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판멸망한 세계의 게이머-100화 (100/176)

# 100

재회 (1)

기다렸다는 듯이 날아온 세이보(Sabot)식 날개안정 철갑탄(APFSDS), 한국군에서 통칭 날탄이라고 부르는 포탄이 성현을 강타했다.

운동에너지는 무게에 비례하고 속도의 제곱에 비례한다는 개념으로 만들어진 물건이었다.

포탄의 에너지는 무려 14MJ

K2흑표의 주포에서 발사된 날탄은 현존하는 전차의 전면장갑(850mm)을 2㎞ 거리에서 갈아버릴 정도의 관통력을 가지고 있었다.

대전차 전용 포탄을 대인을 상대로 발사한다는 게 웃긴 일이긴 했지만, 적중한다면 효과만큼은 이보다 확실한 것은 없다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군 지휘관이 그리 멍청하지 않다는 반증이기도 했다.

저들이 고폭탄을 사용하지 않은 이유는 터널 붕괴 등 2차 폭발로 인한 고립될 위험도 있어 성현을 상대로 날탄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날탄 조차도 대피소라는 지리적 한계로 인해 사용하기엔 다소 부담이 가는 것임이 분명했다.

근접거리 150m에서 부채꼴로 도열한 전차들이, 계속해서 날탄 세례를 성현에게 퍼부었다.

꽈과과광!

날탄의 탄속은 1,390m/s 음속의 4배가 넘는 속도였다.

탄두가 성현을 가격한 이후에 포성이 들려왔다.

‘으음, 이거 대놓고 공격하게끔 만들긴 했다만, 이건 좀 아픈데.’

사실 성현은 대피소를 장악하고 있는 이들이 숨지 않고 최대한 자신을 노리고 공격할 수 있도록 사실상 시간을 준 것과 같았다.

단순히 모여 있으면 일이 편하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정도가 있는 법이고, 지금의 공격은 성현이라 해도 잠시라면 모르지만, 지속적으로 노출되게 되면 부상을 피할 수 없었다.

‘일단 전차부터 어떻게 하고 주동자 몇 놈 잡아서 상황을 정리해야겠다.’

일반 전투병들도 성현에게 총구를 겨누고 쏴대고 있었지만, 그냥 무시해도 되는 수준에 불과했다.

[특수]무기 기술자

-공격력, 속도, 범위, 명중 50% 증가 (적용 시간 10분, 재사용 대기시간 1시간)

[일반]용맹정진

-공격력, 방어력 각 30% 증가 (적용 시간 3분 재사용 대기시간 1시간)

성현은 일종의 버프 스킬이랄 수 있는 두 개의 스킬을 활성화하고, 눈 깜짝할 사이에 포격 범위를 벗어나 전방을 향해 짓쳐 들어갔다.

일반인의 동체 시력으로는 성현을 움직임을 간파하기는커녕 쫓을 수도 없었다.

희끗한 잔상들로 인해 분신술을 펼친 듯 착시현상마저 일으켰다.

일순간 표적을 잃은 전차들이 갈 곳 없는 포신을 이리저리 돌리며 우왕좌왕했다.

쾅!

성현이 150여 미터를 주파해 전차의 포신을 가격한 것은 그야말로 찰나의 순간.

아래에서 위로 솟구치며, 포신을 타격하자 27톤(t)에 달하는 전차가 크게 들썩일 정도였다.

포신의 중간이 크게 꺾이며 균열이 발생해 더 이상 제 역할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최소한의 힘으로 전차의 주포를 무용지물로 만든 성현은 재차 다른 전차로 향했다.

동축기관총 세례가 성현이 지나는 길을 뒤따라 와보지만, 이미 성현의 신형은 그곳을 빠져나간 후였다.

사실 전차의 외장갑을 직접 타격해 피해를 주는 것도 가능하다 싶었지만, 그렇게까지 해서 일반 사병들까지 헤치고 싶지는 않았다.

어쩌면 전차로 공기놀이를 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이 정도 공간이면.’

성현은 가공할 속도로 움직이는 와중에도 주변을 살피며, 공간을 가늠했다.

그리고 충분하다는 판단하에.

6) 2급 스컬 드래곤 (공성전용, 비행체)

공격력 : 12,000

사거리 : 2㎞

내구 : 25,000

크기 : 전장 46m, 전폭 43m, 전고 15m

필요자원 : 철광석106t, 미스릴1t, 드레곤 하트 1.2kg

대체자원 : 32,000,000 골드

( 1 ▲) = 32,000,000 골드

이곳 공동의 넓이는 어지간한 축구장 넓이의 두 배에 달했고, 높이가 80여 미터에 이르러 있었다.

