야기다.’
-알겠다. 주인 그거라면 자신 있다.
‘그렇다고 너무 겁주고 그러면 안 된다. 살살 응? 살살 알았지?’
-주인. 걱정마라.
* * *
성현은 집무실을 나와 최동원에게 서울 쪽에서 생존자들이 있음을 알리고 다녀올 뜻을 전했다.
석유 문제로 중국에 다녀와야 했지만, 조금의 여유는 있었다. 당장은 생존자들을 확인하는 게 아무래도 우선해야 하는 사안이었다.
“서울에 좀 다녀와야 할 것 같다.”
“네?”
전달받기로는 오후 중에 중국으로 출발한다고 한 성현이 갑자기 찾아와 난데없이 서울행을 이야기했다.
“그러고 보니 빼먹은 이야기가 좀 있네. 너 계급에 따라 생성 가능한 병기들 미리 볼 수는 있지?”
“네. 한번 살펴보기는 했습니다. 이건 뭐 어마어마하던데요.”
“그래. 봤다니 길게 말할 필요는 없겠네. 내가 스컬 드래곤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사실 중국에서도 아주 요긴하게 썼었다. 그리고 한 마리는 지금 서울에 남겨두고 왔는데. 그 녀석이 생존자 무리를 발견했다고 한다.”
“설마 후작이 되면 생성 가능한 그겁니까?”
“맞아. 그거다.”
“아, 아니 권위가 도대체 얼마나 되시기에?”
“지금은 167인데 곧 공작은 될 거 같긴 해. 넌 레벨업 좀 했어? 지금 권위 몇인데.”
“……14입니다.”
최동원은 나름 최선을 다한 바였다.
하지만, 좁힐 수 없는 격의 차이는 결코 노력만으로는 넘을 수 없는 수준임을 인정해야만 했다.
“크흠. 너도 조만간 자작 정도는 오를 수 있겠는데.”
성현은 괜스레 움츠러드는 최동원의 어깨를 감싸고 말했다.
“일단 나가서 이야기하자.”
이제 영지 관청으로 쓰이는 제주 도청을 나선 성현은 영지 설정을 열고 최동원에게 보여주기로 한 스컬 드래곤을 생성했다.
다행히 일룡이와 이룡이가 벌어준 골드가 넉넉한 탓에 부담을 느낄 정도는 아니었다.
성현의 머리 위 200여 미터 상공에서 거대한 육망성의 마법진이 생겨나더니,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거대한 뼈로 이루어진 스컬 드래곤이 그 위용을 드러냈다.
10층 건물보다 더욱 커다란 스컬 드래곤을 바라보는 최동원은 그 위용에 입만 달싹거리며 말을 잊지 못했다.
“저 녀석과는 심상으로 대화가 가능하다. 백 마디 말보다 한번 이야기해보는 게 좋을 거 같다..”
마법진을 통해 완전한 모습을 드러낸 스컬 드래곤이 지상 100여 미터 상공까지 하강해 성현과 최동원의 머리 위로 내려왔다.
-주인 명령을 내려달라.
‘너도 이름 없지?’
-그렇다. 주인.
‘네 이름은 이제부터 삼룡이다. 너보다 하루 먼저 태어난 일룡이하고 이룡이가 어쩌면 형쯤 되겠다.’
-삼룡이라. 알겠다. 주인. 동료가 있었군. 그들은 어디에 있나?
‘그건 차차 보게 될 거고, 지금 내 옆에 있는 인간이 지금부터 나를 대신해 내게 할 일을 지시할 거다. 그의 말을 따라라. 필요하면 따로 심상으로 알려주도록 하마.’
-알겠다. 주인.
성현은 짧은 대화를 마치고 아직도 넋을 놓고 있는 최동원을 바라봤다.
“동원아 저 녀석 이름은 삼룡이다. 네 지시를 따르도록 해 뒀으니, 필요한일에 투입하도록 해.”
“네, 넵. 저 근데 어떻게 대화를 해야 할지…….”
