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9
북한산 (2)
“북한산 대피소 지휘부에 투항을 권고한다. 우리는 인도적인 차원에서 모두를 수용할 뜻이 있다.”
성현은 어렵게 대화를 고집해 복잡하게 일을 진행할 생각이 없었다.
시간만 끌뿐이고 결과는 언제 나와 같을 것이었다.
뒤가 켕기는 놈들은 어차피 반항할 것이고, 그렇지 않고 숨어버린들 양자산 때와 마찬가지로 조사하면 다나오게 되어있었다.
앞서 들은 구조 무전이 진실인지 거짓인지는 직접 확인해 보면 될 일이었다.
“일반 주민들은 원하는 이에 한해 제주도로 이주를 시켜주도록 하겠다. 제주도에는 이미 10만 이상의 생존자들이 안정된 지상 생활을 구가하고 있고, 자유로이 살고 있다.”
단 1의 거짓도 없는 사실만을 토대로 성현은 무전에다 대고 말해주었다.
“다만, 이곳에 남겠다는 이들에 대해서는 절대 강제적인 이주를 권하지 않겠다. 오직 원하는 이들만 데려갈 것을 밝힌다.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여기까지다. 그리고 다시 말하지만, 절대 적대적인 행위를 하지 말기 바란다. 나나 우리는 적에게만큼은 결코 자비로운 사람이 아니다.”
성현은 무전을 끝내고 북한산 대피소 내부로 돌입을 시작했다.
* * *
북한산 대피소 경내에 위치한 치안본부.
이곳 치안본부의 감옥에서 비명이 끊이질 않고 있었다.
퍼퍽! 퍽!
“커억, 컥.”
선현이 낭자한 고문의 현장.
손발톱이 뽑혀 나가고, 모진 매질에 전신은 피투성이인 남자가 천장에 매단 줄에 묶여 늘어져 있었다.
“자, 다시 시작해 보자고. 이름.”
“시, 시바알. 며, 몇 번을 말해! 크윽.”
“그래? 이름은 넘어가 주지, 남은 네놈 동료는 누구냐?”
“크으윽. 어, 없다.”
“이 새끼가 아직도.”
“조, 좆까. 이 버러지 같은 새끼들아.
손정한은 국정원 고스트 요원으로 해외에서 활약한 블랙요원 중 하나였다.
특전사 출신으로 중동 15개국에 대한 정보수집과 분석을 담당한 팀장급 인사였다.
극초신성 사태 이틀 전 긴급 호출로 국내로 소환되었고, 사태당일 북한산으로 비밀리에 이동했었다.
애앵앵앵앵앵-!
“뭐야? 설마!”
손정한을 고문 중이던 김태진이 대피소 전역에 울리는 사이렌 소리에 놀라 말했다.
벌컥!
“대피소 입구가 파괴되었고, 자칭 북한산 구조대라는 놈들이 침입했습니다.”
“제기랄! 회장님은?”
“지금 협회 전투조 전원을 데리고 현장으로 출발하셨습니다.”
“우리도 빨리 합류해야겠다. 군바리 새끼들은?”
“언제 우리 뒤통수 깔지 모른다고, 회장님이 이번에는 모두 빼라고 하셨습니다.”
“뭐, 어쩔 수 없지 가자. 이 새끼 가따와서 보자.”
급히 나서는 길에도 김태진은 고문하던 정한을 일별하고 잔인한 웃음을 흘렸다.
“다 뒈져버려라. 콜록콜록, 퉤엣”
모진 고문에 내상도 만만치 않은지 검붉은 핏덩이 한 움큼을 뱉어낸 정한은 쓰게 웃었다.
“미경아. 미안하다.”
정한은 사랑하는 연인이자 동료인 미경에게 그저 미안할 따름이었다.
반드시 성공할 것을 믿고 암살 계획을 실행에 옮겼지만, 자칭 ‘선지자 협회’ 회장 이진석의 능력은 추정치를 크게 상회하는 수준의 능력자였다.
대피소에 일반 주민으로 가장해 잠입할 당시 가지고 있던 권총으로 놈의 머리와 가슴에 모두 명중 했음은 물론이다.
20여 미터 이내 근거리에서 타깃을 명중시키지 못할 요원은 없었다.
거기다 두 개의 수류탄을 던져 폭발 반경에 완벽하게 들어왔건만, 놈에게는 모두가 무용지물이었다.
함께 행동에 나선 블랙요원은 다섯 명은 모두 그 자리에서 김진석의 손에 사로잡혔고, 남은 세 명만이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후일을 도모하기로 했었다.