스컬 드래곤이 마음껏 날뛰기에는 비좁은 공간이긴 하나 이곳에서 스컬 드래곤이 할 일은 따로 있었다.

“나와라!”

공동의 천장 어림에서 거대한 마법진이 나타나더니 보라색 음산한 기운이 뿜어냈다.

회백색의 거대한 두개골과 무엇이든 분쇄해버릴 것 같은 날카로운 이빨을 가진 아가리가 마법진에서 튀어 나왔다.

그리고 한순간에 공동의 천장을 꽉 채우는 거대한 동체를 가진 스컬 드래곤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쿠롸롸롸!

앙상한 뼈만 남은 스컬 드래곤이 날개를 활짝 펼치며, 공기가 쩌렁하는 포효를 뿜어냈다.

‘바쁘니까 인사는 생략하자. 네 이름은 지금부터 사룡이다. 사룡이 너는 소리 좀 지르고, 심상으로 대화가 가능한 모든 사람들을 지금부터 투항시키는 일을 해라.’

-아, 알겠다. 주인.

사룡이 강림하자 일순간 전투가 소강상태에 빠져 버렸다.

표효의 영향인지 사룡의 무시무시한 외형을 보고 놀란 것인지 모든 것이 일순간 정지했다.

성현은 이때를 놓치지 않고, 공동의 천장으로 뛰어올라 빠르게 주변을 훑었다.

“저 새끼들 보소.”

독전관처럼 후방에 있는 일단의 인원이 성현의 눈에 들어왔다.

그중 한 놈은 앞서 터널 중간에서 맞닥뜨렸지만, 일부로 놓아준 자칭 ‘선지자 협회’의 회장이 분명했다.

그놈의 옆과 뒤에는 십 수 명의 인원이 함께하고 있었고, 뒤로 차츰 물러서는 듯하더니 한 방향으로 뛰기 시작했다.

“이번엔 그냥 보내 줄 수가 없다.”

이미 놈을 이용해 목적한 바를 거의 이뤄 냈다. 대피소를 장악 중인 세력의 구심점이 되는 자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낚시는 성공했다.

회장이라는 놈이 현장에 있다는 것이 그 증거라 할 수 있었다.

저놈들만 잡으면 공동에 있는 자들은 사룡이 케어 할 것이고, 상황은 거의 종료된 거나 진배없었다.

공중에 체류한 시간은 3~4초 남짓, 이미 놈들은 성현과 3백여 미터를 떨어진 곳에서 공동과 연결된 다른 통로로 들어서고 있었다.

쾅! 스팟!

바닥에 착지한 성현은 그대로 땅을 박차고 총알처럼 튀어 나갔다.

단단하게 다져진 바닥이 포격을 받은 듯 터져나가며, 사방으로 큼지막한 파편들을 퍼트렸다.

‘넌 여기서 대기해, 그리고 지금 하는 것처럼 계속하면 된다.’

-알겠다. 주인. 헌데 이곳은 너무 좁다. 계속 이곳에 살아야 하나?

‘……헉!’

성현은 자칫 발이 엉켜 넘어질 뻔했다.

가까스로 중심을 바로 세우고, 자신이 큰 실책을 행했음을 깨달았다.

상황을 쉽게 타계할 목적으로 스컬 드래곤을 생성하긴 했지만, 간과하고 있던 부분이었다.

사룡의 거대한 동체가 외부로 나가는 통로에는 적합하지 않음을 미처 생각지 못했다.

-주, 주인 왜 그리 놀라나?

‘내, 내가 지금 좀 바쁘니까 잠시 후에 이야기하자.’

-주, 주인!

이후 사룡의 절절한 말이 심상으로 들려왔지만, 성현은 애써 무시했다.

‘사룡아 존나 미안하다. 절대 잊지 않으마…….’

* * *

“회장님! 저, 저자는 도대체 누굽니까? 인간이긴 합니까?”

육체 강화계열 이능력자 하나가 이진석을 따르면서 크게 소리쳤다.

허나, 이진석이라 한들 성현의 정체를 알고 있을 리 없었다. 답답하기로는 본인이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터였다.

“그, 그런 놈이 인간일 리 없잖아!”

분명 전차의 포탄에 직격으로 맞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봤다. 그때까지만 해도 다 끝났다는 생각에 일정 부분 여유를 찾기도 했었다.

하지만 첫 포격이 끝나고 자신의 두 눈을 의심해야했다.

제아무리 육체 강화자라 해도 피륙으로 이루어진 인간이 탱크의 주포 공격을 버텨낸다는 건 상상할 수도 없었다.

자신을 비롯해 대피소의 모든 이능력자들이 이에 해당했다.