“어려울 것 없다. 입으로 하는 말도 상관없고, 저 녀석이 네게 말을 걸면 그때부터는 심상으로도 전달이 가능해.”
“아, 알겠습니다. 해보겠습니다.”
말은 알겠다고 답한 최동원이지만, 움찔하며 쉽게 입을 떼지 못했다.
“이야기 좀 나눠봐라 앞서 녀석들도 그랬지만 애들이 착해. 아직 어려서 세상 물정 모르니 좀 가르쳐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삼룡아 네가 먼저 말 좀 붙여주고 그래라. 그럼 둘이 친하게 지내고, 중간 중간에 소식 전해 주마. 난 이만 출발하마.”
성현은 최동원의 어깨를 두어 번 두드리고, 청사 옆에 만들어둔 임시 활주로로 향했다.
* * *
건축물 높이 규제 완화가 추진되어, 극초신성 사태 이전에 신축된 마천루들이 수도권 도심 곳곳에 우뚝 세워져있었다.
하지만 인간의 힘으로 이룩한 거대한 문명은 더는 인간의 차지가 아니었다.
거리와 도로는 좀비들이 활보하고 있고, 산업화와 기계의 소음이 아닌 괴랄한 괴성만이 가득했다.
쿠구구구궁.
성현이 탄 전투기가 성남을 지나 한강을 막 지나고 있었다.
-주인. 내가 인간들을 도와주었음에도 이곳의 인간들은 모두 지하로 숨어 버렸다.
‘그 사람들과 이야기는 해봤어?’
-저들은 심상으로 대화 가능한 거리를 넘어섰다. 주인을 제외한 이들과는 일정 거리 이상 떨어지게 되면 전달이 불가능하다.
‘상당히 깊은 지하로 들어갔나 보네. 도착이 멀지 않았다. 조금만 기다려봐.’
북한산 우이역 인근에 도착한 성현은 서서히 기체를 하강시켰다.
도심과 국립공원을 나누는 좁은 우이천을 지나자 과거 소년 수련원으로 쓰였던 건물이 나타났다.
그리고 그 뒤로 약 200여 미터 떨어진 산 중턱에 거대한 터널이 자리하고 있었다.
성현은 터널 입구에 다다라 착륙을 위해 리프트 팬을 가동시키며 수직 착륙을 시작했다.
강력한 리프트 팬이 작동하며, 지상은 흙먼지가 사방으로 비산해 시야를 가렸다.
-주인에게는 좋은 탈것이 있었군.
‘그래도 일룡이 너만 할까. 이건 유지하는 데 들어가는 게 많아. 그리고 내가 직접 조종해야 하는데 귀찮을 뿐이야. 앞으로 일룡이 네가 있으니 이런 것들 탈일은 별로 없을 거다.’
-그, 그런가?
어찌되었든 일룡은 성현의 전용탈것으로 확정 된 상태였고, 일룡에게 거부권이 있을 리 없었다.
“그나저나 여길 어떻게 한다.”
대피소 입구 정도야 강제로 여는 것은 성현 혼자서도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무등산 영지 때와는 달리 이들과는 연결점이 없었다.
사람들을 설득하고 이해시키는 일이 결코 쉽지만은 않을 터였다.
더군다나 당장 이주를 시작하게 되면 성현의 중국행도 늦춰질 수밖에 없었다.
“일단 부딪쳐보자. 당장은 힘들다 싶으면, 최소한의 안전이라도 확보해 주는 게 좋겠지.”
잠시 후.
“왜 무전에 아무런 응답이 없지? 강제로 열고 들어가 봐야 하나?”
30분 동안 무전을 보내보았지만 묵묵부답이었다. 생존자 구출을 해줄 의향이 있다는 말에도 대답이 없었다.
그때.
-우리끼리 잘살고 있으니까 꺼져. 우리가 나갈 때 까지 거기 누구라도 있으면, 무조건 전쟁이야!
성현은 고개를 모로 꼬고 이것 봐라하는 표정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