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1
재회 (2)
“회장. 악착같이 도망가다 죽을 바에는 한 몸 희생해서 모두를 구하는 게 좋지 않겠어?”
“벼, 병신들… 이, 이런다고 그놈이, 사 살려줄 것 같아. 크흐흐. 다, 다 같이……주, 죽게 될…….”
스거걱!
강인했던 육체의 견고함은 온데간데 없어져버렸고, 이진성의 머리가 몸통과 분리되어 허공을 날았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머리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두 눈은 끔뻑이고 있었다.
김태진은 이진성의 저주 같은 유언을 더 들어줄 용의가 없었다.
한시라도 빨리 침입한 이에게 투항해서 위기를 모면할 기회를 잡아야 했다.
털썩.
이진성은 머리가 바닥에 떨어진 직후였다.
“어라?”
성현이 이들을 따라잡았을 때는 이미 자칭 선지자 협회의 회장이라는 놈은 부하들에게 처참하게 살해당한 후였다.
“하, 항복하겠습니다.”
성현의 전신에서 뿜어지는 압도적인 존재감에 김태진을 비롯한 이능력자 모두가 놀라다 못해 가슴이 철렁했다.
자신들이 이러한 이에게 대항했다는 사실이 더없이 미친 짓이었음을 가까이하고서야 알게 되었다.
멀리 있을 때에는 그 위압감이 옅어진 탓에 제대로 느끼지 못했지만, 불과 수 미터 거리에서 느껴지는 전신을 짓누르는 압박감은 제대로 서있기 조차 힘들었다.
‘좀 더 찔끔하게 해줘 봐?’
성현이 정형화된 스킬이 아님에도 자연스럽게 깨달은 능력을 유감없이 표출했다.
모두가 고양이 앞의 쥐 꼴을 하고, 바들바들 떨어댔다.
“투, 투항하겠습니다. 저희는 회장의 강압에 못 이겨 굴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본인의 의사로 공격을 했던 게 아닙니다. 요, 용서해주십시오.”
“아아. 뭔 말을 하려는지 대충은 알겠는데 어차피 조사하면 다 나와. 당신들이 착하게 살았으면 괜찮을 거고, 아니면 그에 합당한 벌을 받으면 된다. 오케이?”
“……”
성현은 싱긋이 웃으며 말했다.
이진성을 처리하는데 김태진과 힘을 모은 이능력자들은 당장은 살았지만, 이후의 일은 장담하기 어렵게 되었다.
모두 자신들이 한 짓을 되짚어 보다 몹시도 두려워져 얼굴이 굳어지다 못해 핏기 하나 보이지 않고 있었다.
“자 지금부터 당신들이 할 일은 한 가지뿐이야.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내가 정한 곳에서 단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는 게 당신들의 할 일이야.”
살갗이 아릴 정도의 진득한 살기를 풍기며 말하는데 거부권이 있을 수 없었다.
* * *
성현은 공동의 구석 바닥에 선을 긋고 오픈된 곳에 이능력자들을 모아두었다.
선을 넘는 순간 적대행위로 간주하겠다고 엄포를 놓았고, 그 대가는 상상에 맡긴다고 전했다.
시험 삼아 선을 넘는 멍청한 이는 나오지 않을 터였다.
“당신이 여기 현장 지휘관인가?”
“그, 그렇습니다.”
“계급장은 있는데 이름표가 없군, 이름이 뭔가?”
“주, 주진철이라고 합니다.”
“좋아. 주 소령.”
소령 계급을 단 남자가 식은땀을 흘리며 성현의 앞에 서 있었다.
“하나만 묻지 저들과 한패였나?”
성현은 턱 끝으로 구석진 곳에 몰려 있는 이능력자들을 가리켰다.
“아닙니다! 어, 어쩔 수 없이 저들의 명령을 들었지만, 결단코 선지자 놈들과 한패는 아닙니다.”
“그래? 당신은 아니라고 말하지만, 마주한 상황은 그렇지가 않아.”
“그, 그건….”
“어차피 차후에 조사하면 뭐든 나올 테니 그 이야기는 여기서 접고, 지금부터 내가 지시하는 일부터 하도록 해.”
성현은 주 소령이 전차부대의 최고 지휘관으로 자신의 공격한 군인들의 대장 격이었다.
주 소령이 뭐라고 변명을 하려고 입을 달싹였지만, 더 듣고 자시고 할 게 없었다.
지금은 시키는 일만 제대로 할 자가 필요할 뿐이었다.