“시, 시발 것, 성현이 새끼 존나 보고 싶네. 나도 곧 따라가마.”
정한은 극초신성 사태 전날 술잔을 기울였던 성현이 너무도 보고 싶었다.
그리고 미안했다.
사실 정한도 정보부에 있던 만큼 극초신성 사태에 대한 이부 정보를 얻은 상태였다.
다만 그 시기를 정확히 알 수 없었을 따름이었다.
만약 최소한의 정보라도 성현에게 주었더라면, 그랬다면 어쩌면 성현도 극초신성 사태에 무사했을지도 몰랐다.
그런 친구에게 미안했다.
자신은 지금 이 지경이 되었지만, 살아남았다.
성현에게는 그런 기회조차 주지 못했다는 자책에 지금도 몹시도 미안할 따름이었다.
* * *
후화화확! 꽈광!
대피소 터널에서 약 200m를 진입한 성현을 향해 일단의 인원들이 나타나 그 앞을 막아섰다.
그리고 몇 마디 말을 주고받기도 전에 농구공만 한 불덩어리가 날아와 성현을 강타했다.
꽈광!
전면을 강타한 불공이 폭발하며, 일순간 성현과 주변을 불바다로 만들어버렸다.
하지만.
“어라? 이거 니들이 먼저 친 거다?”
성현의 매서운 불길로 타오르는 통로를 몇 걸음 앞으로 내디디며 한 말이었다.
“무슨 능력이지? 네놈도 선지자인가? 네놈과 함께 온 놈들은 밖에 있나? 몇이나 되지?”
“뭔 혓바닥이 이리 길어. 방금 너희들이 나한테 선빵쳤지. 한 대 때렸으면 니들도 맞아야지.”
“후후. 설마 네놈 혼자서 우리를 상대하겠다고?”
성현은 상대방이 비웃든 말든 더는 말을 섞고 싶지 않았다.
결코 좋은 성향을 가진 놈들이 아니다 판단했다. 대화 중 대뜸 먼저 공격하질 않나. 말끝마다 선지자니 미개한 놈들이니 하는 것들이 정상일 리 없었다.
타타타탕.
성현은 총구를 들어 정 조준해 전방의 놈들 허벅지에 한 방씩 먹여주었다.
순식간에 제일 선두에 선 놈들의 허벅지가 폭탄 맞은 듯 터져 나가며, 11명을 외다리로 만들어 버렸다.
“어, 어떻게? 고, 공격해!”
이진석은 총구를 들어 올리는 동작조차 보지 못했다. 눈 한번 깜짝할 새에 제일 앞에 세워둔 육체 강화자들의 다리가 사라져버렸다.
파지지지직. 쿠쿵!
원거리 이능력자들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허공에서 전격의 비가 쏟아지고, 바닥에서는 날카로운 가시가 솟구쳐 올랐다.
불의 쇠사슬이 성현을 옭아매지만, 가벼운 손짓에 뜯겨 나갔고, 매섭게 소용돌이치는 바람의 칼날은 미풍에 지나지 않았다.
그리고 불타던 대지가 얼어붙고 다시금 타오르길 몇 번.
모든 공격은 무용할 따름이었다.
“이게 다야?”
성현은 저들의 공격을 묵묵히 받으며, 앞으로 걸어 나갔다.
공격을 하던 이능력자들이 기함하며, 어찌해야 할지 이진석을 돌아보며 눈으로 묻고 있었다.
성현은 자신이 한걸음 내딛으면 뒤로 한걸음 물러나는 저들의 행태가 사뭇 재미있기도 했다.
“우, 우리와 당신은 아무런 척을 진 게 없는데 왜 우릴 공격 하, 한 겁니까.”
이진석이 말까지 더듬거리며, 말했다.
솔직히 방금 전의 공격은 이진석이라 한들 절대 무시할 수 없었고, 그런 공격을 아무 일 없다는 듯 여유로운 성현에게 두려움마저 느꼈다.
거기다 가까이 다가올수록 느껴지는 위압감과 존재감은 그를 더욱 위축되게 만들고 있었다.
“내가 잘못 들었나? 공격은 니들이 먼저 한 거잖아. 이제 그에 상응하는 벌을 받아야지. 딱 한 발씩만 맞자.”
“모, 모두 퇴각해!”
이미 11명의 육체 강화자들이 성현의 총에 한쪽 다리를 잃어 전투불능 상태에 있었다.
육체 강화계열도 그러할 진데, 다른 이능력을 각성한 선지자들이 저런 총을 버텨낼 리 없었다.
이진석은 빠르게 후퇴해서 재정비함은 물론, 일반 군인들을 무장시켜 공격하려고 했다.