탱크의 주포는커녕 자신 정도는 되어야 중기관총 정도의 화력을 그나마 견딜 수 있을 뿐이었다.

그것도 짧은 시간임을 감안하면, 침입한 자의 방어력은 추측하기도 힘들 정도였다.

“방법을, 방법을 찾아야 해. 이대로는 다 죽는다.”

잔상이 아른거릴 정도의 빠른 움직임, 탱크의 주포조차 막아내는 막강한 육체 방어력, 거기다 수십 톤의 탱크마저도 들썩이게 만드는 무시무시한 완력.

손짓 한 번에 자신의 육체마저 갈가리 찢겨나갈 것만 같았다.

“회장님!”

김태진이 아무 계획 없이 무턱대고 앞만 보고 달려가는 회장의 한쪽 팔을 간신이 붙잡고 돌려세웠다.

평소라면 절대 하지 못할 행동이었지만, 지금은 그런 것을 가릴 상황이 아니었다.

“회, 회장님. 어디까지 가시려고 합니까? 주거지가 넓다고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대피소 안입니다. 지금이라도 항복을 하고 기회를 봐야 합니다. 적극적으로 투항 의사를 밝힌다면 최악은 분명 면할 겁니다.”

김태진이 그나마 현실적인 판단을 하고 있었다. 어떻게든 살아남는다면, 틀림없이 기회는 또다시 찾아온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통하지도 않을 도주는 상대의 화만 돋울 뿐임을 상기했다.

“방금 보셨지요? 천장에 갑자기 나타난 괴물은 식량을 조달키 위해 내보냈던 군인들이 말한 그것과 분명 일치합니다. 자신들을 구해줬다고 했는데 저자와 연관 있는 게 확실해 보입니다. 군인들을 도와주기까지 한 자가 이유 없이 사람을 해치 않을 겁니다. 지금은 납작 엎드려 죽는시늉이라도 해서 살아남는 게 최선입니다.”

김태진은 사룡을 보고 실낱같은 희망도 훌훌 털어버린 후였다,

당장에 위급을 모면하는 방법으로는 이제 하나밖에 남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이대로 도망쳐서 재정비한들 다시 덤빌 엄두가 나지 않았다.

가망이 없었다.

“이 새끼가, 미쳤어! 우릴 살려줄 것 같아?”

이진성의 얼굴이 흉신악살처럼 변해 김태진이 잡은 팔을 후려쳤다.

“……어쩔 수 없나?”

김태진의 눈빛이 한순간 표독스레 변했다.

그리고 이를 ‘뿌득’ 갈며 곁눈질했다.

스스슥

12명의 이능력자들이 이진성을 포위하듯 순식간에 진형을 만들었다.

이미 김태진은 일이 틀렸음을 직감한 직후 남은 이능력자들에게 그 뜻을 전했고, 모두가 대답은 없었지만 무언의 긍정을 표했었다.

“지금이다!”

김태진은 자신의 염동력으로 이진성의 전신을 옭아맸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홀로 이진성을 어떻게 해볼 자신이 없었지만, 지금은 혼자가 아니었다.

“뭐, 뭐야! 이 찢어 죽일 새끼가!”

이진성이 어떻게든 김태진의 구속을 풀고 벗어나려 했지만, 김태진의 전력을 다한 염동력에 일시지간 몸을 뺄 수가 없었다.

퍼퍼펑! 스가각! 꽈광!

압축된 공기가 이진성의 면상에 작렬했고, 날카로운 파공음을 내는 무형의 칼날들이 그의 전신을 난도질했다.

이진성의 그림자가 일렁이더니 시커먼 무언가가 그의 전신을 감싸기까지 했다.

공격은 그 한번으로 그친 것이 아니었다.

생사 대적이라도 되는 듯, 이능력자들은 혼신의 힘을 다해 이진성을 공격했다.

혼자서는 엄두를 못 낼 이진성이었지만, 대피소의 이능력자 중 상위 그룹에 있는 12명이 힘을 합치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크으윽, 이 개새끼들이……. 크억, 쿨럭!”

이진성은 겨우 김태진의 염동력 구속을 풀어냈지만, 이미 몸은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심각한 내상을 입었음인지 입으로 분수같이 피를 토해냈다. 드문드문 내장 조각들이 섞여 있는 것이 회생불능의 상태에 이르렀음을 짐작케 했다.

입은 옷가지는 넝마조각이 되다 못해, 완전히 헐벗은 상태가 되어 있고 그의 강인했던 육체는 온데간데없었다.

고열에 전신의 모발은 모두 타버렸고, 피부는 지금도 벌겋게 달아오르다 못해 짓물러져 누런 진물이 흘러 내렸다.

그야말로 처참한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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