당장 죄가 있고 없고를 확인할 길도 없었고, 시급한 일은 그게 아니었다.
“첫째 모든 병력은 무장해제한다. 둘째 대피소의 전 주민들을 지상으로 이동 조치할 것.”
“무, 무장해제야 다, 당연히 따를 일이지만, 지상에는 괴물들이.”
“안전하다. 지금부터는 내 말을 자르거나 두 번 말하게 하지 마.”
성현은 자신의 부하도 아닌 다음에야 이해시키고 사정을 설명해줄 이유도 의무도 없었다.
사실 이러쿵저러쿵 말해줘야 할 게 많아 귀찮다는 게 가장 컸다.
곧 있으면 동원과 두식이 주민 수송을 위해 부대원들과 도착할 예정이었다.
성현은 미루고 할 것 없이 당일로 주민 수송을 시작할 생각이었다.
제주에 준비가 되어있지 못할 테지만, 한 며칠 정도는 텐트를 치고 지내더라도 이곳 대피소보다는 좋을 거라 생각했다.
“셋째 구조요청을 한 여자를 찾아서 안전하게 데려올 것. 이상 세 가지다.”
“아, 알겠습니다. 저 근데… 그 구조 요청을 한 여자분은 왜 찾으시는지?”
성현은 시키는 일만 하면 될 것을 잔말이 계속 따라오자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다.
기분이 살짝 언짢아 진 건 소령도 이곳 대피소의 지도부 격이라 할 수 있었던 탓에, 결코 곱게만 보이지는 않아서였다.
“내가 그런 것까지 당신한테 시시콜콜 이야기해줄 필요가 있나?”
“그, 그게 아니라. 죄송합니다. 사실은 따로 찾을 필요가 없어서 여쭤본 것뿐입니다. 제가 아는 사람이고…….”
성현은 이어진 그의 말을 듣고 어쩌면 정말 피치 못해 이능력자들의 주구 노릇을 할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그의 모든 행동이 정당화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어찌 되었든 차제에 죄가 있음이 밝혀진다면, 그에 합당한 죗값을 치러야 했다.
“가서 데려와. 난 구조요청을 한 사람과 직접 이야기를 해봐야겠어.”
“알겠습니다.”
* * *
북한산 대피소 거주지 외곽.
쓰레기 소각 시설의 한편에 은밀한 곳을 주 소령이 찾아왔다.
잔뜩 긴장한 초췌한 모습의 30대 여성은 주 소령임을 확인하고, 그제야 깊은숨을 내쉬며 안도했다.
그녀는 주 소령의 도움이 없었다면, 이곳에서 굶어 죽었든 이능력자들에게 붙잡혀 곤욕을 치렀던 둘 중 하나가 되었을 것이다.
“가요. 어차피 정한 씨를 찾기 위해서도 더는 이곳에 있을 수는 없어요.”
주 소령을 따라나선 그녀는 성현이 있는 공동으로 향했다.
잠시 후.
성현은 이능력자들을 모아 논 곳에서 불과 20여 미터 떨어진 곳에 군용 막사 하나를 펼쳐 놓고 있었다.
이능력자들을 굳이 감시할 필요가 없었지만, 어쩌다 보니 감시하는 위치에 자리하게 되었다.
공동은 지금 바쁘게 움직이는 이들로 요란했고, 성현은 비교적 한적한 곳을 찾다 보니 이곳이 제격이었을 뿐이었다.
“데려왔습니다. 지금 만나보시겠습니까?”
주 소령의 말에 성현은 고개를 끄덕거렸고, 막사 안으로 한 명의 여성이 들어왔다.
그리고.
“……”
성현의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그리고 벼락이라도 맞은 양 정신이 번쩍하고 들었다.
“미, 미경 씨? 제수씨 맞죠?”
“……네?”
미경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헬멧을 쓰고 있는 성현을 보고 영문을 몰라 의아해했다.
“접니다. 성현입니다.”
성현의 말에 미경도 그제야 눈을 찢어질 듯 부릅뜨며, 크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극초신성 사태 이전 사석에서 자주는 아니지만, 간혹 정한과 함께 식사도 하고 술도 마셨던 사람이었다.
정한이 자신과 둘도 없는 친구라며, 세상에서 가장 믿는 친구라는 말을 입이 닳도록 했던 바로 그 성현이었다.
“저, 정말 성현 씨?”
정한이 극초신성 사태가 터지고, 시시때때로 한이 되었음인지 가슴을 치는 경우가 잦았다.