침입한 성현이 어쩌면 이능력에 대한 저항력만 극도로 높은 그런 이능력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이는 성현이 총을 들고 있다는 것에서 기인한 오해였다.
공격 능력이 전혀 없는 까닭에 총을 공격수단으로 삼고 있다고 생각한 거다.
만일 육체 강화자들이 일반 소총 따위에 크게 상처를 입지 않는다는 사실을 조금만 더 깊이 생각했더라면 오류임을 알았을 테지만 당장에 너무 놀라 이런저런 생각을 할 여유가 없었다.
타타타타탕.
“끄아아악!”
철퍼덕, 후드드득.
이진성은 뒤에서 들리는 총성과 비명소리를 들으면서 더욱 속도를 높였다.
연속해서 순간이동을 쓸 수 없어 순간가속을 병행해서 쓰며 시속 80㎞의 속도로 달려나갔다.
“회, 회장님!”
뒤늦게 다른 선지자들과 합류하기 위해 차량을 타고 달려오던 김태진은 전방에 모습을 드러낸 이진성을 크게 불렀다.
“후진해! 빨리!”
이진성의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과 불안한 눈동자에서 심상치 않음을 느낀 김태진은 급히 차량을 돌려 다시 왔던 길을 내달렸다.
이미 한참 앞에는 이진성이 달려가고 있었고, 이를 놓칠세라 더욱 가속페달을 밟았다.
“여기 후문 없어?”
“크윽. 어, 없다. 우리들과 무슨 원한이 있다고 이, 이러는 거냐?”
“허, 이거 보소? 공격은 니들이 먼저 한 거야. 너희들은 날 죽여도 되고 내가 하면 안 돼? 무슨 내로남불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성현의 말에 틀린 게 없었다.
남을 죽일 생각을 했다면, 자신도 죽을 수 있다는 각오는 해야 하는 법이다.
그게 전장에 나서는 이들의 마음가짐이고, 기본이었다.
“살고 싶어?”
“사, 살려 주실 겁니까?”
한 줄기 희망을 본 것인지 이능력자의 말투는 대번에 공손해졌다.
“그럼 읊어봐.”
제법 사회경험을 한 자인지 눈치는 빨랐다.
성현이 원하는 바를 정확히 짚어내어 정보를 토해내기 시작했다.
* * *
“세상이 진짜 망하긴 했나 보네. 별 미친놈들이 다 있냐.”
‘선지자 협회’라는 별 같잖은 무리를 이루며, 이들이 한 짓은 3류 양아치에 비해 낫다 할 수 없었다.
이들은 대피소 안에서 무위도식하며, 주민들을 공포로 몰아넣었고, 필요에 따라 살인도 서슴없이 행했다.
강력한 이능력을 가진 회장이라는 놈이 가장 나쁜 놈이고 그 아래의 놈들도 그 횟수가 적을 뿐이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잘 들었다. 간다.”
“사, 살려 준다고 하, 하지 않았습니까.”
“살려주잖아.”
“그, 그런.”
“고통스럽고 힘들면 말해 편하게 해줄 수는 있다.”
정말 성현은 이자가 그리 말한다면 한 치의 망설임 없어 손을 쓸 생각이었다.
어차피 이대로 두면 과다 출혈로 죽게 될 것이고, 살 가망이 없기도 했다.
자신의 손으로 만든 상황이지만, 성현은 죄책감은 크게 들지 않았다. 적대적으로 만났고, 이들도 자신을 향해 살의를 품고 덤벼들었다.
그런 상황에서 살려둘 여지는 이자들이 이미 버린 것이었다.
강자가 약자에 대한 자비?
살생에 대한 주저함?
지금 세상은 그런 자세를 필요로 하지 않았다. 그래 본들 뒤통수 맞고, 비명횡사하기 딱 좋았다.
물론 성현은 그 뒤통수 때리던 손이 부러지겠지만, 자신의 주위를 위태롭게는 만들 수 있었다.
모든 여지를 사전에 차단함으로 일말의 가능성마저 이제는 남겨두기 싫었다.
투쾅! 슈아아앙!
한참을 나선형의 통로를 내려가자. 상당히 넓은 공간이 성현을 반겼다.
그리고 또 다른 것들이 성현을 반기고 있었다.
꽈광-! 꽝!
바이저 넘어 직선으로 날아오는 대형 탄두가 성현의 눈에 들어왔다. 0.05초도 되지 않는 시간이었지만, 성현의 동체 시력은 회전하며 요동치는 탄환의 모습이 생생히 들어왔다.
그리고 물리력에 성현이 뒤로 주르륵 밀려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