남모르게 눈물을 글썽거리며, 성현이 녀석에게 미안하다며 한에 사무쳐 했었다.
“네. 저 맞습니다. 맞아요!”
“어떻게 이런 일이……!”
자신들을 구조하기 위해 왔다는 이는 북한산 대피소의 모든 이능력자들을 합친 것보다 더 강하다고 했다.
더군다나 전차의 공격에도 멀쩡한 초인이라고 들었다.
“저, 정말, 우리 정한 씨 친구인 그 성현 씨가 맞나요?”
“아, 이거 참 헬멧을.”
성현은 아직도 헬멧을 쓰고 있음을 뒤늦게 알아채고, 급히 캐릭터 창고에 수납시켰다.
“성현 씨. 살아계셨군요!”
“제수 씨. 무사해서 다행입니다.”
“성현 씨-! 우리 정한 씨 좀 살려주세요. 빨리요.”
“……!”
성현은 미경이 울음을 터트리며 정한을 살려달라는 말에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정한이 살아있지만, 그만큼 위험한 상황에 처해있다는 말로 해석되었기 때문이었다.
“제수 씨 진정하세요. 제가 반드시 구할 테니 말만 하시면 됩니다. 어떻게 된 겁니까? 어디에 있어요?”
“이능력자들이 정한 씨를 잡아가서 고문하고 있어요. 벌써 보름이나 흑흑.”
성현의 얼굴이 흉신악살처럼 구겨졌다.
만에 하나 친구인 정한이 죽었다면, 이곳의 이능력자들은 살아있음을 저주하게 될 것이었다.
“숨만 붙어 있으면 됩니다. 어떻게든 살릴 수 있어요. 내가 정한이 녀석 찾을 겁니다.”
성현은 미경의 손을 잡고, 막사를 나와 이능력자들을 몰아둔 곳으로 빠르게 다가갔다.
“물을 말이 있다. 만약 아는 자가 하나도 없다면 니들은 모두 이곳에서 살아나갈 수 없다.”
찐득한, 유형화된 살기가 이능력자들을 향해 집중되었다.
“흐이익!”
“허업!”
털썩하며 그 자리에서 주저 않은 자가 태반이었고, 후들거리는 다리 사이로 못 볼 꼴을 보이는 이가 대다수였다.
그리고 공포에 질려 두려움이 가득한 시선들이 한 명을 향하고 있었다.
“커, 커억!”
우악스러운 성현의 손길이 빛살과 같이 김태진의 목을 움켜잡았다.
“어디냐? 어디냐고!”
* * *
멀지 않은 곳이었다.
불과 지척이었다.
성현은 사룡이에게 최우선으로 미경의 안전을 맡기고 정한을 찾아 달려갔다.
공동을 빠져나온 성현은 C구역에 위치한 거주지를 관통해 B구역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저기다!”
건물 외벽에 치안본부라는 글자가 양각되어 있었다.
쾅!
닫힌 1층의 문을 부수고, 성현은 2층 계단을 한달음에 올라가 217호를 찾았다.
까강! 벌컥
자물쇠를 손날로 제거한 성현이 급히 문을 열어젖혔다.
“정한아!”
허공에 양손이 묶인 체 고개를 숙이고 있는 이가 있었다. 온몸은 피투성이였고, 걸쭉한 피가 입가에서 흘러 바닥에 길게 늘어져 있었다.
“시발! 이 개새끼들이!”
성현은 급히 밧줄을 자르고 정한을 바닥에 조심스레 뉘었다.
“크윽.”
정한이 정신을 차렸는지 실눈을 뜨며 희미하게 웃었다.
“이 새끼 울기는 드디어 만났네. 근데 죽었는데도 왜 이리 아프냐.”
말에 기운이 하나도 없었다.
너무도 작은 소리라 어찌 보면 입만 달싹거리며 중얼거림으로 보일 지경이었다.
그리고 다시 의식을 잃었는지 실눈조차 뜨지 못하고 감겨버렸다.
성현이 급히 호흡을 체크하고, 놀란 가슴을 진정시켰다.
“너 시발 내가! 내가! 반드시 살릴 테니까. 어금니 꽉 물어라. 너 이 새끼 제수 씨 혼자 두고 뒤지면 내가 저승까지 쫓아가서 죽통을 날려주마. 죽지 마! 이 새끼야!”
성현은 정한을 품에 안아 들었다.
그리고 최대한 조심스레 그리고 빠르게 다시 공동으로 향했다.
해미, 해미가 필요했다.